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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하는 들러리양-77화 (77/100)

00077  8. 전에 알던 너도 아냐  =========================================================================

정확히는 탑 꼭대기에 위치한 아윈의 방이었다. 딴에 와본 적이 있다고 낯설기 보단 익숙하다. 황당하게 중얼거리고 있자니 아윈이 ‘응. 마탑. 근데?’정도로 해석되는 참 자기다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하핫, 나 무슨 앞마당 나온 줄.

뭔 일을 벌일 때마다 평범하게 놀라는 내가 등신이 되는 것 같은 그 얼굴에서 시선을 떼고 나는 눈따따를 내려다봤다. 손을 붙든 채로 하라는 말을 입에 담았더니 장소가 변했다. 이 같은 현상이 의미하는 건 당연히 하나밖에 없었다.

“ 눈따따가 고급인력이 됐구나!”

내 친구-를 넘어 요새는 의자매 수준인-눈따따의 진화가 눈부시다. 언제 한낱 GPS였냐는 듯 텔레포트 머신으로 변모한 눈따따에게서 주인을 압도하는 품격이 휘몰아쳤다. 나도 못하는 품격폭풍을 얘가……이 복잡한 기분은 무얼까.

“ 눈따따?”

아윈이 내 쪽으로 고개를 숙였다. 손가락 끝이 내 손에 들린 눈따따의 머리통을 가리킨다. 아, 이름 처음 듣나? 난 괜히 으쓱해져서 눈따따를 정면으로 들어올렸다. 스스로 생각해도 작명 솜씨가 썩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 내가 지어 줬어.”

“ 고객님 같은 이름이네.”

…? 너 유래는 알고 말하는 거니?

“ 앞으론 빼먹지 말고 다녀.”

피아노를 치면 어울릴 것 같은 길고 곧은 손가락이 눈따따의 노란 머리를 툭툭 두드린다. 나는 아윈의 짤막한 잔소리에 티 나지 않게 입을 삐쭉였다. 안 그래도 눈따따 얘가 요즘 내 들숨날숨의 동반자 수준이구만, 응접실에 잠깐 안 데리고 내려갔다고 자꾸 뭐라 하긴……흥칫뿡.

“ 걱정 안 해도 되거든?”

“ 잘 때도 끼고자.”

“ 이미 내 모든 순간을 함께하고 있거든? 아 맞다, 너 저번에 지붕에서 보여준 관음구슬 같은 마법, 그런 거 눈따따한테 넣기만 해. 바로 신고할 거야.”

말하다보니 문득 떠올라 난 아윈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GPS로도 모자라 눈따따가 CCTV마저 되도록 놔둘 수는 없다. 아윈은 내 같잖은 경고에 픽 웃었다.

“ 신고할 거야?”

“ 그래!”

“ 어디에?”

“ …!”

…그러게?

“ 황실?”

“ 내가 이겨.”

불손이 하늘을 찌르는 응수였다. 다른 인간이 했으면 기록에 남을 만한 허세일 텐데 쟤가 입에 담으니 어째 진짜 같아서 뭐라 할 수가 없다. 나는 조금 작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 그런 거 이기고 다니지 말아줄래?”

“ 말해.”

“ 뭘?”

“ 황실이 빡치게 하면. 바로 얘기해.”

얘기하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데…?

머리채를 잡혀 감옥으로 끌려가지 않는 이상 황실을 고자질 할 일은 없을 것 같지만 일단 난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나중에 노망나서 ‘이 나라 지워줘’ ‘저 가문 지워줘’라고 칭얼대지 않도록 사전에 치매예방이 힘써야겠네. 지도모양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게 노력을……는 나 지금 노후 생각하는 거니? 어머어머! 미친 앞서가는 거봐, 어머어멋!

“ 크, 크흠. 참, 눈따따에 텔레포트마법 걸린 거 맞지? 손을 잡은 채로 시동어를 외치면 여기로 이동하는 거고.”

난 화제를 돌렸다. 아윈이 가볍게 긍정한다.

“ 맞아. 잘 기억해.”

