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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125화 (126/260)

125화

적어도 보현이 지호를 구하기 위해 임시 파견되는 시기보다는 전에 실종되었을 것이다. 끙끙대며 고민하는 지호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환은 손을 뻗었다. 뱀 피가 묻은 손이라 지레 몸을 사릴 수밖에 없었다. 녀석은 지호가 놀라는 걸 재밌어했지만, 그 이상 겁주는 건 그만두고 다시 건물 입구로 움직였다.

“낮은 곳 갈 때까지 기다려. 어차피 멀리 가는 거 힘들어. 쉬었다 가야 해.”

날아서 가도 괜찮다. 사실 그편이 훨씬 안전했다. 그러나 한 치의 의심 없이 지호가 그를 따라올 거라고 믿고 있는 눈앞에서 가겠다고 말하는 건 어려웠다.

게다가 이쪽에서 안전하게 몸 누일 곳을 두 번 만나기 어려울 것 같단 생각도 들었다.

지호는 어쩔 수 없이 움직였다. 균열을 통과할 때부터 굶주렸던 배가 꼬르륵 소리를 냈다. 앞서 걷고 있던 환이 불쑥 뭔가를 내밀었다. 피 떨어지는 살점이었다. 지호는 기겁하며 거절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저런 걸 입에 넣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뱀 싫어?”

“어, 뱀 고기는 좀.”

괴물 중에는 먹을 수 있는 종류도 있다고 듣긴 했다. 그러나 그것마저 죽은 걸 생으로 뜯어 먹는 방식은 아니겠지. 지호가 거북해하는 걸 본 환은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남은 걸 우적우적 씹었다.

뱀이라서 거북한 건 아니었지만, 대충 그렇게 이해해 준다면 차라리 낫겠다. 녀석의 눈치를 살피다 배가 불러 보이기에 조금 안심했다.

배 꺼지는 데 몇 시간 걸리지 않는다면 문제겠지만, 다행히 뱀 사체는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다. 마정석을 추출하지 않은 시체는 그대로 남아 있구나. 환이 끌고 올라온 뱀의 핏자국이 계단에 길게 남았다.

아깐 한 층만 올라왔는데 이번에는 삼 층. 이쪽 문은 깨끗하다. 오히려 이질적이었다.

“여기 내 집.”

“아깐 아래층이 네 집이라며.”

“우리 집 건물. 여기 내 집.”

하기야 본인 사는 아파트를 우리 집이야, 하고 소개하기는 한다. 손잡이는 할퀸 자국으로 엉망이었다. 환의 손으로 문고리를 돌리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터. 지호는 녀석의 말에 납득하며 문을 열었다. 삐걱, 하는 녹슨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린다.

뜻밖에도 그다지 손상되지 않은 가정집 풍경이 지호를 반겼다.

끌고 온 뱀 꼬리를 냉장고 같은 것에 집어넣은 환의 행동은 사람다우면서도 비인간적이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곳이니 냉장고는 진작 효용성을 잃었을 텐데.

“혼자니?”

“형은 죽었어.”

사람에게 실수했던 때처럼 미안한 기색을 보여야 할까. 지호는 녀석의 눈치를 살피다 다시 질문했다.

“다른 사람들은?”

“여기 위험해서. 다른 데에.”

“불 좀 켜도 되니?”

“음.”

내내 이형 에너지를 충돌시키는 미미한 빛에 의지했다. 한 치 앞 정도나 보이는 약한 빛에 눈이 다 침침할 지경이었다. 밖에선 그나마 흰 구슬이 발하는 빛으로 좀 나았는데, 실내에선 어쩔 도리가 없으니.

창문은 깨졌지만, 커튼은 남아 있었다. 구멍 뚫리고 찢어져 너덜거리는데도 용케 역할을 다하는 것들이다.

“이제 켜도 돼.”

형광등은 달려 있으나 전기는 공급되지 않는다. 여긴 균열 안쪽으로 넘어온 지 꽤 된 곳인 모양인지 여기저기 낡고 삭아 있었다. 어쩌면 균열에 휘말렸을 때 부서진 게 여태 유지되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모양새는 사람 사는 집이었지만 청결도는 그렇지 않다. 녀석이 집이랍시고 들락날락하며 끌고 다닌 사체들에서 나온 부산물이 바닥에 잔뜩 깔려 미끄러웠다. 지호는 거기에서 기름 같은 것들을 추출했다. 초 비슷한 걸 만들어 놓으니 제법 그럴싸했다.

