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피골이 상접한 이동 능력자와 함께 사라진 명은의 자리가 허했다. 지호는 그때까지 들고 있던 빈 종이컵을 뒤늦게 구겨 쓰레기통에 던지며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났다.
날씨가 좋았다.
오랜만에 집에나 갈까.
갈 곳 확실한 걸음걸이들엔 망설임이 없다. 지호는 분주하게 길을 걷는 사람들 틈에서 느릿하고 목적 없는 걸음을 내딛다 멈추었다.
버스 정류장이 보였고, 익숙한 번호의 녹색 마을버스도 보였다. 예전 동네로 가는 버스다.
지호는 버스에 올랐다. 교통 카드가 없어 잠시 당황했으나 이내 임시로 발급받은 헌터증에 비슷한 기능이 있음을 떠올릴 수 있었다. 교통수단이나 교통비가 없어 현장으로 출동하지 못하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고, 구조 자체에 수당이 지급되는 것이 아닌데도 봉사하는 헌터들을 위한 복지라고 했었다.
버스는 익숙한 길들을 지났다. 어쩐지 기분이 이상했다. 지호네 동네는 버스를 타야만 들어갈 수 있는 후미진 곳이었고, 다른 곳들과 달리 아파트 단지도 몇 개 있지 않았다.
지어진 지 오래된 빌라와 주택이 많고 지나며 마주치는 사람들은 노인이거나 환자인 경우가 많은, 매일매일 힘겨운 사람들의 세계.
비싼 임대 아파트 단지를 오가다 돌아온 동네는 뭐라고 할까. 척박한 느낌이었다.
신호 없는 일차선 길이지만 이 동네에서 차들은 빠르게 달리지 않는다. 방지 턱도 몇 개씩 깔렸었다. 과속 주의 표지도 수두룩하다.
이유는 단순하다. 절뚝거리며 걷는 이가 횡단보도를 느리게 걷는 것을 지켜보며 버스 기사는 조금 느리게 액셀을 밟았다. 지호의 시선은 행인에게 오래 머물렀다. 저런 사람들이 수두룩해 특히 주의해야 하는 동네다.
동네에는 초등학교가 하나 있다. 그 앞 정류장에서 내린 지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당연하게도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다. 엄마는 이 동네만 시간이 멈춘 것 같단 말을 종종 했었다.
지호네 집은 어떻게 되었을까? 사후 처리를 비롯한 모든 걸 보현에게 넘기곤 신경 쓰지 않았었지만, 보현이 이 집을 팔아 버렸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을까? 지호의 걸음이 조금 빨라졌다.
낡은 상가와 간판이 즐비한 건물을 지나 복지 센터에 도착했다. 아는 얼굴들이 가끔 보였다. 누군가 수군거리며 지호를 손가락질했고, 어떤 사람은 노골적으로 눈살을 찌푸리기도 했다.
작은 동네래도 사람들끼리 모두 알고 지내는 것은 아닌지라 지호를 알아보고 그러는 건 아닐 터였다.
매사에 부정적이고 공격적인 사람들이 있다. 타인을 공격함으로써 자신의 비참한 현실을 잊고 싶어 하는 사람들. 키보드로, 입으로, 시선으로, 가끔은 상상 이상의 것으로 타인을 공격하며 자신의 아픔을 잊으려는 사람들.
공격이 끝나고 나면 결국 남은 건 치료 시기를 놓쳐 고통에 떠는 몸과 해일처럼 밀려드는 통증뿐인데도 많은 사람이 타인을 공격했다. 아무 상관 없는 것에 분노를 쏟아 내며 시답잖은 것에 집중하려고 하는 모습들. 지호는 그것이 바람직하지 않단 걸 알았으나, 그들을 막을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럴 능력도 없었거니와, 그런 공격성이 목표를 지호로 잡을 뿐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심각하게 아픈 사람들은 보통 집에 있지만, 개중에 조금 멀쩡해진 사람들은 밖으로 나와 돌아다닌다. 누군가를 붙잡아 시비를 걸고, 갈 곳 없는 분노를 쏟아 내려고.
“어, 이지호!”
익숙한 목소리가 지호를 멈춰 세웠다. 센터에서 뭔가를 한 아름 들고나오던 또래 학생이다. 익숙한 교복을 입고 있었다. 얼굴을 알아보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못 보던 상처 때문이었다.
“너, 다쳤어?”
“크게 아픈 건 아냐. 넌 집에도 한참 안 오더니 어디 시설 가 있었어? 다들 걱정했어.”
“좀 일이 있었어. 오랜만이야, 다솔아.”
