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경하는 들러리양-52화 (52/100)

00052  5. 에이레네의 밤: 무도회  =========================================================================

아윈은 이벨린을 곧잘 리드했다. 출신과 소문을 따져보면 춤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인물이었는데, 의외로 그는 실수 없이 파트너를 능숙하게 이끌었다. 중앙의 화려한 조명아래 마탑주의 수려한 외모가 한층 더 빛을 발한다. 나름 그가 어떤 미친놈인지 잘 알고 있다 생각하는 황태자마저도 아윈의 용모가 천사를 떠올리게 한다는 것은 인정하는 부분이었다.

황태자는 춤을 추는 두 남녀를 가만히 주시했다. 질투가 나야하는 광경일 텐데도 이상하리만큼 위기감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굳이 이 상황에서 이벨린에게 춤을 신청한 상대의 저의가 의심스럽기까지 했다.

물론 그렇다고 아예 눈에 거슬리지 않는다는 건 아니다. 어쨌든 두 사람은 겉보기엔 다정한 한 쌍이었으니까. 그러나 황태자는 곧 눈앞의 장면보다 다른 것이 더 제 신경을 건드리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챘다. 눈앞의 거슬림을 덮는 것은 궁금증이었다.

그는 대상의 이름을 기억해냈다. 라테 엑트리. 그녀는 왜 회장 바닥을 그리 뒹굴었을까? 친구로 보이는 이를 바깥으로 데리고나가 지금쯤 무슨 얘기를 하고 있을까. 황태자의 기억 속 라테 엑트리는 신기할 정도로 독특한 인물이었다. 처음에는 제 관심을 끌기 위해 그리 구는가 싶었으나, 거듭되는 만남에서 그것이 아님을 느꼈다. 그녀는 한 톨도 그의 주의를 갈구하지 않았다. 그냥 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다.

황태자는 전방을 응시하다 조용히 발을 돌렸다. 곡은 길다. 그는 기다림 대신 제 호기심을 따라 회장을 나서기로 했다. 론드미오는 라테가 이목이 없는 곳을 찾았을 거라 추측했다. 아마도 정원. 그는 제 감을 꽤 신뢰하는 편이었다. 황태자의 발걸음이 망설임 없이 한밤의 정원으로 녹아들었다.

“ …않을까? 솔직히……잖아.”

기감을 확장하자 어렵지 않게 기척과 소리를 잡아낼 수 있었다. 드문드문 스치듯 들리는 목소리가 귀에 익다. 조금 더 걷자 평평한 돌덩이 위에 편히 걸터앉은 두 영애가 눈에 들어왔다. 아니, 정정한다. 황태자는 감상을 약간 수정했다. 정확히 말하면 친구인 쪽은 다소 불편한 기색이 비치는 자세였으나, 라테는 돌덩이가 자기 집인 것 같았다.

“ 라테는.”

“ …….”

“ 라테 너는, 황태자전하를 봐도 아무 느낌도 안 들어? 꿈에 그리던 왕자님을 만난 것처럼 가슴이 뛰거나하지 않아?”

대화가 다시 시작된다. 황태자는 기척을 지우고 둘의 말소리에 신경을 집중했다. 담화주제가 퍽 흥미로웠다. 어딜 보나 그는 지금 바람직하지 못한 ‘엿듣기’를 자행하고 있었지만, 그의 마음상태는 한줌 죄의식 없이 뻔뻔했다.

“ 난.”

난?

“ 나는 원래 다른 종족한텐 안 설레.”

잠깐의 텀을 두고 흘러나온 대답은 역시나 말할 것도 없이 신선했다. 신선을 넘어 신기할 지경이다. 저런 말을 일말 웃음기 없이 진지한 얼굴로 뱉고 있다는 게 더 그랬다. 졸지에 저 둘과 다른 종족이 된 황태자는, 비실 새어나오려는 웃음을 참다 카노가 깨달음을 얻은 표정을 짓자마자 그 자리에서 눌렀던 웃음을 터뜨렸다.

“ 푸핫! 큭큭큭.”

“ 뭐야! 이 남주인공 같은 웃음소리는!”

라테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릴 하며 팩 시선을 주었다. 쳐다보는 얼굴이며 표정이 마치 산속에서 과일이나 까먹던 너구리를 놀래킨 기분이었다. 비록 너덧 바퀴 구른 듯 몰골이 엉망인 너구리였지만.

“ 화, 황태자 전하…?”

