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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174화 (175/260)

174화

균열 안정기가 도래했으나 지호는 균열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그걸 반대하는 자들이 너무 많은 까닭이었다. 유독 감정적인 성 팀장이 지호의 오른손을 보자마자 왈칵 울음을 터뜨리며 그를 끌어안고 나자, 사태는 더더욱 아닌 쪽으로 흘러갔다.

화상 통화 상태로 윗사람들 회의에 참석한 지호는 그가 만난 뱀 괴물들에 관해 보고했다. 준우에 관한 이야기는 제외하고, 일전에 균열 너머에서 만난 의식 멀쩡한 실종자 이야기를 꺼냈다. 승환 이야기였다.

“아이가 거기 오래 살아남은 채로 이형 에너지에 의해 변해 괴물이 되었는데 의식은 남아 있더군요. 일전에 균열 넘어갔을 때도 도움을 받았고, 이번에 뱀 닮은 괴물을 잡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놈에게 부여된 이름은 메두사고, 정신 계통 공격에 약하다는 걸 제외하면 마땅한 약점이 없어 상대하기 어렵던 적이기도 하죠. 심지어 무리를 이루어 움직이니 더 그랬습니다.

“메두사요? 음, 사람 생각하는 거 다 비슷하네요. 제가 관찰한 바에 의하면 놈들은 대형종을 탈 것 삼아 함께 다닙니다. 지구력이 낮지만 순간 속도가 엄청나고 말씀하신 것처럼 군집 생활을 하죠. 다른 괴물들과 달리 여왕이라는 특정 고위 개체의 명령을 받아 움직이는데, 단순히 명령받아 움직이는 것 외에도 세뇌당한 개체로서 숙주가 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코드 레드 원처럼 말인가?

화면 저편에서 신경질적으로 손을 까딱인 남선일 사령관은 같은 화면의 금 박사에게 무어라고 이야기를 건넸다. 마이크를 끄고 하는 대화라 들리지는 않지만, 입 모양은 읽을 수 있다. 이야기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질문이다.

다들 그렇다. 지호의 손이 변한 걸 본 뒤에도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다른 헌터들이 다소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과는 차별화된 모습.

지호는 눈을 가늘게 떴다. 금 박사의 발명품이니 뭐니 하며 괴물을 마비시키는 약물이 나왔을 때부터 어느 정도는 추측하고 있었다. 이 사람들, 각성자가 어디에 기원을 두고 있는지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호위대라 불리는 메두사의 몸을 타고 모습을 드러낸 여왕은 행동하거나 입을 열어 말하는 것만으로 그가 숙주 삼은 개체의 몸을 망가트렸습니다. 오래 나타날 수는 없어 보였지만, 충분히 강한 괴물이 있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닐 것 같더군요.”

-대원을 도운 아이는?

“헌터들이 접근하는 것을 보고 자리를 피했습니다. 그 애가 다른 괴물들과 같았다면 제가 손뿐만 아니라 몸 전체가 먹히도록 내버려 뒀을 텐데 그러지 않고 절 구했습니다. 정신 계통 공격에 준하는 자연현상에도 크게 영향받지 않는 것을 보니 정신 방벽도 일정 수준 가진 것으로 보였고요.”

-포섭할 방법은 없나?

“그러기 위해서는 한 가지 질문이 선행되어야 하지 않습니까? 제가 이 균열에 들어오기 전에 이미 질문드렸던 거로 기억하는데요. 괴물로 변한 실종자들을 사람으로 인정해 주시는 건가요? 저는 바로 그 사람에게 도움을 받은 건데요. 그들을 여전히 괴물이라고 배척하면서 도움만 받겠다고 말씀하시는 건 아니시죠?”

불편한 침묵이 흘렀다. 금 박사가 자기 마이크를 켰다. 툭툭, 마이크를 두드린 그는 시선이 집중된 것을 확인한 뒤에야 입을 열었다.

