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0화 (1/260)

프롤로그

0. 죽음

분주하던 하루가 끝나고 해가 저무는 시간. 부지런한 사람들이 바쁘게 모여드는 곳이 있다. 대형 마트 세일 코너 근처였다.

어느덧 마감 시간. 타임 세일 딱지가 붙는 바로 그 시간이었다. 담당자가 스티커를 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것을 유심히 살피던 지호는 50% 할인 스티커 위에 이제 막 붙은 70% 할인 품목에 눈독을 들이며 근처를 서성였다. 지호 같은 사람들이 주변에 많았다.

아는 얼굴과 마주친다. 같은 학교 옆 반 친구였다. 내일 시험장에서 만날 수도 있겠다. 지호를 비롯해 학급에서도 절반 이상이 내일 시험을 치른다. 인천 지부 헌터 협회에서 이번에 뽑는 인원이 고작 서른 명이 다인데, 시험 치르는 인원은 그보다 훨씬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행히 자리는 자주 빈다.

이 일을 하겠다고 시험을 준비하던 지호에게 엄마는 자리가 자주 난다는 건 일이 아주 힘들거나 위험하다는 의미라고 말해 주었지만, 오래도록 협회에서 일하기를 소망해 온 지호에게 지금 당장 귀에 들어올 이야기는 아니었다.

내일 시험을 위해 엄마가 사 주기로 한 고기가 두 팩 남아 있다. 부위는 지호가 고르기로 했다. 운 좋게 마감 때까지 아무도 가져가지 않은 고기 팩에 눈독을 들이던 지호는 스티커가 붙기 무섭게 번개처럼 움직였다.

“야. 어른한테 양보해라.”

“제가 아까부터 보고 있었는데…….”

“다른 거 먹어.”

분명 동시에 잡았는데 그를 노려보는 무섭게 생긴 아저씨의 눈빛에 눈치를 살피며 손을 놓았다. 어쩔 수 없이 다른 고기 팩을 잡았지만, 여기에는 70% 할인 딱지가 붙어 있지 않았다. 담당 직원은 이미 다른 코너로 간 지 오래다. 금액을 몇 번이나 확인하다가 시무룩한 얼굴로 그걸 내려놓는 지호 옆에 다른 손이 휙 끼어들었다.

“왜 집었던 걸 놓고 그래?”

“아니, 이거는 30%밖에 안 붙어 있어서…….”

“괜찮아. 오늘 잘 챙겨 먹는 날이잖아. 내일 되어서 ‘아 그거 먹을걸!’ 하면서 후회하지 말고 그냥 먹자. 양이 좀 있으니까 내일 네 도시락에도 고기반찬 넣을 수 있겠다.”

“그래도 비싼데…….”

“괜찮아. 시험 두 번 안 보게 한 번에 붙을 생각이나 해. 너 아까 외우던 거나 다시 해 봐. 균열에 자주 등장하는 괴물들 특징?”

“자주? 어, 아, 아! 아냐, 이거 외웠었는데. 잠깐만. 까먹었다.”

“시험이 내일인데 아직도 헷갈리면 어떻게 하니.”

지호는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해진 종이를 꺼냈다. 요점 정리해 둔 A4용지 두 장짜리 요약본이 다 너덜거리는 걸레짝이 된 건 그만큼 열심히 공부해서였는데.

“아니거든! 잠깐 헷갈린 거야. 자주 나오는 거랑 드물게 등장하는 걸 헷갈렸던 거라고. 거미랑 들개랑 해삼이 있는데 위기 상황에서는 엄폐물을 제일 먼저 찾아야 하고…….”

아니라고 외치긴 했으나 중요한 걸 까먹었던 건 사실이라 지호의 눈은 사정없이 흔들렸다. 엄마는 대답 없이 다른 걸 사야겠다고 마트 진열대를 천천히 살폈다.

지호는 엄마가 소시지 칸을 그냥 지나치는 걸 보며 비엔나소시지 작은 것 한 봉을 집어 슬쩍 카트에 넣었다. 도시락 반찬에는 역시 문어 모양 소시지가 들어가야지.

걸으면서 요약본을 펼쳐 괴물 특징을 확인한다. 빈번하게 등장하는 부류……. 중간쯤에 있었다. 별표까지 쳐 놓고는! 지호는 자기 자신에게 욕을 하며 종이를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균열 생존 시험 과목이 유독 까다로운 건 고려해야 할 게 너무 많기 때문이다. 관련 직종에 종사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더더욱 숙지하고 있어야 할 사실들인지라, 또래 아이들이라면 으레 그러하듯 지호 역시 헌터가 꿈인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각성자는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었고, 각성하는 조건 자체가 우연의 산물이기에 나이를 조금 먹으면서 지호의 진로는 헌터들과 함께 일할 수 있는 일반직으로 변경되었다.