“ 근데 왜 시동어가 ‘우리 집’이야?”

눈따따의 팔을 놓고 몸통을 붙들며 내가 물었다. 마탑의 건물주가 된 기억은 없는데. 그 의아함에 대고 아윈이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 곧 그렇게 될 테니까.”

아, 그런 거였어? 곧 마탑이 우리 집이 되는구나. 그것 참 나도 몰랐던 나의 이사계획!……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요 탑주양반!

“ 지, 진도가 너무 빠른 것 같습니다.”

“ 무슨 진도?”

물어오는 아윈의 얼굴이 너무 태연해서 순간 내가 착각하고 있는 건가 했다. 혹시 우리 집에 내가 모르는 사전상의 뜻이? 아니면 마탑의 주식을 강매하겠다는 뜻인데 내가 김칫국을?

말끔하고 천연스러운 상대의 표정에 사고가 혼란에 빠질 무렵이었다. 동공지진을 일으키는 나를 앞장서 아윈이 방의 문을 열었다.

“ 내려가. 탑 안내해줄게.”

나는 눈을 껌벅였다. 자세만 봐선 저번처럼 외벽을 보여주면서 사람 놀리는 게 아니라 통상적인 매뉴얼에 따라 제대로 구경시켜주려는 것 같았다. 난 주섬주섬 혼돈을 추스르고 반신반의 상태로 발을 놀렸다. 세상에서 가장 몸값이 비싼 안내원이 레이디를 에스코트하는 기사마냥 정갈한 몸짓으로 나를 이끈다.

이, 이거 기분이 새롭구먼.

어색하게 문턱을 넘자 끝없는 계단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원형을 그리는 나선모양으로 맨 아래층부터 여기까지 이어져있는 듯싶었다. 이제 이걸 타고 내려가면서 역순으로 보여주려나? 생각하자마자 몸이 붕 떠오른다. 아주 높이는 아니고 지면에서 반 미터 정도였다.

“ 헛.”

그리고 내 몸은 둥둥 뜬 채로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가 꼭 에스컬레이터 같았다. 호오, 이 느낌! 이거 굉장히 오랜만인걸!

“ 풉.”

“ 왜 웃어?”

“ 아니 그냥, 이렇게 내려가는 게 웃겨서.”

반갑기도 하고. 마법이 재현해준 현대문물의 탑승감에 비실비실 뜻 없는 웃음이 나왔다. 실실거리는 와중에 옆얼굴로 아윈의 시선이 느껴졌다.

“ 웃길 것도 많네.”

못 봐주겠으니 그만 웃으라는 말보단 훨씬 상냥한 대사였다.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치는 시선에 널뛰는 심장을 다스리며 내가 응했다.

“ 자주 웃으면 좋잖아.”

“ 그래. 하긴, 나도 고객님 얼굴만 보면 웃겨.”

뭔 뜻이냐 그거.

왠지 생김새를 디스 당한 기분에 심각한 표정을 장착할 때였다. 그새 한 층을 다 내려왔는지 움직이던 것이 우뚝 멈춘다. 나는 바닥에 발을 디디며 슬쩍 위를 올려다보았다. 높이만 보면 두세층은 이동한 것 같다.

“ 어디야?”

“ 앞에, 문.”

“ 그냥 막 열어?”

어디로 통하는지 알 수 없는 낯선 문이 말마따나 전방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손잡이가 멀지 않았지만 나는 잠깐 주저했다. 여기 알고 보니 마탑의 누군가가 생활하는 거처라거나, 뭐 그런 거 아냐? 문을 벌컥 열었더니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있던 모르는 사람과 카페베네 로고를 띄우며 조우하고 그런다거나? 본의 아니게 그 사람한테 씻을 수 없는 기억을 남겨주게 된다거나?

“ 난 수치플레이는 별로 취향이….”

엄하게 진행되는 상상에 머뭇거리는데, 그사이 문이 알아서 틈새를 벌리기 시작했다. 헐. 손도대지 않았는데 자기가 스스로. 아윈이 한 짓인지 문의 능력인지는 모르겠지만 문틈은 점차 간격을 늘려갔다.

