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무슨 계약이 된 건데 서명은 장인님이 저렇게 뛰어가는 건가요?”
“아, 검단 센터에서 사람이 왔더군요. 그쪽 훈련소를 새로 건립하는데 거기에 마정석 설비들을 건축 단계에 건물과 함께 박아 넣을 예정인가 봐요. 그런 쪽 담당은 거의 명은 씨거든요. 최근에 다른 센터에서 작업이 끝난 지 얼마 안 됐는데 또 야근하게 생겼죠. 유능한 사람이라 대체할 인력도 없고, 거의 갈려 나가는 중이에요.”
“아니 거절하면 될 텐데…….”
“청라 쪽에 중형 이상 균열 소재가 관찰됐거든요. 균열이란 게 한 번 열리면 그쪽 부근으로 자주 열리게 되기도 해서. 본래 한강 하부랑 영종도 쪽에 열리는 균열을 커버하려고 세워진 센터인데 대도시 균열이라니. 그거 정확하게 감지하고 작업 들어가려면 정밀한 도구들이 필요해요. 균열 조짐이 보이니 마니 해도 앞으로 육 개월쯤 후에 일반인들이 느낄 수 있는 미세 조짐이 시작되긴 할 텐데, 그 전에 할 수 있는 대비는 다 해 놔야죠.”
“기능공들이 그렇게까지 수가 적어요?”
“헌터들에 비하면 한참요. 특히 명은 씨 같은 전문공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고……. 중간에 끼어 있는 날파리들이 좀 있어서 더하죠. 이번 일처럼 공공의 이익을 위한 일보다는 사리사욕, 개인의 안위, 소수의 안전만 중요한 사람들이 있어서 말이에요.”
미세한 적의. 보현은 특정 부류의 사람들을 지칭하며 감정을 숨기지조차 않았다.
“돈만 있으면 다 되는 줄 아는 미친놈들이 좀 있는데, 그 수가 많아요. 귀찮단 말이지. 괴물들처럼 터트려 버릴 수도 없고. 가끔 그런 상상을 하긴 해요. 상상만 하지만.”
보현을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끔찍할 말이다. 물론 농담이겠지. 평소처럼 농담일 거다.
기능공들은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용접하는 것 같은 시퍼런 불이 넘실거리는데 거기에 마모되고 있는 게 마정석이라든가, 충격을 흡수하는 강도를 실험하는지 몇 차례나 세기를 올려 가며 무구를 내리치는 사람들. 개중에는 뭘 하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도 많았다. 전에 왔을 때보다 더 사람이 많았고 복잡해 지호는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입만 벌렸다.
“오늘은 좀 바빠 보이는데요?”
“요전엔 수원 지부에 많이들 내려가 있을 때라서요. 평소엔 이래요. 그때 왜, 내가 갑자기 바쁜 일 생겼다고 친구 보냈을 때 있잖아요. 그게 수원 부근에서도 균열 징조가 관찰되는 바람에 기능공 측 사람들을 급하게 파견 요청해서요. 우리 쪽 사람들이 내려가서 상세히 관찰하고 균열 규모 예측하고 뭐 그런 단계가 있는데, 개중에 좀 성질 급한 새끼들이 함부로 굴 때가 있어요. 그런 걸 대비해서 저 같은 힘밖에 없는 보디가드도 좀 따라가 줘야 해서요.”
전혀 웃을 내용이 아니었지만, 보현은 살짝 웃었다. 지호는 그제야 아까 보현이 날파리들이니 뭐니 하던 표현이 진심이라는 것을 알았다.“대체 인력이 없을 만큼 중요한 사람들인데도요?”
“세상엔 자기가 제일 중요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돈이면 다 되는 줄 아는 머저리 천치들 말이야. 그런 놈들이 접근하면 사고인 척 날려 버려요. 그 정도는 나도 거들어 줄 테니까. 내가 실수로 밀어서 균형 잡으려고 하다가 옆 사람 목을 날렸다고 해.”
“누가 그런 걸 믿어요?”
“이게 제일 그럴싸한 핑계 같았는데…….”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익숙해질 수 없다. 옆에서 나는 매캐한 냄새에 손을 저어 연기를 쫓으며 지호는 슬쩍 질문했다.
“전엔 급성 균열에 들어와서 절 구해 주셨었잖아요. 이번에도 혹시 균열에 들어가시나요?”
보현은 침묵으로 답했다. 종종 그랬다. 대답할 수 없는 것에는 침묵하거나 거절하는 것.
보현은 친절하고 좋은 사람이었지만, 가끔 지호는 그 친절이 잘 계산된 정량의 친절이란 느낌을 받곤 했다.
테스터들은 초췌한 얼굴로 새 지원자를 반갑게 맞이하려 애썼다. 왜 이렇게 힘들어 보이지? 별것 아니라고 했는데.
