소설리스트

까마귀 죽이기 (1)화 (1/95)

prologue

“살려 달라고 빌어 봐.”

한 손에 가녀린 목을 움켜쥐고 있는 그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절벽 끝에서 벌어진 이 연극은 오로지 그를 위한 것이었다. 제인은 제 목숨줄을 잡고 있는 단단한 팔을 붙들고 감히 발버둥도 치지 못했다.

발끝으로 간신히 땅을 짚으며, 들이쉰 숨도 마저 뱉지 못한 채 순응할 뿐이었다. 목이 졸려 죽거나, 절벽에 떨어져 죽거나, 아니면 그에게 복종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었다.

“살…려…주……세요….”

겨우 다섯 음절을 뱉는 동안, 흰 피부가 붉게 물들었다. 만족스러운 얼굴을 한 그는 팽개치듯 제인의 목을 놓아주었다. 바닥에 너절하게 쓰러진 제인이 콜록대며 연신 기침을 해댔다.

“내일은 꽃놀이를 갈까.”

그가 천천히 다가와 제인의 등을 쓸었다. 또다시 다정한 연기를 했다. 다정한 미소. 다정한 눈빛. 다정한 말투. 전부 그의 것이 아닌데도, 그는 잔인한 면모를 가감 없이 보여 준 다음엔 늘 다정함을 흉내 냈다. 제인은 우악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늘 곁을 지켜 주던 따뜻한 그가 그리워 눈물이 났다. 그는 이미 죽은 사람이었는데도.

사람을 믿은 대가는 가혹했다. 결국, 옆에 남은 건 죽어 버린 제 형을 모방하는 끔찍한 괴물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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