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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21화 (22/260)

21화

그러나 최선을 다해 사람들을 구하는 저 등에 대고 그런 미움과 분노를 쏟아 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지호는 균열 경계에서 약간 멀어졌다. 후방에서 신체 계열 헌터들이 던질 것을 가져가기 위해 파괴한 건물 등이 무너져 내려 일어나는 2차 피해를 방지하는 팀에 합류할 수 있었다.

처음 한 시간 동안에는 정말이지 정신없도록 사람들을 구하고 괴물을 견제하고 미친 듯이 뛰었다. 그 이후부터는 생존자가 나타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균열을 노려보는 시간이 더 길었고, 마지막 생존자가 탈출한 뒤 한 시간 후, 총책임자가 결정을 내렸다. 초기 구조 종료. 다음 단계로 넘어갑니다.

나연을 다시 만난 건 그 구조 단계가 끝난 다음이었다.

“어휴, 정신없었네. 뭐 했어요? 바빴죠? 이거 뭐 누구 챙기고 말고 할 수 있는 데가 아니라서.”

지호는 빙그레 웃기만 하고 말았다. 무슨 일이 있었나, 누구를 만났나, 그리하여 어떤 상황을 겪었나를 구구절절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고 느낀 까닭이다. 대기중이던 여러 대의 구급차가 본래 업무로 돌아간 뒤 헌터들 역시 일부를 제외하곤 파견되어 온 센터로 돌아간다고 했다.

“균열이 안정될 때까지 준비하는 건가요?”

“돌아가면서 몇 시간씩 경계를 서요. 어떤 생존자가 마지막 희망을 걸고 뛰어나올지 알 수 없는 일이라서. 그런 사람들은 정말 부정기적으로 나타나고, 아예 없을 수도 있어서 모두 대기하는 건 썩 효율 좋은 일은 아니죠. 들어가서 괴물하고 싸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차라리 그럴 수 있었으면 마음이 편했을 거란 나연의 말엔 동의하기 어려웠다.

돌아가는 길엔 이동 능력자들의 도움을 받지 않는다. 그들이야말로 정말 녹초가 되기 직전까지 힘을 쓴 상황이라 제일 먼저 뻗었고, 당장 쉬어야 한다고 했다.

“애초에 수가 많질 않아서 항상 과로 상태에 있거든요. 그리고 임보현 헌터가 데리러 올 거예요. 저는 대기조라서요. 전투복하고 장비들 센터에 반납하면 돼요. 균열 수습까진 수업이 어렵겠어요. 한동안 웹 강의 보면서 시간 보내고 있어요. 제가 연락할 테니까.”

“저, 이런 급성 균열이 자주 생기나요?”

균열이 주변에 생기지 않는 한 크게 관심 기울인 적이 없어 몰랐다. 이렇게 체계적으로 많은 조직이 움직이고 있을 것이라고도 상상하지 못했고.

지호는 그가 알고 있던 것이 빙산의 일각이라 부르기에도 모자랄 만큼 작은 부분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나연은 주변에 듣는 사람이 없음을 확인한 뒤에야 속삭였다.

“사실 요즘 들어 한두 달에 한 번은 균열이 터져요. 미친 짓이죠. 쉴 새가 없어서 다들 엄청 날 선 상태예요. 현장에서 웬 미친 헌터가 날뛰면 피로가 폭발해서 그렇구나 생각해요.”

미친 헌터라니. 그러고 보니 지호의 뒤통수를 때렸던 남자가 기억났다. 나연은 현장에 먼저 가 보겠다며 지호를 남기고 가 버렸고, 홀로 남은 지호 혼자 좀 전의 두 남자를 생각한다.

둘 다 이름은 몰랐다. 한쪽은 무례함의 극치였고 한쪽은 경건하기까지 해서 대비가 되어도 이렇게까지 될 수가 없을 지경이다. 둘 다 남자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그것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한쪽은 헌터고 한쪽은 일반인인 것까지 모두.

생각을 가로막는 건 익숙한 파장이다. 일반인까지 감지할 만큼 예리하진 않지만, 지호의 힘은 괴물이나 각성자들을 분류하는 데 벌써 꽤 익숙해졌다.

통제 구역 밖에 차를 세우고 한걸음에 훌쩍 뛰어올라 만인의 시선을 사로잡는 커리어 우먼. 오늘 복장까지 잘빠진 정장이다. 커다란 선글라스까지 끼고 있는 탓에 영화에 나오는 특수 요원처럼 보였다.

“임시 각성자가 벌써 파견을? 내가 이래서 헌터 일은 별로 권하고 싶지 않았는데요.”

“갑자기 급성 균열이 터졌다고 사방에서 그래서 차 헌터님 따라서 왔어요. 다른 건 안 하고 그냥 뒤에서 후방 지원만 한걸요.”

“그래도 균열이잖아요. 괜찮아요?”

