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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126화 (127/260)

126화

지호 입에서 나온 목소리는 불안정했다. 말하고도 자기가 놀랄 만큼 떨리고 있었으니 남의 귀에 어떻게 들렸을까.

얼마 지나지 않아 지호에게 감지되는 뭔가가 천천히 입구로 내려왔다. 사람의 형체는 아니었으나 다짜고짜 공격하진 않았다. 말이 통하는 것일지도 모르니까.

짐작과 달리 괴물 중에서도 상당히 흉포한 놈이 내려왔다. 코를 킁킁거리는 걸 보니 이쪽에서 냄새가 나면 어쩌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냄새에 민감한 괴물이 있던가? 균열 너머에는 있을 수도 있다. 뭔들 없겠는가.

한참 냄새를 맡던 놈이 중얼거렸다.

“잘못 들었나?”

지호의 고민은 짧았다. 말이 통하는 괴물과 말이 통하지 않는 괴물 중에 전자에게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훌륭한 메리트가 있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모습을 드러낸 지호는 일부러 헛기침했다. 귀가 어두운지 다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괴물이 지호를 발견했다.

날아오는 공격은 없다. 놈은 침착하게 물었다. 지호는 그 침착하다는 수식어가 대단히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아무튼 놈의 태도는 생각보다 점잖았다.

“헌터? 균열 소멸에 휘말렸나?”

“넌 뭐야?”

“괴물이지 뭐야. 눈이라도 다쳤나. 아니지, 어린애잖아. 저쪽 상황이 그렇게까지 안 좋아졌나?”

“여기 실종자들이 있다고 들었는데.”

“들어? 아, 아! 승환이를 만났나 보군. 맞아. 여기는 실종자였던 놈들이 모여 있는 곳이야. 일부는 아직 꽤 많이 사람이지.”

예기치 못한 대답에 말문이 막힌 지호는 괴물이 말하는 바를 단박에 깨달았다. 어떤 연유로든 이곳에 실종자들이 모여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저 말하는 괴물처럼 변한 것 같고.

“들어올래?”

당장에라도 지호의 살을 뜯어 먹을 것 같은 흉악한 이빨이 움직여 인간의 언어를 말했다. 지호는 머뭇거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뭐라도 보고 돌아가는 쪽이 나을 것 같았다.

입구에 나온 괴물은 상체가 크게 발달해 팔로 바닥을 짚으며 움직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퀸 패러사이트의 숙주 중 하나와 비슷하다. 지호는 안으로 들어간다곤 했지만, 그것과 가까이 붙지는 않았고, 괴물은 웃음소리 비슷한 걸 내며 앞서 걸었다.

간판이며 외벽이 다 무너진 건물이라 극장 외의 용도는 파악하지 못했는데, 지하에는 대형 마트가 있고 아래층은 상가 건물이 있었던 모양이다. 균열이 사라지기 전까지 여기에 숨어 있다가 소멸기에 이쪽으로 넘어오게 된 걸까.

“여기 사람들이……. 많아?”

“사람은 얼마 안 남았어. 여기로 던져지는 것들은 대부분 괴물이 될 수 있는 소질 있는 놈들이라서.”

“죽거나 먹히지 않았는데 괴물이 된다고?”

“어. 각성자들처럼 남을 위해 죽어야만 강해지는 건 아니더라. 물론 꼴은 별로 좋을 게 없긴 한데. 어떻게 아느냐고 묻지 마. 여기 민간인 출신들만 있는 건 아니거든.”

속내를 읽히는 기분에 지호의 얼굴이 파리해졌다. 혹시 흉악해 보이는 외형과 달리 육체파가 아니고 정신 계통인가? 지호가 걸음을 멈춘 걸 눈치챈 괴물은 천천히 몸을 돌렸다.

“왜?”

“1세대 헌터들이 많이 겪는 거잖아. 이형 에너지 때문에 몸이 무너지고 약해져서 영영 일어나지 못하게 되는 거. 괴물이 된 사람은 없었어. 그 설명은 이상해.”

