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76 8. 전에 알던 너도 아냐 =========================================================================
케니스는 확실히 모든 생물학적 여성들과의 접촉을 기피하는 중증의 여혐 환자였지만, 본디 소설이란 그렇듯 여주인공의 앞에선 그 증세가 말끔히 사라지는 편이었다. 첫 만남 때 나무에 올라있던 이벨린을 아무렇지 않게 몸으로 받아내었던 것부터가 그랬다. 그 뒤로도 그녀의 신체에 닿는 것에 일말 거부감을 내비친 적이 없던 그였으니, 이제와 돌연 뒤바뀐 상태에 고민이 드는 것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찰나 고심한 케니스가 시기를 묻는 질문에 대답했다.
“ 국립 도서관에…들렀던 날 이후인 것 같군.”
“ 저랑 각하랑 친구 맺은 날이요?”
케니스는 내 다른 관점의 서술에 미간을 슬쩍 찌푸렸으나 이내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라며 떨떠름한 긍정을 뱉었다. 나는 케니스가 떠름해하든 말든 놔두고 사고에 잠겨들었다.
이벨린과의 접촉이 그 근처를 기점으로 갑작스레 싫어졌다라. 아 그래서 사냥대회 때 그렇게 소극적이었던 거구나? 사냥감을 바친 뒤 해야 하는 영광의 손등키스를 못하겠어서. 하기야 닿는 것도 꺼려지는 마당에 키스는 오죽할까. 근데 정말 이유가 뭐지…설마 이제와 이벨린의 주인공버프가 사라져 마음이라도 식은 건가……는 잠깐, 마음?
생각해보니 이게 제일 중요한 거 아냐? 난 머리를 강타하는 일말의 가능성에 떨리는 목소리를 꺼냈다.
“ 각하, 혹시 이벨린에 대한 연정은…그대로 신지…?”
이거. 이거 진짜 큰일이다. 만약 연애감정이 여전하다? 대상을 사랑하는 마음은 동일한데 여성혐오 증상 때문에 손을 못 댄다? 그렇다면 케니스는 진정 세상에 둘도 없는 불쌍한 포지션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사랑하는 여인을 못 만져. 왜? 여혐이라서! 세상에 손수건, 아니 손수건도 모자라겠다. 양동이가 필요하다, 양동이! 눈물 받을 측우기!
친구의 아픔에 함께 통곡할 의리가 준비되어있는 내게 케니스가 곧 답을 주었다.
“ ……모르겠군.”
“ 모른다고요?”
“ 그래.”
짧은 공백의 끝에 등장한 것은 확실한 기다 아니다가 아닌 꽤나 애매모호한 답이었다. 나는 장전한 눈물을 도로 집어넣고 케니스의 응답을 되새겼다. 연정이 그대론지 아닌지 모르겠다?
헷갈린다는 것부터가 이미 아닌 쪽으로 치우쳤다는 소리다. 난 냉큼 입을 열었다.
“ 제가 관심법으로 각하의 마음을 파헤쳐드리죠.”
“ 관…뭐?”
“ 이벨린을 향한 각하의 연정은 식었습니다. 네, 식었어요!”
“ 어떻게 그리 자신하지?”
케니스가 불신의 낯으로 날 응시했다. 나는 가능한 프로페셔널한 표정을 지어 보이려 노력하며 머리카락을 위로 쓸어 넘겼다. 이것은 자신감의 표출!
“ 한때 제 별명이 영험한 라테도사였습니다.”
“ 허.”
“ 그런 비웃는 얼굴 하셔도 사실이거든요. 눈앞의 상담사를 믿으세요, 각하. 각하의 사랑은 쥐뿔만 남기고 사라졌어요.”
난 일부러 불변의 사실을 전달하듯 단호하게 말했다. 물론 도사운운은 개뻥이다. 그런 웃긴 별칭이 있었을 리가. 다만 뒤의 말들은 진심이었다. 여성혐오증세가 이벨린을 예외로 두지 않게 된 이상 감정이 남아있으면 남아있을수록 케니스만 고통스러워질 뿐이었다. 차라리 실상이야 어떻든 완전히 마음이 식었다고 생각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나는 점차 흔들리기 시작하는 케니스를 향해 두 눈에 힘을 주었다. 하앗, 받아라 신뢰의 빔!
“ 한번 떠올려보세요. 각하께선 왜 이벨린을 좋아하셨던 거죠? 솔직히 별 이유 없으셨잖아요. 아닌가요?”
“ 그건…….”
