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257화 (258/260)

257화

29. 삶

“입주 신청이요? 어려운데……. 임시 헌터 교육도 아직 다 안 끝나셨죠? 게이트 너머는 다 임대 지구라 허가받으면 넘어갈 수 있긴 한데, 입주 절차는 좀…….”

“임시 헌터라 넘어가려고요. 요새 아시잖아요. 분위기 영 안 좋은 거. 교육 텀도 길고 여러 규정도 바뀌고 있어서 정식 헌터 되려면 평소보다 시간이 더 걸릴 거래요.”

건축업자들이 게이트에서 나오며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리는 소리가 들린다. 저쪽 분위기는 충분히 좋지만, 어린 임시 헌터의 낯은 어두웠다. 담당 공무원은 도무지 앳된 티를 벗지 못한 임시 헌터의 얼굴과 그가 제출한 서류를 번갈아 가며 쳐다보다 고개를 저으며 도장을 찍어 주었다.

“어휴, 정확히 될지 안 될지는 몰라요. 아시죠? 허가제인 거.”

“아는 분이라 괜찮을 거예요. 감사합니다.”

임시 헌터는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이며 출입 허가증을 받아 들었다. 그 밖에도 많은 서류를 제출했지만 도로 받아 갈 필요가 있는 것은 이것 한 장뿐이다.

게이트로 출입하기 전 필수 장비를 지급받은 그는 익숙한 경고를 들었다. 래퍼 뺨치는 속도로 몇 가지 주의 사항을 읊어 내린 담당자는 마지막으로 강조했다.

“보조구 없이 균열에 있으면 신체가 약해지기 시작해요. 신체 계열 능력자 아니면 그런 자살행위를 추천하긴 어렵습니다. 위치 추적 기능 포함된 장비인 거 숙지하시고요. 정해진 시간 내로 게이트에서 다시 나오지 않으면 재출입 불가능합니다. 숙지하셨죠?”

“그럼요. 숙지했습니다.”

게이트를 통과하자 익숙한 에너지가 몸을 짓누르는 것이 느껴진다. 예전 균열과 달리 낯설고 두려운 힘이 아니다. 분명 이전처럼 어둡긴 하지만 한층 완성되어 가는 개발 도시 정경을 둘러보며 준영은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간만의 균열 출입이었다.

여러 곳에서 혼용되던 균열이라는 용어는 이형 에너지가 산소처럼 짙게 존재하는 공간을 칭하는 말로 굳어졌다. 일반인들이 이형 에너지의 존재를 감지하는 건 불가능해서, 보편적으로는 괴물들이 사는 세계를 칭하는 것으로 통했다.

지금은 게이트 너머를 전체적으로 균열이라고 부르고, 정말 드물게 열리는 진짜 균열 역시도 같은 용어를 사용했다. 후자는 차츰 없어져 가는 추세라 아마 몇 년 후에는 사람들에게 균열이란 게이트 바깥 세계 자체를 뜻하는 말이 될 것이다.

훈련할 때를 제외하면 균열을 드나들 일이 없었기에, 이 공기를 느끼는 건 정말 오랜만의 일이다. 홀로 남아 약속한 이를 기다리는 짧은 시간 동안 그는 도시를 훑어보았다.

그날로부터 일 년이 지났다.

본래도 혼란스럽던 세상은 그날을 기점으로 혼란기의 정점을 찍었다. 괴물과 헌터의 본질적 문제와 괴물들의 우두머리가 나타났고 또 사라졌다는 점, 영웅의 실종과 추락 등 많은 일이 있었다. 사람들은 언제나 자기 이득을 위해 목소리를 내기에, 많은 이들이 오랫동안 걱정하고 막아 왔던 것과 달리 사람들은 각성자 자체를 배척하지는 않았다.