다른 시험은 몰라도 균열 생존 시험은 80점 커트라인을 꼭 넘어야 한다. 지호는 요약해 둔 부분을 펼쳐 눈으로 훑은 뒤에 종이를 접으며 다시 중얼거렸다.

‘들개는 소리에 민감하고 거미는 움직이는 걸 쫓고…….’ 입 속으로 말을 중얼거리고 있는데 마트에 울리던 신나는 로고 송이 뚝 끊겼다. 급작스러운 정적. 어리둥절해하며 고개를 돌리는 사람들 머리 위로 급박한 경보와 함께 경고 방송이 울렸다.

-급성 균열 경보. 급성 균열 발생으로 남동구 지역 대부분이 재난 지역 선포되었습니다. 손님들께서는 밖으로 나가지 마시고 건물 안에 머물러 주십시오. 반복합니다. 급성 균열 경보. 급성 균열 경보.

동시에 핸드폰으로 재난 문자가 도착했다. 지호는 경악하며 급히 핸드폰을 무음 상태로 돌렸다.

“엄마, 핸드폰 무음으로 돌려. 균열 어플 켜고!”

1차와 2차 경보를 건너뛴 채 곧바로 3차 경보가 길게 울렸다. 마트는 너무 트인 곳이다. 지호는 덜덜 떨며 손에 쥐고 있던 종이를 펴려고 애썼다. 시험이 아니다. 진짜 생존에 필요한 정보를 참고해야 할 때였다.

그러나 몸과 머리가 따로 놀아 좀처럼 침착하기 어려웠다. 말도 안 돼. 균열은 보통 몇 시간 간격을 두고 천천히 열리는데. 머릿속에 있던 정보가 두서없이 튀어나오다 엉킨 것처럼 복잡했다. 생각은 많은데 인지되는 건 없다. 그 와중에 지호 엄마가 딸의 팔을 잡아끌며 다급히 외쳤다.

“지호야, 사람들 다 저쪽으로 가고 있어.”

“뭐? 아니 미쳤나?”

지호는 기겁하며 사람들 쪽으로 가려는 엄마를 붙잡았다. 입구는 경고 방송과 함께 내려진 셔터로 닫혀 있었는데 그걸 열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한둘이 아니었다.

“아직 4차 경보 안 울렸잖아. 그 전에 나가려고 하는 거 같아. 여기서 한두 블록만 나가면 남구잖니. 남동구 쪽이 위험하댔으니까 얼른 나가는 게 낫지 않아?”

“1차나 2차 경보도 아니고 3차였잖아. 그리고 균열 속도가 사람들 뛰는 속도보다 빠른 게 당연…….”

셔터 전체를 연 것은 아니지만, 사람이 다닐 수 있게 분리되어 열리게 만들어진 문 형태의 셔터 한쪽이 달그락거리며 열렸다. 사람들이 그쪽으로 우르르 빠져나가자 지호 엄마도 지호를 잡아당기며 황급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호야. 빨리!”

안 되는데. 지호는 얼떨결에 끌려가면서도 생각했다. 이거 안 되는데. 이러면 안 된다고 배웠는데. 1차와 2차 경보 때는 대피해야 한다면 3차 경보 때는 숨을 장소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4차 경보 때는 절대 돌아다녀서는 안 되는 게 당연한데.

마트에 있는 사람들이 하필 다 나이 좀 있는 어른들이었다. 젊은 사람이 조금이라도 많았다면 이런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지호는 사람들 사이에 낑겨 나오다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마트 밖으로 빠져나오자마자 마트 외벽에서 그림자가 일어나고 있는 것을 발견한 까닭이었다.

씨발. 지호는 더 빨리 달리지 못하는 다리를 욕하기 시작했다. 생각 이상으로 경계가 가까웠다. 안에만 있었으면 모를까, 이미 밖으로 나온 이상 엄마 말대로 균열을 벗어나기 위해 뛰는 게 옳았다.

두 블록이 그렇게까지 멀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 그 순간, 4차 경보가 울렸다.

세상이 찢어진다.

균열이 사람과 사람 아닌 것을 집어삼키며 세상을 뒤집었다. 균열 경계로부터 중심지까지 순식간에 파도치며 균열이 퍼진다. 균열에 휘말릴 땐 어떻게 해야 했지? 지호는 저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았다. 건물 그림자에서 서서히 몸을 일으키고 있는 것들이 보였다.

