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화
20. 이면들
임시 캠프 거처가 편할 턱이 없다. 심지어 피를 수차례 뽑히고 세포 체취를 수시로 당하는 상황은 더더욱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치료기에 누운 채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던 지호는 작게 중얼거렸다.
“제가 언제 괴물이 되어서 날뛸지 모른다고들 생각하는 건가요? 꼭 한두 분씩 옆에 계시네.”
“그냥 상태 점검하는 거다.”
덕팔은 코웃음 치며 지호의 오른손에 붙은 전도계 하나를 옮겨 붙였다. 차가운 감각이 다소 멀게 느껴진다.
“두 분이 올 줄은 몰랐는데요. 와도 서명은 장인님일 줄 알고.”
“우리가 온 게 불만이냐?”
“아니 뭐. 그렇단 건 아니고요.”
덕팔과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싸웠던 사이다. 부평에 균열이 열렸을 때나 조금 협조했었지, 아마 지금도 한 소리 하고 싶어 이쪽 상황을 살피는 것이 분명하다.
선경은 계측기에 나타나는 수치들을 확인하며 안경을 한 번 밀어 올렸다. 그래도 그가 함께 있는 덕분에 예전처럼 덕팔과 다툴 상황까지 가지는 않을 것이다.
“이형 에너지가 평균보다 높게 관측되네. 균열 밖에서 제대로 된 검사를 받아야 할 것 같은데.”
“문제가 될까요? 어떤, 다른 부작용이라든가…….”
“균열에서 신체 재생을 시도하면 신체 괴변이 사태가 일어나는 건 암암리에들 알고 있었을 거다. 상황상 궁지에 몰려 다들 시도할 수밖에 없었을 거고. 보통 그 정도 하면 괴물한테 죽거나 회생 불가능한 상태가 되지. 외부였으면 이렇게 변하지는 않았을 거야.”
덕팔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또 몸을 소중히 하지 않았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 좀이 쑤시는 얼굴이다. 그러나 선경은 무미건조하게 지호가 맞닥뜨린 상황에 관한 이야기를 읊었다.
“거기서 네가 싸우지 않았다면 김동주나 이주원 둘 중 하나는 다치거나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을 거다.”
“두 사람은 어떻게 됐어요?”
“김동주는 격리 중이고 이주원은 도주했다. 이동 능력자를 포획할 도구가 마땅치 않았던 모양이지.”
침상에 닿은 오른손이 서늘한 느낌이다. 몸의 다른 부분보다 유독 온도가 낮다고 했다. 뜨끈한 욕탕에 몸을 담근 채 오른손만 찬물 담은 바가지에 넣고 참방거리는 느낌이다.
“제자분들 말고 두 분이 여기까지 오신 이유는 뭐예요?”
“네 상태에 관해 사방팔방 소문이 퍼져 나가게 할 순 없잖아. 이왕 해야 할 일이니 경험 많은 사람들이 오는 게 좋지.”
덕팔은 퉁명스럽게 이야기하며 다른 상처가 아물어 가는 것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괴물의 것으로 변한 오른손을 제외하고 다른 부분은 여느 신체와 다름없이 동작했다. 지호는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둘의 설명에 따르자면 당연한 일은 아닌 모양이었다.
“신체 괴변이 현상을 겪는 헌터들 중엔 자기가 괴물이 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스스로를 공격하는 사람 수가 제일 많아. 나머지는 멀쩡하거나 멀쩡해 보이는데, 부천 실험실에 자원해서 자기를 써 달라고들 했지. 다른 연구실엔 사후에 해부를 원한다며 신체 기증서를 가져온 사람도 있었고.”
“어째서 그렇게까지…….”
“괴변이 현상이 일어난 신체는 점점 몸을 좀먹기 시작해. 다른 부분을 타고 올라와 그를 완전히 괴물로 만들 때까지 멈추지 않지. 사실 신체 계열 능력자가 이렇게 변했던 적이 없어서 네 경우가 처음에 가까워. 관찰할 수 있는 처음이라고 해야겠지만.”