-괴물과 다를 바 없다니 좀 찜찜할 수도 있긴 한데, 어느 날 갑자기 옆 사람을 잡아먹고 새 괴물이 되어 재앙이 될 가능성 있는 사람들인 것도 아니잖아요? 솔직히 주변에 각성자 있는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그 사람들 거의 다 착해요. 좀 바보 같을 만큼. 솔직히 저는 그 사람들이 새로운 괴물이 되지 않고 사람 모습을 하고 돌아와서 사람들을 위해 싸우고 있었다는 게 뭐라고 하지, 좀. 고맙던데요.

준영은 그 당시 TV에 나와 인터뷰했던 어떤 일반인들의 영상을 자주 돌려 보곤 했다. 각성자도 뭣도 아닌 정말로 평범한 사람들. 그러나 함께 어우러져 살아갈 사회의 일원으로 각성자들을 받아들이는 것에 찬성해 주는 사람들이 아주 많았다.

준영은 각성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각성자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받아들이긴 더욱 어려웠다. 그에게는 다행스럽게도 각성자 덕분에 살아남은 사람들의 수가 상당했던 데다 균열이 터질 때마다 다른 이들을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었던 헌터들의 이미지가 워낙에 좋았던 덕분인지 부정적인 목소리가 그들을 사회에서 밀어내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물론 각성자를 미워하고 헌터를 증오하는 사람들이 생겨난 것도 사실이다. 당연히 아주 없을 수는 없다. 괴물에게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자들이 특히 그러했다. 시위하고 협박하고, 더러는 폭력 사태가 일어나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과도기를 몇 달 정도 거치며 새로운 법이 정립되고, 함께 어우러져 사는 각성자들보다는 게이트 밖에서 살아 있었다고 돌아온 실종자들의 존재가 더욱 이슈가 되었기에, 각성자와 괴물 간의 미묘한 논의는 흐지부지되며 넘어갔다. 대충 사람 모양 하고 있으면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는 이야기들이 오갔던 것이 기억났다.

상념에 잠긴 임시 헌터의 머리 위로 커다란 그림자가 휙 스쳐 지나갔다. 퍼뜩 정신을 차린 그는 자기 앞으로 난폭하게 착지하는 이를 보며 당황했다.

“강준영?”

“어, 그……. 나오기로 하셨던 분 맞죠?”

“무슨 존댓말을 하고 그래. 너 나랑 동갑이래. 지승환이야.”

괴물의 모습을 한 이가 손을 쑥 내밀었다. 준영은 떨떠름한 얼굴로 그 손을 마주 잡았다. 영상 자료를 통해 많이 본 적 있는 얼굴이지만, 실제로 만나는 건 당연히 처음이었다. 힘차게 손을 흔들며 승환은 쾌활하게 외쳤다.

“지호 누나가 구경 잘 시켜 주라더라. 일이 있어서 좀 늦을 거야. 균열 도시 처음?”

“예? 어, 예. 처음…….”

“반말하라니까?”

“처음이야.”

“뭐 보고 싶었던 건 있고?”

괴물용으로 개량되어 나온 특수복을 훔쳐보던 준영은 이리저리 눈을 굴렸다. 균열 도시는 아직 다 완성되진 않았지만, 각성자들 특유의 기술 덕분에 불가능에 가까운 속도로 건설되고 있었다. 훈련 당시에는 도시 내부 말고 외곽에서 지능 낮은 괴물들을 사냥하는 훈련을 했었던 준영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 혹시 주거 지구 구경 좀 할 수 있나요, 아니 있나?”

“입주 신청했어?”

승환은 반색하며 얼굴을 불쑥 들이밀었다. 준영은 당황하며 물러나면서도 그런 티를 내지 않으려 애썼다. 균열 도시에 거주하려고 하면서 변이자들에게 거부감을 느끼는 것처럼 보이면 곤란했다.

“어, 예. 아니 응.”

“각성자라고 들었는데, 더 강해지려면 이쪽에 있는 편이 낫지. 잘됐다. 아직 각성자들은 골라 들어갈 수 있다고 하더라.”