“ 우연히 목격했던 각하와 이벨린의 첫 만남이 생각나네요. 나무에 올라가 내려오지 못하고 쩔쩔매던 모습. 그야 귀여워보였을 수 있죠. 하지만 사랑에 빠질만한 특별한 이유라고 보긴 어려워요. 만약 제가 그러고 있었다면 어떠셨겠어요?”
“ 한심해서 두 번 쳐다보는 게 괴로웠겠지.”
“ 대답이 빠르시군요. 각하의 차별에 팝콘을 탁 치고 가고 싶은 기분이지만 어쨌든 그거예요. 남들이 했으면 눈살이나 찌푸리고 지나갔을 그 행동! 상대가 이벨린이었기 때문에 호감을 느꼈던 거죠. 그렇다면 이유가 뭐냐?”
“ …….”
“ 없어요. 이유 없음. 각하께선 ‘그냥’ 이벨린에게 관심을 가지셨던 거예요. 그냥 마음이 흐른 거죠. 듣고 보니 맞는 말 같지 않나요?”
“ …어느 정도는.”
김첨지의 ‘어느 정도는’은 ‘정말 그렇군’으로 치환이 가능하다. 난 기세를 얻어 더욱 당당하게 주장했다.
“ ‘그냥’생긴 감정은 마찬가지로 ‘그냥’사라집니다. 사유 없이 들어온 돈은 사유 없이 나간다고 하잖아요? 같은 거예요.”
기실 저 의견은 갖다 붙이기 나름이었다. 특정한 이유가 있어 생겨난 감정은 그 이유가 소멸되면 함께 없어지지만, 이유 없이 그냥 생겨난 감정은 다른 것에 영향을 받지 않고 쭉 이어진다는 반대의 관점도 말이 되니까. 게다가 이런 유명한 대사도 있잖은가. 게임하는데 이유가 어딨…아, 아니. 좋아하는 데 이유가 어디 있어?
“ 그러니까 각하께서 어느 순간 이벨린에게 손을 댈 수 없게 되신 건, 이벨린을 향한 감정이 어느 순간 사라졌기 때문인 거죠. 몸은 마음 따라 가니까요.”
그래도 케니스에겐 이 견해가 먹히길 바랄 뿐이었다. 과정이야 어쨌든 그는 지금 내 친구였고, 나름 우정 비슷한 것도 느끼고 있었다. 친구가 이룰 수 없는 사랑의 괴로움에 빠져 하루하루를 초록색 이슬로 연명하길 바라는 사람은 없다.
게다가 이벨린을 향한 케니스의 연정이 소설의 억지력에 의한 것일 가망마저 존재하는 판이었다. 이 세계는 분명 현실이었지만, 원작의 내용을 구현하려는 무형의 힘이 작용하고 있었던 것 또한 사실이니까. 이벨린에게 닿지 못하게 된 건 여주인공 버프…즉, 그 힘이 차츰 사라지거나 옅어져서는 아닐까?
온전한 자기의 것이 아닌 억지감정이라면 이르게 털어낼수록 좋을 것이다. 다행히도 케니스는 내 나불거림에 아주 많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저 동공지진은 넘어가기 직전인 사람의 동공지진이로군!
“ 정리하자면 이벨린과의 접촉이 싫어진 이유는 더 이상 그녀를 요만큼도 좋아하지 않아서! 가 되겠습니다.”
“ ……그런가.”
“ 그렇죠.”
“ 그렇군….”
“ 그렇습니다.”
설득당한 케니스는 이내 입을 다물더니 생각에 빠져들었다. 뭐, 사실 자기감정이니 자기가 가장 잘 알겠지. 나는 내담자가 사고의 늪에 잠긴 동안 방금까지 화제에 올렸던 다른 인물을 떠올렸다.
이벨린.
난 그녀의 단아한 분위기며 생김새를 상기하다 볼을 긁적였다. 이벨린은 소설이 진행되는 내내 시종일관 소극적인 태도를 유지한다. 남주인공 셋이 대답이나 선택을 직접적으로 요구한 적이 없으니 미온하다 탓하기도 애매한 노릇이지만, 세 명이 만나자는 대로 다 만나주며 누굴 콕 집어 좋다고도 표명하지 않았으니 일부 독자들에겐 질타를 받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어장녀라는 타이틀도 독자들이 붙여줬지, 참.
구 어장녀 이벨린은 작금 뭘 하고 있으려나. 희한할 정도로 정이 안 들긴 하지만 명목상이나마 내 친구인데 한번 찾아가봐야 할까. 나는 문득 현재의 상황에 대한 이벨린의 소회가 궁금해졌다.