모두가 괴물과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기에 신체가 인간의 것이 아니게 된 자들이 절망하는 건 당연할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스러지게 내버려 두는 것이 옳은 일이었을까. 수뇌부에서 정보를 틀어막고 있다는 사실이 오늘처럼 야속할 수가 없었다. 지호는 한 번 거를 것도 없이 떠오르는 대로 말해 버렸다.
“그렇게라도 해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던 거겠죠?”
“그걸 이해한다느니 하는 헛소리 지껄일 생각 마라.”
“그런 걸 이해하면 제가 무슨 마더 테레사고 신의 현신이게요. 그런 선택을 하기까지 괴로웠을 사람들이 생각나서. 혹여 그런 사고가 나더라도 다른 사람들은 그러지 않기를 바라는데 그러려면 정부의 협조가 필요하겠네요.”
덕팔은 물끄러미 지호를 내려다보다가 그의 이마에 차가운 젤을 쭉 짰다. 으악 하며 눈을 감은 지호는 이마에 척 소리와 함께 붙는 몇 개의 전극을 느끼며 짜증 냈다.
“말 좀 하고 해요!”
“너야말로 예고 좀 하고 기특한 소리 해라. 금 박사님께서 따로 불러서 이야기했단 말은 들었었는데, 확실히 헌터들이 갖는 그 기이한 이타심과 관련이 없지는 않을 거야.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묻고 싶어도 물을 자들이 남아 있지 않고.”
“나중에 그런 생각을 할 맘이 들면 무슨 기분이었는지 기록이라도 해 놔야겠네요.”
“잘 가다 왜 삼천포로 빠지고 그러냐.”
덕팔은 화면에 뜨는 신호를 체크하던 선경의 지시에 따라 치료기로 들어가는 에너지를 조정했다. 처음에는 손목 아래로만 괴물의 손이었는데, 이제 그 경계면을 침식하며 이형 에너지가 역류하고 있던 까닭에 다들 비상사태였다. 지호만이 초연했다.
“이렇게 손부터 시작해서 팔이며 머리며 전신이 괴물처럼 변하고 나면 저는 더 이상 제가 아닌 뭔가가 되나요? 괴물 취급받게 되겠죠? 균열 실종자들이 그러는 것처럼?”
덕팔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불편해하는 것을 느낀 지호는 녹색 투명한 치료기 유리 덮개를 오른손으로 문지르며 말을 돌렸다. 부옇던 밖이 조금 선명하게 보였다.
“각성자들은요. 나이를 느리게 먹잖아요. 꼭 각성하던 그 당시에 시간이 멈춘 사람들처럼.”
아직 대균열 이후로 십 년밖에 지나지 않았다. 그사이 자연사한 사람이 없고, 나이를 먹을 대로 먹은 표본 역시 없다. 덕팔은 뭐 새삼스럽게 그런 걸 묻냐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호는 자기 손을 보며 이것과 똑 닮은 것들을 오랫동안 사냥해 온 어린아이를 생각했다.
“만약에. 만약에요. 어린애가 균열 저쪽에 혼자 뚝 떨어졌다고 생각해 봐요. 운이 좋게 먹을 것도 확보할 수 있는 곳이고 괴물에게도 당하지 않았다고 가정해 보자고요.”
“가상의 어린이를 구하기 위해서 위험을 무릅쓰자는 말을 꺼내려는 건 아닐 테고.”
“균열에 오래 있으면 몸이 약해지잖아요. 그래서 유선경 씨가 각성자들을 위해 그런 발명품을 내놓은 거잖아요. 조금이라도 더 버티라고.”
