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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221화 (222/260)

221화

101동 창문에 걸려 있던 생존자 표식이 생각보다 많았다. 멀지 않은 곳에서 아이들 울음소리가 들린다. 지호는 망설임 없이 주리가 부수고 나온 층으로 뛰어들었다. 방어 설비 때문에 외벽으로 직접 진입하는 건 어려웠다. 불가능하진 않았지만, 가뜩이나 남은 이들이 살아남기 어려워진 건물에 구멍을 숭숭 뚫어 괴물들의 침입을 용이하게 만드는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김 반장의 보조로 지호의 뒤를 잡으려던 괴물이 벽에 부딪쳤다. 지호는 곧장 뒤돌려 차기 하며 괴물의 머리를 아예 벽에 박아 버린 뒤 뒤를 향해 엄지를 올렸다.

실내는 아비규환이었다.

다행히 일 층으로 진입해 온 괴물의 수는 한정적이었고, 밀고 들어오던 놈들은 어느새 목적을 잃고 저들끼리 물고 뜯으며 싸우느라 팔 층 부근까지만 올라와 있었다. 지호는 현관문을 걷어차며 육 층 복도로 뛰어들었다가 위아래에서 동시에 자신을 향해 고갤 돌리는 걸 보며 험악한 미소를 지었다.

“안녕, 친구들?”

놈들 중에 지호의 힘을 느낄 줄 아는 것들은 뒷걸음질 치며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방향이 나쁘다. 개중에 힘의 우위도 알지 못하며 지호 쪽으로 달려드는 놈이 있어 놈의 아가리를 그대로 찢어 버린 지호는 피를 흠뻑 뒤집어쓴 채 입에 들어온 것을 퉤퉤 뱉었다.

감지 파장을 펼치자 위층에서 익숙한 감각이 포착됐다. 하나와 다은의 기운이었다. 세진이야 신체 계열에 정신계 능력자니 느껴질 턱이 없다. 지호는 아래로 도망치는 것들은 신경 쓰지 않고 위쪽 계단을 나는 것처럼 뛰어올랐다. 아이 울음소리가 가까워졌다.

팔 층 문이 퍽 소리와 함께 찌그러졌다. 괴물의 팔을 뜯어내 그걸 물어뜯던 승환과 눈이 마주친 지호는 잠시 생각을 멈추었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승환의 뒤쪽으로 아이들이 보였다. 벌벌 떨며 서로를 끌어안고 있는 둘. 얼굴이 닮았다. 오빠로 보이는 아이가 자기보다 머리통 하나쯤 작은 아이를 꼭 끌어안고 있는 것이 기특하고 짠했다.

“왜 여기…….”

“애들이 있더라고.”

승환은 입에 우물거리던 살점을 마저 삼킨 뒤 짧게 답했다. 처음 만났을 때 어눌하고 서툴던 대화가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세련된 말투였다. 추측대로 오래도록 혼자였기에 사람과 나누는 이야기가 익숙지 않았던 것뿐인지, 마주칠 때마다 승환은 점점 더 멀쩡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과연 반가운 일일까? 지호는 위에서 감지되는 몇 마리의 흔적을 느끼며 다시 계단 난간을 짚었다.

“도와줘서 고마워. 그 애들 좀 챙겨 줄래?”

“네가 데려가. 나를 무서워해.”

아이가 지호 쪽으로 애타게 시선을 보내고 있기는 했다. 헌터 복장 때문일 것이다. 사실 승환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몸인데.

지호는 승환의 꼬리가 바닥에 축 늘어진 것을 보며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얘들아, 올라가자.”

아이들의 걸음을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지호는 염동력으로 아이 둘을 확 잡아당겨 제 품으로 받아 냈다. 싸워야 하는 상황이 있을 수 있기에 지호는 아이들에게 당부했다.

“바짝 붙어서 따라와. 그럴 수 있지?”

급작스럽게 가해진 힘 때문에 놀라 딸꾹질하면서도 아이는 그러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동생의 손을 꼭 잡은 남자아이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어 준 지호는 다시 계단을 올랐다.

지호의 힘이 멀어지자 아래층으로 따라 올라오는 것들의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뒤에 남은 승환이 놈들을 막아 줄 것이다. 말하진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삼 층을 뛰어오른 지호는 아이들에게 멈추라는 수신호를 보내며 자세를 낮췄다. 신다은 헌터가 고함치고 있었다.

“다친 사람 부축해서 올라가야죠!”

“어, 어떻게 그래. 나도 다쳤어!”

“이 사람 데리고 올라가야 우리가, 악!”