믿을 수 없다는 듯 떨리는 낯선 목소리가 그를 호칭한다. 이쪽은 좀 익숙한 반응이었다. 달빛을 받아 제 빼어남을 만천하게 자랑하고 있는 황태자의 용모에 카노가 넋을 놓으며 얼굴을 붉혔다. 뭐, 이것도 익숙하다. 바들바들 떨며 인사를 올리기에 되었으니 얼굴을 들라 허락하는데, 그때 라테가 돌연 바락 외쳤다.

“ 카노!”

“ 어, 어?”

“ 날 보지 마. 계속 앞을 봐. 그리고 이겨내!”

갑자기 이겨내긴 뭘 이겨낸단 말인가. 알아듣지 못한 건 그뿐인 듯 카노가 몸을 흠칫했다. 그러더니 라테와 함께 비장한 낯을 하며 저를 올려다본다. 쟤네 지금 뭐하나.

“ 이겨내! 할 수 있어!”

“ …읏…….”

“ 카노! 너는 할 수 있어!! 이겨낼 수 있어!”

아니 진짜 뭐하나.

누가 보면 자기가 저주라도 걸고 있는 줄 알겠다. 뭘 자꾸 이겨내? 황당에 빠진 황태자의 벽안을 마주한 채로 카노가 결의를 다지듯 주먹을 꽉 쥐었다. 잔뜩 상기된 낯이면서 눈을 피하지 않는다. 옆에선 혼신의 힘을 다한 라테의 응원이 한창이었다. 지치지도 않는다.

“ 이겨내!!”

그러니까 대체 뭘?

그 판국이 그대로 흘러가기가 얼마나 되었을까, 마침내, 마침내 잔뜩 굳어있던 카노가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홍조가 가시고 안색이 평온해진다.

눈물마저 머금고 카노가 라테를 불렀다.

“ 라테…. 나, 이겨냈어….”

“ 카노….”

“ 나 해냈어…!”

“ 카노!”

“ 라테!”

뭘 해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뭔가를 해낸 듯 대뜸 둘이 부둥켜안는다.

황태자는 얼싸안고 서로 감격을 나누는 두 영애를 눈앞에 두고 혼돈으로 빠져 들어갔다. 뭐지 얘들. 정말 뭐지. 론드미오가 헛웃음을 흘렸다. 당사자들 말고는 달빛도 저들이 저러는 연유를 모를 것 같았다.

*

뿌듯하다. 난 만족이 가득한 미소를 얼굴에 걸쳤다. 카노를 악의 구렁텅이에서 건져냈다! 여주인공을 질투해서 찻물 뿌렸다 그 찻물 되는 쩌리엔딩에서 꺼냈어! 나는 조금 전 카노와 마주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던 순간을 기억했다.

그 정원에 황태자가 나타난 건 의외였지만, 덕분에 카노의 뜻 깊은 도전과 성공을 이루어낼 수 있었다. 카노는 론드미오의 얼굴을 이겨냈다. 내 가르침(?)대로 황태자를 소설 속 인물처럼 여길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이제 적어도 카노가 헛된 기대를 품다 투기에 자멸하는 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마음에 드는 수확이었다.

나는 이번일로 내가 생각보다 카노에게 정을 주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이벨린이나 물고기들과 마찬가지로 소설 속 인물들이라는 인식은 있었지만, 그래도 역시 몇 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짧지 않았다. 그 시간을 마주대했는데 고작 소설 캐릭터로만 느낄 수 있을 리가 없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에슐라나 벨벳 유모는 그보다 더 아끼겠지.

앞으로도 살뜰히 챙겨줘야겠다.

난 다짐하며 발을 놀렸다. 황태자는 회장으로 돌아갔고, 카노는 축제동안 성의 객실을 대여해 머무르는 터라 그곳으로 귀환했다. 나는 그럼, 집에 가야지.

마차를 부르기 전 잠깐 갈등이 일었다. 이 꼴로 한 시간 넘게 마차를 타는 것이 좀 꺼려진 탓이다. 머리 산발이야 상관없는데 샴페인으로 젖은 부분이 찝찝했다. 스크롤을 쓸까 고민하다 문득 잊고 있던 비숏의 존재가 머리를 스쳤다. 그러고 보니 얜 어디까지 도망간 거야? 내 공짜 텔레포트!

“ 고객님.”

“ 악!”