사실상 균열에서 괴물이 되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은 사라져 버렸을 충분한 시간이 흘렀다. 지호의 증언대로라면 죽지 않은 자들은 사라져야 하고, 사라지지 않은 자들은 괴물이 돼야 했다. 즉, 헌터들을 굳이 위험 지역에 파견해 가면서까지 구하러 가야 할 ‘사람’은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에. 아주 만약에요. 다른 이를 위해 몸을 던지는 종류의 각성 말고도 다른 방식으로 생존하는 방법이 있다고 하면. 그러니까, 균열과 이형 에너지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어도. 아무튼, 그런 것들 때문에 모습이 변하게 되어 괴물 된 사람들이 있다고 하면요.”
“순전히 가정뿐이잖냐.”
“가정 좀 해 볼 수 있잖아요. 안 돼요? 돈 내고 추측해야 하나? 저 돈 많아요. 알죠? 저만큼 순도 높은 마정석 추출할 수 있는 사람도 별로 없다던데.”
지호는 키득키득 웃으며 손을 내렸다. 평범하지 않은 손자국이 남았다. 이제는 익숙해져야 할 모양으로.
“각성자들과 노화에 관한 연구는 아직 진행되지 않았잖아요. 처음에 저는 그냥, 천천히 늙는다든지 뭐 그런 거라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런데 보면 다들 십 년 전이랑 완전 똑같지 않아요? 그냥 그 상태로 박제되어 버린 것처럼…….”
“십 년은 더 지나 봐야 알 수 있는 문제겠지.”
“그렇죠. 어른들은, 적어도 어느 정도 판단할 수 있는 나이의 청소년까지도 그렇게까지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아요. 그런데 아이가 있다면요. 어린애가, 보호자 잃은 어린애가 사회에서 유리되어 홀로 몇 년을 지내야 한다고 하면요. 대화할 사람도 얼마 없고, 할 수 있는 지적 활동조차 없어 말을 잃고 동물처럼 변해 버릴까요?”
덕팔의 눈이 가늘어졌다. 지호가 하는 말이 예시가 아님을 깨달은 것이다. 균열 속, 괴물들의 세상에 다녀온 헌터의 이야기다.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선경은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모글리만큼 인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는 없겠지. 아무튼, 인간으로 커 온 시기를 완전히 잊지는 않을 테니까.”
“뭐라도 먹어 가면서, 그러니까 정말 아무거라도. 괴물이라도 먹어 가면서 살아는 있다면요. 인간으로서 가졌던 이지와 사회적 자아 같은 것들이 얼마나 빠르게 사라질 것 같아요?”
“알 수 없다. 그런 경우를 본 적이 없으니까.”
선경의 단호한 대답을 들은 지호의 시선이 슬그머니 덕팔을 향했다.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자기 의견을 내어놓았다.
“적어도 느리진 않을 것 같은데. 그런 스트레스 가득한 환경에 홀로 던져진 어린애라니, 생각하기도 싫다.”
덕팔은 이전에 지호의 상황 앞에서도 화냈던 사람이다. 각성하며 누군가를 잃어 본 사람이기에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질 수 없는 사람이기도 했을 터였다.
추측만으로 괴로워 보이는 덕팔을 흘깃 본 지호는 이 곰 같은 각성자 괴롭히기를 그만두기로 했다. 타인에게 고민을 전가해 봐야 나아지는 것은 없다. 걱정하고 염려한다고 승환이 겪었던 외로운 시기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어린 실종자도 있더라고요. 제대로 이야기해 봐야 알겠지만요.”
“거기 있는 그, 괴물 된 실종자들 말이야. 대화 제대로 못 해 봤다고 했잖냐.”
“두 분은 균열 너머에 혹시 살아 있을까 싶은, 그러니까 기다리는 사람 있어요?”
“질문이 좀 이상한데.”
“회의 마치고 나서 다들 혹시나 하는 얼굴로, 대답을 듣고 싶으면서도 절대 궁금하지 않다는 이상한 얼굴로 와서 물어보거든요. 이런 사람이 있었던 것 같으냐고. 혹시 그런 사람 본 적 있냐고. 저런 사람과 예전에 생이별했는데 거기에 있더냐고.”