탁, 불꽃이 피어오르자 그제야 환의 얼굴이 또렷이 보였다. 생각보다 앳된, 그러면서도 사람이라고 보기 어려운 얼굴. 목 아래로 경화된 피부는 살갗보다는 외피처럼 보였다. 지호보다 한 뼘 정도 키가 컸는데 선량한 인상이라 한층 이질적이었다.

“따뜻해.”

온기에 좋아하는 모습이 한층 더 아이 같았다. 지호는 복잡한 얼굴로 촛불 앞 괴물을 응시했다. 놈을 괴물로 대해야 할지, 어린애로 대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환아. 아까 다른 헌터들 얘기했었잖아.”

이름을 불러 주자 표정이 부드러워진다. 사람에 가깝다. 정말 사람 같은 얼굴이었다. 지호는 끝끝내 이 괴물에게서 인간인 부분을 분리해 내지 못했다.

“그 사람들도 사고로 여기 왔다고 했니?”

“균열 닫혔다고 했어. 나도 그랬고.”

균열이 닫힐 때 사고로 휘말린 사람들이 이 근처로 오게 되나? 균열의 원리를 알 수가 없어 추측할 수가 없다. 지호가 내내 고민으로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는지 환의 손이 앞으로 쑥 튀어나왔다. 질겁해 물러난 지호를 본 녀석의 표정은 단순했다.

‘여기까지 끌고 들어와서 죽이려고 들 리는 없긴 한데…….’

왜 슬퍼하는 거냐고 물어볼 수 없었다.

지호는 차근차근 환의 행동을 되짚어 보았다. 그를 위험한 구슬에서 구해 줬고, 쉴 장소를 제공해 줬다. 더불어 여왕의 호위대를 잡아 주며 자기가 지켜 주겠다고 말하기까지 했지.

이토록 단순한 호의를 엉뚱하게 해석하는 게 차라리 더 어렵겠다. 생김새 때문에, 그리고 녀석이 사람을 먹은 괴물일 거란 의심 때문에 너무 늦게 알았다.

이 녀석은 외로워하고 있었다.

“나 여기 오래 못 있어. 나가야 해. 한 시간만 있어도 며칠이 지났는데, 한참 있으면 정말 몇십 년 지날지도 몰라. 언니도 죽고 나 아는 사람들도 다 죽고 꼬부랑 할머니 된 다음 돌아가게 될지도 모른다고.”

환은 눈만 깜빡이며 지호 말을 들었다. 이해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차라리 이해하지 않았으면 싶기도 했다. 지호는 괴로운 심경을 어쩌지 못하며 얼굴을 쓸어내렸다.

“같이 갈 수 없다면서. 나도 여기 못 남아.”

환은 대답 대신 다시 손을 뻗었다. 뾰족한 손톱을 구부려 손마디가 닿는다. 찌푸려진 지호의 이맛살을 꾹꾹 누르며 녀석은 소곤거렸다.

“괜찮아. 다음에 또 와. 다들 그러기로 했어. 나 기다리고 있어.”

돌아온 사람이 있었을까.

그보다, 살아남은 사람은 있을까?

찡그리고 있는 게 마음에 안 들었는지 지호의 얼굴을 꾹꾹 누른 녀석은 멍청한 표정이 된 쪽이 더 낫다는 것처럼 웃었다.

사람처럼 말할 줄 아는 다른 괴물들을 생각한다.

준우를 삼켜 준우가 된 괴물은, 그의 원수인가 아니면 준우인가?

많은 사람을 삼켜 괴물 중에서도 단연 위협적이기에, 다른 것들의 표적이 된 도훈은 어떠한가. 많은 ‘나들’의 존재를 주장하는 도훈은 그들을 모두 집어삼킨 최악의 괴물인가, 그 안에 살아남은 그들 전부인가?

여기 홀로 남아 실종자들을 지키고 있다고 말하는 환은, 여왕의 호위대를 홀로 상대할 만큼 위험한 괴물인가, 그저 홀로 남아 외로움을 삼키고 있는 고독한 지킴이인가.

“다시 올게. 꼭 올게.”

환은 대답하지 않고 싱긋 웃었다. 분명 본 적 있는 웃음이었다. 그걸 어디서 봤는지 인식하지 못한 채 지호는 벌떡 일어났다. 쉬었다 가는 게 몸은 편하겠지만, 그럴 수 없다. 돌아갔을 때 몇 년이 지나 있으면 너무 무서울 것 같았다.

“실종자들 저깄어.”

