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경하는 들러리양-14화 (14/100)

00014  2. 두근두근 와작와작 팝콘 팔아요  =========================================================================

미약하게 잠기운이 남은 눈을 몇 번 깜박이며, 짙은 밤색 캐플린(크라운의 높이가 낮으면서 챙이 넓은 여성용 모자=플로피 햇)을 푹 눌러쓰곤 저택을 나왔다. 황성 근처의 저잣거리까진 거리가 꽤 되는 고로 또 마차를 타야했다. 내가 멀미를 안 해서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외출이 깨나 고역일 뻔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거리의 풍경은 아침부터 제법 부산스러웠다. 나는 그 부지런한 움직임들을 멍하니 구경하다 목적지 부근에서 내렸다. 아윈의 출현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었으니 출판사에 잠깐 들를 생각이었다.

디디고 선 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빨간 지붕의 제과점을 지나치면, 바로 지척에 한 눈에 들어오는 큰 건물의 출판사가 있다. 위풍당당 제 풍채를 뽐내는 출판사를 올려다보며 난 으쓱한 기분으로 콧대를 세웠다. 영세한 편이었던 부크의 출판사가 이만큼이나 성장한 것은 구 할이 내 덕이었다. 난 싱글거리며 웃는 낯으로 건물에 들어섰다.

“ 어서 오세요, 무슨 용무로 오셨나요?”

“ 음-부크에게 ‘로즈’가 왔다고 좀 전해줄래요?”

“ 사장님께요? 알겠습니다.”

조금 낯부끄럽지만, 로즈는 내 필명이었다. 나는 시종을 올려 보내고 접대용 의자에 앉아 시간을 때웠다. 쿵쿵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부크가 한달음에 뛰어내려오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 선생님, 오셨군요!”

“ 간만이야.”

여전히 개성 넘치는 곱슬머리가 눈에 띄는 부크는 반색을 하며 날 맞았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넙죽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기실 그가 처음부터 내게 이리 호의적이었던 건 아니다. 삼년 전 내가 다짜고짜 책을 내야겠다며 원고를 들고 찾아왔을 때, 부크는 못마땅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었다. 철없는 귀족가 영애의 장난이라고 생각했겠지. 그러나 내가 쓴 책이 판매부수 1위를 찍는 순간 그는 손바닥 뒤집듯 태도를 바꿨다. 호칭도 아가씨에서 작가님으로, 가장 최근에 종착한 것이 선생님이다. 거 속물냄새 물씬 풍기는 자식. 사실 마음에 들긴 했다.

난 며칠 전 받았던 연락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 다음 작품은 시간이 좀 걸릴 거야.”

“ 아, 그렇습니까? 그럼 얼마나….”

“ 확답은 못줘. 한동안 일이 생겼거든.”

“ 앗…….”

예상대로 그는 시무룩해했다. 힘없이 고개를 떨구는 게 꼭 비 맞은 늙은 개 같았다. 그러나 그런 기색은 아주 잠깐이었고, 부크의 회복은 몹시 빨랐다.

“ 어쩔 수 없죠! 이렇게 된 거 수출 쪽에 신경을 더 기울여야겠군요!”

목소리가 오히려 더 밝아진 것도 같다. 난 어느새 점원이 건네온 차를 홀짝이며 그에게 물었다.

“ 어디로?”

“ 저번에 말씀드렸던 덤킹 왕국와 넨셔 왕국 기억하십니까? 거기 반응이 굉장히 좋아서요, 몇 작품을 더 계약하기로 했습니다.”

“ 흐음.”

“ 판매양상을 봐서 아예 저희 지부를 각각 세울까도 고민 중입니다. 이웃인 라나 왕국은 뭐 말 할 것도 없고…아, 라나에 지었던 출판사 지부를 세 개 늘렸습니다. 인구가 많아서 그런지 활성화가 빠르더군요.”

부크는 신나서 떠들었다. 물론 죄다 내게도 좋은 소식이었다. 난 돈이 쌓이는 환청을 들으며 왠지 더욱 감미롭게 느껴지는 차를 음미했다. 후…후후…후후후후. 어쩜 나 왜 이렇게 잘나가니. 높아질 대로 높아진 콧대가 한층 더 치솟는 기분이다.

