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119화 (120/260)

119화

14. 발견들

“당신 균열의 영웅이잖아요. 살아남은 자들의 영웅. 왜 실종자들을 찾으러는 안 가요?”

“언니가 그러면 안 된다고 했거든요.”

지호는 느릿하게 대답하며 호송되어 가는 예진의 마지막을 지켜보았다. 헌경에서 사람이 나와 송예진을 먼저 데려갔고, 그를 데려왔던 연구 시설에도 사람이 나가 나머지 연구 팀 역시 체포 예정이라고 했다. 자세한 사항까지는 알기 어렵지만, 그쪽으로 넘어간 사람들 관리 때문에 기기 전원을 내리는 문제에 관해선 말이 많은 모양이었다.

“지호 씨가 보고 올릴래요?”

“저는 아저씨 좀 달래 줘야죠. 정신도 없을 텐데.”

예진을 헌경으로 넘기면서 협회 측에 보고를 올렸더니 비슷한 타이밍에 양쪽에서 사람이 왔다. 나연은 본인이 촬영한 것들을 두 곳 모두에 넘겼고, 이후로 상황 파악을 위해 소속 센터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다들 떠난 뒤, 승찬은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뭐가 있을 거라곤 생각했는데, 이렇게까지 어마어마한 게 있을 줄은 몰랐군요. 최근 균열 사태의 범인이라니…….”

“혼자만 한 일은 아닐 거예요. 근데 혼자 뒤집어쓰고 싶어 하는 것 같았어요. 왜 그럴까요?”

“실종자들이 무슨 소릴 했을지가 관건이지 싶군요. 아직 살아 있어서 자기들을 좀 살려 달라고, 인류를 팔고 자기를 구해 달라 뭐 이런 소릴 하진 않았을 것 같은데. 살아 있지만 괜찮다. 여기서 죽는다. 이러면서 유언을 남기지도 않았을 거고요.”

“김 반장님이 조사할 거예요. 아저씨 동료 머리를 뒤질 거고요. 근데 정신 방벽 없는 일반인 머리는 건드리면 안 된다고도 했었는데.”

몇 초 이상 정신계 공격에 노출되면 뇌가 현실 인지를 포기한다. 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인의 경우 일 분 이상 정신계 작용을 받게 되면 현실 인지가 불가능한 상태가 된다. 미쳐 버린단 뜻이었다.

그 때문에 김 반장이 다른 헌터들에게 힘을 쓰는 건 고작해야 몇 초가 다였다. 지호는 정신 방벽이 있어 좀 더 버틸 수는 있으나, 강도를 올리면 똑같은 꼴이 되었을 것이다.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승찬은 조금 불편한 얼굴로 바닥을 내려다보다 고개를 저었다.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된 이유가 궁금하군요. 가족을 잃은 모든 사람이 그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하진 않는데…….”

지호는 승찬에게 모든 이야길 다 하진 않았다. 그럴 수도 없었다. 어디까지가 일반인에게 알려도 되는 선인지 확실치 않았으니까.

오래도록 지호의 보호자를 자처해 왔던 구조대원은 착잡한 심경을 누르며 그의 친구를 돌아보았다.

“지호 씨는 이제 어떻게 할 겁니까?”

“연수 센터로 가 보려고요. 그쪽에서 연구 지원 요청이 있어서.”

균열 경계 넘어가는 연구가 한창 진행 중일 것이다. 이번에 발견한 기기가 어떤 작용 하는지 알아내는 데는 지호 눈보다는 연구 팀 눈이 정확할 터였고.

“쉴 새가 없네요. 좀 쉬엄쉬엄해요.”

“아저씨도 알다시피 제가 좀 튼튼하잖아요.”

사실 아직도 몸의 피로가 제대로 풀리지 않았고, 아픈 상태로 온갖 균열을 쏘다닌 탓에 후유증이 길게 남을 것 같았다. 승찬은 지호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러기엔 알고 지낸 시간이 꽤 됐다.

“신체 계열 헌터가 무리했을 때 언제쯤 몸이 고장 나는지 알아보고 있는 게 아니라면 쉴 수 있을 때 쉬어 둬요. 지난 균열 사태 때도 그렇게까지 과로하게 될 줄 다들 모르고 있었다고요. 이때 아니면 또 못 쉴지 누가 알아요.”

“와, 말이 씨가 돼요! 그리고 그런 일 두 번 있으면 그거야말로 진짜 재앙일 거예요. 다들 삶으로 돌아갈 시간은 필요할 텐데.”

평소 같은 짧은 대화 후에 승찬은 머리를 긁적였다. 할 말이 남은 사람 같았다. 선글라스를 쓰지 않는 지호는 여느 학생들과 다를 바 없는 얼굴로 웃었다.

“할 말 있으면 해요. 왜 머뭇거려.”

“해도 되나 고민 중이에요.”

“왜요?”

“어떤 일이 있어야 실종자 가족들이 저렇게 극단적으로 돌변하게 될까 생각했거든요. 지호 씨한테 말한 적은 없지만, 이미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는 옛 가족이 있어서.”

“살아 있을까 봐요?”

