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대가 있음에 (16)화 (16/63)

#16화

“아 너무 추운데, 이를 어쩐다.”

발을 동동 구르던 그 순간 현경의 머릿속엔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지만, 그리 좋은 방법은 아닌 것 같아 조금 망설여졌다. 하지만 얇은 저고리 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어느새 몸은 들고 있던 서책부터 담 너머로 서둘러 넘기고 있었다.

다행히 별당엔 아직 불이 있었다. 별당 앞에서 잠시 망설이던 현경은 주위를 꼼꼼히 살피고는 최대한 목소리를 작게 하여 애타게 아란을 불렀다.

“아가씨이이.”

어디선가 들려오는 괴상한 소리에 아란은 바느질을 하던 손을 멈추었다. 창문 쪽에서 얼핏 누가 자신을 부르는 것 같은 소리가 나기에 요 며칠 기력이 쇠하였나 싶어 애써 마음을 가다듬는데, 이어 톡, 톡, 하는 소리까지 들려왔다. 오싹한 기분에 소매를 쓸던 아란은 애써 침착하게 일어나 창문 쪽으로 향했다. 조심스레 창문을 여는 아란의 손끝이 떨렸다.

“아, 아가씨.”

“하.”

창문 아래에는 현경이 머쓱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이렇게 몰래 찾아오지 말라고 말한 지가 고작 엊그제였다. 아란이 단호한 표정으로 창문을 닫으려 하니, 다급한 마음에 아란을 부르는 현경의 목소리가 커졌다. 순간 누가 들을까 싶어 아란이 조용히 하라며 현경을 매섭게 쏘아보았다. 현경은 눈을 질끈 감고 입을 틀어막다가, 간절한 얼굴로 겨우 사정을 말하였다.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고 있던 아란은 결국 현경을 별당 안으로 들였다. 현경은 익숙하게 가죽신을 품에 챙겨들고 아란의 방에 조심조심 들어섰다.

“아무리 그래도 함부로 방에 들이지 않게 조심하셨어야지요.”

“형님이 취하셔서 막무가내라, 제가 어찌 할 도리가…….”

“자꾸 이렇게 불쑥 별당에 오시는 습관을 들이시면 곤란합니다.”

“오늘만, 밤바람이 차서 그러니 해 뜨기 전에 금세 돌아가겠습니다.”

아란에게 한소리를 들은 현경은 기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무래도 당사자인 현경이 많이 놀라긴 했을 텐데, 얇은 속저고리 하나에 맨상투 차림으로 답지 않게 잔뜩 주눅 들어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약해져 아란은 더는 말을 말았다. 현경은 방 안쪽으로는 들어올 생각도 않고 문 바로 앞에 얌전히 꿇어앉아 있었다.

“바닥이 찹니다, 안쪽으로 들어오세요.”

“아, 아닙니다, 저는 여기서 잠시 책만 조금 읽다가 돌아갈 테니 괜찮습니다.”

현경이 쭈뼛거리는 걸 보니 처음보다는 많이 민망한 모양이었다. 현경이 저러고 있는데 앞에서 자긴 좀 그렇고 해서, 아란은 말없이 하던 바느질을 마저 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얼마간 규칙적으로 들린다 싶더니 잠잠해졌다. 문득 아란이 잠깐 고개를 들자, 문 앞에서 이리저리 몸을 휘청이며 졸고 있는 현경이 보였다.

찬 밤바람을 쐬다 온기가 있는 방 안에 들어왔으니 졸음이 몰려올 만했다. 아란은 그 모습이 차마 애처로워 두고 볼 수가 없었다.

“눈 좀 붙이시겠습니까.”

아란이 조심스레 작게 물으니 현경이 또 금방 눈을 번쩍 뜨고는 “아, 아닙니다.” 하고 다시 책으로 눈을 돌렸다. 그러나 얼마 못 가 또 다시 꾸벅꾸벅 고개를 떨구었다. 아란은 할 수 없이 보료 앞에 이부자리를 대충 펴고는 현경을 흔들어 깨웠다.

“아니……, 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웅얼거리는 현경은 감기는 눈을 주체하지 못했다. 아란이 잡은 팔을 살짝 끄니 비몽사몽하던 현경은 제법 순순히 이부자리까지 겨우 기어가 누웠다. 눕자마자 곯아떨어진 현경은 배가 드러난 저고리를 끌어내리고 그 위로 이불을 덮는 아란의 손길에도 아랑곳없이 잠에 빠져들었다.