입구는 머잖아 활짝 열렸다. 완전히 드러난 내부의 풍경에 내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 들어가.”

“ 뭐야, 여기?”

발을 들이면서 난 연신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서울시내 한복판에 처음 놓인 시골뜨기 같은 고개돌림이었지만 의식할 정신도 없었다. 끝없이 넓은 방에 하나하나 시선을 앗는 온갖 물품들이 줄지어 늘어서있었다.

헛, 이건! 헤으응포터에 나올 것 같은 지팡이! 앗, 저건! 하으응의 움직이는 성에 나올 것 같은 허수아비! 아니, 요건! 찰으응의 초콜릿공장에 나올 것 같은 모자!

인어공주에 등장하는 문어마녀가 들고 있을 법한 오색의 약병이나,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냐고 물어보면 대답을 해줄 것만 같은 커다란 거울도 눈에 들어왔다. 나는 하나씩 발견할 때마다 헐, 오오, 와우 등의 감탄사를 아끼지 않았다. 종류만 보면 잡동사니에 불과했지만 마탑의 물건이라 그런지 어딘가 풍겨오는 기세가 남달랐다. 얘네들 전부 뭐 하나씩은 능력이 있는 친구들인가?

시야에 닿는 모든 걸 열렬히 관찰하다 갓 눈에 띈 목걸이를 보고 있을 때였다. 저건 매직키드 마수으응에 나올 것처럼 화려하게 생겼네. 아윈이 말을 걸었다.

“ 고객님, 손.”

“ 응?”

다른데 혼이 팔려있던 상황이라 나도 모르게 별 생각 없이 손을 내밀었다. 깜짝 놀라며 정신이 되돌아온 건 내뻗은 손을 다른 손바닥이 감싸듯 잡아챈 직후였다. 난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아윈에게 붙들린 내 손을 응시했다.

“ 손은 왜….”

해악한 접촉이라며 시끄럽게 울리는 경보음을 비집고 겨우 꺼낸 말은 제대로 이어지지도 못했다. 아윈이 불쑥 내 새끼손가락을 타고 웬 반지를 끼워주었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마디 안쪽으로 자리 잡는 것에 내가 입을 떡 벌렸다.

“ 뭐, 뭐야?”

누군가 싶을 정도로 섬세한 손길도 손길이지만 반지의 존재가 더 충격적이었다. 반지? 갑자기 무슨 반지? 외관은 꼭 반으응의 제왕에 나오는 절대반지를 연상시키는 둘레에 가운데 동그란 원석이 박혀있었다. 무엇이야 이게. 그때까지도 여전히 손을 감싸고 있던 아윈이 물음표를 다섯 개는 띄운 내게 눈을 맞춰왔다.

“ 고객님.”

“ 어?”

“ 고객님이 평소에 하도 스크롤만 믿고 돌아다녀서. 그러다 위험에라도 처하면 내가 기분이 많이 좆같을 것 같거든.”

“ …….”

그간 스크롤이 목숨을 담보해주는 것처럼 굴었던 건 사실이라 할 말이 없었다. 얌전히 하는 얘기를 듣고 있으려니 아윈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 앞으론 이거 믿고 돌아다녀.”

“ 이게 뭔데?”

“ 공격마법 아티펙트.”

말이 끝나게 무섭게 신체가 이동했다. 숨 한번 내쉴 겨를도 없이 눈만 깜빡이는 사이 장소가 확연히 뒤바뀌었다. 허허벌판? 탁 트인 평지의 경관이 내게 어서 오라며 인사한다. 어디냐고 묻기도 전에 아윈의 입이 먼저 열렸다.

“ 반지 내밀고 따라 해봐. 파이어볼.”