실종자 가족을 가진 사람들 중 대다수는 그들이 차라리 죽었으면 한다고 했다.
생존 소식보다는 시신을 기다리는 사람들. 생선처럼 죽은 눈을 마주하기 어려웠다. 지호의 상태가 상태인지라 오래 머무를 수 없는데도 다들 부지런히 오갔다. 본부를 드나들 수 있는 사람들조차 그렇다. 외부에 있는 사람들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선경은 약품 가득한 냉장고에서 뭔지 모를 것들을 꺼내 배합해 지호의 오른손에 도포했다. 감각이 무뎌지며 손이 남의 것처럼 느껴졌다. 마취제의 일종인 모양이었다.
“다행히 내 가족은 균열에 휘말렸을 때 괴물에게 찢겨 죽었지. 기다릴 자가 없는 것이 때로는 고마울 때도 있구나.”
꺼내고 싶지 않은 화제였던 모양인지 선경은 한숨과 함께 편히 쉬라며 자리를 떠났다. 지호를 돌보는 일 외에도 할 일이 많은 사람이었다. 문을 열기 무섭게 기다리고 있던 제자가 황급히 다가와 선경에게 무언가를 전달했다. 연기 섞인 구슬 비에 관한 언급이 두런두런 들려오다가 문이 닫히자 곧 멀어져 들리지 않게 되었다.
선경이 떠나기 무섭게 치료실 부근을 얼쩡거리는 자들이 늘었다. 덕팔은 그쪽을 사납게 노려보며 인상 썼다.
“내게 기다릴 실종자 가족이 있다 해도 네 책임은 아니다. 당연한 일이지. 너를 우선해.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자기 가족이 그리우니 뭐니, 누굴 찾아 달라니 마니 하고 매달려도 그깟 것들 알게 뭐냐. 여태 능력도 기회도 운도 없어서 그럴 수 없었던 자들이야. 혹은 다 있었어도 용기가 없던 사람도 있었을 수 있지.”
덕팔은 나직이 욕을 섞으며 치료실 밖 유리 앞을 몇 번씩 지나치고 있는 자들을 노려보았다. 실종자를 기다리는 사람들일 것이다. 덕팔이 나가면 또 지호를 귀찮게 하겠지.
그는 합리적인 사람이었다. 일부러 치료기 세기를 낮춘 덕팔은 괴물에게도 들을 거라며 금 박사가 챙겨 준 시퍼런 주사제를 꺼냈다. 지호는 기겁했다.
“아니, 그거 어디서 났어요?”
“금유빈 박사가 너한테 쓰라고 줬다. 시제품이긴 한데 괜찮을 거라던데.”
“안 맞아도 돼요. 사실 아픈 것도 아니잖아요. 그냥 손만 좀 모양이 변한 거고…….”
“맞고 한숨 자라고 놔 주는 거야. 너 자는데 와서 흔들어 깨울 쓰레기들까진 없어 보이니까.”
금 박사의 발명품이 지호를 괴롭게 하는 데 일조하긴 했지만, 약물 자체에 죄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물며 그를 위한 선한 의도들 역시도.
그러나 내키지 않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지호는 그가 균열에서 겪었던 일들을 다 털어놓는 대신, 조그맣게 속삭였다.
“아저씨는 각성자 연합 사람이잖아요. 협회랑 긴밀하게 막 뭐를 하고 자료를 교환하고 그래요?”
“헌터들 정보를 제공받아. 전투 자료 같은 것들을 특히 받지. 현장에 필요할 만한 걸 제작하고 가공하는 게 우리 일이니까. 겁쟁이라 도망친 나 대신 용감하게 싸우는 헌터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란 건 그런 것들뿐이거든.”