공포에 질린 누군가가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림자에서 솟아오른 것들이 형체를 갖추기 시작한 순간 지호는 그것과 눈이 마주쳤음을 깨달았다.

붉고 선명한 시선.

배웠던 그 무엇과도 닮지 않은 괴물이다. 급성 균열에 관한 연구는 아직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은 재앙.

그 괴물이 지호를 응시한 순간, 나머지 그림자들이 일제히 지호 하나를 바라보았다. 지호는 도망칠 수 없을 거란 사실을 직감했다.

“앞에 보고 뛰어!”

엄마가 지호를 잡아끌며 소리쳤다. 그러나 지호는 끝끝내 고개를 돌리지 못했다. 방향을 약간 튼 순간 그것들의 시선이 한꺼번에 돌아가는 것이 느껴졌다. 옆에서 뛰던 엄마 속도가 벌써 느려지는 것이 느껴졌다. 엄마뿐이 아니다. 여기 사람들 절반 정도는 나이 많은 어른들이다.

균열 경계가 멀지 않았다. 정말로 멀지 않아 맨눈으로 균열 밖이 보일 정도였다. 바깥에서 보던 사람 중 용감한 사람들이 나이 든 어른들을 마중하러 균열에 뛰어들었다. 지호는 앞과 뒤를 번갈아 보다가 터지는 울음을 참지 못했다.

그것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순간에, 지호는 현실적인 판단을 내렸다.

“얘, 왜 이래! 빨리 가야 한다니까!”

“엄마. 나 이미 늦었어.”

목소리를 낮추지 않은 탓에 몇 명이 달리다 말고 뒤를 돌아보았다. 뒤에서 질겁하며 달려오는 사람 중 하나와 시선이 마주쳤을 때, 지호는 어쩐지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눈물이 앞을 가린다는 게 이런 의미였구나.

“저기요. 저것들 저 보는 거 보여요? 저희 엄마 좀 부탁할게요.”

같이 달리는 사람 중 몇 안 되는 젊은 사람이었다. 남자는 지호네보다 한참 늦게 마트를 빠져나왔다. 뒤를 보니 마트 안쪽도 아수라장이었다. 운 나쁘게 건물 안에서 괴물이 튀어나온 모양이다. 그 탓에 뒤늦게 건물을 탈출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의 머리 위로 종류 다른 괴물이 내리꽂힌다. 사방이 지옥이었다.

4차 경보가 울리자마자 겁을 먹고 마트로 들어가려던 사람 중 일부가 벌써 봉변을 당했다. 다시 돌아가는 건 불가능하다. 고작 반 블록을 달려온 상황. 지호는 그 사람에게 엄마 손을 맡겼다.

큰 키에 운동 좀 한 듯한 몸. 지나가는 비실비실한 사람들보다는 훨씬 든든해 보였다. 옳은 선택이었으면 하고 바랐으나 사실은 두 번 사람 고를 여유가 없었다.

남자는 처음에는 당황하고 다음으론 경악하고 결국에는 결심한 얼굴을 보이더니, 지호를 붙잡으려는 지호 엄마를 끌어당기며 필사적으로 달려갔다.

그걸 보고 안심하며 지호는 천천히 멈추었고, 다른 사람들은 그러지 않았다. 괴물들이 온전히 모양새를 갖춘 뒤에 오로지 한 사람만 응시하는 것을 보면서 누군가는 안도하고 누군가는 슬퍼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지. 지호는 덜덜 떨려 오는 몸을 가누려고 애쓰며 사람들이 달리는 곳과 다른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것들도 지호 뒤를 쫓아 옆 골목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다리가 없는 형태. 뱀에 가깝다. 뱀 머리에 상체는 포유류. 하체는 파충류처럼 보이는, 그러나 무엇으로도 정의할 수 없는 형태.

엄마가 울부짖는 소리 같은 것이 멀찍이 들리는 것 같다. 지호는 오래 달리지 못하고 붙잡혔다. 팔다리가 사방으로 붙잡혔고, 다행히 고통을 오래 느끼지 못하고 죽었다.

인천 모 지역에 열린 대형 재난급 균열에서 사람들을 대신해 희생한 학생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타난 괴물들은 그것들뿐이 아니었고, 균열 입구에 도착했을 땐 마트를 빠져나온 사람 절반 이상이 죽었으므로.

애석하게도 지호가 가장 살리고 싶던 그의 가족 역시 죽음의 운명을 피하지는 못했다. 그리하여 지호네 식구가 모두 균열에 휘말려 죽게 된 셈이었다.

보편적인 상식으로라면, 분명 그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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