“그런가? 설명이 미흡했군. 다음에는 보충해 볼게.”

섬뜩한 감각이 머리를 내리찍었다. 지호는 뒤 아닌 옆으로 몸을 날리며 전신에 두른 방벽을 강화했다.

지호가 서 있던 자리에 철근 같은 쇳덩이들이 내리꽂혔다. 몸을 날리기 무섭게 자리를 박차며 천장으로 뛰어올랐다가 허공에서 뚝 멈추자 지호가 있던 곳과 향하는 곳으로 뭔가가 날아드는 게 보였다. 사방이 괴물이다. 일부는 감지되지도 않았다.

함정이었나. 환에게 속았다는 느낌은 안 들었다.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는 녀석이다. 여기에서 뭔가 일이 있었겠지.

사방 부숴 대는 공격이 날아와 지반이 흔들릴 정도였다. 이 건물 이대로 괜찮나?

공격자들 측은 지호와 똑같은 생각을 했는지 행동을 멈추었다. 먼지가 찬찬히 가라앉자 실루엣 몇 개가 보였다.

“실종자들을 다 죽였나?”

“생존자라고 불러 줄래? 사라진 사람들 찾으러 올 생각도 없잖아. 살아남은 사람들이거든.”

정체 모를 괴물들에 둘러싸여 교전하기에 실내는 지나치게 비좁았다. 감각에 잡히는 것들이 많이 있는 쪽은 입구. 계단 쪽은 허술했다. 계단으로 올라가도록 유도하는 모양새였다.

처음 습격을 제외하곤 별다르게 눈에 띄는 공격이 없어 지호는 천천히 물러났다. 놈들이 유인하는 방향으로 가는 척 다른 쪽으로 빠질 생각이었다.

캬아아! 사람의 것이 아닌 울음소리가 위층에서 울려 퍼졌다. 지호는 움찔했다. 이상하게도 그를 사냥하던 괴물들 역시 동시에 반응하며 멈춰 섰고, 자기들끼리 신호를 교환하는 것 같았다.

저 소리가 아는 소리가 아닌 모양이다. 만약 진짜 실종자들이 여기 모여 있고, 아까 그 괴물이 말한 것처럼 변이 과정에 있을 뿐이라면…….

‘변하지 않은 사람도 일부는 있을지도 몰라. 이게 완전히 함정인 거라면 몰라도…….’

놈들의 동요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지호와 처음 대화하던 놈이 소리를 높였다.

“양동 작전을 펴다니, 교활한 여왕놈!”

“뭔 개소리야!”

위층이 소란스러워졌다. 지호와 대치하고 있던 몇몇 괴물들의 시선이 자꾸 계단을 향했다. 비명과 소란, 그리고 쿵쿵대는 발소리들. 뭐라고 괴성들을 지르는 것 같은데 하나같이 괴물 소리였다. 갑자기 뭐였지? 지호의 감지 파장이 신중하게 상층부를 훑었다.

아까는 잡히지 않던 것이 하나 더 있다. 이질적인 느낌이었다.

“얘는 속여도 우린 안 속아.”

“뭐라고 지껄이는지 모르겠네.”

펄쩍 뛰어오르며 지호의 안면을 향해 발톱을 내리찍는 괴물을 바닥으로 찍으며 한 걸음 더 물러난 지호 뒤꿈치에 계단 난간이 닿았다. 몰리다 몰려 이쪽으로 밀려난 것 같았다. 위층의 소음. 사방이 난리였다. 흙먼지가 거의 다 가라앉자 지호 쪽이 좀 더 불리해졌다. 다수 대 하나였으니.

그러나 이상하게도 놈들은 섣불리 덤벼들지 않았다. 자기들끼리 해칠 수 있기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함정이 있어서인지 파악할 수가 없었다.

“살려 줘요!”

“젠장, 망할 여왕놈이!”