지호는 착잡한 얼굴로 동네 친구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리 친한 건 아니었다. 그러나 한동네에 살았고, 어릴 때는 피아노 학원도 같이 다녔고, 자라서는 같은 학교에 다니고 길을 오가며 꼬박꼬박 얼굴을 봤던 사이. 친하다고 하긴 어렵지만 모르는 사이는 아닌 딱 그 정도의 친구.
다솔은 얼굴을 찡그렸다. 웃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얼굴 전체를 가로지르는 큰 상처가 지호의 눈을 어지럽혔다. 지호는 다솔이 들고 있는 상자로 손을 뻗었다.
“내가 도와줄…….”
“아니야!”
다솔은 다급히 몸을 틀어 지호의 손을 피했다. 잡으려면 얼마든지 잡을 수 있었으나 지호는 그러지 않기로 했다.
“어, 그냥 들어 줄까 했어.”
“안 무거워서 괜찮아. 너도 지원 물품 받으러 왔어? 맨날 어머니가 오시더니.”
지호는 어색하게 웃기만 했다. 적당한 인간관계이기에 지호에 대한 소문에 관심이 있을 리 없고,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이나 각성자가 됐다느니 하는 이야기도 들은 적 없는 모양이다.
차라리 잘된 일이다.
“이제 여기 안 살아. 이사 갔어.”
다솔의 눈이 동그래졌다. 물고기처럼 입을 뻐끔거리던 다솔은 주변에 있는 사람들 눈치를 살피더니 조그맣게 물었다.
“혹시 네가 소문 난 걔야? 각성했다는?”
“뭔 각성?”
“어, 저번 급성 균열 우리 동네 입구까지 열렸었잖아. 다들 기겁해서 난리였어. 한동안 버스도 안 다녀서 다 같이 교회 버스 대절해서 시장 보러 가고 그랬는데. 그때 균열에 휘말린 애 중에 각성한 애가 있대. 너 말고도 몇 명 갑자기 휙 사라졌거든.”
다솔은 들고 있던 상자들을 고쳐 안았다. 좀 무거워 보였으나 지호는 선행을 포기했다. 자기가 들겠다는데 나서는 건 불필요한 오지랖이었다.
“나 말고도 많아?”
“그 동네 마트 다니는 사람 많았잖아. 실은 너랑 몇 명 그때 봤어. 나도 거기 근처 있다가 집에 오는 길에 균열에 휘말렸거든.”
그때 다쳤구나. 묻지 않아도 될 이야기였다. 다솔은 여드름 자국 있는 얼굴 위로 난 커다란 발톱 자국 같은 상처를 찡그리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살았으니까 너나 나나 운이 좋지. 그래서 너 맞아?”
“엄마가 돌아가셔서 이사 가는 거야.”
지호는 말을 돌렸다. 툭 던진 화제가 화제인지라 다솔은 짧게 숨을 멈추었다가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부모가 둘 다 있는 집보다 한 사람 있는 집이 더 많은 동네다. 그는 망설이며 눈을 굴리다가 눈짓했다.
“음, 우리 집에 들렀다 갈래? 아니면 짐 가지러 온 거야?”
“우리 집 어떻게 된 건가 보려고. 나 구해 주신 분네 집에서 같이 살고 있어.”
“좋은 분이네. 그래도 다행이다. 진짜로.”
대화가 잠시 끊겼다. 지호네 집과 다솔이네 집이 멀지 않아 어쩌다 보니 동행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센터를 오가는 사람이 예전보다 많아 보였고, 동네에 하나 있는 공원에 웬 천막이 처져 있는 게 보였다.
“저건 뭐야?”
“아, 어떤 박사가 간이 연구소 차린 거래. 근데 마석 치료기 관련 실험 하는 거라고, 치료가 필요한 사람들은 실험이라도 상관없다면 오라고 해서 다들 많이 들락날락해.”
“너도 갔다 왔어?”
“아니 대기표만 받아 놨지. 야매여도 상관없다는 사람이 천지라 난리 났어.”
의자며 그네며 잔디밭이며 앉아 있는 사람들 천지다. 동네 사람들이 센터 아니면 공원에 전부 나와 있는 것 같았다. 음울한 공기는 아니어서 다행이다. 나을 수도 있겠다는 훈훈한 희망과 간절함이 있었다. 정말로 나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지호는 아직도 이형 에너지를 움직이려 할 때면 욱신거리는 어깨를 문지르며 다솔을 따라갔다.
지호네 집은 공원 약수터와 가까운 곳이다. 세금을 못 내 수도가 끊길 때마다 플라스틱 물통을 들고 엄마와 새벽같이 나왔던 기억이 남은 곳들.
“학교는 다시 안 오니?”
이제 와서 출석 같은 게 중요할 턱이 있을까. 그러나 다솔의 눈빛은 평소와 같았고, 지호는 사실 중요한 건 일상을 유지하는 요소들이란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기에 평범한 생활로 돌아갈 수는 없다. 다솔이처럼 위험해진 사람들을 구하고 싶었으니까.
