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5화
헌터가 괴물과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이 알려진다고 사람들이 겉모습까지 괴물로 변한 사람들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리란 낙관적인 기대는 어른이 갖기엔 지나치게 무책임하다고 불러야 옳다. 김 반장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애쓰는 그 어린 괴물이 자기 힘을 회복시켜 주는 것을 여실히 느끼며 이를 악물었다.
“이형 에너지는, 이타심에 영향을 받지…….”
“응? 뭐라고?”
“너희를 사람이 아니라고 이 자리에 있는 누구도 말하지 못할 거다. 하지만, 다른 놈들은 아닐 거야.”
김 반장의 손에서 안개 같은 빛이 쏟아졌다. 정신계 능력자 아닌 것들조차 분별할 수 있을 만큼 강한 힘이다. 난동을 피우던 지호가 잠잠해지자 거의 한계에 다다랐던 특수반원들은 그제야 안도하며 자리에 주저앉거나 옆에 기대었다.
분명 피로감을 느껴야 하지만 막연히 차오르는 고양감 덕분에 체력의 한계를 느끼지 않은 김 반장은 자기 곁에 앉은 채 눈치를 보는 승환을 복잡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박 팀장이 괴물들을 이용하고 버리기 위해 그런 말을 했는지, 진짜로 그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사 표명을 한 건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는 여전히 하늘 위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었으니까.
대신 김 반장은 바닥을 탁탁 두드리는 승환의 꼬리를 덥석 붙잡았다. 그와아 하는 괴이한 소리와 함께 펄쩍 뛰어오른 승환은 옆자리를 탁탁 두드리는 김 반장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가까이 앉아 있어. 아까처럼 멀리서 달려들어서 숨 막히게 하지 말고.”
“아저씬 내가 무섭지도 않아?”
“쪼끄만 게 입만 살아서. 너 같은 게 무서우면 헌터 일 못 해.”
승환은 주춤거리며 김 반장의 옆으로 가 앉았다. 아까보다 거리가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사람 두엇 다닐 정도로 떨어져 있다. 지호의 눈에 붉은빛이 감돌았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던 와중, 지호가 갑자기 자기 무릎을 내리찍는 것이 보였다.
승환은 벌떡 일어났으나 도끼눈을 뜬 것에 반해 몸은 튀어 나가지 않고 버텼다. 헌터들 중 가장 가까운 위치에서 지호를 관찰할 수 있었던 김 반장은 멀찍이서 신체 계열 능력자들이 전달하던 지호 상태를 브리핑받으며 인상 썼다.
“여왕이 자기 몸을 휘두르는 걸 알고 자기 자신을 공격하는 거군.”
“계속 하얀 여왕이라고 중얼거리고 있어요.”
한참 뒤편에서 이주리 헌터가 소리쳤다. 귀도 밝지. 김 반장은 신체 계열 능력자들의 가히 초인적이라고 할 수 있는 여러 능력을 약간은 부러워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각자의 할 일이 있는 법이다.
“어, 그치만 저것 어디에 흰색이 있어요?”
누군가 의문을 제기했다. 김 반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눈이 삐었냐? 저게 흰색이 아니면 도대체…….”
“예? 김 반장님 너무 가까이 계셔서 영향받으신 거 아녜요? 저게 어딜 봐서 흰색이에요?”
승환이 역시 좀 이상한 아저씨라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험악하게 얼굴을 구긴 채 헛소리하지 말라고 말하려던 김 반장은 우뚝 멈추었다.
“그거구나.”
지호의 눈에 붉은빛이 돌아왔다. 김 반장은 승환을 재촉해 뒤쪽 헌터들에게로 이동해 특수반원들을 채근했다.
“왜 그런 환상을 보여 주라고 시켰나 궁금했다. 도플갱어가 나를 통해 이지호 헌터에게 전달한 환상 속에 여왕의 본체를 형상화한 게 있었단 말이야. 그게 빛으로 이루어진 흰색 형체였어. 무슨 말인지 알겠나? 가짜를 인지시킨 거야. 이미 이지호 헌터 안에 인지된 여왕의 형상이 진짜를 막고 있는 거라고!”
정신 방벽도 거의 없는 지호가 여왕에게서 버티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김 반장은 지호가 자기 다리를 거의 부술 기세로 내리치는 것을 보고 저도 모르게 얼굴을 구겼다.