말을 던지고 보니 이상했다. 지호는 황급히 단어를 골랐다.

“그러니까, 살아 있는 쪽이 괴로울까 봐 걱정하는 거죠?”

“송예진 대원은 착실한 사람이었어요. 요즘 좀 우울해 보였지만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손쉽게 밝아지긴 어려운 법이니 이상한 것도 아니었죠. 그런 사람이 저런 선택을 했다는 게 걱정되네요. 혹시 제가 어느 날 갑자기 저 사람들과 함께하겠다고 마음먹을 수도 있잖아요.”

승찬이 그렇게 돌아선다면 가슴이 턱 막힐 것 같았다. 상상만으로도 배신당하는 기분이라, 지호는 인상을 찡그렸다.

“그러기 전에 말해 줘요. 그 정도 사인 되잖아요, 우리.”

“그럴게요.”

미심쩍은 인사였다. 그러나 두 번 묻기엔 승찬의 표정이 너무 좋지 않았다.

실종자 가족인 사람들은 아닌 사람보다 많을 것이고, 이런 시대에 온전한 가족 가진 사람들이 드물 것이기에 지호는 승찬이 왜 옛이야길 하지 않았나 같은 생각은 떠올리지도 않았다.

오히려 죽은 지 좀 된 가족이라면 굳이 화제 삼는 쪽이 이상할 것이다.

머리가 복잡했기에 지호의 발걸음은 익숙한 곳으로 향했다. 균열에 휘말리기 전, 보현을 보러 늘 다녀가곤 했던 병원이다. 내내 통화만 하고 얼굴 볼 새가 없었는데 이제야 짬이 좀 났다. 반가운 이를 만날 생각에 기분이 좀 나아졌다.

물론 보현을 떠올리면 동시에 준우가 생각나고, 덕분에 머릿속은 몇 배쯤 복잡해진다. 이야기해야겠지. 아니, 이야기하지 않는 편이 낫겠지.

머릿속에서 수많은 지호끼리 다투느라 소란스럽다. 지호의 발은 익숙하게 병원 복도를 지나쳤다. 몇몇이 지호를 알아보곤 손가락질했다. 선글라스를 벗었었지. 그들이 따라붙지 못할 속도로 걸어 특수 병동에 도착하자 간호사들이 눈인사를 건넸다.

“언니 지금 자요?”

“아까 주사 맞았으니 아직 안 잘 거예요. 드디어 깨어 있는 거 보네요. 축하해야 하나?”

“뭘요. 이제 자주 볼 텐데.”

지호는 너스레를 떨며 병실 문을 열었다. 침대에 앉아 있던 보현과 눈이 마주쳤다. 어째 예전과 반대다. 먹을 거라도 좀 사 올걸. 그때의 보현이 그랬던 것처럼 이것도 먹고 저것도 먹으라며 내밀고 싶은데 지금 지호는 빈손이었다.

“지호 씨.”

침착하고 힘 있는 목소리. 평소의 보현이었다. 오래 누워 있어 마른 몸도, 굳은살 다 없어지고 말랑해진 손바닥도 다 괜찮았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눈물이 핑 돌아 당황했다. 매일 찾아와 보던 얼굴인데. 괜찮을 줄 알았는데.

지호의 눈이 촉촉해지자 보현은 어쩔 수 없단 미소를 지으며 손짓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쏟아진 건 의외로 잔소리였다.

“온갖 균열 다 따라다니면서 싸웠죠? 내가 진짜 못 살아. 헌터 일한다고 할 때 도시락이라도 싸 들고 다니면서 말렸어야 했는데. 이게 다 뭐예요? 누가 돌아다니면서 헌터 전투복 맨날 입고 다니라고 꼽줬어요? 박 팀장인가? 막 헌터가 어쩌고저쩌고하면서?”

“네? 아니, 저 이제 정식 헌터고…….”

“세상에. 내가 뭐 삼 년쯤 누워 있었어요? 지호 씨가 정식 헌터라니. 세상에.”

“저 완전 열심히 했거든요? 김 반장님이 임시 파트너인 건 맘에 안 들지만…….”

“알아요. 진짜 열심히 했더라. 뉴스에도 나오고 기사도 잔뜩 뜨고 완전 유명인 다 되고.”

살아남으려고 열심이었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하지 않았으면 여기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제는 다 붙은 보현의 팔 언저리를 보며 지호는 머뭇거렸다. 통화로도 몇 번 나눈 이야기지만, 얼굴을 보자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

“팔은 괜찮죠?”

“내 팔인데요, 그럼. 요즘 기술 좋아요. 잘 붙인다니까요. 아, 절단 사고 났을 때 얼음에 담가 가지고 오면 절대 안 돼요. 절단면 괴사 일어나서 오히려 붙일 수 있는 걸 못 붙이는 일도 일어나거든요. 옛날에 치료 헌터 부족할 때는 손이며 다리 들고 병원에 뛰어오고 난리 나고 그랬었는데.”

