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화
11. 이해들
이주환은 이동 능력자 중에는 능력이 출중한 편이지만, 자기 힘을 다 드러내는 일을 꺼리는 편이었다. 요즘 들어 출동 상황이 너무 많아 매일 한계까지 일했고, 돈 챙기기 어려운 구조 작업에 파견될 때는 가지 말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그러나 헌터 된 입장에서 그럴 수는 없으므로 기계적으로 좌표를 인지했다. 신호가 들어온 위치는 판교 균열이었다. 그것도 정중앙부.
언제까지 헌터 일을 할 수 있을까. 조만간 각성자 연합에 자리 하나 마련해 달라고 해야 할 것 같았다. 수원 균열이 나타난 지 며칠 안 되어 빠르게 사라져 버리는 바람에 온 사방에서 소동이었고, 혹시 판교 균열에도 영향이 있을까 싶어 그쪽에 출입 금지령이 내려졌다.
그러니 이쪽에서 구조 신호가 오는 일은 있어선 안 되는 것이다.
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이동 능력자가 본인이라 어쩔 수 없이 움직이지만, 주환은 마주치는 헌터에게 한 소리 퍼부어 줄 생각이었다. 미친 거냐고. 지침은 보는 거냐고. 왜 여기 기어들어 와서 사람 귀찮게…….
균열 경계에 정확히 이동해 온 그는 경계를 걸어 들어가려고 한 걸음 떼자마자 멈췄다.
불길한 느낌.
덜미를 확 잡아채는 감각이 그의 걸음을 잡아챘다. 주환은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오히려 물러났다. 이상한 일이었다. 균열 경계에 무시무시한 괴물이라도 있나? 헌터의 직감이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상황에서 발발하는 일은 잘 없었다.
그러나 눈을 한 번 깜빡인 순간, 그의 코앞에서 판교 균열이 확 쪼그라들었다. 정말 찰나의 순간이었다. 주환은 신체 계열 능력자가 아니었기에 그 속도를 따라붙을 수 없었고, 이동 능력으로는 저 현상이 일어나는 곳으로 이동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균열이 일그러지며 이형 에너지가 사방을 거칠게 할퀴어 댔다. 말도 안 돼. 그는 방금 내부에서 발생했던 신호를 떠올리곤 땅에 붙은 것 같던 발을 떼었다.
판교 균열은 수원 균열과 달리 급성 균열이 아니었다. 균열이 사라지고 난 다음에는 흔적들이 남을 것이다.
그는 우선 판교 균열 소멸 소식을 알렸다. 시간을 확인하고 정보를 입력할 즈음에는 균열이 완전히 소멸한 것 같았다. 하늘 저편 어디에서도 잿빛으로 일그러진 풍경이 보이지 않았으니까.
혹시나 싶은 마음에 몇 번을 짧게 끊어 이동해 온 그는 한가운데 쓰러져 있는 사람을 발견했다. 들어 올려 확인하자 아는 얼굴이란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얼마 전에 보았던 임시 헌터다. 아직도 임시 헌터일 텐데.
뉴스에도 얼굴 오르내리던 유명인이기도 한 꼬마다. 왜 여기에 이러고 있을까? 주변에 보이는 건 달리 없었다.
이름이 뭐더라. 그는 뉴스 기사 한 토막에서 이름을 찾았다. 사진 같은 건 대충 흐리게 표시해도 이름은 의외로 써 놓는 기사가 많았다.
“판교 균열 소멸 현장에서 이지호 헌터 구조. 의료 시설로 후송합니다.”
-예? 누구요?
“임보현 헌터네 그 있잖아요. 박 팀장한테 말하면 알아요.”
이쪽에서 가까운 병원은 강남 부근에 있다. 하지만 서울에 데려다 놓으면 아무래도 관리하기 어렵겠지. 타 지역 임시 헌터가 규칙을 어긴 거니 아마 관리하는 헌터가 금방 찾아오지 싶었다.
공중에 띄워 놓았던 지호에게 손을 얹고 이동하려던 그는 힘을 밀어 내는 감각에 퍼뜩 놀라 움직임을 멈췄다. 주환의 염동력으로 허공에 동동 뜬 채 축 늘어져 있던 지호가 신음하며 몸을 떨었다.
“누, 누구…….”
“이주환 헌터요. 상태가 안 좋아 보여서 병원으로 갈 겁니다. 정신이 좀 들어요?”
지호는 파드드 몸을 떨더니 힘겹게 눈꺼풀을 밀어 올렸다. 먼지가 속눈썹에 잔뜩 묻어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 여자는?”