실제로 지호에겐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지호는 반탄력장에 한 번 움찔하며 튕겼다가 다음은 능숙하게 방향을 조절했고, 지나치게 강한 반동을 주며 쏘아지는 마력 방출 소총은 아예 반동을 반중력으로 받아쳐 버렸으니까. 몇 가지 도구를 써 보더니 나머지는 큰 어려움 없이 확인하고 넘어가는 것을 보자 옆에 서 있던 기능공은 입을 쩍 벌렸고 테스터들은 경악했으며 보현은 머리를 긁적였다.
“테스트하는 의미가 별로 없네요. 일반인들도 사용할 수 있을 조정이 필요한 건데, 지금 거의 본능적으로 힘을 쓰고 있거든요? 사람한테 숨 쉬지 말고 냄새 맡아 보라고 하는 거랑 비슷한 요구를 하는 것 같네.”
“도움이 안 될까요?”
“일반인이 쓰기엔 지나치게 고출력인 무기들을 훌륭하게 사용해 보임으로서 개발자를 기쁘게 할 요량으로라면 굉장한 쓸모가 있겠어요.”
지호는 시무룩하며 물건들을 내려놓았다. 테스터들은 그렇게 쉽게 시제품을 써 보는 사람을 처음 봤다며 좀 웃다가 다시 일을 시작했다. 어떤 사람은 반동 때문에 뒤로 밀려 벽에 처박혔고 일부는 도구의 발열을 견디지 못하고 장갑을 벗어 패대기쳤다. 위험하지 않다면서요? 지호가 눈으로 묻자 보현은 딴청을 피우며 눈을 돌렸다.
때맞춰 멀지 않은 곳에서 명은과 몇 사람이 보현 쪽으로 달려왔다. 다들 비슷한 파장을 띈다. 전신 파장이 아니라 심장과 신체 일부. 보통은 팔이거나 손인데 드물게 눈이 빛나는 사람도 있었다. 모두 기능공이구나. 지호는 금방 알아챘다.
명은은 제 상반신만 한 큰 가방을 품에 안고 안쪽을 가리켰다.
“저희 바로 검단으로 점프해요. 임 헌터님 같이 가 주실 수 있죠?”
“물론이죠. 지호 씨, 집에 혼자 갈 수 있겠어요? 아니면 저번에 온 친구 부를게요.”
“갈 수 있어요. 어, 근데 언니 차는 어떻게 해요?”
“어차피 많이 망가져서 수리 맡겨야 해요. 아, 여기 분들이 밖에 제 차 좀 고쳐 주시면 되겠는데.”
“그건 폐차장으로 가야 할 모양새던데.”
모여 있던 기능공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보현은 다녀오겠다며 지호에게 윙크하곤 센터 내부의 이동 구역으로 떠났다.
테스터 구역을 떠났기에 지호에 관해 아는 사람도 이 기능공 연합에 더 있을 리 없었고, 임시라곤 해도 헌터 전투복을 입고 있는 낯선 이를 흘끔거리는 눈이 많지는 않았다. 무기를 찾으러 왔겠거니, 혹은 마도구를 제작하러 왔겠거니 그저 짐작하고 마는 것이다.
그곳에 한참 서 있던 지호는 문득 박 팀장의 말을 떠올렸다.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고, 소속감을 느끼고 생활하는 것이 곧 일상으로 복귀하는 것과 다름없을 거라고.
아직 임시 각성자여서일까. 여전히 지호는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했다. 핸드폰이 울렸다. 보현의 길지 않은 문자였다. 일이 생각보다 시간이 걸릴 것 같아서 늦을 거라고.
습관적으로 열려 있는 다른 어플들을 확인하려던 지호는 거기에 찍힌 낯선 번호를 보고 멈칫했다. 그 남자 번호였다. 구조대원이었던 그 사람.
원망하기 위해 연락하라고 했었지.
고민하던 지호는 결국 저장된 번호를 꾹 눌렀다. 통화 연결음은 길지 않았다.
* * *
균열 안정기까지 남은 시간이 표시되어 있다. 헌터들로 이루어진 구조대가 본격적으로 투입되기 전, 일반 균열 구조대가 상시 출동해야 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영신 공원 쪽으로 생존자들 탈출합니다. 수풀 방면으로 현재도 남은 생존자 다수. 구조대 출동 바랍니다.”
재난 대책 방지 본부가 발전하여 비상 재난 대응부가 설립되었는데, 균열 어플의 신호를 분석하고 응급, 구조 요청, 생존 상태 등을 실시간으로 파악한다. 승찬은 시계를 확인했다.
급성 균열에 출동했다가 돌아와서 억지로 눈을 붙였다 깬 지 두 시간이 지났다.
직전에 소방관들을 도와 화재 현장을 진압하자마자 출동했던 거라 몸이 무거웠다. 심지어 승찬이 본래 근무하던 지점도 아닌 구조 센터다.