엄청난 소릴 하며 진짜 난리였다며 웃는 보현을 보자 진짜로 마음이 놓였다. 전화로만 목소릴 듣는 덴 한계가 있다. 이 사람이 진짜로 괜찮은지, 그냥 괜찮은 척하는지 알아낼 도리도 없고.

지호가 시답잖은 이야길 너무 열심히 들어 주자 괜히 민망해진 보현은 헛기침하며 입을 다물었다. 지금은 그가 떠들 때는 아니었다.

“그래서, 고민이 뭐예요?”

“네?”

“고민 있을 때마다 내가 하는 말 한 귀로 흘리면서 생글생글 웃고 앉아 있잖아요. 지금처럼.”

지호의 머리를 꽉 채우고 있던 생각들은 보현의 진지한 시선 앞에서 아지랑이처럼 흔들렸다. 뭘 말하고 뭘 말하지 말아야 하지. 지호는 침을 꿀꺽 삼켰다.

“퀸 패러사이트의 호위대랑 접촉했었어요.”

보현이 깨어난 후 몇 번 안부 인사 정도 나누는 통화는 했었지만, 균열에서의 일을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회복에 방해될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말을 꺼내기 시작한 지금, 지호는 그가 왜 무의식중에 보현을 찾아왔는지 알았다. 헌터가 되기 전부터 보현은 늘 그의 앞에 있었다. 무슨 일에건 도움을 청할 수 있었고, 앞선 이의 시선에서 조언을 주었다.

그 감각을 기대한 것이다.

“퀸의 호위대 중에 우리 쪽에 포착된 건 셋. 모두 헌터에 기반을 둔 괴물들이라 능력이 어마어마해요. 일반 헌터들은 절대 일대일로 상대 못 해요. 팀 단위로도 쩔쩔매고요.”

“그것들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묻고 싶은 건가요? 전투와 관련된? 퀸 패러사이트 상대로라면 잠깐 정도는 파트너 생각이 있는데.”

“아뇨. 그건, 음. 그건 아녜요. 언니는 이제 균열에서 싸울 수도 없고, 싸워도 안 돼요. 의사 선생님 말 들었죠? 다시 들어가면 위험할 거고요. 이번에야말로 진짜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어요.”

보현은 농담이라며 어깨를 으쓱였다. 듣긴 들었지만 참고 정도만 하겠다는 얼굴이다. 지호가 더 뭐라고 말하려는 걸 딱 막으며, 보현이 질문했다.

“어차피 처음 보는 것과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를 내게 물으러 온 건 아니겠네. 혹시 그게 말하던가요?”

지호의 눈이 동그래졌다. 일순간 머리에 오만 가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중엔 보현이 경계 저편을 지난 첫 번째 사람이란 것도 있었다.

“혹시 경계 너머를 지날 때, 뭘 봤어요?”

“흠, 내가 본 건 이상한 지네 같은 놈이었어요. 그, 그룸피? 그럼피? 그런 이름이었던 것 같은데.”

준우에게 붙잡혀 경계를 넘어갔을 때 본 놈이다. 지호의 안색이 싹 변하자 보현은 침대에 비스듬히 기울어 있던 자세를 바로 하며 웃었다.

“이런. 단박에 생각하던 걸 맞혀 버리다니. 제 이 엄청난 능력을 어쩌면 좋죠?”

“계속 브레인으로 있어 주시면 될 것 같은데요. 그래서 그놈이랑 부딪혔어요? 어떻게?”

보현은 제 팔을 흔들었다. 잘렸다가 접합한 쪽 팔이다. 여전히 손목 색이 조금 부자연스러운 감이 있는 바로 그 팔.

“그놈만 있는 건 아니었지만, 이름을 들은 건 그거 하나였어요. 애초에 내가 거기 넘어가 있던 게 정말 한순간이라서. 넘어가자마자 저쪽 통로가 보였다고요. 사방에 괴물이지, 길은 대놓고 있지. 당연히 뛰어나가야지.”

둘은 경계 저편을 채우고 있던 괴물들의 풍경에 대해 입 아프게 떠들며 한참 수다를 떨었다. 지호는 보현의 입에서 나온 이름에 너무 놀라 그가 본 풍경을 그대로 믿었다. 심지어 경계 저편에서 본 것들까지 비슷했다.

“균열 저쪽 풍경 전체가 얼추 비슷해서 우리가 본 게 비슷한 건지, 아니면 괴물들 쪽에서 열리는 길 자체가 비슷한 위치인지는 이제부터 알아봐야죠. 하지만 확실한 건, 놈들이 균열 부근에서 항상 사람들을 노리고 있단 거 같아요. 제가 나가자마자 드디어! 비슷한 소리를 해 대면서 달려든 걸 보면요.”

“저는 그것들이랑 말이 통한다는 거 자체가 좀 이상하게 느껴졌어요. 괴물이고, 우리랑 사는 세계가 완전 다르잖아요. 어떻게 대화할 수 있는 걸까요?”

보현은 지호의 물음에 심각하게 이맛살을 구기며 고민에 빠졌다. 오랫동안 헌터 생활을 해 왔던 사람답게, 보현은 꽤 그럴싸한 답을 도출해 냈다.

“사람을 많이 먹어서일 것 같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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