“여자? 무슨 여자?”
“방호복을 입은…….”
균열이 사라지는 구획은 폭풍에 휘말린 것처럼 엉망이 된다. 균열은 생길 때만큼 얌전히 없어지지 않아서 마지막에 다치는 사람도 종종 있었다. 중심부에서 이형 에너지 폭풍에 제대로 휘말렸다면 지호 상태가 안 좋은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주환은 혀를 차며 지호 어깨에 다시 손을 얹었다.
“주변에 아무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요. 어쩌다 이런 위험한 곳에 와 있는 겁니까? 균열 소멸기엔 헌터들도 다쳐요.”
“방벽, 두르고…….”
“방벽이 뭐 만능인 줄 압니까? 이거 참, 임보현 헌터가 입버릇처럼 챙기라고 하던 게 이유가 있는 거였네.”
보현의 이름을 들은 지호는 고통에 괴로워하면서도 기어코 몸을 일으켰다. 그의 팔은 이상한 방향으로 뒤틀려 있었다. 주환은 인상을 찡그렸으나 그걸 입 밖으로 내놓지는 않았다. 아마 깨닫게 되는 순간부터 더 신경 쓰이고 아플 것이다.
“저보다, 여자를, 그, 으억, 찾아야 해요.”
“여자? 왜요?”
“균열을, 균열을 닫았어요.”
주환의 표정이 괴상해졌다. 모종의 음모론을 믿고 돌아다니는 어린 친구들이 꽤 많은 편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러나 헌터 지망생까지 이 지경일 줄은 몰랐는데.
지호는 주환의 염동력에서 벗어날 때까지 힘을 주려다 포기했다. 이형 에너지가 폭풍처럼 몸을 때렸던 걸 기억했다. 아마 몸에 두르고 있던 방벽이 아니었으면 죽었을지도 모르겠다.
“다른 이야기는 병원에 가서 하면 안 됩니까?”
“하지만, 저보다, 그 여자를 찾는 게 더…….”
“그 여자가 헌터예요? 각성자거나?”
둘 다 아니었다. 지호가 미약하게 고개를 흔들자 주환은 어깨를 으쓱이며 지호의 팔을 잡았다.
“그렇다면 어차피 균열 폭풍에 휘말렸을 겁니다. 당신 임보현 헌터보다 더 다루는 힘 많은 헌터잖아요. 우리 센터에 유명했다고. 그런데도 이 지경이 된 걸 보면 느끼는 거 없어요?”
당연히 죽었을 것이다. 일반인들이 균열 소멸기에 살아남는 방법은 건물 한쪽에 숨어 충격을 견디는 것뿐이었으니까.
이토록 숨을 곳 하나 없는 허허벌판에서 살아남을 사람은 없다는 뜻이다.
지호는 주환의 말을 이해했다. 뭔가 더 말하고 싶어 보였지만, 노련한 헌터는 그 이상 에너지 소모를 허락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빛이 되어 사라졌고, 정말로 그 자리에 남은 일반인은 한 사람도 없었다.
그렇다. 일반인은.
두 사람이 떠나기 무섭게 멀지 않은 곳에서 대기 중이던 또 다른 이동 능력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지호가 있던 곳과 주변을 살피더니 혀를 찼다. 조금 더 세밀한 추적을 거듭한 후, 그가 찾을 수 있었던 건 토막 난 신체 일부분이었다.
여느 시체들과 다른 점은 방호복에 들어 있다는 점이었다.
그는 꾸준한 수색으로 신체를 짜 맞춰 온전한 몸의 형태를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잃은 곳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것으로 효용성을 다한 시신은 곧 불타올랐다. 흔적을 없애 잿더미만 남겨 놓은 불청객은 금세 그곳을 떠났다.
시신 수색으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각, 지호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 그를 맞아 준 건 박 팀장이었다.
“정신없겠지만 통보하고 가겠습니다. 임시 헌터여도 이대로 지호 씨를 내버려 두면 안 된다는 의견이 있었어요. 양 박사님의 요청에 따라 특별히 임시 파트너가 지정됐습니다. 기쁘죠?”
“무슨…….”
“아쉽겠지만 저는 아닙니다. 우린 염동력이 겹치잖아요? 저만큼 노련한 헌터도 또 없겠지만, 우리 갈 길은 다른 모양이에요. 그래도 이분 정도면 이리저리 사방으로 튀어 다니는 지호 씨 잡기에 딱 좋을 것 같더군요. 얼마 전에도 호흡을 맞췄었죠?”
