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홍옥은 현경과 마주 앉았다. 홍옥의 한 마디에 시끄럽던 기방이 쥐죽은 듯 조용해진 것 같았다. 남들이 한낱 기생이라고 하기엔, 과연 범상치 않은 인물이긴 하구나, 하고 현경은 속으로 생각했다.
“홍옥은 제가 어디 있는지 귀신같이 알고 찾아오십니다.”
“나으리 계신 곳이야 제가 모를 리 있겠습니까마는, 설마 쪽방에 와 계실 줄은.”
“아까 함께 있던 분도 그러더군요, 대체 여기가 뭐하는 곳이길래 그리들 놀라시는지.”
“여기 있던 아이와 언제부터, 계셨습니까?”
이상하게 홍옥이 질문을 주저하는 것 같아 현경은 의아했다.
“이곳은 그저 술 마시고 노닐다 가는 보통 방과는 다른 곳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며칠씩 지내는 방이라 하셨지요.”
“사내들이 며칠씩 기생들과 지내면서 무엇을 하겠습니까.”
“그야, 술도 마시고 얘기도 하고.”
“값비싼 술과 긴밀한 대화 외에도 관아의 눈을 피해 노름판이 벌어지기도 하는 곳입니다, 그리고 사내들이 여색을 사는 방이지요.”
“예?”
방금 잘못 들었나 싶어 현경이 동그랗게 뜬 눈을 끔뻑였다. 그럼 혹시 아까부터 방해되던 이상야릇한 소리는 그런……. 현경은 당황하여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래서 이곳은 기생들 중에서도 창기들만이 들어오는 방입니다.”
“그러면, 홍옥이 오면 안 되는 곳 아닙니까.”
“그래서 조금 전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지 않았습니까, 좋은 구경이 났다 하구요.”
홍옥이 씁쓸하게 웃었다. 현경은 뭐가 어떻게 된 일인지 당혹스럽기만 했다.
“제가 그동안 사람을 잘못 본 것입니까. 이곳은 나리가 계실 곳도 아닙니다.”
단호히 말하는 홍옥을 보며 현경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 말처럼 지금 여기서 이러고 있을 게 아니었다. 아란을 집에 홀로 두고 뭘 하고 있는 건지.
“나랏님이 입술도 떼기 전에 기방에서 말이 돈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많은 이야기가 도는 곳이 기방이지요.”
“…….”
“이 문 밖을 나갈 수 없는 이유가 있으신 겁니까.”
“…….”
“아니면 찾고 계신 무언가가 있으십니까.”
홍옥의 질문에 현경이 멈칫 했다. 홍옥의 눈빛이 현경을 꿰뚫을 듯 매서웠다. 홍옥은 주요관직의 인사들과 교류하는 일패기생이라 과연 보통이 넘었다. 그 말인즉, 현경이 절대로 의심을 사서는 안 될 사람이기도 했다.
“제가 기방에 와서 찾는 게 뭐가 더 있겠습니까. 술과 이야기, 그뿐입니다.”
“최근엔 기생들까지요.”
“그럼 여기 술도 있고 홍옥도 있으니, 우리 그럼 고향 이야기나 나눠 볼까요.”
히죽 웃는 현경을 보며 홍옥은 아주 잠시 평범한 여인의 얼굴을 하고 웃었다. 그러다 어느새 금방 기생 홍옥의 얼굴로 돌아와 앉아 있었다.
“쪽방에서 이 홍옥과 이야기를 나눈다 하는 사람이 나리 말고 또 있겠습니까.”
“그럼, 오랜만에 전처럼 시나 지을까요?”
천진한 그 말에 입매를 가다듬던 홍옥이 결국 속없이 웃었다.
아란은 안방 문틈으로 동이 터 오는 빛이 새어 들어오자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아침에 현경이 입궐할 때 매일 했던 배웅을 나가지 않은 게 마음에 걸려서, 아란은 그래도 현경을 먼저 보내고 산책을 나왔어야 했는데 하는 후회를 하루 내내 했었다.
화가 나긴 했지만, 낮에 만난 그 묘령의 여인을 보고 나니 현경이 또 보고 싶어지는 바람에 아란은 곧바로 집으로 돌아와 안방에 홀로 앉아 현경을 기다렸다.
오늘 현경이 들어오면 말없이 토라져 있지 말고, 술은 조금만 드시라고 해야지. 밤길이 위험하니 조금만 더 일찍 들어오시라고 해야지. 그리 말하려던 참이었다.
그렇게 아침이 될 때까지 아란은 안방에서 홀로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아침상도 물린 채로 안방에 덩그러니 앉아 있는 아란에게 집안의 그 누구도, 가장 가까이서 모시는 여종마저도 감히 무어라 말을 붙일 수가 없었다.
“마님, 어디 나가세요?”
“산책 좀 다녀오마, 혹시 주인나리 들어오시면 아침상 내어 드리고.”
