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화
김 반장이 지나치게 당황하는 것을 본 박 팀장은 황급히 다른 상황을 보충 설명했다.
“당장은 안심해도 될 겁니다. 전대미문의 악성 균열이 수도권 한복판에 열린 덕분에 사람들의 신경은 모조리 경계 쪽으로 쏠려 있어요. 최전방이 계속해서 넓어지고 헌터들은 균열을 빠져나오려는 괴물들을 막는 중이고, 사람들은 더 먼 곳으로 대피하기 위해 바쁩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일을 해결하고 나면 그 문제에 맞닥뜨리겠죠. 오래전에 실종되었던 어떤 헌터의 귀환이 그들의 시선을 좀 돌려 줄 수는 있겠습니다만……. 결과적으로 각성자들이 모두 괴물과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면서 사람들 사이에 뭐가 자라날지 알 수 없게 됐습니다. 그러니 그전에 악성 균열을 닫는 편이 좋겠다는 합의가 있었고요.”
“그게 무슨 소리예요?”
보현이 던진 질문에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그 자리에서 그게 무슨 말인지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었을까. 김 반장은 욕설과 함께 먼 곳 하늘이 불길하게 울리는 것을 노려보았다. 금방이라도 벼락이 내리꽂힐 것 같은 날씨였다.
“탄로 났다면 어쩔 도리가 없지. 우린 할 바를 다했어. 언제까지고 막을 수 있을 거라곤 생각 안 했다만…….”
“도준우 헌터의 생환을 기뻐하는 사람들도 많을 겁니다. 각성자가 괴물과 다를 바 없다는 것 자체는 양 박사의 가설일 뿐이에요. 당장 그걸 증명할 방법도 수단도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사이에 신뢰가 깨질 테고, 헌터들은 전처럼 동경하는 직업은 아닐 거예요.”
보현은 눈을 가늘게 떴다. 눈치 없는 사람은 아니었는데 여기서 쓸데없는 말을 장황히 늘어놓으니 좀 짜증이 치밀었다.
“여기 누구 남이 동경했으면 해서 헌터 하는 사람이라도 있어요? 쓸데없는 소리 말고 설명이나 정확히 해요. 김 반장님은 뭘 숨기고 있던 거고, 박 팀장님은 그래서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죠?”
“이지호 헌터의 희생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았습니까?”
분위기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박 팀장은 당장에라도 자신을 바닥에 메다꽂아도 모자라지 않을 보현의 서슬 퍼런 시선을 웃어넘기려 애쓰며 설명했다.
“지금 이지호 헌터의 몸을 차지하려고 하는 정체 모를 괴물이 바로 괴물들의 최종 보스 같은 존재인 거죠? 이 헌터가 정신 방벽이 없어 정신계 공격에 대단히 취약하다는 건 다들 알고 있어요. 이 상황이 벌어진 이유가 정신 방벽이 약한 헌터이기 때문에 벌어진 것인지, 아니면 어떤 특수 상황이 겹쳐져 일어난 것인지 알아야겠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 모두 실은 괴물과 다를 바 없으니 그 우두머리인 놈에게 꼼짝없이 조종당하는 신세가 되지 않겠느냐는 의문이 생겨서 말이죠.”
박 팀장의 입에서 나온 잔인한 가정이 보현의 분노를 누그러뜨렸다. 누구도 대답할 수 없는 문제가 아닐까. 애당초 보현은 여왕이나 다른 괴물들이 노리고 있는 것이 지호가 아니라 자신인 줄 알았던 사람이다. 머뭇거리는 보현의 앞을 익숙하게 가로막은 준우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박 팀장과 임보현, 그리고 김 반장까지 모두 도준우를 바라보았다. 준우는 목을 문지르던 손을 내리며 간략히 설명했다.
“저 헌터는 각성 과정에서 여왕의 손아귀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일을 겪었다. 다른 자들에게 비슷한 영향을 끼치려면 도플갱어가 해친 그 형제들에 준하는 특별한 능력이 필요하겠지. 하지만 이 균열에서 그 형제들은 모두 죽었고, 한때 여왕을 귀찮게 하던 여러 현상은 그 통제에서 풀려나 진짜 자연 현상으로 돌아갔다. 그러니 다른 것들에까지 손쉬운 영향을 끼치긴 어렵지.”