지호는 불안을 감추지 못했다. 얼마 전? 떠오르는 사람이 몇 없었다. 박 팀장은 싱긋 웃으며 지호의 침상 곁에 배지를 내려놓았다.
“정식 헌터 임명식은 당분간 없을 겁니다. 그 부분은 미안해요. 다들 너무 바빠서요. 수원 균열이니 판교 균열이니 다 연기처럼 픽픽 꺼져 버리고 지금 우리한테 허락된 균열은 주안 공단 작은 균열 하나뿐이잖아요. 수습할 것도 산더미긴 한데, 일단은 다들 쉬어야 해요. 허례허식 다 필요 없고 휴식이 필요할 때죠. 이해하겠죠? 이주환 헌터 그만 가 봐도 돼요. 수고했습니다. 부를 때까지 쉬어요.”
“진짜 쉬는 거죠?”
“균열 안 터지면요.”
이주환 헌터는 환호하며 번쩍 떠나 버렸다. 한참 다들 쉬지도 못하고 뛰어다녔으니 당연한 일이긴 할 터였다. 다들 과부하 상태일 테니.
듣는 귀가 사라지자 박 팀장은 만면에 띄우고 있던 미소를 거두며 보호자 침대에 앉았다.
“그럼, 좀 더 실질적인 이야길 해 보죠. 지호 씨 파트너와 함께 조사를 보낼 거지만, 사실 저는 그분을 썩 신뢰하진 않아요. 지내 보면 알겠지만, 아무래도 기억 조작을 할 수 있는 수준의 정신계 능력자는 꺼려지기 마련이라서요. 무슨 말인지 이해하죠? 상대의 인지까지 흐리게 할 수준의 사람이잖아요.”
“제 임시 파트너가…….”
“예. 김 반장님이요. 양 박사님이 특별히 요청하셔서 제가 어떻게 막을 방법은 없었어요. 나중에 임 헌터 깨어나거든 다시 요청해 봐요. 아니지, 이제 헌터가 아니라서 요청이 먹힐지 모르겠지마는…….”
뒤틀린 팔 때문에 마석 치료기에 누워 있었던 지호는 하마터면 몸을 일으킬 뻔했다. 그의 임시 파트너가 김 반장인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임시라고 했으니까.
그러나 그와 이주원 각성자가 나누었던 대화를 기억하는 지호 입장에서, 김 반장을 신뢰하지 않는 다른 헌터의 존재는 중요했다. 심지어 그 사람이 꽤 많은 사람들이 무한한 신뢰를 보내고 있는 좋은 교관 위치에 서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반응을 보니 뭔가 꼬리를 잡은 거죠? 내가 부천 센터장이지만, 김 반장은 이쪽 소속이 아니라서 뭘 하고 다니는지 정확히 알 수가 없어요. 이런 점은 지호 씨랑 꽤 비슷하죠. 헌터들이 어디에서 뭘 하고 다니는지 전부 알아야 하는 건 아닌데, 그래도 외부 세력과 잦은 접촉 있는 헌터에겐 눈이 가게 돼요.”
“외부 세력요?”
“몇 개 집단이 있어요. 그중에 어딘지까진 알 수가 없죠. 지호 씨가 보고를 올린 것도 있고, 제 쪽에서도 따로 조사하고 있던 것이 있어서 말인데. 우리 헌터 측에서 정보를 빼돌리고 있는 사람이 있어요.”
박 팀장의 목소리는 아주 작았다. 혹여 누가 엿들을까 염려할 만한 이야기다. 지호는 다 쉰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실종자들을, 찾으러 가게 한다고, 그랬어요.”
“누가요?”
“아까 그 헌터님은, 안 믿었는데.”
박 팀장은 지호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다 빙그레 웃었다.
“저를 믿으라곤 안 할게요. 아무래도 우리 사이엔 신뢰가 쌓일 새가 없었죠. 임 헌터의 피보호자로서 나한테 색안경도 좀 끼고 있었을 테고, 나로서 지호 씨를 혼내고 다그치는 것밖에는 한 일이 없으니까. 하지만 그래서, 내가 지호 씨에게 협조를 요청해도 다른 세력은 의심하지 않을 거예요.”
“협조, 요.”
“헌터 세력 내부에 믿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는 건 슬픈 일이에요. 하지만 그렇다고 안 할 수는 없죠. 명백한 정보 유출을 경계하고, 그 정보가 다른 곳에서 엉뚱하게 쓰이지 않도록 감시할 책임이 있는 처지에서 특별히 부탁 하나 하죠. 날 믿어 줘요. 한때 임 헌터의 팀원이기도 했다고요.”
“언니 팀원들은, 다, 죽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