사실 이정도의 성공은 나로서도 얼떨떨한 것이었다. 부크의 판매수완이나 잽싸게 관련 상품을 제작해 내다파는 행동력 등을 감안하더라도, 난 어마무시하게 돈을 벌었다. 그 금액이 아주 졸부 저리가라여서, 소설집필을 비밀로 하고 있는 난 그 돈을 미처 집으로 가져가지 못해 출판사에 보관할 정도였다.

책이 팔리는 속도를 찍어내는 속도가 따라잡지 못하는 사태에 내가 부크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대체 왜 이렇게 잘 팔리는 것 같냐고. 심지어 남녀공용 장르도 아니고 비모르인데. 당시 내 질문에 부크는 입이 귀에 걸리는 것을 주체 못하며 열변을 쏟아냈다. 그의 설명을 축약하면 즉 내 소설은 빼곡한 전공서적들 사이의 드래곤볼이요, 잔잔한 클래식들 사이의 서태지 음악이었다. 비교하자면 그 정도의 혁명이었다는 것이다. 그리 생각하면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다.

물론 대륙공용어가 쉬운 탓에 문맹률이 바닥을 치는 것도, 책 외에는 딱히 즐길만한 꺼리가 없다는 점도 한몫했을 터다. 어쨌든 참 좋으면서도 신기한 일임엔 틀림없었다.

나는 부크에게 연이어 앞으로의 판매계획과 이번신작의 수입을 마저 듣고 고개를 끄덕인 뒤 손을 내밀었다. 이제 슬슬 다시 나가봐야지.

부크는 활짝 펼친 내 손바닥을 보더니 품에서 주머니를 꺼냈다. 장갑위로 내려앉는 묵직한 주머니 안엔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금화가 가득할 것이다. 이런식으로 나는 종종 필요할 때마다 맡긴 인세 중 일부를 부크를 통해 받아쓰곤 했다. 응, 역시 ATM이 편하다니까.

돈주머니를 갈무리한 나는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자까지 재차 고쳐 쓰는 것을 멀뚱히 쳐다보다 부크가 말을 꺼냈다.

“ 항상 궁금했던 건데 그 돈 다 어디에 쓰시나요?”

진정 궁금하다는 얼굴이었다. 하긴, 내가 쌓일 틈 없이 제법 큰돈을 쏙쏙 가져가는 건 사실이니까. 난 간단하게 대답했다.

“ 사치.”

“ 네에?”

되묻는 부크의 낯엔 황당하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그의 시선이 내 수수한 모자나 원피스에 머무르는 것을 느끼며 혀를 끌끌 찼다. 어허, 사장이란 놈이 저리 생각이 편협해서야. 사치의 세계가 얼마나 넓고 광활한지 몰라? 난 굳이 부연설명을 덧붙여주는 대신 문을 열고 나왔다. 뒤에서 부크가 안녕히 가시라고 인사하는 게 들렸다.

챙이 넓은 모자는 내 얼굴을 가려주는 용도 외에도 초여름의 따가운 햇살을 차단하는 역할을 했다. 날이 벌써 덥네. 햇살이 내리쬐는 날씨는 내게 어서 여름용 얇은 원피스를 구비하라 일러주듯 따끈했다. 난 타고난 흰 피부가 햇볕에 쉽게 타지 않음에 감사하며 주변을 휘 둘러보았다. 사건까지는 여전히 시간이 남았을 테니 뭘 좀 먹는 게 좋을까 싶었다. 나는 우선 발을 떼 그늘이 진 건물 뒤편으로 향했다.

허기는 지는듯한데 어째 확 끌리는 게 없다. 이리저리 눈길만 주며 정처없이 걷다 모퉁이를 막 돌았을 때였다. 웬 어린아이가 길가에 납작 엎드려 구걸을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지저분하고 남루한 행색이다. 난 발을 멈췄다.

‘ 아.’