대답 대신 지호에게 필요한 정보를 준 환은 촛불 앞에 쪼그리고 앉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꼬리가 불만스럽게 바닥을 친다는 사실을 제외한다면, 오래도록 그렇게 멈추어 있을 것 같은 등이었다.

무거운 심경으로 발을 뗐다. 깨진 창을 넘어 날아가는 동안 아래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구슬들이 느릿하게 어디론가 굴러가는 것이 보인다. 양이 상당했기에 전부 없어지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았다.

구슬 비가 내린 후로 수신기에선 아무 신호도 잡히지 않는다. 선발대도 이 연기에 휘말린 걸까? 흰 구슬은 미미하게 빛나며 주변을 밝힌다는 이점을 제외하곤 별로 좋은 게 없어 보였다. 혹시나 싶어 감지 파장을 퍼트렸더니 몇 마리를 제외하곤 대부분 멈추어 있다.

멈추어 있는 것들은 대부분 지호의 파장을 인식하지 못했지만, 움직이지 못하는 것 중 일부가 지호의 감지를 인지하자마자 이형 에너지를 움직였다. 공격적인 움직임은 아니었으나 반응만으로 알 수 있는 것이 몇 가지 있다.

애당초 정신계 능력과 감지 파장은 함께 갖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알려진 힘이다. 저 하얀 연기에 당하지 않는 것들은 정신 계통 능력의 괴물들일 것이고, 나머지는 다 정신 방벽 없는 것들이겠지.

지호 역시 몇 개 더 터뜨렸으면 저것들과 비슷한 모양새로 굳어 있었을 것이다. 뒷일은 그다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감지 파장에 반응하는 속도도 달라. 관찰할 여유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지호는 빠르게 하늘을 날며 그것들을 지나쳤다. 이쪽을 향해 말 거는 신호는 없으나, 시흥에 열려 있을 문 쪽에서 잡히는 신호는 꾸준히 확인하고 있었다. 방향을 가늠한다. 운 좋게 반대 방향은 아니다.

실종자들이 있다는 말이 지호의 가슴을 뛰게 했다.

당연히 탈출이 최우선이지만, 밖에서 가족과 친구를 기다리는 어떤 사람들의 애타는 마음을 생각하면 혼자만 도망칠 순 없었다.

어차피 들어왔으니 조금만 더 둘러보자. 작은 것이라도, 어떤 흔적이라도 찾는다면 그게 누군가의 위로가 될 수 있을 테니.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지호는 주린 배를 움켜쥐고 출력을 내느라 고생했다. 배가 충분히 부른 상태가 아니면 힘을 쓰기 어렵다는 걸 이렇게 위험한 상황에서 배울 줄이야. 하긴, 어느 균열을 출동해도 밥은 든든히 챙겨 줬다. 바쁘게 뛰어다닐 때조차 주먹밥이니 김밥이니 바리바리 싸다 주는 시민들의 원조가 있었으니까.

직접 균열에 들어가 사람들을 도울 수는 없으니 이런 것이라도 하고 싶다는 이들의 마음. 시간이 없어 꾸역꾸역 쑤셔 넣곤 다시 괴물과 싸우러 갈 때도 고마웠는데, 지금 생각하니 진짜 고맙고 찡한 일이었다. 언제 폭주할지 모를 급성 균열인데. 구조 팀 밥 좀 먹이겠다고 그 위험한 곳까지 찾아와 주는 일반 시민들.

그들이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흔적을 하나라도 더 찾고 싶은 건 그래서였다.

환이 사람보다는 괴물에 가까운 외형이라 다행이었다. 그가 도훈처럼 사람에 가까운 모양새였다면 지호는 거길 떠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한참 하늘을 가르자 익숙한 건물이 보였다. 실종자들이 모여 있기엔 썩 좋아 보이지 않는 건물이었다. 극장이라니.

건물 부근엔 구슬이 얼마 남아 있지 않았다. 이쪽이 고지대라서 그런 것 같기도 했다. 그리 높은 건물이 아닌데도 멀찍이서 잘 보이더라니. 감지 파장을 퍼트리자 건물 안에 이형 에너지가 몇 잡혔다.

여기에 실종자들이 있다고? 느낌이 영 이상했다. 환이 기억하고 있는 실종자들이 이미 다른 괴물들에게 먹혔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본래는 소리 내지 않고 움직이는 게 정상이겠지만, 지호는 만약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았다. 혹시 저쪽에 사람이 있다면. 혹은 환에 준하는 지능을 가진 뭔가가 있다면.

“누구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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