사방이 오염원투성이라 지호는 꼬질꼬질하다는 말로도 표현이 부족할 만큼 지저분했다. 보현이 임시방편이라며 얇은 막을 지호 옆으로 펼치더니 그대로 지호를 통과시켰다. 놀랍게도 큰 먼지나 지저분한 것들이 쑤욱 딸려 나갔다.

“나중에 제어 훈련 잘 받으면 이런 것도 할 수 있어요. 꽤 유용하답니다. 뭐 나쁜 사람이 사탕 준다고 같이 가자고 하진 않았죠?”

완전 애 취급에 지호는 입을 비죽였다. 언니라고 부르는 것조차 부담스럽다는 태도를 내비치는 보현은 종종 이랬다.

“머리 때리고 욕하는 아저씨는 하나 있었는데요.”

“뭐요? 어떤 놈이요?”

“제가 잘못한 상황 같긴 했어요. 근데 다짜고짜 머리를 막 때리더라니까요.”

“뭐 하는 놈이지? 다음에 혹시 얼굴 보이면 바로 말해요. 거 우리 애를 막 때리고 그러다니 좋은 놈은 아니겠네.”

남자가 신체 강화 계열이 아니다 보니 맞은 게 아프지도 않았으나 말하다 보니 억울했다. 물론 대형 사고를 막기 위한 짓이라곤 했지만……. 지호의 다소 치우친 설명을 들은 보현은 우선 균열 현장을 떠나자며 손짓했다. 여전히 폴리스 라인 뒤쪽으로 시민들이 몰려 있는 것이 보였다.

“어, 근데 저 사람들 언니 구경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아요? 방금처럼 뛰어다니니까 그런 것 같은데.”

“어, 그치만 어쩔 수 없었어요. 위로 아니고 앞으로 뛰면 풍압이 심하게 생긴다고요. 그럼 일반인들이 못 버티고 쓰러져서 다치거든요. 전에 항의를 좀 많이 받는 바람에.”

그런 말을 하려던 건 아니었지만 어쩌다 보니 행동의 이유를 듣게 되어 지호는 그냥 그렇구나, 하고 말았다. 보현은 이상한 곳에서 상식이 결여된 행동을 보일 때가 있었다. 각성자로서는 당연하지만, 일반인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은 행동들.

다 그가 1차 각성자인 까닭일 터였다. 너무 오랫동안 일반인들과 각성자를 분류하며 살아오다 보니 평범한 감각이 뭔지 잘 모르는 거겠지.

“흠. 구경꾼이 많아졌는데 차 두고 갈까요?”

“어떻게 가는데요?”

“날아서?”

유튜브에서 몇 번 본 적 있다. 날아다니는 유명 헌터들이나 각성자들. 지금 같은 복장으로 날아다니면 확실히 특종 영상으로 몇 주쯤 화제가 되겠는데. 지호는 떨떠름히 고개를 저었다.

“그냥 차 타요…….”

차로 돌아가는 동안 술렁이는 사람들 소리가 지호를 부끄럽게 했다. 그 시선과 집중이 당연한 듯 당당하게 걸어 문을 열어 준 보현은 주변을 향해 미소 지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이형 에너지 파장이 예리하게 주변을 훑었다.

“헌터 촬영이 불법인 거, 알죠?”

주변 사람들 전자 기기가 일시에 멈추며 고장을 일으켰다. 지호는 당황했다. 저거 다 고쳐 줘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러나 보현은 태연했다. 그 정도쯤 별것 아니라는 듯이.

“헌경에 신고하진 않겠어요. 가끔 생방송하는 사람도 있던데, 지우는 게 좋을 거예요. 두 번째는 경고가 아니라 실력 행사예요.”

주변이 조용해졌다. 웃는 게 웃는 게 아닌 것 같아 지호는 괜히 눈을 굴렸다. 분위기 한번 살벌한데.

물론 보현은 평소와 같은 태도다. 지호에게 하곤 하는 그 상황, 못 맞추는 농담을 다수에게 하고 있어서 문제지. 아마 촬영을 막고 싶었던 모양인데, 그럼 좀 더 온건한 방법도 있지 않았을까.

핸드폰 수리비에 관한 추가적인 이야기를 할 줄 알았으나 보현은 그냥 차에 탔다. 조수석에 앉아 있던 지호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바깥에 모인 사람들을 가리켰다.

“저거 다 부수신 것 같은데…….”

“맞아요. 헌터 관련 자료들은 국가 기밀에 속하거든요. 일반인들도 촬영 유포 안 되는 거 다 알지 않나? 하여간 피곤해요. 대뜸 카메라부터 들이민다니까. 나야 얼굴 팔릴 대로 팔렸다 쳐도 지호 씨는 아니잖아요.”

“저 때문에 저렇게 하신 거예요?”

“나 혼자 있으면 그냥 날아갔죠. 당연한 거 아닌가?”