“너는 너만 아는 이야기를 모두가 아는 것처럼 말하는 그 태도부터 버려야겠다.”
보현의 지적에 준우는 비 맞은 강아지처럼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헌터들이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를 알지 못하는 도준우는 고민하다가 조금 더 풀어 설명하기로 했다.
“어차피 지금 이지호 헌터 근처에 가 봐야 여왕의 제물이 될 뿐이니 기다릴 겸, 균열 너머 이야기나 좀 들려주지. 최악의 경우에는 이지호 헌터의 몸을 쓰는 여왕과 싸워야 할 테니 다들 좀 쉬어 두는 편이 좋을 거다.”
“여왕의 제물이라고?”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정신력으로만 싸울 상황을 만들었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 균열에 들어온 후로 아마 저 헌터는 제대로 쉰 적이 없는 모양이지? 그나마 가지고 있던 마정석들은 전투하는 틈틈이 써 버린 것 같고. 가뜩이나 바닥인 체력을 여왕을 상대하기 위해 쓰고 있고, 정신을 잃지 않은 게 다행일 정도야. 괴물들은 진작 달아났고 여기서 다른 이형 에너지 보유자라곤 헌터들뿐인데, 저 헌터의 몸을 쓰는 여왕에게 가까이 갔다가 놈의 것이었던 이형 에너지를 공급하고 죽어 버리기라도 하면 뭐가 되겠냐?”
보현을 위해 길게 늘어놓는 친절한 설명이었으나 내용 때문에 그다지 친절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는 없었다. 보현은 관자놀이께를 꾹 누르며 고심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일부는 아까 말한 대로 만약을 위한 준비를 해라. 나머지는 우리 계획에 협조해 줬으면 좋겠군.”
“내가 도플갱어에게 전해 들었던 계획은 이지호 헌터에게 사실을 전달하지 않고 여왕을 사로잡는 정신 트랩에 관한 것뿐인데.”
김 반장이 삐딱하게 대답하며 비아냥거렸으나 준우는 고개를 간단히 끄덕이며 긍정했다.
“퀸 패러사이트가 죽었고 도플갱어가 자리를 비웠으니 그 작업을 헌터들이 맡아야지.”
“여왕이 이미 들어갔잖아. 뭘 막으라는 거야?”
“방향이 반대야.”
준우는 검지를 세워 손가락을 빙빙 돌렸다. 그 영문 모를 손짓에 모두가 당혹을 금치 못했고, 박 팀장은 저도 모르게 그 손이 가리키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균열 밖, 여전히 그곳을 어둡게 하는 그림자들이 있는 곳.
“저 밖에서 무슨 일이?”
“있을 거다. 도플갱어는 그 형제들의 기억을 모두 얻었고, 자기 깨진 그릇을 대체할 몸으로 여왕의 신체를 선택할 거야. 한때 그 기억에서 비롯된 몸이니 거부 반응이 있을 리는 없고, 특이 체질이 어떻게 작용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야. 하지만 시도 정도는 해 봄 직하지. 곧 죽을 몸이라 어떤 것도 두려울 것 없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여왕의 본체를 노릴 수가 있어?”
“나는 정확히 모르겠는데, 정신계 능력 가진 놈들끼리는 뭐 특이한 게 있나 보던데. 아무튼, 도플갱어가 내게 남긴 전언은 하나야. 막을 방향이 반대다.”
“맙소사.”
김 반장은 대단히 당황스러워하며 보현과 준우를 번갈아 보고는 욕설을 중얼거렸다. 그는 그 감각에 오래 젖어 있는 대신 특수반 헌터들을 소집하며 가뜩이나 험악한 인상을 더더욱 접근하기 어렵게 구겨 댔다.
“정신체가 다른 것에 간섭하는 상황에서 본체가 타격받으면 당연히 이지호 헌터의 몸에서 빠져나오겠지. 그걸 막으란 뜻이냐?”