아란은 다시 대문 밖을 나섰다. 술에 취해 길바닥에 쓰러져 있기라도 하면 어쩌나, 순라꾼에게 잡혀 관아에 있으면 어쩌나. 아무리 늦어도 집에 들어오지 않은 적은 없었는데, 속이 상해 집에 오기 싫으셨나.
그저 하염없이 골목을 걷던 아란은 냇가 바위에 걸터앉아서 생각하기를 멈췄다. 머릿속을 소란스레 울리던 생각을 그만두니, 미처 들리지 않던 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어제 기방에 갔다가 좋은 구경했지.”
“왜요 할배, 누가 쌈박질이라도 했나.”
장죽을 피우던 노인 하나가 말을 꺼내자, 그 옆에서 지푸라기를 꼬아 미투리를 촘촘히 짜던 사내들이 말을 받았다.
“어젯밤 홍옥이가 쪽방에 들어갔거든.”
“홍옥이? 에이, 일패기생이 거길 왜 들어가.”
“그 왜, 어린 종친 양반하고 홍옥이 어제 그렇고 그랬다는 거 아니여.”
“정말, 어이. 자네도 봤어 그럼?”
“그래, 나도 어제 직접 봤지.”
아란은 손이 떨려오는 것을 느꼈다. 무시하고 얼른 자리를 뜨고 싶은데 이상하게도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등 뒤로 들려오는 사내들의 목소리는 어제 기방에서 있었던 작은 소동에 대한 이야기를 마저 이었다.
“듣자 하니, 쪽방에 사흘치 방값을 따악 치르고 들어가시더니, 기생 하나를 냅다 잡아채서는 방으로 끌고 들어 갔다잖아.”
“그럼, 홍옥은?”
“아 그 말 듣고 홍옥이가 눈이 뒤집혀 가지고, 그 창기를 내쫓고 들어가서 새벽까지 안 나왔다대.”
“햐, 거 어린놈이 둘씩이나?”
사내들은 이제 이야기에 빠져들어 현경이 창기와 붙어먹었네 어쩌네 하며 요란을 떨었다. 감투 씌워 놓으면 사람은 모른다며 혀를 차는 사내도 있었고, 홍옥이 그토록 매달리는 현경을 부러워하는 이들도 있었다. 정말이냐고 의심하는 이에게 어제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며 나서는 자들 여럿이서 말을 거들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 떨리는 두 손을 꼭 쥐고 있던 아란의 귀엔 “나도 직접 봤어.” 하는 사내들의 목소리가 맴돌았다. 아란의 발길은 어느새 기방으로 향하고 있었다. 확인해 보고 싶었다. 아닐 텐데. 아란은 여전히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말아 쥐며 기방 대문 앞에 섰다.
어째 글씨가 점점 흐트러지는가 싶더니만. 현경은 결국 쏟아지는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동이 터오기도 전에 잠이 들어 버렸다. 뻑뻑한 눈을 깜빡이며 먹을 갈던 홍옥은 문틈으로 날이 밝아오는 것을 보며 먹을 내려놓았다.
아이처럼 웅크려 자고 있는 현경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홍옥이 쪽방 구석에 처박혀 있던 허름한 이불을 집어 들었다가 도로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조용히 속치마를 벗어 현경의 몸을 덮었다. 겉치마만 입은 채로 쪽방 문을 나서는 홍옥을 보고 기부가 달려 나왔다.
“홍옥이!”
“제가 다시 돌아올 동안 방 안엔 아무도 들이지 마세요.”
“행수 어른 아시면 어쩌려고.”
“부엌에 아침상 하나만 내어달라 말 전해 주시구요.”
늘어선 방마다 간간히 코고는 소리들만이 뒤섞여 들려오는 것 말고는 이른 아침의 기방은 평소처럼 조용했다. 다들 곯아떨어져 있거나 지난밤의 유흥을 정리할 시간이니 일하는 사람 말고는 마당을 오가는 자도 없는데, 웬일인지 기방 입구 쪽이 조금 소란스러웠다.
“저 사람이 현경 나리 처 맞지?”
“…….”
“어쩔까, 내가 돌려보내?”
기부가 슬쩍 홍옥을 돌아보니, 홍옥은 잠시 서 있다가 기부를 물리고 기방 입구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속치마를 벗어두고 나왔더니 치마폭이 가라앉아 걸음태가 살지 않았지만, 홍옥은 그럼에도 초라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나리께서 새벽녘에 잠드신 지 얼마 안 되어 곤히 주무시고 계셔서.”
“…….”
“인사가 늦었습니다, 홍옥이라 합니다.”
아란의 얼굴이 순간 창백하게 굳었다. 더 이상 손도 떨리지 않았다. 눈물이 나오려는 것은 아닌데, 눈물 대신 기력이 흩어져 내리는지 몸속의 피가 차갑게 식는 것 같기도 했다. 아란이 버석하게 마른 입술을 겨우 떼었다.