-서울지부의 금유빈 박사입니다. 이지호 헌터, 솔직히, 알고 있을 것 같으니 터놓고 물어봅시다. 우리는 오랫동안 각성자들을 연구해 왔습니다. 그들이 무엇에 기원을 두고 있는지는 우리 모두 얼추 알게 되었죠. 양 솔 박사, 질문도 발언도 좀 나중에 해 주세요. 네, 괴물로부터 죽음에 이르렀다가 되살아난 사람들. 그들을 우리는 각성자라고 부르지 않습니까?

“각성자의 정의에 관해 논하고 싶으신 건 아니실 테고. 오랫동안 연구 중이셨다면 알아낸 좀 더 세부적인 정보가 있는데 그걸 정부에서 숨겨 왔다고 말씀하시려는 거겠죠?”

-대균열 이후로 우리는 많은 각성자를 만났고, 또 잃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알게 된 것들이 적지는 않죠. 이지호 헌터가 알게 되었듯이, 괴물 자체에서 비롯되기에 괴물과 다르지 않다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왜 제가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마정석을 사용하시는 장면이 드론에 잡혔습니다. 이주원 각성자가 부추겼겠죠? 그쪽에서 저희 정보를 빼냈으니 당연히 알고 있었을 테고. 일반적인 헌터가 떠올릴 생각은 아니죠. 마정석을 곧바로 힘으로 환원하여 쓸 수 없다는 인식을 만들기 위해 우리가 온갖 물품들에 어떤 멍청한 조치를 취해 놓았는지 보고 있잖습니까. 가루로 정제되어야 하며, 특정 장치로 에너지를 거르는 등등, 많았다고요.

CCTV까진 확인하기 어려워도 도시 곳곳의 상태를 파악하기에 소형 드론만큼 좋은 것이 더 없기는 하다. 지호는 그 사실을 부정할 생각이 없었다. 애초에 묻고자 했던 것을 자기 입으로 실토해 주니 차라리 편하게 질문할 수 있었다.

“우리도 이형 에너지를 쓰고, 괴물들도 그렇죠. 괴물에서 뽑아낸 힘 자체가 각성자의 힘이 될 수가 있다는 걸 다들 알고 있지 않을까요? 우리가 곧 괴물과 다를 바 없다는 사실도?”

-다는 모를 겁니다. 추측 단계에 있는 사람들이야 있을 수 있겠지만요.

“결국, 괴물과 차이 없는 우리가 무슨 자격으로 모습 변한 실종자들을 사람 아니라고 재단할 수 있습니까? 겉모습만 사람 모양을 갖추고 있으면 인간인가요? 그럼 저는 이제 오른손은 괴물이고 나머지 부분이 인간입니까? 아니면 이런 손을 갖고 있으니 더는 인간으로 분류되지 않나요?”

끄응, 신음하는 누군가의 음성이 마이크 너머로 흘러 들어온다. 금 박사는 곁의 상사 눈치를 살피며 헛기침했다.

-말씀하신 것처럼 그 사실을 밝히고 나면 실종자들을 구출할 수밖에 없게 되겠죠. 각성자들이나 헌터들이나 저기 저편에 고립된 사람들이나 모두 괴물이라고 분류해야 할 판이니, 차라리 그들을 전부 사람 취급하는 쪽이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참지 못한 양 박사가 목소리를 높였다. 안 꺼진 마이크를 통해 그의 음성이 둘 사이에 불쑥 끼어들었다.

-전혀 아닙니다. 애초에 우리가 각성자로 분류하는 건, 균열에 오래 살아남아 괴물 된 자들이 아니잖아요. 그렇게 모습이 변하는 자들이야말로 사람으로 보기 어렵다고요! 그 사람들은 괴물이고, 여러분은 각성자…….

-양 박사. 발언 시간은 나중에 따로 얻으십시오. 이지호 헌터. 솔직히 말씀드리죠. 우리는 보편적인 각성자와 괴물이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밝힐 생각이 없습니다. 이번 실종자 발견 건도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없으니 그들을 찾으러 나가는 논의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다는 걸 본인이 제일 잘 아시겠죠.