“최소한 나는 부정적이었어. 퀸 패러사이트와 그쪽 헌터 하나, 그리고 임보현 너 셋만의 힘으로는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거든. 언제고 저 헌터를 죽이는 쪽이 좀 더 현명하고 빠른 계획이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지금 보니 그렇지만도 않군.”
“본래 셋이서 할 수 있었던 계획이란 뜻이겠지?”
“해야 했던 계획이었겠지. 도플갱어가 여왕의 본체를 공격하면 이쪽에서도 금방 알 수 있을 거다. 그때 저 헌터에게 접근해 놈을 무력화시켜야 해. 나도 돕겠다. 우리가 싸우는 동안 다른 쪽 처리를 부탁하지. 할 수 있겠나?”
“할 수 있겠느냐고 물어보면 안 되지. 해야 하는 거잖아.”
특수반 헌터들은 김 반장에게 그들이 만들어야 할 정신계 트랩에 관한 상세한 설명을 전달받았다. 본디 연합 작전에 익숙한 사람들이다. 김 반장은 작전을 설명하는 와중에도 그의 팀원들에게 신신당부했다.
“절대 모든 힘을 다 써서는 안 돼. 싸우는 사람들을 보호하는 힘과 트랩에 쓰는 힘, 예비 힘을 잘 배분해라.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고, 최악의 사태가 벌어지면 여왕과 대면해야 할지도 모른다. 놈은 다른 몸을 쓰면서도 다른 자들을 미쳐 버리게 할 만큼 강한 정신계 공격을 할 수 있어. 우리 방벽이 뚫리면 대구 악성 균열 꼴 나는 거다. 무슨 말인지 알지?”
거의 전원이 2세대, 그 악성 균열 출신인 특수반 헌터들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박 팀장은 나머지 헌터들의 조를 짜며 병원 쪽에 연락해 괴물들이 도주한 방향을 전달하고 탈출 루트를 확인했다. 다행히 병원과 아파트의 생존자들 상당수가 탈출한 상황. 그 와중에 헌터들이 이동하는 것을 보고 숨어 있던 자들 중 일부도 구조되었다고 했다.
긍정적인 소식으로 희석되지 못할 긴장과 떨림이 헌터들 사이마다 짙게 배어 있었다. 보현은 균열 밖을 응시하는 듯한 준우에게 뭐라고 말을 걸까 말까 고민하다가 머리를 벅벅 긁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런 그의 눈에 홀로 바닥에 주저앉은 주리가 들어왔다.
주리의 품에는 죽은 괴물의 시신이 구겨져 있었다.
어떻게 봐도 그의 동생과 같은 모습이 아니다. 심지어는 사람 모양새도 아니었다. 퀸 패러사이트의 호위대가 휘둘렀던 것은 고작 사람 모양을 연상시키는 작은 고깃덩어리에 불과했다. 그러나 주리는 황망한 표정으로 내내 그것을 끌어안고 있었다.
“주리 씨.”
아무 반응이 없었다. 혹여 여왕에게 잠식된 지호에게서 무언가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닐까 염려해 그의 상태를 확인한 보현은 주리가 그저 패닉에 빠져 있을 뿐이라는 사실만 확인할 수 있었다.
아주 그리웠을 것이다. 그리고 절박했겠지. 퀸 패러사이트의 흔적을 쫓으며 복수심만으로 정신없이 달려왔던 보현은 주리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했다. 준우처럼 돌아올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시피 할 것이다. 그것이 각성도 하지 못한 어린아이라면 더더욱.
보현은 다른 이들이 기대할 수 없었던 기적을 경험한 자신이 주리에게 그 어떤 말도 건넬 수 없으리란 사실만 상기했다. 주리는 죽은 괴물 신체 일부가 자기 동생이라도 되는 것처럼 내내 그것을 끌어안고 있었다.
보현은 주리의 앞에 쪼그리고 앉은 채 고심하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다가 손을 뻗었다. 그 괴물의 새카만 몸을 내려다보던 주리의 눈을 가린 보현은 조용히 속삭였다.
“주리 씨가 제일 잘 알고 있겠죠. 이게 주아가 아니란 걸.”
