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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242화 (243/260)

242화

입 밖으로 물을 수 없는 질문. 설핏 초점 잡힌 곳에 있던 보현이 고개를 끄덕인 것 같은 기분도 든다. 거기 모인 모두가 지호를 필사적으로 공격하면서, 동시에 최대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여왕을 속이기 위한 작전일까? 지호는 그 생각마저 괴물에게 읽힐까 두려웠다. 현실과 환상이 이리저리 뒤섞여 멀미를 일으켰으나, 다른 이들이 포기하지 않았기에 지호 역시 그럴 수 없었다.

무수한 생채기가 살 위를 가로질렀다. 다 찢어진 헌터복 한쪽으로 피가 흐르는 느낌이 든다. 사정 봐주지 않고 공격하는 누구 덕분이었다. 지호는 눈앞의 도준우에게 집중하며 한 대 정도는 제대로 반격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때였다.

거인이 등을 짓밟으면 그런 느낌일까. 지호는 여태 느꼈던 통증과 고통에는 비교도 되지 않는 괴로움 때문에 고장 난 로봇처럼 멈추었다.

붉게 빛나던 그의 눈이 바람 앞 촛불처럼 훅 꺼졌다. 모두의 얼굴에 화색이 돈 그 순간, 눈 깊은 곳에서부터 태양처럼 이글거리는 적색이 스며 나왔다.

“이 잡것들이……!”

팔이, 다리가, 어깨가, 등이 제각기 앞으로 튀어 나가려고 꿈틀거렸다. 지호는 비명을 지르며 동시에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고, 파들거리는 몸 안에서 사방으로 튀는 여왕의 정신이 그를 괴롭혔다.

지호가 갑자기 그 정신체를 느끼게 된 것이 아니다. 여왕의 정신체는 지호에게서 빠져나가다 되돌아오기를 반복하며 지호의 몸 여기저기를 들쑤셨다.

“이 하찮은 것 집어치워!”

지호는 시야 위로 검은 막 같은 것이 드리우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선글라스를 낀 것 같기도 하고, 검은 베일을 머리에 덮어쓴 것 같기도 했다. 지호를 둘러싸고 있던 헌터들이 주춤거리며 물러나는 것이 보였다. 모두가 비틀대는 와중에 한 사람, 김동주 반장은 굳건히 버티고 선 채 소리쳤다.

“아까 한 말 철회한다. 여기서 못 버티면 다 죽어! 서 있을 힘도 남기지 말고 버텨!”

김 반장을 향해 튀어 나가려는 몸을 필사적으로 억누르기 위해 지호는 자기 팔을 시멘트 바닥에 꽂아 넣었다. 막 튀어 나가려던 몸이 덜컥 걸려 휙 뒤집히는 것을 느꼈다. 여왕의 분노가 진짜로 몸을 찢고 나올 지경으로 펄펄 끓는 것도 느껴졌다.

지호는 자기 오른팔이 일반적인 인간의 신체보다 튼튼해졌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신체 계열 능력자 특유의 무게와 속도를 버티면서 용케 부러지거나 떨어지지 않고 버티고 있었으니.

여왕은 곧 신체 통제권을 강탈해 헌터들 쪽으로 달려들었다. 그러나 지호 역시 가만히 있지 않았고, 본디 날카로워야 할 공격이 무디게, 그리고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가는 통에 여왕은 좀처럼 통쾌한 기분을 느끼기 어려웠다.

“네 몸에 나를 가두려는 거다! 어리석은 것. 이대로 너를 희생양 삼으려는 거라고!”

헌터들이 뭐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지만 말 자체가 물속에서 듣는 것처럼 울려 정확히 전달되지 않았다. 지호는 오로지 여왕의 음성만 명확하게 들을 수 있었다. 그는 그보다 더 명확할 수 없다는 듯이 선포했다.

“너 하나의 희생으로 모두의 안전을 얻을 수 있다는 결론이 난 거다. 네 안에 나를 잠시 가두면 어떻게든 결론을 찾을 수 있을 것 같겠지. 그게 그렇게 쉽게 끝날 일 같으냐? 화를 자초하는…….”

지호는 자신을 거두고 있는 그물망 같은 이형 에너지를 느꼈다. 닿을 때마다 두통으로 토악질이 밀려오는 것을 보니 정신계 능력들이다. 그것도 하나의 것이 아닌 다수의 것임을 알 수 있는 명확한 타래들.

타인의 힘을 밀어내지 않을 만큼의 견고한 신뢰로 관계를 구축한 이들이면서 정신계 능력을 능숙하게 사용하는 사람들이면 당연히 특수반일 것이다. 김 반장이 지휘하는 특수반 사람들을 비롯해 일면식 있는 헌터들이 한곳에 모여 있었다.

도래하는 순간 재앙이 될 것이 분명한 괴물을 상대하려는 목적이지만, 동시에 그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해 모인 자들이기도 했다.