“다른 일 해 보려고. 보호자분이 이런저런 일자리도 알려 주시고 그래서.”
“너 어디 아동 착취 같은 거 당하는 거 아니지?”
다솔은 인상을 찡그리며 상자를 집 앞에 내려놓았다. 지호는 크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헌터에 나이 제한이 있던 것 같지는 않았다. 물론 다들 지호를 어린애라고 우선 감싸고돌긴 하지만……. 그렇다고 어린애는 헌터가 될 수 없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아니야. 내가 하겠다고 했어. 다른 걸 권하시고 학교도 이야기하셨었는데, 그냥 내가 그러고 싶었어. 균열에서 겪은 사고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라서.”
무슨 사고였냐고는 묻지 않는다. 지호는 몰랐으나 간헐적으로 느껴지는 통증으로 순간순간 인상을 찡그리는 게 다솔의 눈에도 뻔히 보였다. 보이지 않는 곳이 다쳤거나 다른 사람들처럼 외상 후 증후군에 시달리는 거겠지.
다솔은 제멋대로 판단하곤 이제는 두 부모님을 모두 잃은 동네 친구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뉴스를 챙겨 보거나 가십거리에 동하기엔 다솔의 삶이 너무 각박했다.
“그래. 이왕 떠나는 거 새 출발 해. 잘 지내고. 혹시 힘들면 연락해도 돼.”
“고마워. 진짜로.”
이것이야말로 순수한 호의가 아닐까. 문득 차오르는 고마움에 지호는 수줍게 웃었다. 돌아갈 수 없는 시절. 함께 할 수 없게 된 가족의 기억들. 그런 여러 가지를 떠올리게 하는 친구다.
그러니 다시 연락할 수는 없다.
다솔이 집으로 들어간 후에 지호 역시 몇 건물 옆인 옛집 앞에 섰다. 먼지 뽀얀 손잡이에 전단지 덕지덕지 붙은 문. 우편함엔 온갖 편지가 가득했다. 늘 열쇠 두는 자리 아래에서 열쇠를 찾아낸 지호는 문을 열었다.
꿉꿉하고 퀴퀴한 먼지 냄새. 얼마나 오래 자리를 비웠나. 감각이 예민해진 탓에 온갖 것이 다 눈에 들어왔다. 집은 그들이 떠나온 그대로였다. 장을 보러 나가려고 호들갑 떨며 나서던 바로 그 순간에 박제되어 있는 공간.
사진을 보자 가슴이 콱 막혀 온다. 그러나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 이제 지호는 그 이유를 안다. 그리고 여기서 더 울고 싶지는 않았기에 슬픔을 다독여 평탄하게 내리눌렀다. 평생에 걸쳐 슬퍼하고 애도할 테지만, 여기에 매몰되지는 않겠다고 결정했다. 다른 누구의 조언도 없이 스스로 내린 결론이었다.
보현은 지호의 것이 된 이 집에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가 찾아오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텐데도.
추억할 것 하나쯤은 필요하다고 생각했을까.
밤이 내려앉을 때까지 현관 앞에 우두커니 서 있던 지호는 신발 하나 벗을 생각 못 하고 한참 서 있기만 했다. 한 걸음 내딛는 순간 이 빈집에 오로지 홀로 남았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어질 것 같은 탓이었다.
머리로는 아는데 가슴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사실도 있는 법이다.
결국, 지호는 실내로는 들어가지 못했다. 한참 서 있기만 하다가 문을 잠그고 도로 나온 그는 열쇠를 손에 가만히 쥐었다. 옛 생각이 나는 공간들. 엄마와 살아온 흔적이 가득한 집. 사진으로만 남은 아빠의 얼굴도 오랜만에 보았다.
그러나 내내 이 시간에 박제되어 돌아오지 않는 이들을 그리워하며 살 수는 없다.
지호는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홀로 사는 법을 조금은 익혀야 하는 나이. 사실은 그리 어리지 않은 나이라고 스스로 말하면서도, 여전히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 약한 마음이 동시에 든다.
오랫동안 손바닥을 내려다보던 지호는 주먹을 꽉 쥐었다. 다시 편 손안에는 뭉쳐진 고철 덩어리만 있었다. 잠긴 문. 사라진 열쇠. 들어갈 수야 있겠지만, 차라리 추억에만 남는 편이 좋을 수도 있는 것들.
막아 둘 수 있는 슬픔을 넘어 눈물 한 방울이 뺨을 타고 흘렀다. 눈가를 거칠게 문지르고서 지호는 건물을 나섰다. 돌아와도 그를 기다리는 이는 없고, 슬픔과 추억만이 진창처럼 발목을 붙들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