다수의 발소리와 인기척. 괴물이 포효하는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지호 역시 반 층을 붕 뛰어올라 놈들의 뒤를 잡았다. 방벽을 친 채 버티고 있던 다은과 눈이 마주쳤다. 나머지 둘은 어디에 있지? 생존자들이 서로 올라가겠다고 계단참을 채우고 있어 다은이 뒤를 막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마 선두에 다른 헌터들이 있을 터였다. 상황 판단을 빠르게 끝낸 지호는 뒤에 주의를 기울일 줄 모르는 괴물의 목을 쳤다. 머리통과 깔끔하게 분리된 머리가 방벽에 부딪쳤다가 도로 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아이들이 비명을 질렀다. 지호는 아차 싶어 쓰러지려는 괴물의 몸을 그대로 벽 쪽으로 밀었다. 사태는 더 나빠졌다. 그대로 넘어지기만 했을 괴물의 몸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갔다.

“지호 씨!”

“지원이 늦었어요. 괜찮아요?”

“아직은요!”

뒤에 남은 아이들을 양손으로 들어 허리춤에 낀 지호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비행형 괴물의 수가 적다. 주리가 그랬던 것처럼 건물 외부로 나가는 편이 좋아 보였다.

“좀 더 버틸 수 있겠어요?”

“예?”

“애들을 안전한 데 두고 오려고요. 지금 더 올라갈 수도 없는 것 같은데.”

“세진이가 올라가서 상황 보겠다고 했는데……. 맨 위에 강하나 헌터가 있거든요. 부상자 때문에 속도가 안 나요. 혹시 이주리 헌터 봤어요? 생존자 소리 때문에 계단 따라오다 방향 틀었는데.”

“밖으로 탈출했어요. 신다은 헌터 날 줄은 모르죠?”

다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방벽을 유지하던 힘을 거두었다. 사람들 사이에 짧은 소란이 일었으나 그는 냉정하고 단호하게 뒤에 선 자들을 노려보았다.

“이 부상자 챙겨요. 다릴 다쳤잖아요. 거기 아저씨들, 빨리.”

“헌터가 있는데 왜 우리가…….”

“그럼 이 사람 챙겨서 밖으로 빠질까?”

생존자들은 눈치를 살피며 부상자를 옆에서 부축했다. 툴툴거리는 소리가 들렸으나 들어 줄 필요는 없었다. 지호 덕분에 아래에서 올라오는 괴물이 없어졌다고 생각한 다은은 계단참의 창을 통해 밖을 내다보았다.

“밖으로 나간다 해도 외부에서 아파트로 들어갈 순 없지 않아요?”

“언니네 집 창가로 드나들 수 있어요. 잠깐 정도는 쉴 수 있을 거예요. 아래에서 싸우고 있는 다른…….”

지호는 의도적으로 말끝을 흐렸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괴물이라고 말하면 사람들이 겁에 질릴 것이고, 다은 역시 긴장하여 편히 쉬기 어려울 터.

“시간이 없어요.”

다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창문을 열었다. 성인 한 사람이 지나가기엔 좀 부담스러운 창이라 몸을 웅크려야 하지만, 날아다닐 줄 아는 사람에게는 그렇게까지 좁은 통로는 아니었다. 지호는 자기가 먼저 빠져나온 다음 아이들을 허공에 띄워 김 반장이 있는 쪽으로 날아갔다. 지윤은 지호의 꼴을 보고 질색하며 손짓했다.

“그거 다 누구 피예요!”

“남의 거요. 애들 좀 챙겨 줘요!”

지호는 아이들을 안전히 다른 헌터들에게 인계한 뒤 휙 몸을 돌렸다. 이런 식으로 몇 번 왕복하면 사람들을 다 나를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는데, 버티는 헌터들의 한계가 어디까지일지 알 수가 없다. 조금이나마 기운을 회복한 보현이 따라붙었다.

“수가 많아요?”

“사람은요!”

아래층에서 영역 다툼을 하느라 서로 공격하며 싸우는 괴물이 다수 보였다. 특정 괴물의 영향력 아래에서 벗어난 놈들이니 본래 그래야 하는 것처럼 움직일 터.

지호는 보현에게 염려하는 시선을 던졌다. 여전히 창백했고, 지호와 달리 체력적으로도 한계에 도달했을 것이 분명한 사람이다.

“차라리 총 지휘를 맡아 줘요.”

“지금 시점에서 그게 뭐가 중요해요? 다른 곳이 뚫리면 여길 제일 먼저 포기하겠죠. 그 전에 사람들을 구하는 게 좋지 않겠어요?”

보현은 명쾌하게 상황을 정리한 뒤 서둘러 움직이자며 같은 층의 옆 건물로 날아갔다. 다은 역시 전투보다는 휴식이 필요할 것 같은 보현을 보며 당황했지만, 극단적인 상황에서 몇 번쯤 살아남은 경험 있는 헌터답게 다른 제안을 건네지는 않았다. 다은은 현장 상황을 짧게 전달했다.