아윈은 예전에 어장을 탈주했고 이젠 케니스마저 떠날락 말락 한다. 아쉬울까? 받아줄 마음은 없지만 막상 날 안 좋아하면 짜증난다던 과거의 어느 동창처럼. 걘 진짜 현실 어장주인이었지.
생각하다 난 금방 고개를 내저었다. 설마. 이벨린은 천사표 여주인공이었다. 활자위의 고정된 캐릭터가 아닌 움직이는 현실 속의 사람이라지만, 설정을 기반으로 한 성격정도는 타고났을 것이다. 천사가 무슨 그런 생각을 해. …가만, 근데 천사표라는 말을 작가가 직접 언급했던가?
“ 도움이 됐다.”
“ 네? 아, 네.”
상념이 흩어졌다. 나는 원인인 케니스에게로 초점을 돌렸다. 그사이 생각을 정리하면서 깨달음이라도 얻었는지 알게 모르게 개운함이 느껴지는 낯빛이었다. 오! 그럼 명쾌한 고민해결인가? 난 축하의 박수를 쳐주기 위해 손을 들었다.
“ 고맙군.”
그리고 굳었다.
“ 엥.”
김첨지에겐 몹시 어울리지 않는 순순한 감사인사였다. 나는 들린 손으로 나도 모르게 귀를 후빌 뻔한 걸 놀라운 통제력으로 참고 눈을 껌벅였다. 에에엥…?
내 표정이 어땠는지 케니스가 평평하던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 그건 무슨 얼굴이지?”
“ 네? 사람 얼굴이요.”
“ …아니, 표정 말이다.”
“ 어멋. 제 표정에 무슨 문제라도?”
“ 몹시 구리군.”
“ …….”
상대의 고맙다는 인사를 듣고 구린 표정을 지었다니 내 잘못이네.
“ 아무튼 뭘요, 친구사이에. 다음에도 고민이 있으면 언제든지 상담하러 오세요.”
라테도사의 상담소는 늘 열려있답니다! 그러면서 막 어디서 주워 시청한 제스처를 취하려던 참이었다. 난데없이 내 품으로 눈따따가 뚝 떨어졌다.
아, 소개를 깜빡했군요. 이 친구는 상담소의 충실한 조수 눈따따……가 아니라! 뭐야!
“ 너는.”
케니스의 시선이 내 옆을 향했다. 정확히는 옆하고도 위였으니 사선이었다. 나는 그 대각선을 따라 천천히 눈길을 옮겼다. 아니다 다를까, 예고도 없이 무법자가 바로 내 곁에.
“ 뜨억.”
“ 고객님, 내가 분신 잘 가지고 다니랬지.”
“ 집안인데….”
난 소심하게 변명했다. 썸남의 웃는 얼굴이 눈부시면서 동시에 살벌했다. 이, 이 모순적인 매력을 지닌 남자 같으니. 왜 온 건지 궁금하지만 어차피 별 이유 없겠지?
하는 양을 지켜보던 케니스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 다른 손님이 온 것 같으니 난 이만 가보지. 더 있을 이유도 없고. 그런데….”
남색 눈동자가 나와 아윈을 번갈아 응시한다. 끌린 말이 이어졌다.
“ 무슨 사이지?”
질문은 하지만 어느 정도 짐작 가는 바가 있다는 기색이었다. 어…그렇게 티나나? 어째 조금 민망해져 답을 고르는데 아윈이 한발 빨랐다.
“ 보면 몰라?”
어머 얘! 너무 도발적인 거 아니니? 그리고 어, 어깨에 이 손은 뭐니?
케니스는 그 행동과 대꾸에 고개를 끄덕였다. 의심하던 걸 확신했다는 태도였다. 그러더니 얼굴빛이 묘하게 변한다. 잠깐, 저 어딘지 모르게 기분 나쁜 표정은 뭐지?
“ 취향이 괴상하군.”
뭐? 너 뭐라 그랬냐 방금.
“ 알면 손댈 생각 말고.”
넌 또 알긴 뭘 알아?
“ 내 눈은 정상이니 그런 황당한 기우는 버리는 걸 추천하지.”
“ 그 멀쩡한 시력 잘 지켜, 평생.”
아니 이것들이 쌍으로?
나는 기가 차 멍 때리다 둘 사이로 급히 끼어들었다. 대화가 빡치기도 빡치지만 아윈의 기우가 정말로 기우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나랑 케니스? 푸헐. 론드미오와 케니스의 웨딩마치마냥 터무니없는 조합이다. 중간에 몸을 집어넣은 내가 손을 번쩍 들었다.