눈앞에서 세상모르게 잠든 현경을 내려다보며 아란은 기가 차 웃음이 났다. 누가 보면 이보다 망측한 일이 더 있을까 싶다. 혼인도 안 한 처녀가 외간 사내를 방 안에 재워 두고 그 앞에서 바느질이나 하고 있다니. 물론 현경이 진짜 사내였다면 애초에 방 안에 들이는 것부터가 말이 되지 않는 일이긴 했다.

아란은 다시 보료 위에 앉아 바늘을 들었다. 바느질을 하다 흘끗 내다 본 현경의 얼굴이 새삼 앳되었다. 아마 그동안 부족했던 잠을 몰아서 자고 있는 모양인지 깊은 잠에 빠진 얼굴은 지쳐 보였다. 도로롱, 현경이 낮게 코고는 소리가 들렸고, 그 소리를 따라 아란은 천천히 바느질을 했다. 금방 동이 틀 것 같았다.

벌써 해는 중천인 것 같은데, 아란은 어딜 갔는지 방 안엔 현경만 덩그러니 혼자였다. 기지개를 쭈욱 켜던 현경은 가만히 눈을 깜빡이며 어제의 기억을 더듬었다. 동이 트기 전에 별당을 나갔어야 했는데 이를 어쩐다, 하는 생각이 뒤늦게 밀려왔지만, 머릿속이 개운할 만큼 충분히 잔 덕분에 걱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도성에 온 후로 제대로 잠을 잔 것은 거의 처음이었다.

“도성 아가씨들이 쓰는 이불이라 다르긴 다르네.”

이부자리의 감촉이 좋아 현경은 이불을 얼굴 위까지 덮고 누웠다. 그때 마침 방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사락거리며 치맛자락이 스치는 소리가 가까워지자 장난기가 발동한 현경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악!”

아란은 깜짝 놀라 이부자리 위로 주저앉았다. 현경은 그 모습을 보고 조용히 낄낄거리다, 밖에서 무슨 일이시냐 묻는 여종의 목소리가 들려오기에 얼른 이부자리 위로 납작 엎드렸다. 현경은 입을 막고 새어나오는 웃음을 삼켰다.

“아, 바, 바닥이 미끄러워 잠시, 별일 아니다.”

여종이 돌아간 후, 아란은 겨우 마음을 놓으니 뒤늦게 부아가 치밀었다. 볼록 솟은 이부자리 위를 저도 모르게 냅다 내리쳤다. 등을 맞고도 현경은 여전히 키득거리며 웃고 있었고, 아란은 이 철딱서니를 어쩌면 좋을까 어이가 없어 한숨이 나왔다.

분이 덜 풀린 아란에게 거의 쫓겨나듯 별당을 나오면서도 현경은 웃고 있었다. 가뿐한 몸으로 담을 넘어 동재로 돌아온 현경은 노복들의 눈치를 슥 보다 방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진동을 하는 술 냄새에 현경은 코를 막고서 정형을 밀어 깨웠다.

현경은 오랜만에 느끼는 개운함을 만끽하며 강연장에서 홀로 책을 읽었다. 앉은 자리에서 한 번 책을 보기 시작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는 현경이라 아침도 거른 채 어느새 점심도 지나 있었다.

“저기, 아란 아가씨께 여쭤볼 것이 있는데 만나 뵐 수 있습니까.”

한참 책을 읽다 막히는 구절을 두고 미간을 좁히던 현경은 마침 지나가는 여종에게 말을 전했다. 별당 쪽으로 사라진 여종은 얼마 후 작은 다과상 하나를 들여와 현경 앞에 두었다.

“아가씨께서 이 다과를 다 드시거든 도련님을 별당으로 모셔오라 하셨습니다.”

현경은 끼니때를 놓쳐 허기진 차에 잘 됐다 싶어 약과 하나를 얼른 집어 들었다. 약과를 한 입 베어 물고 오물거리던 현경은 히죽 웃었다.

“아가씨, 현경 도련님 오셨습니다.”

말을 전했음에도 별당 안은 들어오라는 대꾸도 없이 조용했다. 아란은 때로 서책을 읽거나 다른 일에 집중하느라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 별 다른 일은 아니었다. 여종은 제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자리를 옮겼고, 현경은 가지런히 가죽신을 벗어두고 방문을 열었다.

“…….”

아란은 보료 위에 비스듬히 기대어 잠들어 있었다. 바느질을 하다 깜빡 잠든 것인지 천과 바늘을 손에 쥔 채였다. 지난 밤 이부자리를 자신에게 내어주느라 분명 아란이 한숨도 못 잤을 거란 건 알고 있었으나, 아침에 본 아란은 기운이 씩씩했기에 미처 잊고 있었다.

