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네가 지금 섹스하고 있는 내 얼굴이나 신경 쓰는 게 낫지 않겠어? 김준성 낯짝 따위에 마음 써 줄 여유가 남아 있나 보지?”
“아앗!”
그는 뒤에서 안고 있던 아연의 어깨를 짓누른 채 그대로 몸을 옆으로 돌려 일으켜 세웠다. 아연은 핑그르르 돌아가는 시야에 놀라 짧게 비명을 질렀다.
여전히 성기가 삽입된 채로 빙글 돌아간 몸은 어느새 침대 위에 바짝 엎어져 있었다. 아연은 불만스럽게 신음하며 고개를 돌려 무어라 항의하고자 했지만, 커다란 손이 구렁이처럼 배 아래로 스윽 파고 들어와 훌쩍 끌어당기는 바람에 또다시 놀란 숨결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엉덩이 들어.”
상체는 침대 시트에 짓이겨지듯 눌린 채 엉덩이만 위를 향해 들려서 그에게 고스란히 내밀어졌다. 어쩜 이렇게도 사람 치욕스럽게 하는 자세를 다양하게 시도할 수 있는 건지.
심각한 변태가 분명했다. 의심의 여지조차 없는.
변태를 자극하는 건 그를 더 흥분시킬 위험이 높기에 그리 현명한 판단이 아닐 테지만, 지금의 아연은 판단 능력이 몹시 흐려진 상태였다. 더불어 성현의 아래에서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자세에 취해질수록 결국 덩달아 달아오르고 말았다는 자괴감을 외면할 방법은 하나뿐.
“이딴 변태 같은 자세, 누가 해 줄 것 같아?”
아연은 이를 악물고 제 허리에 줄기처럼 엉킨 성현의 팔을 떼어 냈다. 그러고는 안간힘을 다해 무릎으로 기며 탈출을 시도했다.
커다란 그림자 아래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름대로 온 힘을 다해 꿈틀거리는 가련한 시도가 몇 번 이어졌다. 문득 뒤통수에 피식 바람 빠지듯 웃는 소리가 와닿았다.
“도망가는 거, 습관이야? 아니면 그냥 나 자극해서 더 세게 박히고 싶어서 안달이 난 건가.”
식은땀이 쭉 배어날 정도로 진을 뺀 노력이 무색하게 허리를 단번에 휘어잡는 힘이 느껴졌다. 가느다란 허리를 양손으로 움켜쥔 그가 아연의 하체를 제 쪽으로 쑥 당기며 동시에 페니스를 퍽 하고 박아 넣었다.
“아흑!”
철썩. 성현의 하체가 통통한 엉덩이를 때리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흰 엉덩이가 발개질 정도의 충격이었지만, 내벽이 받은 자극에는 비할 수 없었다.
굵은 기둥이 쫄깃하게 들어찬 속살을 매끄럽게 헤치며 쑤욱 밀려들어 끝까지 파고들었다. 뭉툭한 귀두가 안쪽을 짓누르는 감각에 눈물이 찔끔 흘러나왔다. 격렬한 삽입에 새된 교성을 내지른 아연의 벌어진 입가로 타액이 주욱 흘러내렸다.
들어갈 수 있는 한계까지 성기를 욱여넣었지만 시커멓게 들끓는 욕정은 만족이란 것을 몰랐다.
성현은 심술궂게, 그리고 자조적으로 미소 지었다. 아연의 허리를 잡고 있던 양손으로 귀여운 엉덩이 두 쪽을 양껏 잡아 벌리고는 퍽퍽 박기 시작했다.
당연하다는 듯이 제가 벌여 놓은 황홀경을 감상하는 두 눈에 음습한 색욕이 일렁인다. 짐짓 무표정해 보이기까지 하는 단정한 성현의 얼굴에서 오로지 격한 감정으로 번들거리는 것은 형형하게 빛나는 눈동자뿐이었다.
그는 굵다란 페니스를 탐욕스럽게 삼키는 선홍빛 질구를 집요하게 관찰했다.
노골적으로 잡아 벌린 엉덩이 사이로 마치 달콤한 꿀이라도 뿌려 놓은 것처럼 흠뻑 젖어 번들거리는 음부. 무식하게 커다란 좆이 흉포하게 들락거리며 들쑤실 때마다 찔꺽거리는 야한 소리를 뱉어 내는 구멍이 사랑스러울 지경이다.