“그, 협회 말고 다른 각성자들 모임 같은 데랑도 교류하나요? 부평 각성자 모임이 유독 그, 발명이라든가 제작에 특화된 건 알고 있어요. 다른 모임들도 있는데 거기는 봉사 활동이나 의료 활동이나 구조 봉사 같은 거 하잖아요.”
“우리가 그쪽에 크게 도움 줄 일이 없긴 하지만……. 헌터 일은 하지 않겠다고 한 각성자여도 우리 도구가 필요한 일이 있기는 하니까. 참, 신형 전투복에 새로 추가된 기능들 이것저것 있다. 설명서 볼 마음 없으면 이것저것 만져 보고 해 봐. 선글라스로 바로 방송 송출할 수 있는 기능도 있고…….”
“혹시 실종자 가족으로 이루어진 각성자 연합 같은 게 있어서, 다른 곳에서 온 정보를 빼다가 못된 음모에 여력을 집중하고 있으면 어떨 것 같아요? 예를 들면 균열을 연다든가…….”
지호가 맞고 있던 수액에 금 박사의 주사제를 천천히 밀어 넣던 덕팔의 손이 멈추었다.
“최근에 균열이 이상할 정도로 많이 열리긴 했었지.”
“양배추 운송 연합이라고 아세요?”
“어. 알긴 하지. 수도권 위주로 활동하는 그룹인데 이것저것 다 하는 팀이야. 머릿수도 많고. 지금이야 정말 온갖 일을 다 맡는다고 들었다만, 처음에는 농업인 출신 이동 능력자들 위주로 꾸려진 팀이라 운송업 한답시고 이름을 그따위로 붙였을 거다. 최근에는 여기저기 각성자 파견하는 일을 하는 걸로 아는데.”
“각성자 파견이요? 헌터 아닌 일반 각성자들 말하는 거죠? 이것저것 조사하고 있는데, 거기가 생각보다 많이 수상하더라고요. 지금 아저씨 말처럼 사방에 인력 파견하는 일까지 겸하고 있으면 더더욱 여기저기서 정보를 끌어모으기 좋겠어요.”
덕팔의 얼굴이 조금씩 일그러졌다. 지호가 한 말처럼 균열을 열려는 모종의 집단이 있다고 하면. 협회뿐 아니라 다른 연합들, 그리고 민간 사방에 인력을 보내는 전양련이 수상쩍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대부분 다른 곳에서 인력을 요청하는 거라 대놓고 원하는 곳에 잠입해서 정보를 빼 오고 하긴 어려울 텐데.”
“헌터 협회를 비롯한 사방 온 곳이 다 만성적인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잖아요.”
파란 액체가 똑똑 떨어지며 몸이 나른해진다. 지호는 천천히 눈을 감으며 중얼거렸다.
“누굴 믿어야 할지 모르겠는데, 누굴 의심해야 할지는 너무 명확해요. 저 외의 다른 모든 사람이죠. 하지만 그렇게 날 선 상태로 모두를 대하고 싶지는 않아요. 아저씨는 좀 덜 수상하고, 그나마 좀 인간적이고, 저를 평범한 어린애로 대하는 몇 안 되는 사람 중에 하나니까 의논해 봤어요. 물어본 건 비밀이에요…….”
입 속으로 말을 중얼거리던 지호가 조용해졌다. 고른 숨소리. 덕팔은 한숨과 함께 얼굴을 쓸어내렸다. 마음 같아서는 위험한 일에 뛰어들어 음모 같은 거 파헤치지 말고 가서 당분 가득한 케이크나 먹고 따뜻한 차 한잔하며 마음 편히 늘어져도 괜찮다고 말해 주고 싶다.
그러나 한때 그저 임보현의 피보호자일 뿐이었던 작은 각성자는 더 이상 없다. 여기에는 고된 임무를 마치고 돌아와 약물에 의존해야만 잠들 수 있게 된 헌터 한 사람이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