소설의 배경인 제국은 복지가 꽤나 잘 되어있는 나라였다. 변방은 몰라도, 최소한 수도에서 저처럼 어린애가 못 먹어 동냥을 하는 일은 드물었다. 아니, 솔직히 오늘 처음 본다. 난 눈앞의 이 아이가 이벨린과 아윈을 만나게 하기위한 장치임을 깨닫고 탄성을 삼켰다. 그랬지, 참. 이벨린은 이유 없이 건달들에게 휩싸이지 않는다. 매개가 있었다.

여주인공은 놀러 나온 저잣거리에서 굶주린 아이를 보고 동정심에 돈을 적선한다. 문제는 그 돈이 금화였다는 것이고, 거지 아이의 금화를 발견한 건달들은 아이를 닦달해 돈의 출처를 알아내게 된다. 그리고 가진 돈을 죄다 털기 위해 이벨린을 에워싸고 협박하는 전개였다.

난 길바닥에 넙죽 엎드린 아이를 잠시 응시하다 근처의 빵집으로 들어섰다. 아윈과 만나는 이벤트가 끝나고 나면 무탈히 고아원이나 무료시설로 들어가게 될 터였지만, 그래도 눈앞에서 저러고 있으니 뭐라도 해줘야 할 것 같은 기분에서였다. 나 이래봬도 왕년에 유니세프 정기후원자였단 말이야.

사람은 본디 눈에 보이는 것에 약한 법이다. 나는 따뜻하게 데운 우유와 빵을 사서 아이의 앞에 놓아주었다. 허겁지겁 잘도 먹는 것을 보니 괜히 찡해진다. 킁. 난 다시 빵집 안으로 들어와 주스와 샐러드 따위를 깨작대며 넓은 창으로 밖을 응시했다. 후…이제 이벨린이나 기다려야지.

타이밍 맞춰 사건에 휘말려야 했기에 전방을 주시하는 내 눈빛은 날카로웠다. 본래라면 눈에 띄지 않는 골목에 숨어 팝콘이나 끼고 구경해야 할 이벤트였으나, 지금의 나는 그 상황에 몸을 던질 필요가 있었다. 왜? 이벨린이랑 친해져야하니까. 무릇 함께 위기에 처한 사이끼리는 표한 동지감이 싹트지 않던가. 난 그것만 노리며 팝콘대신 풀떼기를 씹었다. 어서 와주렴, 내 비빌언덕아.

“ !”

얼마나 있었을까. 난 벌떡 몸을 일으켰다. 염원이 닿았는지 이벨린이 나타나 아이에게 금화를 건네주는 게 보였다. 후드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언뜻 보이는 여리고 예쁜 턱선이며 고운 섬섬옥수며, 그리고 아이의 구걸에 선뜻 금화를 적선하는 행동력하며 누가 봐도 이벨린이었다. 난 쾌재를 부르고 빵집 바깥으로 나갔다. 우연히 만난 척을 해야 한다.

나는 거리를 재며 이벨린에게 다가가 실수인 척하며 몸을 부딪쳤다. 어깨를 부딪친 여파로 비틀거리는 그녀에게 화들짝 놀라 사과를 건네다 ‘어? 저, 혹시…….’ 하고 주춤거리며 말을 끈다. 이벨린은 갑자기 저를 빤히 쳐다보며 말끝을 흐리는 내 작태가 의아한지 고개를 갸웃했다. 난 후드 너머 그녀의 눈을 마주하며 모자의 챙을 잡고 들었다.

내 얼굴이 완연히 드러나자 이벨린이 탄성을 뱉었다.

“ 아! 그, 콧-.”

반사적으로 무슨 말을 뱉으려다 이벨린이 제 손으로 입을 막는다.

뭐. 콧구멍?

============================ 작품 후기 ============================

사랑하는 독자님들 하잉^.~

사실 저는 금토일이 제일 싫어여(반란

왜냐면 제일 바빠서..(슬픔

돈이 뭔데! 물론 주, 중요하긴 하지만! (찌질

+

드래곤 볼 수익이 궁금해서 검색해봤는데

단행본 판매만 집계했을때 3055억 이라고 하네요?

....사스가...b'-'b <-만화책 재탕 10번 한 오타쿠

++

시종-> 점원 수정했습니다 :D

시종이 황궁에서 일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단어인가요?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자세한 게 궁금해서 초록창에 검색했는데 안나옴..(시무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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