성기를 깊게 밀어 넣었다 쑤욱 뽑아낼 때마다 드러나는 기둥에 씌워진 콘돔 바깥 또한 아연의 음부만큼이나 흠씬 젖어 있었다. 모두 그녀의 몸이 자지러지며 제게 발라 놓은 하나의 증거였다.
한아연의 몸이 자신과 하는 섹스에 환장한다는 증명.
성현은 만족스럽게 입꼬리를 올리면서도 도저히 해갈되지 않는 갈증을 느꼈다.
더. 조금 더. 아연을 더욱 난잡하게 적시고, 더 이상 까발릴 것도 없는 음탕한 밑바닥까지 무너뜨리고 싶었다.
성현은 입맛을 다시듯 혀를 내밀어 입술 사이를 핥아 올렸다. 그러고는 어느새 그가 박아 대는 힘에 떠밀려 올라간 아연의 골반을 확 잡아끌었다.
“흐윽.”
아연이 우는 듯한 소리를 내며 어깨를 떨었다. 그에 맞춰 내벽이 빠듯하게 조여들며 성난 페니스를 찰지게 감싸자 시야가 허옇게 번쩍거렸다.
머리 꼭대기까지 차오른 시퍼런 흥분에도 불구하고 성현은 차분하게 뜬 두 눈에 제가 욕심껏 만들어 놓은 야한 꼴을 새기듯 담았다. 적나라하고도 날것의 달큼한 냄새를 흠씬 풍기는, 한아연의 구멍을.
내 거야. 내가 가질 거야. 나만이 널 독식할 거야.
성현은 낮게 중얼거리며 입술을 씰룩였다. 섹스라는 게 이렇게 위험한 것인 줄은 몰랐다. 위험수위를 알리는 머릿속의 경광등이 시뻘겋게 앵앵거렸다. 원래의 저라면 결코 떠올리지 않았을 유치하고 저속하며 미숙한 감정이 미쳐 날뛰듯 머릿속을 휘저었다.
‘네 말대로 질릴 때까지 해서 결국 서로의 몸이 지겨워지면, 그땐? 다시 친구 사이로 돌아가자고? 그러니까, 더 이상 섹스하지 않는 친구 사이로?’
‘얼마든지.’
웃기지도 않지.
퍽 자신만만하게 지껄이던 얼마 지나지 않은 과거의 자신을 정면으로 비웃으며 성현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거세게 경련하며 조여드는 안쪽을 몇 번이고 치받는 그의 얼굴에 냉랭한 기운이 스몄다.
침대 시트를 움켜잡으며 절정에 몸을 떠는 아연의 등에 상체를 가져다 붙이며 마지막으로 가장 깊은 안쪽까지 성기를 처박았다. 그리고 가녀린 목덜미에 잇자국을 새기며 사정하기 시작했다.
거칠게 몰아쉬는 숨결이 침실의 달궈진 공기에 뒤섞였다.
절정의 여파로 움찔거리는 속살의 떨림이 잦아들 때까지 그녀의 안에 머물던 성현은 이윽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성기를 빼내자 애액으로 번들거리는 질구는 순식간에 작게 다물어지면서도 얼마간 탐욕스럽게 벌름거렸다. 그것을 가만히 응시하며 정액이 찬 콘돔을 벗겨 낸 성현은 끝을 묶어 아무렇게나 던져 버리고 협탁으로 손을 뻗었다.
온몸의 모든 기운이 빠져나가서 손끝 하나 달싹할 수 없는 상태에 다다른 아연은 숨만 색색 내쉬었다. 제 아래에 무언가 부드러운 게 와닿는 것을 느끼면서도 밀어낼 힘이 없었다.
민망하게도 성현이 제 다리 사이를 닦아 주는 중이라는 걸 알았지만 할 수 있는 반항이라곤 허벅지를 간신히 오므리는 것뿐이었다.
“내버려 둬.”
엉덩이와 허벅지의 경계를 왈칵 움켜쥐는 손길에 결국 다리를 오므리는 것조차 수포로 돌아갔다. 성현이 언제부터 저렇게 제 말은 모조리 무시하고 들었는지 억울하고 괘씸한 기분이 치솟다가 이내 아연은 호승심마저 내려놓았다. 이젠 화낼 기운도 없었으니까.
“아예 욕실로 가서 씻겨 줄까?”
“……귀찮아. 힘들어. 아무 힘도 없어.”