난 반사적으로 비명을 질렀다. 심장에 안 좋은 아윈이 코앞에 나타나 얼굴까지 들이밀고 있었다. 아, 하지 마! 야! 좀 지척해서 나타나지마, 아오 개매너!

속으로만 욕을 한 사발 뱉어준 내가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났다. 황태자는 그냥 잘생긴 베개였지만, 아윈은 비교적 자주 엮여서 그런가 좀 현실감이 느껴지는 잘생긴 베개였다. 너무 딱 붙어서 얼굴을 보는 건 벅찼다. 나는 혹시라도 베개를 보고 가슴이 뛰는 불상사가 벌어질까 노심초사하며 거리를 벌렸다. 팔을 힘차게 뻗으면 닿을 듯한 거리, 음, 이정도면 됐다.

아 근데 이 미친놈은 왜 툭하면 사람을 놀래키고 난리야. 난 평정을 되찾고 입을 열었다. 목소리에 미처 덜어내지 못한 띠꺼움이 묻어났다.

“ 뭐. 왜.”

사람 불러놓고 대답했더니 이번엔 자기가 입을 다문다. 아 뭐야. 아윈은 용건을 이야기하는 대신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이리저리 살폈다. 관찰하는 것 같기도 하고. 음?

“ 왜? 뭐라도 묻었……많이 묻었지, 참.”

묻은 정도가 아니지. 보지 않아도 엉망일게 눈앞에 그려졌다. 나 이러고 집에 들어가도 되나? 에슐라 기절하면 어쩐담. 그러고 보니 머리 꼴은 반은 쟤 때문이잖아! 저런 재수 없.

“ 특이한 재주가 있어.”

“ 는 놈…뭐?”

“ 사람을 헷갈리게 해.”

뭐라는 거야. 뭘 헷갈리게 해? 난 니 말이 더 헷갈린다. 아윈은 늘 그랬듯 자기만 알아듣는 불친절한 말을 툭 던진 뒤 추가 설명 없이 화제를 바꿨다. 나는 굳이 앞의 말에 대해 캐묻지 않았다. 바뀐 화제가 마음에 쏙 들었기 때문이다.

“ 비숏 잡아다줄까?”

“ 네!”

앗. 나도 모르게 너무 활기차게 대답했다. 하마터면 손까지 들 뻔했어. 내뱉고 나니 공포에 떨며 잡혀올 비숏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당장 텔레포트로 편하게 집까지 갈 수 있다는 기대가 보다 컸다. 게다가 혹시 마법중에 클린 마법이나 워시 같은 거 있지 않을까? 내가 마법사라면 대신 씻어주는 마법부터 개발했을 것 같았다. 설마 나만 그래? 나만 게을러?

============================ 작품 후기 ============================

카노, 라테: 해냈어! 해냈다구! 흑흑 꺄륵

황태자: 뭐야 이 ㅄ들은.....

+

Q. 케니스 죽었나요?

A. ㅋㅋㅋㅋㅋ조..조금만 기다려주세여

++

아빠: 너 소설에 아빠얘기도 쓴다며?

나: (엄마한테 들으셨군..) 아~ㅇㅇ후기에 가족얘기 종종 써. 사람들이 아빠 귀엽대. 아빠얘기 안쓰면 아버님은 오늘 안 나오시냐고 찾는다?

아빠: 하 참나 어이없네 어이없어(함박웃음)

나: ㅋ.....

막내: 언니

나: ㅇ?

막내: 아빠가 언니 소설 쓰는거 제목 뭐냐고 하더라? 한번 보자고. 이모도 물어보더라? 어디서 연재하냐고.

나: ?!

막내: 알려줄까나?ㅎ

나: 제..제발...! 제발 알려주지 마세요!! 제발제발 수치사 안됨 제발 막내님 제바류ㅠㅠㅠㅠㅠㅠ막내님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시키는거다하겟읍니다ㅜㅜ제발 자비좀

막내: 크킄..킄..크하하하핫!!!

나: 흑흑..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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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댓글화력 쩌시네여 (당황)

쓰는 족족 너무 즉석으로 올리는 것 같아서 비축분좀 쟁여놓으려..했더니...화력보고 놀라서 걍 바로 올려따고 한다..."ㅁ" 댓글수 스고이(동공지진

갱장해...''ㅁ'' 추천도 갱장해 ''ㅁ''

++++

hyokee님, 채꼬지님, dhwldp49307님, soulover님, 로메오님 후원쿠폰 감사합니다!^^ 모야모야 너무 감사하자냣 꺄르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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