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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147화 (148/260)

147화

건물은 여전히 고요한 것 같다. 그러나 귀를 기울여 보면 뭔가가 스스슥 스쳐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걸음 소리가 아니라 뭔가 마찰하는 소리가 들리는 거로 보아 다리 있는 놈은 아닌 모양이다. 아니면 소리를 숨기는 데 탁월한 재능 있는 놈이든가.

빛 닿지 않는 곳의 미묘한 어둠 너머에서 츠츠츳, 보다 선명해진 소리가 들린다. 이윽고 들리는 파열음.

어둠에 반쯤 잠겨 있던 기계 쪽에서 생경한 소리가 들린다. 아드득 까드득 단단한 것을 씹는 것 같은 소리처럼 들리기도 했다. 그 단단한 게 상상을 초월하는 먹거리란 게 문제였지만.

“금속을 먹는 것 같군요.”

예린 팀의 감지계 헌터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상황을 알렸다. 지호 역시 똑같은 장면을 보고 있다. 아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지만, 말실수할까 싶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괴물은 기계에 달라붙어 조정 패널처럼 생긴 부분을 씹어 댔다. 이가 어찌나 단단한지 금속이 종이처럼 잘려 나간다. 생긴 것 자체는 지렁이에 가까운 느낌이었는데 머리 끄트머리에 톱니 같은 이빨이 징그러울 정도로 많이 박혀 있었다. 외피는 매끄럽지 않고 수북한 털이 나 있다. 오래 쳐다보기엔 너무 징그러운 모양새. 눈으로 추측되는 건 보이지도 않았다. 어떻게 주변을 식별할까?

궁금증을 떠올리기 무섭게 낯선 파장이 주변을 훑고 지나갔다. 감지계였구나. 지호는 더더욱 긴장했다. 놈이 기계에서 떨어지며 이빨을 차르륵 다문 탓이다.

“방금 감지 파장이 지나갔어요. 놈이 기계에서 떨어졌고요. 이쪽으로 오는 것 같아요.”

“같다고?”

“아뇨. 옵니다. 정면!”

놈은 몸을 웅크렸다가 직선으로 도약했다. 모든 헌터가 경악했다. 갑자기 빛으로 뛰어든 괴물의 모양새가 너무 흉측했던 탓이다. 방벽에 부딪히며 옆으로 내동댕이쳐진 놈의 털이 사방을 후려쳤다. 미친! 누군가 욕을 뱉으며 뒤로 물러났다. 재차 몸을 웅크리는 괴물. 도훈이 지호를 당겼다.

“흩어져. 놈을 혼란스럽게 하는 쪽이 나아.”

“혼란스럽게?”

“눈이 없잖아. 내내 저쪽에 있는 줄 알 거야.”

도훈의 조언은 부분적으로는 옳았다. 놈은 달려든 자리에 먹잇감이 없자 공격적으로 감지 파장을 사방으로 날려 댔다. 온통 이빨뿐인 아가리 저편에서 날카로운 파편이 총알처럼 발사됐다. 방벽 담당은 질겁하며 그를 보조해 주던 신체 계열 뒤로 숨었다.

“총 같은 걸 쏘는데요?”

“먹은 걸 곧장 소화하지는 않나 봐요.”

몇 번이고 달려들다 방벽에 돌진을 막히자 놈은 화가 난 것처럼 몸을 흔들어 댔다. 털이 몸에 바짝 붙으며 매끈한 것처럼 모양새가 변한다. 재차 몸을 웅크리는 녀석.

뛸 거라고 생각했으나 그 충격량은 계산하지 못했다. 처박은 충격이 옆에서 보기에도 심각할 정도였다. 방벽 담당이 피를 토하며 옆 사람 어깨를 짚었다. 치료계 헌터가 곧바로 붙었으나 다음 공격이 날아든다. 지호가 앞으로 나섰다.

“교대!”

예린이 제지시킬 상황이 아니다. 총알처럼 날아드는 충격을 억지로 버텼다. 뒤로 몇 걸음 밀려난다. 그나마 버틸 수 있는 건 몸이 튼튼해서다. 좀 전에 피 흘린 헌터는 입가를 소매로 훔치며 피와 욕을 동시에 뱉었다.

“망할. 공격 안 해요?”

느껴지는 위협 때문에 접근하기가 어려웠다. 지호가 방어로 돌아선 이상 더더욱 그렇다. 예린은 입술을 짓씹다가 수신호를 보냈다. 퇴각 신호다.

“비전투 인원이 여럿이야. 전투 장면 기록했으니 바로 빠질 거다. 이지호 헌터, 시간 좀 벌어 주시겠습니까?”