지호는 그들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면서도 필사적으로 여왕을 방해했다. 특수반 절반 이상은 귀나 코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여전히 검게 가려진 시야 너머에서 보현 역시 비틀거리는 것이 보였다. 지호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애석하게도 여왕 역시 그것을 느꼈다.

지호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기에 그 누구보다 지호의 감정 변화에 민감해진 존재다. 그는 보현 쪽으로 시선을 두더니 올라가는 입꼬리를 숨기지도 않았다.

“네 약점이 저것이냐?”

지호는 부정하는 대신 자기 팔을 들어 다리를 내리쳤다. 우득, 하고 뼈 부러지는 감각이 느껴지며 통증에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몸이 움츠러들었다. 다리 한쪽이 부러지자 여왕은 그 망가진 다리를 내려다보더니 혀를 찼다.

“내가 쓰기 전에 네가 먼저 자신을 망가뜨리려는 작전이냐? 어리석은 결론이구나. 하지만 너도 잘 알다시피, 네게는 회복을 돕는 힘이 있지.”

부러진 다리를 짚은 손에서 녹색 빛이 너울거렸다. 지호가 쓸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숙련도로 고장 난 신체를 고치고 이어 붙인 여왕은 보란 듯이 웃었다.

“좋다. 이제 어디를 고장 내겠느냐? 내가 고장 난 것 주워다 쓰는 경험이 많을 줄을 알지 못한 게 네 패인이지. 아무리 고장 난다 한들 죽지만 않으며헉!”

그의 입을 빌려 주절거리던 여왕이 처음으로 말을 멈췄다. 지호는 갑자기 돌아온 발언권에 당황한 탓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날뛰던 여왕이 급작스레 잠잠해지고, 시야를 가리던 검은 베일 같은 것도 미세하게 옅어졌다. 지호는 웅크린 몸을 느릿하게 바로 세웠다.

허상과 현실이 교차하는 시야 앞에서, 여왕이 한 입 베어 먹힌 것 같은 꼴로 바들거리는 것이 보였다. 그가 지호의 정신 속에서 지호의 정신을 마주한다는 의미는, 지호 역시 여왕의 정신체를 눈으로 볼 수 있다는 의미다. 그 심상 속에서 지호는 이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 파악하려고 애썼다.

얼굴 한쪽이 베어 먹힌 것처럼 떨어져 나간 여왕은 박제된 벌레처럼 파들거리다 몸을 뒤틀었다. 다리 한쪽이 뭉텅이로 떨어져 나간다. 무언가에 먹힌 것 같은 자국. 지호와 여왕은 동시에 위를 올려다보았다. 균열 밖 그림자가 지독할 정도로 짙다. 여왕은 몸을 떨었다.

“그것들이 접근하지 못할, 안전한 위치에 가져다 두었는데……. 어떻게!”

여유 부리던 포식자는 어디에도 없었다. 너덜거리던 정신체는 지호의 머리를 찢어발겨도 모자랄 통증을 선사하며 눈에서, 입에서, 신체에 뚫린 모든 구멍에서 빛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인간의 형상 중에서도 지호의 엄마 모습을 훔쳐 쓰고 있던 여왕이 다시 흰빛으로 이루어진 본신으로 돌아갔다는 것을 알았을 때, 지호는 좌절과 절망을 느꼈다. 저런 걸 어떻게 상대해야 하지?

정신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바깥의 헌터들은 줄 끊어진 인형처럼 멈춘 지호의 상태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포위망을 좁히고 있었다. 지호는 그것을 보고 듣고 느끼면서 동시에 자기 정신에서 일어나는 절망스러운 현상을 응시했다.

그것은 지극히 부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언젠가 경험했던, 인간에서 탈피하는 듯한 그 감각. 이제는 지호를 현실에 붙잡아 줄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빛으로 이루어진 괴물은 그 형체를 눈물처럼 흘리며 울부짖었다.

“아니야! 이 모습이 아니야. 나를 인지해라. 내 본모습을 똑똑히 보란 말이야!”

여왕의 음성이 지호를 뒤흔들었다. 지호는 당황하여 물러나면서도 영문을 몰라 두려워했다. 뭘 제대로 보라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여전히 있으나 마나 한 정신 방벽이 미약하게 자라나 지호의 정신을 보호했다. 거의 없다시피한 방벽 속에 웅크린 채 지호는 온갖 통증으로 괴로워하며 신음했다.

어떤 이의 정신 속에서 타인이 상상할 수 없는 폭거가 시작됐다. 지호는 몸을 웅크리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최대한 머리를 보호하려 애쓰며 구석진 곳으로 달아났다.

여왕이 그 거대한 팔을 내리칠 때마다 지호의 몸이 크게 들썩였다. 제자리에서 꿈틀거리며 피를 토하는 모양새는 거의 산 송장에 가까워 보인다. 그러나 도준우가 일정 거리를 유지하기를 권장하며 냉정하게 헌터들을 가로막아, 아무도 지호에게 가까이 가지 못했다.

“왜 갑자기 멈췄지?”