“어, 그래? 이지호 헌터님네는…….”

“거기는 안 되지. 꽉 찼지.”

준영의 어깨가 슬쩍 처졌다. 승환은 킬킬 웃으며 손짓했다.

“뭐, 집 좀 멀면 어때. 금방 뛰어오고 날아오고 하면 된다더라.”

변이자 중에서도 유독 헌터들 사이에 이름이 많이 오르내리던 승환은 말재주가 좋았다. 한때 말도 어눌하고 성장도 덜된 것처럼 어린 느낌이었다던데, 지금은 사람들 사이에서 충분한 사회화를 거쳐 준영 또래처럼 느껴졌다. 승환은 어릴 때의 자신이 찍힌 영상 같은 걸 보면 부끄러워하며 기계를 부수려 들곤 한다고 했다. 절대 과거 영상들 봤다고 이야기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준영은 주거 지역을 구경했다.

균열 내부 지형과 얽힌 도시는 들쑥날쑥하고 복잡했다. 어떤 곳은 1층인데 4층 높이이고, 어떤 곳은 3층인데도 지하 못지않게 낮다. 승환은 그 독특한 풍경의 원인을 짧게 설명했다.

“빛 안 드는 곳은 사람 사는 데론 안 쓴다고 하더라. 지하를 지나다니는 것들이 있어서 땅을 다지거나 하면 안 된다나? 일단 지어 놓고 통로 만들고 틈새 메워서 지하 연구소로 쓴다는 말도 있고……. 일단 여기는 일반인 공개 지역은 아닌 거 보면 맞을 거야.”

“지하에서 괴물이 튀어나오진 않아?”

“아직 가끔 나오지. 그래서 꼭 헌터들이랑 동행하라고 게이트 넘어가면서 규칙 같은 거 일러 준다던데. 그쪽 너머는 어때?”

“어? 어, 뭐. 똑같지.”

“바닥 다지고 지하에 연구소나 훈련실 같은 거 만들고 위로 올리는 건물들에는 플랜트인가 뭔가 들어선다더라. 식량 자급자족을 해야 한다나? 괴물 뜯어먹고 살면 안 된다면서.”

“그건 맞아. 이형 에너지 속에서 괴물을 섭취하면 무슨 작용이 일어나는지 알잖아. 자칫 몸도 뺏길 수 있고.”

“난 괜찮았었는데. 음, 옛날엔 먹을 게 없었거든. 내가 운이 좋았던 거래. 지금도 게이트 밖에나 먹을 게 있지 이쪽엔 괴물밖에 없는데.”

“그, 음. 여기 있는 사람들을 위해 준비하는 거잖아. 그 플랜트라고 하나? 그거.”

“맞아. 실내에서 작물을 키우는 뭐 그런 거래. 누나가 한다면 맞는 일이겠지. 저쪽엔 해가 잘 드는데 여긴 그렇지도 않아서 땅을 경작하는 건 어렵다고 하더라.”

준영은 게이트를 넘어갈 수 없는 승환에게 어떻게 대답해야 현명한 것일지 짐작하지 못했다. 여러 법률의 제정 이후, 겉모습이 괴물로 변했으나 여전히 인간성을 유지하고 있는 괴물들의 처우에 관해 온갖 논쟁이 오갔다.

애석하게도 사람들이 그들을 받아들이는 것에는 무리가 있었고, 그래서 변이자들은 게이트를 넘어가지는 못한다. 대신 균열 도시를 항시 지킬 인원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도시 거주권을 얻을 수는 있었다고 들었다.

본래라면 게이트를 포기하는 것이 맞았을 극단주의자들은 마정석이 가져오는 이점을 포기하지는 못했다. 덕분에 균열과 이어진 게이트는 유지되었고, 균열 도시 측에 급하게 만들어진 연구소에서는 부근을 측정하여 괴물들이 과도하게 몰린 곳에 사냥 팀을 파견하는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았다. 그런 괴물 무리가 균열을 만들어 낸다는 보고가 올라온 탓이다.