처음 습격 같지 않은 마구잡이식 공격이 쏟아졌다. 지호 쪽이 훨씬 빨랐다. 지호는 계단을 뒷걸음질로 오르며 공격을 회피하면서도 혼란에 빠졌다. 여왕. 그러니까 퀸 패러사이트 말고 진짜 여왕의 주구로 오해받은 것 같았다.

“뭔가 잘못 알고 있는…….”

“놔!”

위에서 비명 같은 외침이 들렸다. 동시에 아래층에 있던 괴물이 한꺼번에 움직였다. 지호는 내내 노리고 있던 순간이 오자 허공을 발로 차고 몸을 총알처럼 날렸다. 그것들 틈바구니로 파고들며 어깨와 등짝이 발톱에 찢어졌지만, 고작해야 몇 부분 다친 거로 목숨을 건진다면 남는 장사다. 그대로 계단 아래로 데굴데굴 굴러 내려온 지호는 허겁지겁 자세를 바로잡았다.

뒤이은 공격은 없었다.

어리둥절한 채 놈들의 뒤통수만 쳐다본 지호는 누군가 소리치는 걸 들었다. 싸우는 소리. 이윽고 조용해진다. 괴물들이 우르르 올라가 뭔가를 해결한 모양이었다.

이 틈에 도망치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실종자들이 모여 있다는 건물에서 빠져나오자 입구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건 뜻밖의 얼굴이었다.

“도준우 씨?”

“음? 여긴 어떻게 와 있지? 균열 소멸에라도 휘말렸나?”

보이지도 않는 선글라스를 낀 채 사실에 가까운 추측을 내어놓은 준우는 습관처럼 선글라스를 추켜올렸다.

“여긴 왜…….”

“시기가 됐는데 여왕한테 제물로 넘길 할당량이 마땅치 않아서 말이야. 이러려고 키우는 놈들이니 몇 개 가져가려고.”

“키운다고요?”

“내 생각엔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건 너한테 별로 좋은 일이 아닐 것 같은데. 주인이 널 보면 좋아할 것 같거든. 다른 것들하고 올라가 있는 동안에 빨리 도망가는 게 어떨까?”

준우의 주인. 퀸 패러사이트를 말하는 것 같았다. 안에서 소란이 난 이유가 그것 때문이었다니. 지호는 이를 악물었다.

“이 사람들 여기 모아 놓는 게 퀸 패러사이트였나요?”

“전에 설명해 줬잖아. 인간들은 이쪽에 남아 있으면 결국 괴물화된다고. 개중에 재능 있는 것들은 쓸모 있는 특성으로 변이하거든.”

“헌터들에게 위험을 전하셨잖아요. 괴물하고 내통하는 사람들을 잡으라고도 알려 주셨으면서, 왜요?”

“어린 헌터야. 전에 설명해 줬잖냐. 나는 더 이상 네가 알고 있던 도준우가 아니야. 최소한의 양심으로 너희 세계를 망치려는 끄나풀을 알려 주었지만, 그렇다고 내내 인간들을 위해 뛰어다닐 순 없지 않겠냐? 나도 살아야지.”

지호는 이를 악물었다. 준우의 말이 틀린 건 아닐 것이다. 결국, 그는 준우를 먹은 괴물에 가까운 것일까? 내내 지호를 괴롭히던 의문은 믿고 싶지 않은 답으로 기울었다.

창을 깨고 괴물 하나가 뛰어내렸다. 준우의 몸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막 도망치려던 것의 발목을 잘라 낸 그는 별일 아니라는 듯 손을 털었다.

“이 일을 내가 맡아서 네겐 다행일 것 같은데. 아니었으면 너도 이 꼴이 났을 거다.”

“실종자들이 있다는 걸 알면서…….”

“이런 농장이 여기 하나만 있는 건 아니야. 여기 차례가 되었을 뿐이지.”

지호는 이를 악물었다.

“저 아래에 구슬 비 내리는 지역에서 길을 막고 있는 어린애는요? 당신을 알고 있던데.”