“하.”
“…….”
“은혜를, 잊지, 않겠다, 라.”
“…….”
홍옥은 말없이 시선을 내리깔고 있었다. 아란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대로 망연자실한 얼굴로 집으로 돌아와 보료 위에 주저앉았다.
기방에 가질 말았어야 했는데, 흉한 말을 들었구나. 아란은 귀를 막고 웅크려 앉았다. 울음소리 대신 지친 한숨만을 뱉는데도 눈물이 후두둑, 후두둑 치마를 적셨다.
현경이 눈을 뜨자, 지난밤과 다른 옷을 입고 있는 홍옥이 보였다. 술상 대신 놓인 작은 아침상 위의 밥과 국은 이미 식어 있었다. 날이 밝았구나, 현경은 겨우 몸을 일으켜 앉았다.
“일어나셨습니까.”
“미안하오, 깜빡 잠이 들었나.”
“아침상을 다시 내오라 하겠습니다.”
“아닙니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난 현경은 갓을 주워들었다. 몸에서 흘러내린 것이 이불인지 치마인지도 모르던 현경은 허둥지둥 갓끈을 묶으며 방문을 열었다.
“가십니까.”
“밤새 신세가 많았습니다.”
현경은 홍옥을 향해 가볍게 목례를 하고 쪽방을 나섰다. 홍옥은 예의에 어긋남에도 자리에서 일어서도 않고 배웅도 나가지 않았다. 홍옥은 현경을 한 번 더 붙잡으려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그 수상한 사내들만 아니었어도 새벽에라도 집으로 갔어야 했는데. 깜빡 잠이 들다니 이런 천치가 다 있나. 기방에서 집까지 뛰어가는 동안 현경은 타는 속을 어쩌지 못해 제 뺨을 몇 번이나 때렸다. 그러면서도 아란에겐 뭐라고 말을 해야 되나 핑계를 찾아야 하는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지니, 대문 앞에서 현경은 한참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현경이 대문에 들어서자 집 안은 조용했다. 집 안 노복들도 주인나리 들어 오셨냐는 인사도 않고 슬쩍 저들끼리 눈치를 보고 있었다. 현경은 느낌이 불길하여 마루 위를 오르는데, 선뜻 방문을 열기가 망설여졌다.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다시 손을 뻗어 안방 문을 열었다. 방안에 아란이 잔뜩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부인.”
현경이 아란에게 다가갔지만 아란은 미동도 없었다. 현경이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부인, 어제는…….”
“듣지 않겠습니다.”
“…….”
서늘한 아란의 목소리에 현경은 말을 멈추고 아란 쪽으로 뻗으려던 손을 움츠렸다. 소매로 조용히 눈가를 훔치던 아란이 찬찬히 고개를 들었다. 얼마나 울었는지 얼굴 가득 물기 어린 모습에 현경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서방님이 어디에서, 누구와, 무얼 하다 오셨는지 듣고 싶지 않습니다.”
“부인, 그런 게, 그런 게 아닙니다. 어제는 어쩔 수가 없어서 그게.”
“…….”
현경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차마 저 얼굴을 보며 어떻게 거짓말을 할 수 있을까. 금방 눈이 벌게져서 울먹이는 현경은 어쩔 줄을 몰라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제가 시를 짓다가 깜빡 잠이 들었습니다. 새벽에 나오려 했는데.”
“…….”
“아니, 저녁에 오려 했는데. 그자들이 하는 말이 무서워서.”
횡설수설하며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게 울먹이는 현경을 보는 아란은 또 아란대로 속이 타들어갔다.
“저는 여인입니다 부인, 그런, 그런 게…….”
“저도 여인입니다.”
“…….”
아란이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라고. 사내도 아닌데 그럴 리가 있겠냐며 말을 하려던 현경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홍옥이란 여인이 제 얘기도 합니까.”
“예?”
아란의 말에 멍해진 현경의 눈에선 굵은 눈물이 툭 떨어졌다. 아란이 겨우 울음을 삼키고 현경을 한참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잠깐만요.”
현경은 다급하게 아란의 손을 잡았다. 아란은 닿아 오는 현경의 손에 또 다시 눈물이 왈칵 터지려 했으나, 애써 힘주어 잡은 손을 빼내었다. 순간 아란의 손을 놓친 현경의 두 손이, 현경의 눈동자가, 길을 잃고 허공을 헤맸다.
“송구합니다, 부인 제발, 다 말씀 드릴게요.”
“…….”
“제발, 제발, 가지 마세요. 어디 가지 말고 여기 있어요.”
“…….”
“제발, 가지 마세요.”
숨을 헐떡이면서 울먹이는 현경의 그 말들이 아란을 너무 아프게 했다. 그렇게 진이 빠지도록 한참 울고도, 아란은 또 다시 쏟아지는 눈물을 삼키며 현경을 지나쳐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