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화
해가 뜨기 전, 상황판을 주시하던 지호는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신호에 고개를 갸웃했다. 여기에 은신처가 있단 표시를 해 두긴 했는데, 오고 있는 헌터의 신호가 고작 하나였다.
팀을 다 잃을 만큼의 격렬한 교전이 있었나? 의문을 품고 해당 신호를 탭하자 이름이 뜬다.
이지호. 본인 이름이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지호는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으니까. 상황판에 인식되는 신호는 곳곳에 있는 계측기에 걸려 실시간으로 전송되는 것이다. 이 신호가 지호 이름으로 뜬다면 추측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였다.
혹여 준영이 깰까 봐, 지호는 조심스레 문을 밀었다. 오래된 경첩이 삐이익 하고 짧은 마찰음을 내긴 했으나 큰 소리는 아니다. 준영은 뒤척이지도 않고 색색 잘도 잤다.
신호는 무너진 다리 건너편에서 발신되고 있다.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위치. 날아올라 확인하기엔 위험 부담이 크다. 부근에 뭐가 있을지 정확히 알기 어려우니까. 지호는 잠자코 기다렸다. 어떻게 그를 정확히 목표 삼아 움직이는지 궁금했다.
가로등 불빛조차 얼마 없는 한적한 도로. 무너진 다리 위로 사람 모양새 갖춘 그림자가 휙 뛰어오른다. 가볍게 몇 군데 디디며 아래로 내려서는 날렵한 몸짓. 복장을 보니 헌터였다.
“드디어 다시 만났구나.”
속삭이는 음성. 낮고 흔들림 없는 또렷한 목소리다. 언뜻 매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빛 비치는 곳으로 나온 얼굴은 지호가 짐작하고 있던 그 얼굴이었다.
“도플갱어…….”
“민도훈이라고 불러 주면 안 돼? 이 얼굴로 꽤 오래 있었어. 이 나에 꽤 애착이 가고 있다고.”
도훈은 싱긋 웃었다. 미소가 자연스럽다. 사람 아닌 무엇이라고 누구도 의심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그에게서 지호의 신호가 관측되는 거야 이상한 일이 아니다. 도훈의 가슴 포켓엔 지호의 헌터 배지가 달려 있으니까.
“어떻게 여기 있어요?”
“몸 숨기기 좋은 곳이잖아. 겸사겸사 배도 채우고. 아, 걱정하지 마. 나도 사람을 먹는 건 거북하더라. 오래 이 모습으로 있었더니, 진짜 인간이 된 기분이야. 먹을 게 천진데 굳이 약한 걸 먹을 이유도 없고.”
“포식자들은 따돌렸나 봐요. 다행이네.”
“너희 쪽에서 준 게 도움이 됐어. 효과가 좋더라.”
한 번의 인터뷰와 몇 가지 정보를 대가로 도훈이 받아 갔던 건 신형 전투복이다. 지금 지호가 입고 있는 것의 프로토타입에 가까운 것. 형태는 좀 더 투박하지만, 기능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다.
신형 전투복이 헌터들 사이에 많이 지급된 물품이 아니다 보니 입고 있는 사람은 적다. 지호와 도훈은 일부러 옷을 맞춰 입고 있는 사람 같아 보였다.
“모습은 마음대로 못 바꾼다더니 유지하는 건 괜찮나 보죠?”
“어. 위험해질 때 연결체들이 끊기면서 무너지는 식으로 바뀌는 거라서. 여태까지 내가 그렇게까지 위험한 상황을 겪지 않았단 뜻이기도 하지. 유지하느라 힘들었어. 네가 이 얼굴을 좋아했잖아?”
“헛소리 마요.”
도훈은 웃었다. 기분이 좋아 보였다.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있어 지호는 우선 그를 반쯤 무너진 편의점 쪽으로 데려갔다. 부근을 돌아다니는 모르는 놈의 눈에 띄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아는 놈과 있는 쪽이 더 낫기도 했다.
캬아아악! 멀지 않은 곳에서 비명이 울린다. 방금 건 소리가 좀 컸다. 준영이 깼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조금 기다려 보니 별다른 기척은 없었기에 지호는 소리를 조금 낮추어 도훈에게 질문했다.
“제가 여기 있는 줄 어떻게 알았어요?”
“화내지 않는다고 약속해.”
“싫어요.”
“유감인데.”
지호의 눈이 가늘어졌다. 도훈은 두 번 농담하지 않고 그가 들고 있을 리 없는 물건을 내밀었다. 화면 가운데 금이 쩍 간 스마트폰이었다.
“이건 어디서 났어요?”