“힘쓸 필요 없는데. 그냥 있으면 내가 다 해 줄 테니까.”
“됐어. 제발 그냥 놔둬. 쉬고 싶어.”
귀찮은 기색이 물씬 묻어나는 지친 목소리로 중얼거리던 아연의 눈꺼풀이 서서히 내리감겼다.
잠깐만 쉬어야겠다. 너무 힘드니까 잠시 힘을 비축하고 나서 집에 가야지.
수마에 정신을 빼앗기면서도 절대 잠드는 게 아니라는 실없는 자기 세뇌였다.
섹스는 하지만 친구 사이. 그게 그들의 관계를 설명하는 정의였다. 모순이 철철 흘러내리는 궤변으로 들리는 것은 일단 차치하고, 그의 침대에서 잘 수는 없다는 일종의 보수적인 심리인 것이다. 이를테면 스스로 편해지기 위한 모종의 자기기만.
이미 침대 위에서 질펀하게 뒹굴었는데, 인제 와서 그의 침대에서 잘 수 없다는 소리가 얼마나 비논리적인가.
제 머릿속에서조차 그러한 의문이 들었지만 이제 논리, 이치, 원칙 따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 지 오래였다. 비록 초라한 위선일지라도 비논리로 점철된 그들의 관계를 덮어 줄 핑계가 필요했다.
하아. 아연은 싸늘하게 몰아치는 현실감을 외면하며 얕게 한숨을 내쉬었다. 성현은 아연의 허리를 뒤에서부터 끌어안으며 몸을 붙여 왔다.
여전히 열기가 느껴지는 단단한 살갗과 두툼한 근육질의 몸체. 야성적인 냄새. 뜨거운 숨결.
성현은 그녀의 머리카락에 코를 깊게 묻으며 쉰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 말이야. 그동안 너 때문에 하루 종일 좆이 얌전히 있질 않아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마치 그녀에게 책임을 묻는 것처럼 당당하고 뻔뻔한 태도였다. 아연이 손이라도 뻗어 그의 성기를 움켜쥐고 흔들어 세워 놓기라도 했다는 양 질책하는 목소리.
게다가 엉덩이 사이를 은근하게 찔러 오는 묵직한 것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그렇게 여러 번 하고도 아직 빼지 못한 정액, 아니 열정이 남아 있다니.
자신이 방금 몸을 섞은 존재가 정말 인간이기는 한 건지, 근원적인 의심이 들었다. 인간 같지 않은 압도적인 힘과 덩치에 더해진 괴물 같은 정력, 인간성을 상실한 듯 아무렇게나 지껄이는 저속한 말본새까지.
아연은 진저리를 치며 허리를 말아 뒤쪽으로부터 공간을 확보했다.
“네 거기가 발정 난 걸 왜 나한테 따져.”
“별로 따진 건 아니고 단순한 한탄이야. 물론 따지자면, 평생 순진하게 살아온 몸을 발정 나게 만들었으니까. 의심의 여지 없이 네 탓이지.”
제대로 된 인간이라면 저딴 뻔뻔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늘어놓을 수는 없지. 절대로.
아연은 다시금 성현의 인간성에 의구심을 품었다.
수년간 엄격한 예절 교육을 받아 몸에 익은 것처럼 자연스럽게 배어 나오던 매너와 우아한 몸가짐 아래, 언제부터 저런 천박한 본성을 숨겨 온 걸까.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을 잘못 건드렸다는 당혹감만 짙어졌다.
“그런 의미에서, 넣고 자면 안 돼?”
“미쳤어?”
“넣기만 하겠다는데 정색은. 누가 안에 싸겠다고 했나?”
“미친 거 맞네. 그러지 않고서는 그런 말을 할 수가 없어.”
“넣고 자면 따뜻하고 부드러워서 잠이 잘 올 것 같은데.”
꾹 감은 아연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성현과 대화를 지속할수록 말도 못 하게 피곤해졌다. 이미 눈도 못 뜰 정도로 고단한데 더욱.
성현은 대답 없는 아연의 허리를 바짝 끌어당기며 낮게 웃었다. 입술을 쪽쪽거리며 가져다 붙이는 곳마다 따스한 숨결이 살갗을 간지럽힌다.
아연은 커다란 품 안에 꼼짝없이 갇힌 채 귓불을 빨리는 것을 느끼며 어느덧 수마에게 의식을 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