“당신들에겐 보이지 않겠지만, 균열 밖에서 포식자들이 여왕의 본체를 발견했다. 놈의 유인책이 적절했나 보군.”

“놈이 여왕의 신체를 얻으려고 한 것이 아니었어?”

보현의 날카로운 질문에 도준우 역시 의아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보현의 질문이었으므로 그는 성실히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나도 그렇다고 알고 있었는데, 외부에서 상황이 어떻게 변했을지까진 알 수 없지. 보이는 바에 따르자면 지금 여왕을 위협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들이 다수 모여 여왕을 뜯어먹고 있는 것 같은데.”

그 덤덤한 묘사가 헌터들을 놀라게 했다. 김 반장은 꿈틀거리는 지호를 노려보다가 간신히 눈을 돌리며 물었다.

“놈의 본체가 죽으면 그 정신은 어떻게 되는 거지?”

“지금 정신계 능력자가 그쪽 일을 나한테 물어보는 건가?”

“어떻게 되는 거야?”

“도플갱어가 퀸 패러사이트와의 경험으로 추측하기로는 본체를 잃은 정신은 곧 붕괴하기 마련일 거라고 했다. 내게 남은 것은 옛 주인의 핵이었지만, 그것이 신체의 사멸을 알리며 내게 죽으라는 명령을 내리지는 않고 있어서 정확히 알기는 여전히 어려워. 그리고 일반적인 정신체가 여럿으로 쪼개지지는 않아서, 아마 퀸 패러사이트의 정신은 그 신체에서 함께 죽음을 맞이했겠지. 내게 심겨진 미약한 힘과 비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야.”

김 반장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가늘게 뜬 눈으로 도준우를 노려보았다. 다른 사람이 물을 때는 그게 질문이냐는 어조로 날카롭게 반응하면서 보현이 물을 때는 더할 나위 없이 친절한 설명을 덧붙이는 것은 누가 봐도 좀 아니꼬운 모습일 것이다. 보현은 그 괴리를 눈치채지 못한 채 생각에 잠겼다.

“만약 진짜 몸을 빼앗긴 여왕의 정신이 지호 씨를 잠식하려고 하면?”

“그것이 우리가 예상한 최악의 경우다. 다행히 여왕의 본체보다는 약한 몸이니, 그 경우에는 본래 예정대로 이지호 헌터를 죽일 것이다.”

부근 공기가 싸해지는 것에 아랑곳 않고 말을 맺은 도준우는 다시 균열 위를 응시했다. 포식자들이 그야말로 포효하며 그 어미의 몸을 게걸스럽게 삼키는 모습이 보였다. 그것은 이미 사냥이라고 부르기도 어려운 장면이고, 저 안에서 도플갱어가 무사할 거라고 생각하기도 어렵다. 준우는 그 말을 다른 이들에게 옮기지 않았다. 굳이 보현의 걱정거리를 늘려 줄 필요는 없으니까.

“하지만 앞서 정신계 능력을 가장 노련하게 다루던 형제의 기억을 얻은 도플갱어는 아마 그런 일이 일어날 일은 거의 없을 거라고 하더군. 일반적으로는 이지호 헌터 내부에 남은 정신체는 처음에는 반항하고 그 신체를 잠식하려 애쓰겠지만, 점점 약해지다가 사라질 거다.”

보현은 구태여 일반적이지 않은 경우를 묻지는 않기로 했다. 박 팀장 쪽으로 외부 연락이 줄기차게 들어왔다.

“이상 수치가 지나치게 많이 관찰되고 있고, 게이트가 외부에 있을 때 들여보낸 드론들이 지금 바깥의 재앙을 관측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박 팀장은 덤덤히 이야기하며 어깨를 주물렀다. 만약의 사태를 위해 대기할 뿐이지만, 눈앞에서 이지호 헌터의 몸 위로 드러나는 여왕을 보기만 하는 것으로 정신력이 뭉텅뭉텅 깎여 나가는 기분이었다. 과다하게 쌓인 피로를 떨쳐 내려 애쓰며 그는 넘겨받은 정보들을 걸러 전달했다.

“게이트 부근에서 생존자들 다수가 발견된 모양이고, 경계에서 일어나던 괴물들의 탈출과 헌터들의 교전이 한층 격렬해지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어, 잠시만요.”

박 팀장은 자기가 본 것이 정확한 소식인지 확인하기 위해 정보를 교차 점검했다. 한 곳도 아니고 여러 곳에서 넘어오는 보고들을 확인한 그의 얼굴이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어. 생존자들을 구출해 온 괴물들이 교섭을 요구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예?”

“그러니까 자기들이 균열 생존자라고 주장하는 어떤 괴물 무리가 생존자들을 다수 구출해 왔다고…….”

박 팀장은 자기가 말하고도 어이가 없었는지 이마를 긁적였다. 보현은 저도 모르게 도준우 쪽을 돌아보았다. 보현 곁에 서 있던 주리가 씹어뱉듯 중얼거렸다.

“이지호 헌터가 보고했던 그거잖아. 균열에 남아 있던, 괴물로 변한 생존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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