“주웠어. 진짜야. 아무도 안 해치고, 아무것도 안 훔쳤어. 여기로 넘어왔을 때 죽은 것들이 많아서 유실물을 좀 챙겼거든.”
“사용법은 어떻게 알고?”
“내가 그런 것도 모르겠어? 내게 얼마나 많은 것의 경험과 지식이 있는지 알면 놀랄걸. 이것저것 만지다가 이 배지가 뭐랑 연동되더라고.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헌터 배지에 별 기능을 다 달아 놨다. 아마 요즘 핸드폰들에 기본으로 깔려 나오는 균열 어플에 인식 기능 같은 게 깔린 모양이다. 그리고 배지 덕분에 도훈을 지호로 인식한 기기가 헌터 전용 메뉴들을 열어 버린 모양이고.
난처한 일이었다. 지호는 도훈이 보여 주는 것들을 확인하며 한숨 쉬었다.
“배지 다시 줘요.”
“싫어. 우리 사이에 이러기야?”
“우리 사이가 뭔데요?”
“목숨을 구하는 사이?”
“제 목숨을 언제 구하셨다고 지금…….”
도훈은 웃기만 했다. 헌터가 본인 기기를 잃어버리고 아무거나 주워다 쓰는 일이 없지는 않기에 생긴 일 같았다. 이런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걸 보고해야겠지. 도훈이 괴물들과 적대적인 관계라 차라리 다행이다. 그쪽으로 중요한 정보들이 넘어가지는 않았을 테니.
아닌가. 의심해야 하나?
진한 인상에 선이 또렷한 얼굴. 웃을 때면 살풋 휘어지는 눈이나 입매가 지호의 마음을 혼란하게 했다. 하필 저 얼굴을 선택한 데에 뭔가 이유가 있지 않을까.
도플갱어가 고른 얼굴은 지호를 비롯한 여러 사람을 심란하게 하기 충분했다. 많은 이들이 저 복장에 저 얼굴을 보면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겠지. 그래서 저 상태를 더 유지하려고 애쓰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생각이 많은 얼굴이야. 뭘 고민해?”
“왜 당신이 여기 있나 생각하고 있어요.”
“이 균열은 여왕이 뚫거나 인간들 쪽에서 뚫은 게 아닌걸. 몸을 숨기기는 적합하고도 남아.”
모르는 정보가 툭 튀어나온다. 도훈과 대화할 때면 늘 그랬다. 그는 아무도 모르는 사실이 보편적인 상식인 것 같은 태도를 보일 때가 있었다. 지금도 그렇다. 지호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여왕이 균열을 뚫어요?”
“너희 세계로 통하던 최초의 균열도 여왕이 손을 쓴 거잖아. 동시다발적으로 생겨났던 그거. 세계와 세계 사이의 균형을 흐트러뜨리는 무자비한 간섭 말이지. 물론 그런 힘을 쓰고 나서는 여왕도 한동안 이쪽에 참견을 못 하지만, 한 번 위치를 알게 된 후로는 아마 적지 않은 빈도로 길을 냈을 거야.”
“그쪽은 태어난 지 얼마 안 됐잖아요.”
“모든 나들이 그런 건 아니잖아.”
도훈의 말이 지호를 환상에서 현실로 끌어내린다. 비현실적인 외모에 눈을 빼앗겼던 지호는 다시금 현실을 상기했다. 사람이 아니었지. 웃음에 넘어갈 뻔했다.
“지금 이 균열은 그럼 어떻게 생긴 거죠?”
“배고픈 괴물들의 의지가 모여 만들어진 합작품이지. 좀 더 안전한 곳에서 좀 더 양질의 먹이를 원하는 수많은 의지 말이야. 어떤 소망들은 다수의 것이 같기도 하잖아? 그럴 때면 세계를 이루고 있는 이형 에너지는 한 몸인 것처럼도 움직이거든.”
“절대적인 힘을 가진 하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다수가 이런 짓을 벌이고 있다?”
“그래도 너희들에겐 이쪽이 좀 더 안전하겠지.”
지호는 도훈의 말에서 어렵지 않게 몇 가지 사실을 추측해 낼 수 있었다. 여왕이 손쓰는 것들이 대부분 급성 균열일 것이고, 괴물들의 소망이 쌓여 생기는 것이 일반 균열인 모양이었다.
이쪽에서 사람들이 뚫는다는 것에도 마음이 쓰이지만, 균열 저편 일밖에 모르는 도훈에게 물어볼 것은 아니었다.
“이쪽 균열이 좀 더 저쪽 세계랑 비슷한 환경인 것 같긴 해요.”