현경은 되돌아 나가려다 문득 발걸음을 멈추고 다시 아란의 잠든 얼굴을 내다보았다. 그러다 옷자락이 스치는 소리마저 죽이며 조용히 그 앞에 조금 떨어져 앉았다. 침모에게 부탁한다더니, 아란이 손에 쥔 천들은 벌써 모양새가 잡혀 있었다.

또 다시 뜨겁게 일렁이는 속에 영문도 모른 채 현경은 명치를 가만 쓸었다. 조용한 방 안에는 아란의 숨소리마저 고요했지만 현경의 귓가에는 다소 빠르고 규칙적인 다른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현경은 그렇게 책을 펴지 않고도 시간 가는 줄을 몰랐기에, 자신이 웃고 있다는 것도 나중에야 알았다.

다음날, 다시 아란을 찾아온 현경은 자리에 앉자마자 “다과 잘 먹었습니다.” 하고 넙죽 허리부터 숙였다. 아란은 어제 자신이 잠든 사이에 현경이 다녀갔다는 사실을 여종에게 전해 듣고는 민망하여 괜히 딴청을 피웠다.

“궁금하신 게 무엇입니까.”

빙긋 웃던 현경이 가지고 온 책을 뒤적이며 궁금한 부분을 짚어 아란에게 보여주었다. 현경이 질문을 하면, 현경의 말을 가만히 듣던 아란이 짤막하게 대꾸를 했다. 현경의 질문이 계속 이어지면, 아란은 이따금씩 바느질하던 손을 멈추고 잠시 생각에 잠겼고, 책의 구절을 다시 읽어 보기도 했다.

학문을 논할 때에 있어서 현경이 빠르게 굽이치고 넘실대기도 하는 강물과 같다면, 아란은 마치 깊고 넓은 호수와 같아서 그 조근조근한 대답 속엔 허투루 하는 말이 하나 없었다. 두런두런 나누는 대화에는 막힘이 없었고 아란은 다른 누군가와 시문을 논하는 일이 처음이라 얼굴빛이 즐거워 보였다. 아란이 미소를 지으면 저도 모르게 현경이 따라 웃곤 했다.

그 후로도 현경은 평소처럼 동재에서 선잠을 이루다가 아침에 책을 읽고, 정오 즈음엔 아란을 찾아가 열띤 토론을 했다. 어떤 날은 아란의 말에 현경이 꼼짝없이 밀리기도 하였고, 또 어떤 날은 엉뚱한 농담을 하느라 현경이 아란을 잔뜩 약 올리고 도망치듯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하루의 대부분을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데도 서로 어느 하나 지루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닷새는 금방 지났다.

제현은 오늘 저녁쯤 도성에 당도하기로 되어 있었다.

현경은 아란과 마주 앉았고 아란은 완성된 도포를 건넸다. 현경은 환하게 웃으며 그 자리에서 곧바로 도포를 갈아입었다. 은은한 미색 도포는 지난날 아란이 입고 있던 저고리 색과 같았다. 현경은 아란의 살뜰한 손길로 지은 옷이라 생각하니 감격하여 연신 옷자락만 소중히 매만졌다.

“마음에 드십니까.”

“들다마다요, 평생 가보로 간직할 것입니다.”

제 손으로 만들었지만 현경에게 입혀 놓으니 제법 맵시가 있어 아란도 내심 뿌듯하였다. 그때 밖에서 어머니가 오셨다는 여종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런, 때를 잘못 맞추었나 봅니다.”

“어머니.”

아란이 자리에서 일어나 어머니께 자리를 내어 드렸다. 아란의 어머니는 방 안에 나란히 서 있는 두 사람을 보고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보료 위에 앉았다. 현경을 보자마자 입가에 웃음부터 걸리는 어머니의 얼굴을 본 아란은 속으로 분명 현경이 있는 것을 알고 어머니가 오셨을 거라 짐작하였다.

“아란이에게 부탁할 것이 있어 잠시 들렀는데, 두 분이 담소 중이셨나 보군요.”

“모르는 것이 있어 아가씨께 가르침을 받던 중이었습니다.”

“그래, 이 아이의 답변이 강도령의 궁금증을 해소할 만하시던가요.”

“아가씨의 학식과 지혜로움에 매번 감탄하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나긋하게 부르는 강도령이라는 말에 옆에 있던 아란이 되레 더 낯간지러워 고개를 저었다.

“어머니, 제게 부탁할 것이 있으시다고.”

“아, 그래 내 정신도 참, 네 저고리를 하나 해줄까 하는데 포목점에 좀 다녀올 수 있겠니? 일하는 아이를 보내려다 아무래도 네 안목이 좀 필요한 듯하구나.”

“예, 그럼 바로 다녀오겠습니다.”