차가 출발했다. 뜻밖에도 운전이 거칠었다. 액셀을 너무 세게 밟아 차가 총알처럼 튀어 나가고, 브레이크는 가끔 방향을 꺾을 때나 썼다. 끼이익 하고 차 바퀴가 요란한 소릴 내며 바닥에 흔적을 남겼다. 지호는 차 손잡일 붙잡은 채 몸을 떨었다. 운전하는 보현은 거칠다는 말로도 표현하기 어려웠다.

덕분에 이동 능력자에게 얹혀 간 것만큼이나 빠르게 센터에 도착했다. 지호는 창백한 얼굴로 차에서 내렸다. 다시는 보현이 운전하는 차에 타고 싶지 않았다.

“아, 이거 차 또 수리 맡겨야겠는데.”

“부딪히고 깨지고……. 사람 안 친 게 너무 다행이에요…….”

“내가 첫 운전을 게임으로 배워서 버릇이 좀. 솔직히 헌터증 있으면 대부분은 다 패스 돼서 면허 달라고 못 하거든요. 어쩌다 보니까 이게.”

“예?”

그러니까 무면허 운전이란 소리인가. 지호는 더더욱 창백해졌고, 다시는 보현의 차를 타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빙빙 돌고 돌아 대중교통을 이용하든가 한여름 땡볕을 땀 흘리며 걷는 한이 있어도 기필코 피하리라.

“보통은 날아가거나 자동 주행을 하니까 내가 운전할 필요가 없단 말이에요. 근데 어쩌다 보니까 그, 자동 주행 기능이 고장 나서. 운전은 진짜 오랜만에 했어요. 저도 한 스무 살 때쯤 땄던 것 같은데 갱신할 여유가 없어서. 혹시 나는 거 미숙하면 운전 제대로 배우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지호는 일반적 상식에 보현을 가져다 대기를 포기했다. 대신 보현의 상식에 적응하기로 했고, 그래서 그러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갱신 시기를 놓친 게 처음부터 무면허 운전인 것보다는 좀 나아 보였다.

피차 만족스러운 대화가 끝났을 때, 부평 각성자 연합 안에서 담배 물고 걸어 나오던 각성자 하나가 펄쩍 뛰었다.

“아니, 이게 또 무슨 고물이에요! 어제까지 새 차 아니었나?”

“와, 명은 씨네! 어쩐 일로 밖에 나왔어요?”

“아, 연합 후원자가 되고 싶다고 찾아온 손님 때문에 잠깐들 멈췄거든요. 근데 이 차 진짜 왜 이래요? 혹시 이걸로 균열에서 괴물이라도 들이받았나?”

“다행히 아무도 안 받았어요. 근데 후원자? 누가 돈 부족한가?”

“좋은 조건으로 물건 매입을 원하는 쪽 같긴 한데요. 일단 이야기 들어 봐야 알죠. 덕팔 아저씨랑 선경 이모가 손님맞이 중인데, 들어가 보실래요?”

“어. 가야지. 참, 이쪽은 이지호 씨라고, 당분간 내가 보호하기로 한 임시 각성자예요. 지호 씨, 이쪽은 서명은 씨예요. 마도구 제작 팀의 수석 엔지니어랍니다. 나 안에 가 볼 테니까 명은 씨 하는 일이나 좀 구경시켜 줄래요? 보다시피 임시라서.”

“헌터 전투복 입고 있는데요?”

“그쪽도 임시.”

보현이 안으로 휙 들어가 버리자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함이 감돌았다. 지호의 눈치를 보던 명은은 물고 있던 담배를 도로 케이스에 집어넣었다. 아무리 봐도 미성년자로밖에 보이지 않는 말간 얼굴 앞에선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어, 음. 안쪽 좀 구경할래요?”

“전에 대충 보긴 했었는데…….”

명은의 얼굴이 어두워지자 지호는 얼른 덧붙였다.

“그치만 대충 훑어만 본 거라 자세히는 못 봤어요. 자세히 볼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래요? 그쵸. 아무래도 기능공들 집중하고 있으면 말 걸기도 좀 미안하고 그러지.”

명은의 파장은 대단히 독특했다.

보통 각성자의 파장이 신체 전신 슈트와 비슷한 방식으로 신체를 감싸고 있는 것에 반해 명은의 이형 에너지는 대부분 심장과 눈, 그리고 오른손에 집중되어 있었다. 이유가 뭘까. 지호는 명은의 뒤를 쪼르르 따라가 그의 공방을 구경할 수 있었다.

“자, 여기가 바로 그 유명한 부평 장인 서명은의 마도 공방! 몇 번쯤 촬영 요청이 온 바로 그 장소!”

“엇, 촬영도 할 수 있어요?”

“헌터들만 볼 수 있는 매체들 쪽에서요. 당연히 일반엔 공개 안 되죠. 유출하는 놈은 어차피 제 명에 못 죽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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