“저쪽을 어떻게 알아? 감지 파장으로 훑기만 해도 볼 수 있나? 내가 가진 능력이 아니라서 궁금해.”
“넘어갔었거든요.”
준비한 것처럼 줄줄 흘러나오던 도훈의 답이 처음으로 끊어졌다. 그는 어울리지 않게 머뭇거리다가 지호의 눈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내가 늦었구나.”
“늦다뇨?”
“그때 말 못 했던 게 있는데…….”
“뭔데 뜸을 들여요. 안 어울리게.”
“포식자들이 버티고 있던 균열 앞에서, 네가 넘어가려고 했을 때 말이야. 그 에너지가 너무 익숙했어. 헌터들이 쓰는 종류의 에너지 변환이 아니었거든. 만약 그런 방식으로 경계를 넘어가면 돌아올 수 없을 거야. 우리와 같아질 테니.”
너무 늦은 충고였다.
지호의 표정을 본 도훈은 당황했다. 그는 답지 않게 정말로 당황하더니 지호의 손을 덥석 잡았다. 공격성을 느끼지 못해 내버려 두었다. 잡힌 손으로 미세한 떨림이 전해졌다.
“미안. 미안해. 도움을 받았는데 나는 아무것도 못 알려 줬잖아. 제일 중요한 걸 빼먹었고.”
“됐어요. 돌아올 수 있었으니까 용서하죠. 퀸 패러사이트의 수족이 쓰던 능력을 훔쳐 베낀 거라 괴물들이 쓰는 능력 맞아요. 다시는 안 쓸 거고.”
비 맞은 강아지처럼 축 처진 도훈을 본 지호의 심경은 대단히 복잡했다. 이렇게까지 미안해할 이유가 있나? 정말로 지호를 자기 아군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서일까? 그를 균열 저편, 그러니까 인간들이 사는 곳으로 데려가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가슴이 답답했다.
“그거 말해 주려고 절 찾아온 건가요?”
“맞아. 늦었지만. 늦었을 줄 몰랐어. 우리가 넘어오고 싶어 할 수는 있어도 너희는 아니잖아. 우리 세계로 넘어오지 않을 방법까지 알려 줬는데. 그래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도훈이 지호에게 내민 건 호의 가득한 손이었다.
정말로, 호의뿐인 손이다.
그가 붙잡은 손이 뜨거웠다. 진짜 사람처럼 느껴지는 부드러운 손이다. 손등을 매만지는 손가락도, 미약한 열기도 모두 사람 같다.
“그쪽으로 넘어갔던 일이 사고에 가까웠어요. 결국 제가 알려 줄 수 있는 게 없네요.”
“넌 균열에서 너희 살던 곳으로 어떻게 돌아갔는데?”
“민간 연구자들이 열어 놨던 길이 열려 있어서요. 지금은 닫혔어요. 그쪽 연구에 문제가 생겨서 지금 당장은 힘들대요.”
지호는 거짓말을 입에 올렸다. 보현의 존재와 그가 알고 있는 방법이 있다는 걸 도훈이 알 턱이 없으니 그를 속이고 싶었다.
그가 인간들 사는 곳으로 넘어와서 종국에는 지호의 기대와 호의를 배신하고 진짜 괴물로 변해 날뛰는 최악의 현실이 찾아오지 않길 바란 탓이었다.
그럴 리 없는 사람이길 바라면서도, 끝끝내 지호는 도훈을 온전히 믿을 수 없었다.
무엇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가?
그 답을 찾기까지 지호가 도훈에게 보일 수 있는 최대한의 호의는 그를 다른 사람과 같이 대하는 것뿐일 터였다.
도훈은 실망하지 않았다.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쥐고 있던 지호의 손을 끌어당겨 입을 맞췄다. 지호는 이번에야말로 깜짝 놀라 제 손을 쑥 잡아 뺐다.
“미쳤어요?”
“먹으려고 한 거 아니야.”
“아니, 아니 그게. 그 정도는 나도 알아요. 지금 어, 그러니까…….”
“여러 나들의 경험을 종합해 본 결과 이런 감정을 느끼는 상대에게는 이렇게 표현하던데. 싫어?”
이런 감정이 뭐냐고는 때려죽여도 물어볼 수 없었다. 지호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자기 얼굴이 달아올랐단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웃기지도 않는 소리 말아요.”
“곤란해 보이니 그만할게.”
재미있어하는 목소리였다. 망할 도플갱어. 지호는 그를 심란하게 하는 저 잘난 얼굴을 몇 대 때려도 잘못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인기척이 들린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