이런 요청이 들어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지호의 당황이 고스란히 드러나 투명했던 방벽이 흐려진다. 그러나 예린이 준영을 맡아 뒤로 빠지겠다는 몸짓을 보인 탓에 그럴 수 없다고 하기도 어려웠다.

지호는 당황을 숨기려고 애썼다. 준영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새하얗다. 이 상황이 돌발 상황이란 사실을 들키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는 태연히 질문했다.

“지원 요청하셨습니까?”

“부상자와 열외자는 근처 건물에 두고 곧 지원 오겠습니다. 특이종 보고 올렸으니 알파 팀이 멀리 떠나지 않았다면 이쪽으로 올 수도 있겠죠. 아니더라도 다른 헌터 팀이 올 겁니다.”

근처 건물 중 멀쩡한 곳은 얼마 없다. 도훈은 지호 옆에 남겠다고 손짓했고, 예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곧바로 빠졌다.

감지 파장은 여전히 사방을 훑어 댔으나 그들의 이동 방향으론 고개도 돌리지 않는 걸 보니 애당초 목표는 지호나 도훈이었던 모양이다. 그들 장비가 제일 좋긴 했다.

“첨단 기기를 좋아한다더니, 미식가네요. 이 새끼.”

이빨이 건반처럼 차르르륵 움직였다. 먹을 것이야 줄었지만 원하던 건 놓치지 않았다는 것에 즐거움마저 느껴진다. 지호는 괴물의 기분을 추측했다는 사실만으로 불쾌감을 느끼며 도훈에게 질문했다.

“이거 상대하는 법 알아요?”

“속도는 빠른 놈이야. 하지만 속도가 다거든. 먹을 만한 거 던져 놓고 못 따라올 곳으로 튀자고.”

도훈이 위를 가리키자 지호의 얼굴이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하늘에 날아다니는 것들이 많아 이 공장으로 들어오지 않았던가? 그러나 그의 말은 달랐다.

“이쪽을 제대로 보는 놈 없어. 여기 근방에 먹을 게 있는 게 아니거든. 고작해야 기어 온 것도 금속 먹는 놈뿐이지. 인간들 많은 쪽으로 몰려가고 있으니 그렇게 위험하진 않을 거다.”

“추측뿐이잖아요.”

“정 안 되면 그 전투복 벗어 버려. 또 만들어 달라고 하면 되잖아.”

“말이 되는 소릴 해요. 이틀간 맨몸으로 버티란 말이에요?”

전투복엔 갖가지 기능적인 면이 있다. 체온 조절이나 습도 조절 같은 것들을 포함한 헌터들간의 위치 식별 기능 등이 좋은 예시다. 꼬물거리던 괴물이 예기치 못한 순간에 달려들었다. 이번엔 숨이 턱 막힐 정도로 거친 돌진이었다. 일반 방벽 사용자는 혼자 버티기 힘든 출력일 터.

“좀 이상해.”

“뭐가요. 저 새끼 움직임이?”

“아니. 아까 도망친 헌터들 말이야. 원래 헌터들이 이렇게 의리 없는 놈들은 아니지 않던가? 내 기억엔 그런데.”

“부상자도 있곡!”

말이 이상하게 끊겼다. 놈이 다시 달려든 탓이다. 몇 번이나 방벽을 두드려도 안에 있는 걸 깰 수가 없자 화가 난 괴물이 이빨을 드러냈다. 저걸로 방벽을 씹어 먹으려고 하는 건가?

그 짐작이 맞았다. 지호는 질겁하며 도훈의 팔을 붙잡고 기계 위로 뛰어올랐다. 놈이 광분하여 파장을 쏘아 보냈다. 금세 위치가 들켰지만 높이 때문에 곧바로 달려들긴 어려웠다. 도훈은 혀를 찼다.

“아무리 생각해도 역시 아니야.”

“뭐가요.”

그들이 올라앉은 기기가 괴물 입으로 들어가기 시작한다. 발판을 먹어서 없앤다니 머리 나쁜 놈이나 할 법한 발상이었다. 도약력으로 모자란다고 판단했는지 단순히 높이가 높아서 어려웠는지 아니면 배가 고팠는지 알기 어렵다. 놈이 금속을 갉아 대며 씹어 대는 소리가 공장에 퍼졌다. 와작 와드득 까드득 그르륵.

“돌아올 생각 없을 거다. 아까 그 쭉정일 데려갔잖아. 미등록 각성자는 구조했으나 시선을 끌기 위해 남았던 헌터는 괴물에게 사망. 누가 책임을 묻기 어려운 그림이지.”

“다물어요.”

“날 모르는 눈이 아니었어. 이쪽으로는 말도 안 걸었잖아. 그럴 수가 있나? 내가 기억하는 얼굴인데, 나를 모를 리가.”