“위치는 찾으면 돼요. 승환이가 협조해 줄 거예요.”

-그 괴물을 만날 방법은 있습니까?

준우나 승환은 퀸 패러사이트 부근에 있을 것이다. 준우의 존재를 숨기는 것이 옳은 일이 아닐지 모르겠다. 이제는 오로지 보현을 위해서만은 아니다. 헌터였던 자가 그가 갖고 있던 유용한 정보들을 괴물 중에서도 위협적인 개체에게 통으로 넘기고 있다는 것 자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짐작할 수 없었다.

괴물과 헌터가 다르지 않다면, 준우의 행동이 인류를 배신하는 행동이 아니라 그저 괴물이 보일 행동 양상에 지나지 않는다면. 평범한 사람들은 어떻게 헌터를 믿어야 할까?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지호는 정부 사람들이 왜 이렇게까지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는지 이해했다.

“평범한 사람들을 위해 그렇게 하는 거군요.”

금 박사는 뜻밖이란 얼굴로 눈을 굴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예. 조태양 헌터와 김동주 반장의 보고로 특수반의 특수성에 관한 설명을 들으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헌터들은 한계에 몰려 있어요. 그들의 인식을 조작해 위태로운 상태에서 완전히 정신을 놓지 않게 통제하는 것만으로도 버겁습니다. 짐작하시다시피 이 회의는 공개되지 않을 겁니다. 저장조차 하지 않고 파기할 거고요. 혹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다른 헌터가 있을까 두려워 그렇습니다.

금 박사의 목소리는 절실하기까지 했다. 지호는 묵묵히 이야기를 들었다. 현실 인식을 조작하면서까지 헌터들을 버티게 해야 하는 이유야 당연히 짐작할 수 있다.

“그렇게라도 해야 헌터들이 버티니까. 그 헌터들만 보며 우리가 멀쩡히 살아갈 수 있으리라고 믿고 살아갈 사람들도 버티니까요.”

-정부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할 정도로 무너진 나라가 많습니다. 우린 운이 좋은 편이에요. 땅이 좁고 건물이 고층과 지하로 뻗은 경우가 많아 생존자가 적지 않았으니까요. 모두가 번아웃 상태지만, 쉬는 때는 죽을 때라는 생각으로 달려왔습니다. 이지호 헌터야 헌터가 된 지 일 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여기 있는 이들은 십 년을 버텼어요. 그 지옥 같은 날이 끝나지 않는다는 절망 속에서 십 년입니다.

표정이 밝은 사람이 없었다. 남선일 사령관보다 위이거나 혹은 그 선에 있을 사람들뿐인 화상 회의다. 하나같이 다크서클이 진하고 얼굴이 좋지 않았다. 단순히 컨디션만 그런 것이 아닐 것이다. 사회 전반을 지탱하는 무거운 비밀을 안고서, 이들은 매일을 절망 속에 허우적거리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실종자들을 기다리는 가족들의 수도 많긴 하지만…….”

-실종자들을 사망자로 생각하고 잊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사람들도 많고, 가족을 잃지 않은 운 좋은 이들도 많죠. 실종자 수색 운동에 동참하자고 소리 높이는 사람들이 없진 않습니다. 알아요. 하지만 우리는 더 많은 이들을 위해 움직여야 합니다. 더 많은 이들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각성자와 괴물이 같다는 점 따위는 밝혀져서는 안 돼요.

차라리 좀 더 비인간적이고 이기적인 이유가 튀어나왔다면 마음이 편했을 것이다.

그러나 선한 의도와 선한 의도가 부딪치자, 지호는 무엇이 더 옳은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 상황을 마주하곤 괴로워졌다. 지호보다 더 똑똑한 사람들도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내린 결론이 지금의 시스템이겠지.

“실종자들을 완전히 받아들이자고까진 저도 말하지 못하겠어요. 무슨 말씀인지 알겠고요. 하지만, 그들이 무작정 저쪽의 위험에 노출되게 내버려 두고 싶지는 않아요. 저기에서 자기들끼리 모여 어떻게든 살려고 발버둥 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들을 도울 여력까진 없습니다.