“위쪽을 확인해 주시겠어요? 아니면 사람들을 옮겨 주실래요?”

“지금 제가 전투 상황에 썩 도움이 될 것 같진 않네요. 사람들을 옮기죠.”

보현은 염동력으로는 최상위권 능력자에 속하는 헌터였고, 적은 힘을 효율적으로 배분할 줄 아는 노련한 1세대 헌터다. 정말 최소한의 힘을 가해 사람들을 운반하기 시작한 까닭에 대다수가 겁에 질려 소란을 피웠다. 보현은 그들의 요청을 일축했다.

“시체 흉내나 내며 얌전히 늘어져 있어요. 안 그러면 싱싱한 먹이를 노리는 괴물 새끼들의 사냥이 시작될 테니까. 그럼 혹시 제가 실수해서 여러분을 떨어뜨릴지도 모르죠. 아마 버둥거리는 사람은 분명히 놓칠 것 같은데요.”

지호는 뜨악한 얼굴로 보현을 바라보았다. 물론 보현은 그 이상의 친절을 발휘하지 않고 대뜸 아래층의 생존자를 잡아챘다. 다른 이들이 부축하고 있는 부상자였다. 지호가 구해 온 남매도 보이지 않는 힘에 잡혀 달랑달랑 떠올랐다.

“한 명 한 명 상황 못 봐줍니다. 부상자와 아이를 우선하죠. 지호 씨, 외부에서 엄호해 줘요.”

지호가 생각한 방법은 생존자를 하나 혹은 둘, 가능하면 그 이상 들고 보현의 집 쪽으로 날아가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보현은 보다 효율적인 방법으로 상황을 해결했고, 덕분에 지호는 공중의 먹잇감을 낚아채러 달려드는 놈들과 육박전을 벌여야 했다. 다은은 질린 얼굴로 한때의 전설이 보이는 행보에서 눈을 뗐다. 과격하긴 하지만, 확실히 다수를 살릴 수 있는 방식이긴 할 터였다.

아래층 사람들의 수가 줄고 심지어는 아래로 탈출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자 계단마다 갑갑하게 끼어 있던 사람들이 도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다은은 이번에는 괴물이 아니라 사람을 막아 내며 짜증 냈다.

“아래엔 괴물들이 있다고요. 작작 내려와!”

멈추는 사람은 소수이며 밀고 내려오는 이들은 다수다. 그나마 생존자 수가 그렇게 많지 않아 다행이었다.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 끝에 보현과 지호, 그리고 다은은 계단을 채우고 있던 사람들을 생각보다 많이 구조했다. 백여 명에 가까운 숫자다.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들이 도망쳐 들어와 그럴 터. 사람들이 집에 머물고 있을 시간이 아니라 직장에 더 많이 나가 있을 때 균열이 열려 천만다행이었다. 홀로 괴물을 막느라 탈진 상태인 다은까지 다른 건물로 넘겨 보낸 뒤에야 지호는 보현에게로 합류할 수 있었다. 전투태세로 아래층을 경계하던 보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질문했다.

“괴물이 올라오질 않네? 뚫렸다고 하지 않았어요?”

“아래에서 막고 있는 친구가 있어서요.”

“친구?”

보현의 얼굴이 굳어졌다. 지호는 그의 눈치를 살피다 설명했다.

“아까 헤어졌던 그 전직 헌터 말고요.”

“지호 씨는 그 새끼 살아 있는 거 알고 있었죠?”

여태 진실을 말하지 않는 방식의 거짓으로 오랫동안 보현을 기만한 것과 다름없던 지호는 고개를 푹 숙였다. 보현은 11층 계단참 창문을 도로 걸어 잠그며 차가운 시선을 보냈다.

“여기 사람들 구조하고 나서 이야기해요. 지랄맞게 전파도 안 터지네. 전기는 언제쯤 들어오는 건지……. 어, 그 녀석이 아니면 아래층에 있는 건 누구죠? 도플갱어?”

지호는 설명했다. 승찬의 동생인, 그리고 어린아이인 괴물이 아래에서 싸우고 있을 거란 말을 들은 보현은 짧게 신음하며 이마를 긁적였다.

“복잡하네. 왜 우릴 돕는 거죠?”

“아이들을 구했더라고요.”

지호가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보현 역시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괴물을 사람으로 인정하기 어렵단 생각이 여전히 마음속에서 충돌했기에 보현은 혀를 차며 위층으로 향했다.

“일단 닥친 것부터 해결하고 생각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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