지호는 어쩔 수 없이 괴물에게서 눈을 떼었다. 기계는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었다. 한쪽 판 하단부가 벌써 없다. 지호의 분노 섞인 시선을 받은 도훈은 그 눈을 지그시 마주 보며 설명했다.

“내 기억에 있는 헌터였어. 나를 모를 수가 없다고.”

“그럼 왜 모르는 척했겠어요?”

“내가 죽었다는 걸 알고 있다면 가능하겠지. 나를 먹은 게 괴물이란 것도 알고 있을 테니. 이 정도 얼굴이잖아. 모르는 게 더 이상하지 않겠어?”

숨죽인 호흡. 지호는 당장 그 말에 대답하기 어려웠다. 예린의 자신감 넘치던 태도와 당연하다는 듯 돌아오겠다던 말이 생각난다. 그게 거짓일 리 없었다.

“지원 요청했다고 했어요.”

“언제?”

“했을 거예요. 아무튼, 팀장이고, 우리가 모르는 뭔가를 알 거고…….”

“지원 요청을 했다면 너한테도 신호가 뜨겠지. 내가 가진 기기에도 그렇고.”

도훈의 말이 냉정하게 박혔다. 괴물이 씹어 댄 기계 한쪽이 너덜거린다. 놈은 거슬리는 부분을 먹어 치우자 또 자세를 잡았다. 달려들 심산인 것 같았다. 지호는 방향을 틀어 놈의 시야에서 벗어나는 쪽으로 자리를 옮기며 중얼거렸다.

“그럴 리 없어요.”

“모른 척하고 싶다면 그렇게 해. 하지만 여기서 버티는 건 아무 의미 없다. 차라리 내가 말한 것처럼 위로 튀어. 못 따라올 테니 다른 걸 먹으러 갈 거다.”

다른 것.

근방에 먹잇감으로 그럴싸한 거라곤 방금 도망친 헌터들 정도가 생각났다. 그들을 추적하려 들지 않을까? 혹은 이 근방에 전기를 공급하는 중요 선이라도 먹어 치우면 어떻게 되지.

지호의 복잡한 기분이 얼굴에 드러났는지 도훈은 한숨과 함께 말을 마무리했다.

“잠깐 도와주마. 오래는 안 돼.”

금속 씹던 괴물의 움직임이 멈췄다. 놈은 기이한 소리를 내며 허공을 향해 파편을 튀기더니 곧 바닥을 꿀렁거리며 기어갔다. 뭐라도 보이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기묘하다. 환상이라도 보는 것 같았다.

“감지 파장 한 번이면 바로 들켜. 지금 나가자. 두 번 같은 수에 속진 않을 테니까.”

“지원이…….”

“안 와.”

본인 손에 들려 있던 기기를 조작해 균열 어플 상태를 띄운 도훈은 냉정하게 강조했다. 지원 표식은 없다. 이쪽이 아니라 다른 쪽에 띄워져 있었다. 심지어 미등록 각성자 구조 등록이 방금 손예린 헌터 이름으로 올라왔다. 지호 본인이 해야 했는데 정신이 없어 잊었다. 경험이 없기도 했다.

“멍청하게 서 있기만 할 거야? 저 뇌 없는 식충이가 배 속이 비었다는 사실을 깨닫기 전에 움직여야 한다고.”

도훈은 오래 고민할 시간을 주지 않고 들고 있던 핸드폰을 휙 던졌다. 바닥을 훑던 놈은 입에 들어온 진짜 전자 기기에 흥분하며 꼬리로 바닥을 퍽퍽 내리쳤다. 지호는 이를 악물었다. 믿고 싶지 않았지만, 정말 지원 요청은 없었다.

“이유를 모르겠어요.”

“세상 모두가 네게 이유를 설명하며 움직이진 않아. 헌터란 놈들한테 뭔가 환상을 품고 있는 모양인데, 한순간에 정의를 택한 것들이라고 해도 그 선택을 내내 관철하며 살아가진 않아. 사람은 언제나 변하기 마련이지. 헌터도 마찬가지야.”

도훈은 단조롭게 대답하곤 허공으로 떠올랐다. 지호는 혼란스러운 얼굴로 그가 내민 손을 붙잡으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바닥에 머리를 처박고 금속을 씹어 대는 괴물이 보였다.

“내 능력은 지속 시간이 길지만, 허상에 사로잡힌 놈이 괴리를 눈치채면 두 번 걸긴 어려워. 가자. 우리도 살아야지.”

둘은 헌터들이 떠난 곳과는 다른 방향으로 떠났다. 혹시나 하는 희망에 계속 지도를 보고 있었지만, 특정 방향에서 멈춘 손예린 팀이 다시 돌아오는 일은 없었다.

씁쓸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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