“아. 개중에 넘기기 아까운 녀석들이 더러 있거든. 그런 녀석들은 하나둘씩 따로 숨겨 두지. 저런 지형이 꽤 있거든. 여왕의 호위대는 정신 계열 능력이 거의 없어서 저런 덴 못 들쑤셔. 그리고 장기판 위의 말이 갑자기 자기 멋대로 움직이면 불쾌하잖아. 다른 놈들이 농장을 떠나지 못하게 길 막아 두는 역할로는 제격이지. 여왕 취향인 녀석이라 끝까지 숨겨 둬야 해. 쓸 만한 능력을 갖고 있거든. 말도 잘 듣고.”

그래서 그런 작용 하는 지역에 한두 놈씩 숨겨 두는 거라고 웃으며 말하는 준우를 보자 섬뜩했다. 그를 사람이라고 말하기 어렵단 쪽으로 생각이 확 기울자 더 그랬다.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 나누던 그는 갑자기 뭔가 소리라도 들은 사람처럼 한쪽을 응시했다.

“음, 주인이 나오고 있어. 빨리 가라.”

“왜요. 나도 밥으로 던져 주지 그래요?”

“그랬으면 좋겠나?”

준우는 발목이 잘린 채로 바닥을 기어 도망가려는 놈의 등을 발로 밟아 누르며 웃었다. 어떻게 해도 호의적으로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쿵, 쿵 하는 소리가 울리자 그는 정말 웃음을 거두었다.

“내가 아직 인간적인 면모를 보일 때 도망치는 게 어떨까, 어린 헌터?”

“어디로 가란 말이에요. 균열에서 나갈 수가 없었어요. 그쪽 흉내를 내서 들어왔는데, 나가는 건 다르게 해야 해요? 어차피 나가라면서요. 좀 알려 줘요.”

준우는 헛웃음 지으며 제압한 괴물 위에 걸터앉았다. 말이 좋아 제압이지, 반쯤 죽여 놓은 다음이었다. 깔끔한 제압. 솜씨가 일품이었다.

“내 방식을 썼으면 당연히 못 나가지. 그걸 내가 거꾸로 알려 줄 수도 없겠는데. 알았으면 진작 나가지 않았을까?”

준우를 오래 노려볼 수 없었다. 그의 말이 옳았다. 밖으로 나오는 방법을 알면서 경계 언저리를 왔다 갔다 해 대지는 않았겠지.

준우는 재차 떠나기를 종용했다. 설득의 근거조차 타당하다. 여왕의 호위대 한 놈만 해도 홀로 상대할 수 없는데 그 수가 여럿.

쿵. 다시 한 번 소리가 났다. 이번에는 위치가 꽤 가까웠기에 지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실종자들을 찾았다고 보고해도 좋을지 알 수 없는 난장이었다.

온 힘을 다해 내달린 끝에 신호가 좀 강하게 잡히는 위치에 도착했다. 시흥 쪽에서 열어 놓은 문이 유지되는 것 같았다. 어스름하게 밝아 오는 태양이 차갑게만 느껴졌다.

얼추 거리를 가늠해도 몇 킬로는 달린 것 같다.

배가 고파 힘이 하나도 없었다. 그 와중에 무리한 탓인지 다리가 후들거리고 목이 바싹 탔다. 신호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좀 전에 겪은 일들을 상기한다. 실종자들이 숨어 있는 장소. 환이, 그러니까 아마 승환이란 이름을 가졌을 괴물이 가로막고 있는 언덕 위의 괴물 농장…….

머리가 다 혼란스럽다.

지호는 그대로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체력이 한계에 다다랐다. 아까 뱀 고기라도 좀 어떻게 먹으려고 시도해 봤어야 했나.

흙바닥에 엎어진 채 가물가물해지는 시야 저편을 보며 정신을 차리려고 애썼다. 무리에 무리를 거듭한 까닭에 체력도 정신력도 전부 한계였다. 몸이 다 낫고 나서 움직여야 한다던 충고들을 진작 새겨들었어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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