여전히 주리는 미동 없이 앉아 있었다. 막내의 이야기를 할 때, 막내를 그리워하는 동생을 꾸짖으며 바위처럼 제 삶을 살아갈 때, 망자를 그리워하며 온갖 사고를 저지르는 이들의 뒤를 수습하며 일할 때도 주리는 항상 괜찮은 사람처럼 행동했다.
그러나 사랑하던 사람들을 잃은 자들은 그 가슴에 뚫린 구멍을 무엇으로도 메꿀 수 없다.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보현은 감히 주리를 위로할 수 없었다.
“여기서 넘어지지 말아요. 다른 동생 혼내 주러 가야죠. 주원 씨한테 헛바람 불어넣은 괴물 새끼 혼내 줬잖아요. 이제 괜찮아졌을 거예요. 제정신을 차렸겠죠. 그러니까 주리 씨가 호되게 혼내 줘야 또 그런 일에 휘말리지 않을 거예요. 주원 씨가 여기저기 저지른 일이 많아서 그거 다 알아내고 뒤처리하려면 또 주리 씨가 피곤하겠다.”
보현은 아무렇지 않게 미래를 이야기했다. 그것이 당연히 찾아올 것을 아는 사람처럼. 주리는 느릿하게 보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무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지만, 손가락 사이로 흐르는 뜨거운 눈물이 보현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어떤 단단한 사람도 사람이기에 무너질 때가 있다. 그럴 수도 있었다.
“이주원 망할 새끼.”
주리의 음성은 평소와 같았다. 그는 끌어안고 있던 것을 꽈악 쥐며 힘겹게 중얼거렸다.
“멍청하게 사고나 치고, 헛짓거리나 하고, 말도 없이 혼자 무슨 짓거리 하고 다녔는지 정신만 돌아오면 있는 힘껏 패 버릴 거예요.”
“그러다 죽어요. 제가 대신 때려 줄게요. 쟤 없을 때, 그래도 우리 괜찮은 파트너였잖아요.”
“그 사고 치느라 주변 안 보는 임 헌터 백업할 수 있는 게 저 말고 또 누가 있어요. 곳곳에 사고뭉치뿐이야. 내가 제명에 못 죽는다니까요.”
반쯤 갈라지고 잠긴 목소리였으나 주리는 꿋꿋이 문장을 완성했다. 보현은 천천히 그 눈가에서 손을 떼었다. 물기 젖은 눈으로 이쪽을 뚫어지게 응시한 주리의 시선은 평소와 같았다. 보현은 웃었다.
“맞아요. 이제 우리 식구 하나 챙기러 가야 하는데, 또 도와줄 거죠?”
주리는 보현이 내민 손을 잡고 일어났다. 바닥에 아무렇게나 떨어진 괴물 시신을 짓밟은 주리는 그쪽에 눈도 돌리지 않고 자기 상태를 점검했다. 아까 전투로 너덜너덜해진 부위와 망가진 방어구를 떼어 내고 해당 부위에 다른 부품을 덧대는 작업이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준비됐어요. 뭐 해야 하죠? 딴생각하느라 못 들어서.”
“당연히 제 백업이죠.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파트너가 돌아왔는데도?”
주리는 준우 쪽을 눈짓했다. 다른 헌터들 사이에서 홀로 유리된 채 하늘만 올려다보고 있는 그 익숙한 옆얼굴을 보며 보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정확한 사정을 모르거든요. 그때까진 보류해야죠. 내 파트너 하기 싫어요?”
주리는 피식 웃고 보현과 주먹을 한 번 부딪쳤다. 게이트로 넘어온 헌터들이 충분한 보급품을 챙겨 온 덕분에 다 망가진 전투복이나 깨진 선글라스를 비롯한 기타 장비들을 새로 교체할 수 있었다. 헌터들의 준비가 끝날 때까지 균열 위를 올려다보고 있던 준우가 신호했다. 그에게 보이는 균열 외부에서는 여왕의 본체가 느릿하게 신체를 웅크리기 시작했다.
“첫 번째 신호야. 이동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