“ 여긴 내 썸남. 여긴 내 친구.”
차례로 가리킨 내가 이어 한쪽으로 손을 뻗었다. 케니스를 향해서였다.
“ 그리고 친구와 나는 결코 닿을 수 없는 사이.”
아니나 다를까 질색한 얼굴로 케니스가 내 손을 피해 멀찍이 뒤로 물러났다. 거리를 보니 약간 미안해지는군….
“ 죄송…그래도 오해받는 것보단 나으실 것 같아서. 아무튼 아윈, 봤지? 걱정 전혀 없다?”
“ 뭐….”
눈이 마주친 아윈이 픽 웃었다.
“ 싫어하는 건 진짜 같네.”
상당히 마음에 들어 하는 기색이었다. 휴.
여하튼 상담을 마친 케니스는-첫 고민상담이 성공적으로 끝났다는 건 제법 뿌듯한 일이었다-그렇게 돌아갔다. 설명을 위해서였다지만 손대려는 시늉을 했던 게 미안해서 배웅 내내 슬쩍 눈치를 봤는데, 다행히 케니스는 자기도 연적취급보단 그편이 낫다며 내 불편함을 덜어주고 저택을 떠났다. 크흡, 고맙구나 친구야. 너도 꼭 언젠간 여혐이 고쳐져서 참한 짝을 만나길 바랄게.
친구를 보내고 나니 아윈과 둘만 남았다. 나는 눈따따로 시야를 반쯤 가려 상대의 해악함을 중화시키며 물었다.
“ 그나저나 넌 내가 여기 있는 거 어떻게 알고 왔어?”
얘를 던져준 걸 보면 방에 들렀단 소린데. 릴리나 에슐라한테 들었을까?
아윈은 대답 대신 내 눈앞을 가리고 있는 눈따따를 잡아 내렸다. 그러고는 다른 얘기를 한다.
“ 고객님. 분신 손잡아.”
“ 응? 손?”
“ 어서.”
난데없이 웬 손. 난 갸웃거리면서도 순순히 눈따따의 손인지 팔인지 구분안가는 것을 시키는 대로 붙들었다. 아이쿠 쬐깐해.
“ 따라 해봐. 우리 집.”
“ 우리 집?”
즉시였다. 목소리가 울리자마자 눈따따가 제 눈에서 빛을 뿜었다. ?! 그 위엄 넘치는 안광에 경탄할 새도 없이 온 시야가 한순간에 뒤바뀐다. 이윽고 눈에 들어오는 풍경에 내가 깜짝 놀라 아윈을 돌아보았다. 같이 이동했는지 여전한 위치를 고수하고 있는 아윈과 시선이 맞닿는다. 야, 여긴….
“ 마탑이잖아.”
============================ 작품 후기 ============================
라테: 앗 저기 아윈이다
비숏: 히익
라테: 앗 여기 내손이다
케니스: 히익
+
어제 밤낮 되돌리려고 하루를 꼴딱 샜는데 오전에 너무 졸려서 '-' 안 자려고+간만에 놀려고 나홀로 가장 가까운 놀이공원을 갔어요!
놀이공원: 텅텅
나: ...?
나: (롤러코스터를 혼자 타본다)
나: (다 탐. 뻘쭘)
~몇십분 뒤~
나: (롤코를 타러감)
알바: 또 오셨네요^^
나: (매우 뻘쭘)
~타고난 뒤~
나: (혼자 바이킹을 탄다)
알바: 어 아까 타셨었죠
나: ㅎㅎ..(민망)
나: (바이킹 타는중. 혼자 만세. 혼자 미약한 함성)
알바: 놀이기구 많이 타셨어요?
나: ㅎㅎ네..ㅎㅎ(말거니까 더 민망)
+혼자 롤코 탈때
알바: (놀이공원 멘트)(마이크) 하나둘셋 하면 출발~하고 외칠게요~준비되셨나요?
나: ...
알바: ㅎㅎ준비되셨나요?;;
나: (헉 대답해야 하는가) ㄴ..네
알바: 자 그럼 하나둘셋!
나: ㅊ..출발~
롤코: (출발)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진짜 사람이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후후ㅎㅎㅎㅎ하하
^-^....
민망해서 놀이기구를 못타겠더라구요..민망해서..^=^...
크흑.....(오열
그렇게 정처없이 떠돌다 마침 애기들이 보기길래 걔들과 함께 빙빙 돌아가는 놀이기구 탔다가 멀미나서 집에 옴.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