신뢰하지 않는 것이 더 어려운 소식통이 전해 준 이야기인지라, 헌터들의 일은 이제 구조 작업에서 본격적인 사냥과 전투로 변경되었다.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여전히, 균열 도시 가깝지 않은 곳에 모인 괴물들 때문에 세상에는 드물게 균열이 생겨나곤 했다.

“저기 저쪽에 높은 건물 보이지? 저게 측정 타워인지 뭔지야. 이형 에너지가 쌓인 흐름을 매번 확인한다고 하더라. 에너지들이 일정 이상 모이면 다른 에너지들이 그쪽으로 흘러간다나? 무슨 과학적 원리랑 비슷하다던데 내가 가방끈이 짧아서 잘 못 알아듣겠더라.”

“에너지는 더 큰 에너지를 향해 흐른다는 거 정도만 알면 될 거야. 균열이 열리기 전에 그걸 잡아내려면 계속 관찰하고 있어야 하긴 하겠다.”

“그렇다더라고. 어, 너 혹시 김동주 소장님하고 친하냐? 박찬민 지부장이나?”

“어? 아니, 그런 높은 사람들하고 어떻게 친해?”

“지호 누나는 친하던데. 누나가 너 뒷배잖아. 친할 줄 알았지. 아니, 이번에 사냥 나가는데 새 편제에 내가 없더라니까? 누구한테 따져야 할지 생각 중이었거든.”

승환은 조잘조잘 말이 많았다. 또래를 만나기 어려운 환경에 있다 보니 준영이 퍽 반가운 모양이다. 지호 역시 그런 감각을 기대하고 승환을 내보냈을 터. 바쁜 사람이라 얼굴 보기 어려울 거라는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에너지 넘치는 동갑내기 임시 헌터에게 끌려다닌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준영은 금세 피로를 느꼈다. 신체 계열 능력자가 아닌 이상 그 정도의 강행군으로 피로해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힘들어?”

“아니, 어, 아니지만, 힘드네…….”

“그럼 슬슬 센터 갈까? 아마 지금쯤이면 누나도 복귀했을걸.”

“사냥 가셨던 거야?”

승환은 묘한 표정으로 어깨만 으쓱였다. 무슨 의미냐고 묻기도 전에 핸드폰이 울렸다. 지호의 이름이 떠 있다. 준영의 얼굴에 숨길 수 없는 기쁨이 드러났는지 승환은 눈을 가늘게 떴다.

“지호 누나 연하 취향 아니야.”

“뭐? 무슨 소릴 하는 거야. 흠흠, 여보세요?”

준영은 당황하며 목소리를 가다듬곤 통화 버튼을 눌렀다. 저쪽이 아주 소란스러운 와중의 지호의 나직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왜 그렇게 얼어 있어요. 승환이랑 구경 잘 했어요?

“네, 도시가 엄청 빨리 지어졌네요. 항상 게이트 들어오자마자 이동 능력자분들하고 경계로 이동해서 제대로 본 건 처음이에요.”

-아직 그럴싸한 모양새를 갖추려면 좀 더 기다려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밥은 당연히 아직이죠? 변이자들이 우리랑 위장 크기나 음식 섭취 기간이 좀 달라서, 아마 승환이는 배고프다고 안 할 거예요. 센터로 와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아주 드물게 통화를 몇 번 했다. 그마저 안부 인사가 다였고, 그의 보호자가 되어 주기로 한 이지호 헌터는 너무 유명하고 바빠졌기에 어린 임시 헌터에게 시간 한 번 제대로 내주지 못했다.

지호는 늘 준영에게 미안해하며 다른 이를 찾아도 좋다고 했지만, 준영에겐 지호만 한 헌터가 더 없었다. 그저 아는 사이이기만 한 것으로도 뿌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 줄 사람이 얼마나 더 있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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