“그냥 내버려 두는 건 너무 잔인한 일이잖아요. 여기로 귀환시키자고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사람답게 살 수 있게 지원해 줄 수는 있지 않을까요? 그들에게 뭐 물자를 제공하고 이러자는 말이 아니에요. 우리에겐 기술이 있잖아요. 저기에서 원시 시대로 돌아가 괴물 살점 뜯어 먹고 살게 되어 버린 옛 친구들에게 제공해 줄 수 있는 게 뭔가 있을 거예요.”

금 박사는 곤란한 얼굴로 지호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턱을 쓰다듬었다. 다른 이가 마이크를 켰다.

-균열 저편의 좌표가 항상성을 띨 수 있다면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지. 이번에 대원과 소수 헌터의 도움을 받아 얻은 전국 양배추 운송 연합의 연구 자료에 따르자면,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좌표 고정이 가능해요?”

-하지만 대원.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다. 그 문을 이용할 수 있는 괴물이 있을 경우, 인류는 전대미문의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거지. 그 때문에 모두 해당 기술의 상용화를 반대해 왔다. 오늘까지는 그랬지.

차라리 사장시키는 쪽이 나을 거라는 목소리가 나왔다는 말을 누군가 거들었다. 지호는 참지 못하고 그의 말허리를 뚝 자르며 질문했다.

“어떻게 쓰일 수 있는 겁니까?”

-대원이 제안한 것처럼, 균열 실종자들을 위해 우리 기술을 쓰지. 흩어져 있는 이들을 모아 도시를 구축하고 건물을 제공하는 거야. 대신, 그들은 거기에서 이쪽으로 넘어오려는 괴물을 막아 주는 일을 하면 좋겠군. 가능하다면 말이야.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졌다. 누군가 마이크를 켰다. 그러자마자 모두가 다시 조용해진다. 낮고 허스키한 음성의 중년 여성이었다.

-분명히 말해 두겠는데, 아무도 이쪽으로 넘어올 수는 없네. 본인은 인간이라고 주장하는 괴물이 존재한다고 해도 말이지. 대신 그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약속은 할 수 있어.

“실종자들을 위한 도시를 균열 저편에 건설하는 건가요?”

-생각건대 그들 역시 자기 모습이 변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지 않겠나? 그러나 인간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것 자체도 포기하지 않겠지. 그러니 대원과 대화할 수 있었을 거야. 이곳으로 돌아오고자 하는 자와는 따로 대화와 설득의 시간을 가져야겠지. 필요하다면 우리 김동주 반장과 같은 친구의 강제적 도움이 필요할지도 모르겠어. 결과적으로 아무도 이곳으로 넘어온다는 선택을 해서는 안 되도록, 그렇게 결과를 정하고 질문을 던질걸세. 그렇게 해도 괜찮다면 이 계획을 진행하겠어.

선택처럼 보이지만 선택이 아니었다. 한쪽을 고를 수밖에 없는 질문이다. 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눈 한쪽이 의안인 사령관은 피로감 가득한 얼굴로도 미소를 지어 보이며 감사를 표했다.

-대원과 같이 상징적인 인물의 제안이 아니었다면 실행될 수 없는 안건이다. 감사를 표하지. 차후 모든 일이 정리될 때가 온다면 한번 봤으면 좋겠어.

“어, 감사합니다.”

외모가 중년의 것이니 실제 나이는 그보다 열 살은 더 들었을 것이다. 지호의 의견 수렴 시간은 끝났다. 양 박사는 불만스러운 얼굴로 앉아 있다가 카메라를 꺼 버렸고, 이후의 계획을 위한 논의가 시작됐다.

실종자들을 완전히 괴물 취급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지호의 마음에 얹어져 있던 돌이 조금 가벼워졌다. 정확히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는 의견들이 오갔으나 지호는 책임감 있게 의견들을 경청했다. 회의가 끝난 건 새벽이 다 저물 무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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