파이어볼? 나는 눈을 깜박이다 이내 파하 웃었다. 아 그 귀여운 공격마법. 그거였어? 이미지를 상기한 내가 곧장 별 망설임 없이 손을 전방으로 뻗었다. 여타 게임이나 소설에서 늘 기초마법으로 소개되어온 친구라 그런지 발동시키는 것이 대수롭지 않게 느껴졌다. 그러니까, 어른 머리통만한 불덩이였지? 허공을 향해 내가 가벼운 어조로 중얼거렸다.

“ 파이어볼.”

콰아앙! 콰앙! 쿵!

“ …….”

그리고 난 말을 잃었다.

뭐야?! 파이어볼이라며!

나타난 결과는 전혀 귀엽지도 가볍지도 않았다. 나는 반쯤 사라진 정신으로 방금 목격한 것을 되새겼다. 사람이 대자로 뻗은 채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면 만들어질 법한 원, 그 동그라미만한 거대한 불덩이가 하나도 아니고 세 개나 연달아 날아갔다. 그러더니 아윈이 세운 듯한 무형의 실드에 부딪혀 웅대한 불벽을 그려냈는데, 그것이 어찌나 끝없이 올라가던지 그야말로 해일과 다를 게 없었다. 열기만 남기고 사그라진 후에도 망막에 남아 아른거릴 만큼 인상적인 광경이었다.

“ 파이어…으응?”

불신과 혼란과 놀람이 한데 섞여 머릿속을 거닐다 목소리를 타고 흘러나왔다. 이게……정녕 무엇이오? 이것이 진정 파이어볼이오? 그렇다면 지금껏 내가 사실이라 여겨온 이 친구에 대한 정보는 죄다 짜가였단 말이오? 그렇단 소리요?

혼돈의 도가니탕에 밧줄을 내린 것은 아윈이었다.

“ 약간 손봤어.”

“ …약간?”

혼란은 사라졌다. 대신 ‘약간’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와 상대에게 들이밀고 싶은 기분이 고개를 디밀었다.

난 조금 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진 시선으로 반지를 응시했다. 절대반지에 눈알 박힌 것처럼 생긴 녀석에게서 숨길 수 없는 위용이 뿜어져 나왔다. 아윈은 이제부터 이걸 믿고 돌아다니라고 했다. 그럼 여차할 때 스크롤을 찢을 게 아니라 얘로 마법을 갈기란 뜻인데…….

‘ 혀, 현상수배범.’

최소 반경 얼마이상은 초토화시킨 뒤 치안대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겠지. 미래가 선하다. 골목길에서 불량배라도 한번 상대했다간 ‘골목어귀의 노란사신’이라는 전설이 탄생할 것만 같았다.

‘ 봉인하자.’

나는 이것을 손이 아닌 마음에 간직하기로 결심했다.

“ 말고도 하나 더 있어.”

그러나 마법은 끝이 아니었다. 치고 들어온 아윈의 목소리가 불길하다. 하나 더? 그게 뭐냐는 의미를 담아 물끄러미 눈길을 던지자 말이 이어졌다.

“ 메테오.”

“ 뭐?! 메테오? 그건 이름부터 지나치게 장엄……아차.”

쓸 생각은 없었다. 정말이었다. 취소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반지가 내 말을 들어줄리 만무하다. 쾌청하던 오전의 하늘이 한순간 붉은 장막이라도 친 듯 색을 바꿨다. 이내 쏟아지는….

콰쾅! 쿠과광! 쿠아아앙! 콰광!

“ …….”

장관을 눈에 담고 있으려니 알아서 뇌리에 재생되는 BGM이 있었다.

운석이 내린다~

샤랴랄라라랄라~ 샤랴랄라라랄라~

샤랴랄라랄랄라~ 샤랴랄라라랄라~

‘ 하하 미친.’

무조건 봉인하자. 나는 재차 결심을 다졌다.

============================ 작품 후기 ============================

공갈단: 사실 우린 살아있었다! 크킄! 그때의 복수를 해주마!

라테: 얘들아 그냥 가렴...난 이미 저잣거리의 노란사신...후...넘나 강해진것..

공갈단: ?!

+

엘리아냥: 사랑이 내린다~샤라랄라랄랄라~

독자님들: 실드

엘리아냥: 아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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