“이지호 헌터 역시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다. 도플갱어가 놈의 계획인지 뭔지를 성공할 때까지만 버텨. 명확한 인지 없이는 이지호 헌터의 몸을 차지하기 어려울 거다. 이 사람들이 우릴 해치지 않으니 가까이 서! 몸이 좀 편해질 거다.”
“예? 하지만…….”
“에너지 떨어져서 짐짝 되어도 못 챙긴다. 알지?”
무슨 뚱딴지같은 소릴 하냐는 표정을 지었던 특수반 사람들은 생존자들이 머뭇거리며 가까이 서는 것과 체력 회복이 거의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을 느끼곤 질겁했다. 전원이 치유 계열일 리 없고, 치유 능력 특유의 녹색 빛이 있던 것도 아니다. 이형 에너지가 타인을 위해 움직이는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 주고 있었다.
그곳에서 터져 나오는 녹색 빛은 오로지 이지호 헌터의 것 하나뿐. 다리를 회복시킨 여왕은 머리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너희 목숨을 다 취하겠다고 하지는 않았다. 임보현만 내놔.”
지호의 목소리로 읊어지는 여왕의 메시지는 서늘했다. 소릴 듣는 것만으로 구토가 치밀어, 승환은 저도 모르게 바닥에 속을 게워 냈다. 그 소리를 정면으로 받아 낸 김 반장은 팔이 후들거리는 것을 느끼며 씩 웃었다.
“그렇게 못 하겠다면?”
여왕은 그런 대답이 돌아올 줄 몰랐다는 듯 고개를 반대 방향으로 갸웃했다.
“그러면, 보다 폭력적이고 즉각적인 방법이 수반되어야겠지.”
지호의 눈이 다시 붉어졌다. 짐승의 것처럼 날카로운 발톱 선 오른손이 그 자신의 목을 붙들었다. 김 반장이 그것이 어떤 전조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벼락같은 외침이 들렸다.
“멈춰!”
들리면 안 될 목소리다. 가까스로 체력을 회복한 임보현이 전장에 난입했다. 지호를 효과적으로 그 장소에 묶어 두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던 도준우의 얼굴에 설핏 절망이 스쳤다. 자신의 목을 부러뜨릴 자세를 취하고 있던 지호의 얼굴에 익숙한 미소가 떠올랐다.
“올 줄 알았다. 이 몸을 죽이는 것을 반대하겠지. 내가 가져갈 것은 네 작은 경험뿐이다. 이 얼마나 관대한 일이냐?”
“관대함 다 얼어 죽었네. 경험? 가져갈 테면 가져가 봐. 어차피 너는 쓸 수도 없는 거니까!”
“보현아.”
도준우의 애절한 음성을 뒤로한 채 보현은 지호 쪽으로 걸어갔다. 어깨가 떨리는 것이 신체 계열 능력자 아닌 헌터들 눈에까지 보일 정도다. 지호를 겨눈 칼끝이 애처로울 정도로 흔들렸다.
“안 돼. 더는 이지호가 괴롭지 않게 해 달라고 했었잖아.”
“못 하잖아. 못 죽이잖아. 이러다 다 죽게 생겼어. 다들 죽어 버리고 목적도 달성 못 하면 그만한 개죽음이 어딨어?”
“놔두면 자기가 알아서 저 몸을 죽이려 했어. 조금만 내버려 뒀으면!”
“만약 지호 씨가 죽은 채로 여왕이 저 몸을 차지해 버리면? 그런 최악의 사태가 벌어지면? 지금처럼 지호 씨가 내부에서 버티지도 않고 여왕의 힘을 쓰며 날뛰게 될 텐데, 아무도 못 막아. 비켜.”
자기 앞을 가로막는 준우 때문에 몇 미터를 두고 지호에게 도착하지 못하게 된 보현은 옆으로 머리를 기울여 시야를 확보했다. 여전히 붉은 눈인 채, 지호가 보현을 응시하고 있었다.
“나를 해치지 않고서 내 기억을 가져갈 수 있나?”
“물론이지. 나는 멋진 변이를 이루어 낸 녀석들을 마구잡이로 해치는 취미는 없어. 혹여 내가 네 기억을 온전히 얻지 못할 수 있으니, 살려 두는 쪽이 건설적이고 경제적이거든. 내가 이루지 않은 변이를 통해 새로운 힘을 습득하는 동족들이란, 얼마나 멋지고 대단하니?”
