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17화>
살짝 민재 쪽을 살핀 아연이 발뒤꿈치를 들어 올렸다. 힘껏 자세를 높여서 겨우 성현의 턱 끝에 입술을 쪽 맞추고는 간지러운 깃털처럼 가볍게 멀어졌다.
평소라면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의 허리를 낚아채 끌어안고 키스를 시도하였을 성현이었다. 그러나 그는 잠잠한 눈길로 물끄러미 내려다볼 뿐이었다.
아연은 다독이듯이 그의 뺨을 톡톡 두드리며 속삭였다.
“조금만 기다려. 옷 갈아입고 나올게.”
“…….”
“집에 가자.”
성현은 그제야 아내의 허리를 당겨 부드러운 머리카락에 입술을 묻었다. 이윽고 그의 품을 빠져나간 아연이 종종걸음으로 걸어 탈의실로 향했다.
그녀가 문 뒤로 완전히 사라진 뒤, 성현은 느긋하게 몸을 돌렸다. 그새 재빨리 뒷정리를 마치고 쥐새끼처럼 빠져나갈 채비를 하던 알바생이 따가운 눈길을 느끼곤 등허리를 흠칫 곧추세웠다.
서늘한 얼굴에 보기 드물게 온화한 미소를 띤 성현이 말없이 발걸음을 내디뎠다. 유리문 바깥에서 들이친 조명을 받아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가 민재의 발끝까지 닿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민재는 자신도 모르게 두리번거리며 퇴로를 찾았다. 남편을 위해 깜찍한 이벤트를 준비한 사장님을 돕는 호의를 베풀었을 뿐인데, 자신이 왜 궁지에 몰린 생쥐가 된 듯한 압박감을 느끼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그저 본능적으로 불길한 기운을 느끼고 뒷걸음질을 쳤다. 민재의 엉덩이에 무언가 툭 닿으며 더 이상 도망갈 길을 차단했다.
뒷덜미에 식은땀이 쭈욱 배어 나왔다. 민재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시선을 들었다. 덩치가 산만 한 남자가 소리도 없이 다가와 어느새 코앞까지 가까워져 있었다.
아아……. 좆됐다.
민재는 낮게 탄식했다. 사장님은 대체 이 무서운 남자와 어쩌다 사랑에 빠졌는지, 근원적인 궁금증이 일어난 것도 잠시.
아무래도 지독한 얼빠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하며 민재는 입술 끝을 끌어올려 최대한 순종적인 미소를 지었다.
* * *
달칵, 문 열리는 소리에 캐비닛 앞에 서서 블라우스의 단추를 채우던 아연이 흘끗 옆을 돌아보았다.
“밖에서 기다리지. 거의 다 입었어.”
그의 등장에 마음이 급해졌는지 단추를 채우는 아연의 손길이 두어 번 헛손질을 했다. 스커트 안으로 대충 집어넣은 블라우스의 뒷자락이 허술하게 빠져나와 있다.
아연이 옷을 갈아입는 이 공간에 언제든 다른 사내새끼의 출입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새삼 실감이 났다.
물론 이 쪽방 같은 공간에 몰래카메라가 설치되지는 않았는지 정기적으로 체크하고 알바생에게 불미스러운 성벽 따위가 없다는 것 또한 거듭 확인했지만, 완전히 마음이 놓이는 것은 아니었다.
성질 같아선 강제력을 동원해서라도 아연을 안전한 공간에만 두고 싶었다. 막말로 어려울 것은 하나도 없었다. 당장 고갯짓 한 번이면 계획을 실현에 옮길 수 있을 만큼.
뒤에서 슬쩍 뒷공작을 벌여 카페 영업을 하지 못하도록 압박하고, 앞에서는 그녀를 달래는 방법이면 충분했다.
게다가 태송현의 식구들 또한 아연이 카페 사업을 접었으면 하는 기색을 넌지시 비치던 차였다. 물론 그와는 전혀 다른 이유에서.
지금까지는 그러한 태송현의 뜻이 아연의 귀에 흘러 들어가지 못하도록 성현이 중간에서 모두 커트해 왔다. 치졸한 방법일지라도 태송현 핑계를 앞세운다면, 분명 마음 약한 아연은 알겠노라 고개를 끄덕일 게 뻔했다.