동료 대원인 형철이 대충 세안을 마친 뒤 얼굴을 착착 두드리며 물었다.
“영신 공원 방면이면 가깝진 않은데, 우리 출동하나?”
“아뇨. 부평 초등학교에 생존자 다수 생존 신호 발신. 이쪽으로 나가 구조를 돕습니다.”
균열이 터져 나와 사방으로 도망치는 사람들을 구조하는 초기와 달리, 세 시간이 지난 이후에는 이처럼 균열 어플을 통한 게릴라 구조가 이루어진다. 잠시간의 휴식 후, 전화가 울렸다.
모르는 번호다.
승찬은 습관적으로 통화 종료를 누르려다 손을 멈췄다. 혹시? 아까 구조 현장에서 마주쳤던 어리숙한 임시 헌터가 생각났다.
예, 전화 받았습니다 하는 사무적인 태도 저편에서 소심한 목소리가 들렸다.
-저, 아까 그 사람인데요……. 번호 주신…….
“뭐야, 여자 목소린데?”
“균열 사망자 가족이에요.”
형철의 깐죽거림은 금세 사그라들었다. 임시 각성자의 음성에 깃든 머뭇거림과 불안을 느낀 승찬은 잠시 고민하다가 구조 센터 위치를 읊었다.
“당장은 출동이 없어요. 혹시 나가게 되면 아마 부평 초등학교 쪽으로 갈 겁니다. 출동 신호 떨어지면 연락을 줄게요. 이쪽으로 오실래요?”
“일반인을 여기로 왜 불러?”
“천천히 오세요.”
승찬은 형철의 표정이 볼만해졌다는 걸 알고 괜찮다며 손을 저었다. 통화가 끝난 뒤 형철은 걱정을 숨기지 못했다.
“피해자 가족? 그거 머리채 잡으러 오는 종류 아냐. 개인적으로 만나지 말라고 상부에서도 그랬고.”
“아니 그게……. 출동 나가서 구조하던 중에 일어난 사고가 아니고, 저 비번일 때 균열에 휘말렸었잖아요. 거기서 만난 피해자예요.”
“아니 그때 너도 간신히 살았잖아. ”
“괴물한테 쫓기면서 저한테 가족을 맡겼거든요.”
형철은 말을 잇지 못했다. 피차 끔찍한 상황이었는데 여기서 피해자가 승찬을 탓한다면 그건 말도 안 되는 것 아닌가. 그는 조심스럽게 말을 골랐다.
“그, 정 어려우면 지금 출동했다고 말해 줄게.”
“괜찮습니다. 혼란스러운 것 같았어요. 보아하니 학생 같더라고요.”
“이야기한다고 뭐가 달라진다고.”
“뭐든 속에 있는 이야기를 토해 낼 때 나아지는 것도 있는 법이잖아요.”
형철은 이맛살을 약간 찌푸렸다.
“거 사람이 너무 호구 같으면 손해 보고 산다고. 그러다 나가서 멱살 잡히고 머리 뜯기면 어쩔래?”
“제가 아직도 사람 보는 눈이 이렇게 없구나, 하고 한탄하겠습니다.”
“내 참.”
형철은 본디 소방관 일을 하던 사람이었으나 대균열의 날 이후 겸직을 하는 사람 중 하나다. 본디 공직자는 두 가지 일을 금지하지만, 소방관과 균열 구조대에 한해서는 병행을 금하지 않는다.
급박한 상황이 터질 시 비상 대응할 인원은 많으면 좋다는 지론에 따라 다른 국가 기관의 공무원들은 균열 시 대피 방법과 대처 이론 시험을 치고 점수를 매기기도 했다. 관공서가 휘말렸을 때는 지침에 따라 대피하고 일반인을 대피시키며, 부근에서 사건이 터졌을 때는 통제를 돕고 구조에 필요한 역할을 할당받는다.
승찬은 소방관직 시험까진 보지 않았으나 필요시 보조로 파견을 나간다. 화재 현장에 들어가지는 않고, 구조된 민간인 응급 처치와 화재 현장으로 가는 길목 통제 및 필요한 일들을 하곤 했다.
힘들고 어려운 현장에서 사람 구해 내는 일을 하다 보면 사이가 끈끈해질 수밖에 없다. 나이 차이는 좀 있으나 친구처럼 지내는 사이였으므로, 형철은 진심 어린 충고를 남겼다.
“거 균열 다 자연재해고 사람 죽고 사는 게 하늘에 달린 거라고 하지마는 피해자로선 또 그렇지 않으니까. 또 얼마든 원망하라고 멱살 내 주고 오지 말고.”
승찬은 그저 웃었다. 사실은 그럴 사람이 필요하다면 연락하랍시고 연락처를 줬다는 말은 입이 두 개라도 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