정신을 보호하는 것에 온 힘을 집중하고 있었기에 보현은 그 음성에 실린 힘을 견디지 못하고 몇 걸음 물러났다. 도준우 역시 김 반장의 서포트가 없었으면 거기 멀쩡히 서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내내 거리 유지를 중요시하며 지호를 상대해 왔던 준우였으나 지금은 상황 가릴 때가 아니었다. 그는 앞을 노려보면서도 뒤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차라리 잘된 거 아니냐? 이지호 헌터를 제 손으로 죽여 버리겠다는데. 놈이 쓸 몸은 한동안 마련되지 않을 거다. 왜 위험을 자초해, 미쳤어?”
“너를 잃을 때만큼은 아니겠지만, 여러 사람을 잃을 때처럼 후회하겠지. 심지어 지호 씨만큼 강한 헌터가 더 없단 말이야. 우리는 최강의 방패도, 최강의 창도 잃고 말 거라고. 그저 조금 더 생을 연명할 뿐인 사형 선고에 무슨 의미가 있어?”
“너답지 않은 소리 마. 이성적으로 생각해!”
“몰랐다고 하진 않겠지. 내가 생각보다 행동이 우선인 사람이었단 걸.”
염동력이 준우의 오금을 후려쳤다. 비틀거리기 무섭게 허벅지를 내리누르는 힘의 배분에 그는 당황하면서도 거기 저항하려 애썼다. 그것 자체가 함정이었다. 준우를 지나쳐 지호 앞으로 뛰어나간 보현은 손을 내밀었다. 일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여왕에게 몸을 잠식당한 지호는 얌전히 보현에게 붙잡혔다.
“가져갈 수 있으면 가져가 봐. 어차피 네가 쓸 수 없는 방법일 테니!”
여왕의 눈에서 시뻘건 빛이 터졌다. 본디 지호의 힘은 아닌 것. 억눌러져 있던 힘이 터져 나오며, 두 사람을 제외한 모두에게 검은 형체로 보이던 여왕의 본체가 희미한 형태를 이루어 보현 앞에 나타났다. 여왕의 정신체를 직접 마주한 보현은 온 힘을 정신 방벽에 집중하고 있음에도 스스로 허물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도플갱어가 처음 세운 계획이 김 반장과 보현, 퀸 패러사이트만을 염두에 두었단 생각에 오만하게 굴었다. 보현은 여왕의 정신체가 눈앞으로 빠르게 가까워지는 것을 느끼며 버텼다. 검은 형체가 지호에게서 보현에게로 옮겨 가는 것을 봐 버린 김 반장은 입을 쩍 벌렸다.
“아니, 저 미친 상황 대체…….”
너덜너덜해진 지호의 몸은 여왕의 정신체가 빠져나가기 무섭게 바닥에 엎어졌다. 거기 신경 쓸 여력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보현의 눈은 붉은색이었다가 푸른빛이기를 반복하며 깜빡이고 있었고, 그에게 베일처럼 덧씌워진 검은 형체는 진짜 정신계 능력자의 몸을 갖기 무섭게 훨씬 강해진 힘으로 헌터들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김 반장마저 코에서 피가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안압이 올라 눈이 터질 것 같았다.
지호의 몸에서 미세하게 흘러나온 선 같은 것이 보현에게 이어져 있었다. 본디 지호를 통해서 이쪽으로 드러난 정신이다. 완전히 보현 쪽으로 넘어가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보현의 몸을 움직이는 것에는 그보다 많은 힘이 필요치 않았는지, 곧 그의 눈이 새파랗게 변했다.
여왕의 정신이 보현의 기억을 날카롭게 파헤쳤다.
그리 깊지 않은 기억의 표면, 타인에게 전한 적 없는 사실들을 표류하던 여왕은 보현이 떠올리지 않으려 안간힘 쓰는 기억으로 뛰어들었다. 흰 코끼리를 숨기기 위해 흰 코끼리를 떠올리지 않으려 하는 사람은 당연하게도 흰 코끼리를 떠올리게 되는 법.
기억 속으로 침잠하는 시간은 길지 않다.
급성 균열 안. 어딘지 명확하게 기억나지 않는 곳. 이미 은퇴했으면서도 여전히 헌터 일을 하면서, 보현은 자신의 행동을 의무감만으로 표시하지는 못했다. 퀸 패러사이트의 흔적을 쫓아 균열이란 균열은 다 쏘다니며 영웅이니 뭐니 하는 웃기지도 않는 칭호로 타인의 떠받듦을 당했을 때, 보현은 그것이 정말 의미 없다고 생각했다.