그러니까, 아연을 안전한 곳에 고립시킬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
다만 문제는 그가 여전히 아연에게만은 꽤 무른 구석이 있다는 것이다.
그녀의 이 작은 세계를 깨뜨리고 싶지 않은 마음. 아연의 애정이 묻은 이 아기자기한 공간을 지켜 주고 싶은 마음. 그것이 그로 하여금 이성의 끈을 간신히 붙들게 했는데, 그 얕디얕은 끈은 지금 당장이라도 끊어질 듯이 위태로웠다.
등 뒤로 문을 닫은 성현은 헐거워진 넥타이의 매듭에 손가락을 걸어 아래로 끌어 내리며 느릿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등 뒤로 다가가 말없이 몸을 붙이니, 아연이 고개를 쭉 빼 문 쪽을 의식했다.
“밖에 민재 씨 있잖아.”
성현은 아랑곳하지 않고 스커트 아래로 허벅지를 밀어 넣었다. 얇은 스커트가 미어지듯 당겨지며 하체의 유려한 굴곡이 드러났다.
텅.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아연은 어느새 캐비닛과 커다란 성현의 몸 사이에 바짝 끼워진 채로 다급하게 캐비닛을 짚었다.
“안 된, 다니까.”
얇은 천 너머로 느껴지는 묵직한 중량감이 엉덩이골 사이에 비벼졌다. 숨을 삼킨 아연이 그의 품을 벗어나려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성현은 그저 몸을 붙이고 서 있는 것만으로 간단히 그녀를 제압했다.
“이러지 마. 밖에 민재 씨가…….”
“갔어.”
성현은 아연의 저항이 성가시다는 듯 짧게 대꾸했다. 그러고는 눈 깜짝할 사이에 목에서 풀어낸 넥타이로 그녀의 눈가를 가렸다.
민재가 갔다는 말에 안심해 버둥거림을 멈추었던 아연이 멍하니 고개를 돌렸다. 너무 놀라 저항할 여유도 잃은 듯했다.
“성현아……?”
“쉿. 가만히.”
달래듯이 속삭이는 다정한 목소리와는 달리, 성현은 거친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아연이 본능적으로 손을 가져가 시야를 가로막은 넥타이를 풀어내려 했으나, 그의 손아귀에 허무하리만치 맥없이 가로막혔다.
아연의 손을 낚아챈 성현은 그것을 끌어가 무섭도록 발기한 자신의 아래에 가져다 놓았다. 네 손이 있어야 할 자리는 오로지 여기라는 듯이.
시야가 차단된 탓에 다른 감각이 예민하게 일어났다. 바지를 뚫고 나올 듯이 단단해진 성기가 문질러지는 손바닥이 델 듯이 뜨거웠다.
그 순간, 툭 하고 블라우스의 가장 윗단추가 풀어지며 목덜미에 소름이 돋았다. 귓가에 뜨거운 입김이 쏟아진 탓이다.
“우리 재미있는 거 할까?”
솜털이 곤두선 귓불에 입술을 붙인 채 속삭이는 성현의 목소리에선 장난기 하나 느껴지지 않았다. 아연은 고개를 푹 떨어뜨렸다. 성현의 입술이 그녀가 움직이는 그대로 따라와 붉게 달아오른 귓바퀴를 콱 깨물었다.
재미있는 거 하자는 사람이, 왜 이렇게 화가 난 것처럼 느껴지는 걸까.
“자, 잠깐……. 잠시만.”
“싫은데.”
툭. 투둑. 단추가 하나씩 풀릴 때마다 가녀린 몸이 움칫 움츠러들었다. 앞섶이 모두 벌어진 블라우스의 옷깃을 툭 미끄러뜨리니 하늘하늘한 실크가 하얀 살결을 쓸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는 부드러운 살덩이를 감춘 브래지어째로 가슴을 왈칵 움켜잡았다. 아연이 어깨를 둥글게 구부리며 그의 손길을 피해 보려 했지만, 귀여운 수준의 저항이었다. 가차 없이 마음껏 주무르다가 불시에 브래지어의 여린 레이스를 불쑥 잡아끌었다.