“강도령도 괜찮으시다면 함께 다녀오시지요.”

“저야 좋지만, 그래도 괜찮을까요?”

“요 며칠 공부에 매진하셨으니 장터구경도 하실 겸 머리를 식히는 것도 좋으실 겁니다.”

“안방마님께서 이리 마음 써주시니 이곳 생활이 고향처럼 평온합니다.”

잔뜩 감동받은 척하는 현경의 표정에 아란의 어머니가 웃는다. 전부터 현경의 붙임성 좋은 성격을 칭찬하시곤 했던 어머니의 시선은 이제 용건이 있는 아란 쪽이 아닌 현경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현경이 말만 하면 당장 곳간 문도 열어줄 기세였다.

“내 늘 신경을 쓴다고는 하나, 강도령이 여기에 와 지내는 동안 불편한 것이 있다면 그때그때 주저 없이 말하세요.”

“이제 보니, 스승님 댁에 늘 볕이 따뜻하고 그윽한 기품이 흐르는 것이 과연 안방마님의 사려 깊은 성정과 닮은 것 같습니다.”

현경이 해맑게 웃으며 말하자, 아란의 어머니는 소녀처럼 수줍게 웃었다. 둘 사이에 앉은 아란은 할 말을 잃고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 아란은 속으로 저 능글능글한 자는 아마 꼬리 아홉 달린 구렁이일지도 모른다 생각했다. 아란은 그 모습을 잠시 상상하다가 흉측하여 또다시 고개를 저었다.

“이쪽이 더 곱습니다.”

“그건 고운 게 아니라 너무 화려합니다.”

“기왕이면 화려한 게 더 좋지 않습니까?”

“저고리 할 옷감을 보고 있는 겁니다, 그런 건 기생들에게도 과합니다.”

“과한가, 홍옥은 이런 거 많던데.”

현경이 화려한 비단을 들춰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요즘도 기방엘 들락거리나 싶어 아란은 혀를 찼다. 현경은 그저 온통 화사한 옷감을 들춰보며 “곱다, 고와.” 감탄만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포목점 주인이 우습다며 농을 걸어왔다.

“하이고, 젊은 도령께서 남사스럽게 화려한 옷감을 다 좋아하십니다, 그래.”

“이런 옷감으로는 도포를 지어 입으면 안 됩니까?”

“뭐 안 될 건 없지만, 사내가 그리 입고 다니면 볼 만하겠지요.”

포목점 주인이 낄낄 웃는다. 꽃 자수가 놓인 비단을 보며 현경은 진지하게 고민을 하다 아란의 한숨소리에 번뜩 정신을 차렸다. 그러다 금방 그 옆에 놓인 화사한 다홍빛 비단에 마음을 빼앗긴 현경은 아란에게 내보였다.

“이걸로 치마 해 입으면 정말 고울 것 같지 않습니까?”

“도련님 치마요?”

“아, 아니 저 말고, 아가씨 말입니다.”

순간 아란이 놀란 표정으로 되묻기에 현경도 함께 당황하다가 이내 배를 잡고 웃었다. 그때 보다 못한 포목점 주인이 나선다.

“여기 계신 아가씨께서는 수수한 색을 좋아하시는 듯하니, 이쪽이 어떻습니까?”

“에이, 그럴 바엔 저것이 낫지.”

“아, 거 도련님도 참, 이렇게 화려한 천은 어울리기가 쉽지 않지요.”

“허, 이분께서는 뭘 걸쳐도 태가 사는 분이니 걱정 마시오.”

쯧. 현경이 한껏 엄한 표정으로 포목점 주인을 보며 퉁명스레 비단을 펼쳤다. 포목점 주인은 얼레? 하더니 이내 또 껄껄 웃는다. 아란은 민망하여 점점 얼굴이 붉어졌다.

“그 입 좀 다무세요.”

아란은 이를 앙다문 채 현경의 옆을 찌르며 작게 말했다. 부끄러워하는 아란의 모습을 보자 현경은 더 장난기가 올랐다. 괜히 미간에 힘을 주고는 전보다 더 큰 목소리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아 이거 원, 아가씨 앞에선 비단 빛깔이 다 죽어 버리니 도통 마음에 드는 게 없군!”

현경의 능청에 포목점 안쪽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던 아낙들이 까르르 웃었다. 포목점 주인도 자기가 더 낯간지러운 듯 “아이고오, 두 분 사이가 좋으시네.” 하고 웃으며 몸을 배배 꼬았다. 아란은 얼굴이 다 화끈거리는 바람에 서둘러 포목점을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어, 안 사고 그냥 가십니까.”

뒤에서 현경이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아란을 쫓아 포목점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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