준우가 없는 순간을 상상하고 싶지 않아 자신을 극으로 내몰고 있다는 걸, 보현 자신만큼 잘 아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가 죽었을까? 아니면 어디엔가 살아 있을까? 무수한 실종자 가족들이 그러하듯, 시신도 죽은 흔적도 찾을 수 없었기에 보현 역시 준우가 살아 있다고 믿었다. 괴물을 죽이고 사람들을 구하며 보현은 자신이 구하는 것이 도준우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당연하게도 언제나 생각뿐이었다.
보현은 지쳤다. 낡고 병들어 삐걱거리는 몸. 균열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약해져 가는 자신을 관찰하며 그는 느린 자살 중이었다. 신체 계열 능력자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이런 결말을 맞는다고 했다. 준우는 신체 계열이니 오래 버틸 수 있지 않을까? 보현은 무의미한 추측과 기대 속에서 거의 죽을 뻔했다.
버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균열 폭주 때문에 상대해 본 적 없는 괴물들이 나타났다. 동행했던 임시 파트너들이 하나둘씩 죽어나고, 팀에 헌터가 절반밖에 남지 않았을 때 보현은 그때야말로 죽을 때라고 생각했다. 코드 레드? 신호를 추적해 들어왔으나 퀸 패러사이트는 만나지도 못했다. 이토록 맥없는 죽음이라니. 아직 준우의 흔적을 찾지 못했는데.
사실 그 흔적이란 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해묵은 의문과 함께 피로감이 더해졌다. 부정적인 생각과 달리 보현은 적은 에너지로도 효과적인 공격을 계속해 나갔다. 팀원들을 지키기 위해 최소한의 에너지만 써야 했고, 방벽을 유지하는 것 역시 병행해야 하는 어려운 작업. 보조해 주던 신체 계열 능력자가 죽어 남은 것은 두 사람뿐이다.
나머지 두 사람을 어떻게든 균열 경계로 데려왔으나 괴물의 수가 많다. 다 함께 나갈 수는 없었다. 선택이 필요한 때. 공포에 떨고 있던 치유계 능력자를 에너지 다 떨어진 이형 에너지 능력자에게 맡긴 보현은 거리를 벌렸다. 계양 균열 사망자는 이미 많았지만, 한 사람 더해진다고 크게 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어린아이 같은 게 있었어요. 그걸 도우려고 했다고요. 김태호 헌터가 그 애를, 분명히 도우려고…….”
“시신으로 사람을 꼬이는 종류의 괴물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발견된 적 없는 개체겠죠. 아무튼, 지금 그놈은 가까이에 없어요. 정신 차려요. 이러다 다 죽겠어요.”
말을 알아듣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나머지 헌터와 눈짓을 나눈 보현은 트라우마 반응으로 극심히 괴로워하는 헌터를 기절시켰다. 데리고 움직이기엔 차라리 그편이 나았으니까. 덜덜 떨며 옆 사람을 붙잡고 늘어지던 헌터는 그제야 축 늘어졌다.
보현은 피로감을 느꼈다.
일정 수를 사냥하고 난 뒤 괴물들은 각기 눈치를 보며 거리를 벌렸다. 애당초 협공 같은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놈들이다. 갑자기 옆 놈을 습격해 곳곳에서 소규모 전투가 일어났다. 보현은 이 틈을 타 나가야 한다며 나머지 헌터를 떠밀었다.
“임 헌터님은요?”
“제가 움직이면 티 나요. 헌터님은 에너지 다 썼잖아요. 소리에만 주의해요. 한 명 맡겨서 미안합니다. 데려갈 수 있겠어요?”
“해야죠. 꼭 지원군 데리고 돌아올게요. 그때까지만…….”
“살아남는 데만 집중해요.”
보현은 그의 어깨를 탁 치곤 좀 더 안쪽으로 움직였다. 인사조차 없는 몸짓에 팀원은 머뭇거리다가 기절한 이를 업고 괴물들이 있는 곳과 반대로 움직였다. 괴물들끼리 싸우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보현의 에너지를 추적하며 따라온 놈들이라 에너지를 방출하며 방향을 틀자 보현의 의도대로 움직였다.
여기까지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