“흣…….”
얇은 레이스를 밀치며 말캉한 살덩어리가 쏟아져 나왔다. 새하얀 가슴이 그를 반기듯 출렁거렸다. 툭 불거진 젖꼭지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자그마치 일주일 만이다. 하루라도 입에 물고 빨지 않으면 혀끝에 가시가 돋칠 지경인 이 찰진 살결에 손끝조차 대지 못한 게. 심각한 갈증에 목구멍이 쩍쩍 들러붙는 것 같았다.
성현은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듯이 축이며 눈꺼풀을 내리깔았다. 풍만한 젖가슴이 그의 손아귀 안에서 마구잡이로 뭉그러지는 것을 감상하는 눈길은 깊은 늪처럼 짙게 가라앉아 언뜻 차가운 냉기마저 일었다.
뾰족하게 곤두선 젖꼭지가 손가락 사이로 볼록 삐져나와 입에 넣고 빨아 달라는 것처럼 그를 유혹했다. 눈매를 가늘게 좁힌 성현은 한 손으론 젖가슴을 희롱하며 나머지 한 손을 내려 스커트를 들쳐 올렸다.
제자리를 찾아 들어가는 구렁이처럼 그의 손이 다리 사이를 서슴없이 파고들었다. 성현은 팬티 위로 어렵지 않게 음핵이 있는 자리를 찾아 꾸욱 짓눌렀다.
눈을 감고도 아연의 몸을 속속들이 그려낼 수 있었다. 그는 정확하게 그녀가 자지러지는 자극점을 찾아 달뜬 살점을 거칠게 문댔다.
“흐윽.”
아연이 신음과 함께 몸을 뒤척이며 허리를 뒤틀었다. 그의 품 안에서 벗어나 보려는 헛된 희망을 버리지 않는 끈기가 귀여울 따름이다.
한참을 버둥거리던 아연은 무력하게 상체를 수그리며 엉덩이를 들썩였다.
“혼자서만 재미를 보고 있으면 어떡해. 아직 아무것도 안 해 줬잖아, 아연아.”
성현이 축축하게 젖어 살갗에 철썩 달라붙어 있는 속옷 위를 문지르며 그녀를 나무랐다. 어린아이에게나 하듯 다정하게 어르는 말투. 수치심에 아연의 귓등에 화르르 불이 붙었다.
“지금부터 더한 걸 해 주려고 하는데, 벌써 이렇게 싸 버려서야.”
의도적으로 들으란 듯이 혀를 쯧 찬 그가 느긋하게 속삭였다.
“참아.”
억센 손가락이 팬티를 옆으로 확 젖혔다. 일주일간 갖지 못한 제 여자의 안을 그가 거칠게 파고들었다.
넥타이 아래 가려진 아연의 눈이 크게 떠졌다. 처음부터 손가락 두 개가 푹 꽂히자 숨이 뚝 하고 멎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긴장한 몸이 벌벌 떨리기 시작했다. 멍하게 벌어진 입가 옆으로 주르륵 타액이 흘렀다.
평소 같으면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들어 게걸스럽게 핥아댔을 법도 한데, 성현은 맑은 액체가 턱까지 헤프게 흘러내리는 모습을 지켜볼 뿐, 그녀 혼자 몸을 바르르 떨도록 내버려 두었다.
오히려 밑을 드나드는 손가락의 속도가 거침없이 빨라졌다. 탁탁 쳐올리는 손길이 거세어질수록 팬티를 적시고도 남은 질펀한 애액이 찌걱대며 쏟아져 사방으로 퍼졌다.
다리에 힘이 풀린 아연이 작게 흐느끼며 휘청거렸다. 그러나 잔인하기 짝이 없는 권성현은 그녀를 더욱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가슴을 움켜쥔 그의 손이 젖을 짜기라도 하듯 서슴없이 주물럭거렸다.
“아흑……. 성현아.”
아연이 그를 진정시켜 볼 생각으로 손바닥에 만져지는 페니스를 꽉 움켜쥐었다. 그러나 터질 것처럼 발기한 물건은 진정하기는커녕 되레 단단하게 부피를 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