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경하는 들러리양-13화 (13/100)

00013  2. 두근두근 와작와작 팝콘 팔아요  =========================================================================

있는 힘껏 쑤셨으니 제법 타격이 컸으리라. 조각 같은 미남이 한쪽 콧구멍에 팝콘을 꽂고 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절경이었다. 음, 마치 일종의 행위예술 같았달까? 예상보다 추하지 않았다는 게 충격이라면 충격이다. 나는 그 즉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케니스를 팝콘과 하나로 만들고도 탈 없이 도주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이벨린의 공이었다. 그녀는 눈이 튀어나올 만큼 놀란 와중에도 내 목숨을 위해 열심히 케니스를 뜯어말려주었다. 정말 감사. 땡큐. 내가 진짜 언니만 믿었어. 부리나케 튀는 내 뒤로 체면 따위 개나 준 괴랄한 고함소리와 ‘미친 여자’ 따위의 욕설이 들린 것도 같았다. 하하, 짜식. 그래 열 받냐? 난 더 열 받았었어, 임마. 이제 내 맘을 좀 알겠니?

그러나 통쾌하고 속 시원한 와중에도 현실적인 걱정을 무시할 순 없었다. 난 그 무슨 짓을 해도 죄다 사랑으로 귀결된다는 속칭 여주인공 버프가 손톱만큼도 없었기에, 내가 케니스에게 한 짓거리는 기실 사망플래그에 가까웠다. 케니스는 지랄 맞은 성미치곤 의외로 기사도를 아는 놈이라 여자와 아이에겐 결코 검을 빼드는 법이 없었다…고 원작에서는 서술했지만 글쎄, 사람이 눈 돌면 뭔 짓을 못해. 나는 케니스가 콧구멍에 팝콘을 꽂은 채로 분노해 검을 휘두르는 상상을 하며 킬킬대다 이내 숙연해졌다. 자, 이제 앞날을 걱정해볼까.

뛰느라 엉망이 된 드레스자락이며 머리를 정돈할 겨를도 없이 난 마차에서 생각에 골몰했다. 사고에 사고를 거듭해도 결국 답은 하나였다. 역시 이벨린에게 빌붙자.

“ 꺄악, 아가씨!”

어느새 마차는 목적지에 도착해 나를 내려주었다. 흡사 태풍이라도 해친 꼴을 하고 처음만난 대상이 에슐라라니,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다. 그녀는 내 상태를 목도하자마자 기겁을 하곤 잽싸게 사라지더니 빗을 가지고 다시 나타났다. 나는 가까운 응접실에 앉아 머리를 정리해주는 에슐라의 손길을 느끼며, 오늘의 내 몰골이 내일쯤이면 저택의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지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에슐라 넌 정말이지 입에 확성기를 달고 다니는 것만 아니면 최고의 시녀야….

“ 제대로 엉켰네요. 아가씨, 대체 뭘 하신 거예요?”

“ 권선징악.”

“ 네?”

“ 정의실현.”

“ …?”

알아듣지 못해 고개만 갸웃하는 에슐라에게 난 대충 얼버무리고 정돈이 끝난 머리를 매만졌다. 미안, 에슐라. 하지만 막말하는 공작에게 엿을 처먹이고 왔노라 얘기하기엔 네 입이 너무나 가볍구나. 나중에 기회가 닿으면 자세히 설명해줄게. 언제가 될 진 모르겠지만.

난 에슐라를 보내고 곧장 방으로 향했다. 들어서자마자 애저녁에 친숙해진 책상 앞에 자리를 잡아 앉는다. 그리고 비장한 얼굴로 펜을 쥐었다. 현사태를 보다 일목요연하게 글로 정리해보자는 마음이었다.

나는 우선 작금의 내 상황을 간단히 기술했다.

「 케니스와 팝콘의 짜릿한 추억 = 조연의 죽음 」

음…답 없네. 난 그 밑에 살아날 방도를 적었다.

「 여주인공의 친구 자리를 꿰차기」

밑줄 촥 긋고, 별표 다섯 개. 나는 과거 인수분해공식을 강조하던 손목의 스냅을 상기하며 ‘친구’라는 단어에 마구 동그라미를 쳤다. 진부하지만 살 길은 이것뿐이었다. 그래, 이것뿐이야. 이벨린이 내 유일한 비빌 언덕이었다.

케니스에게 대적할만한 상대라면 황태자나 마탑주(남주인공3)도 있었지만, 그 둘을 꼬시느니 나뭇가지 하나를 쥐고 소드마스터가 될 때까지 휘두르거나 다음 생엔 여주인공이길 희망하며 접시물에 코 박고 죽는 게 차라리 더 빠른 길일 터였다. 아니면 당장 잡히면 죽을 기세인 케니스를 역으로 꼬시던가. 아 근데 솔직히 전혀 상상이 안된다….

하여튼 이리 보나 저리 보나 역시 가장 이상적인 건 이벨린이다. 그녀와는 일단 친해지기만 하면 든든한 방패막의 생성이 확실했다. 자나 깨나 이벨린에게 잘 보이는 것에 여념이 없을 케니스가 그녀의 친구를 건드릴 리 만무할테니까.

문제는, 어떻게 이벨린의 환심을 사냐는 건데.

난 고개를 젖히고 야수의 꽃 원작의 내용을 더듬었다. 소설에서 이벨린은 딱히 친구라고 부를만한 존재가 없었다. 초반에 자주 붙어 다니면 영애가 한 명 있긴 했지만, 그녀는 후에 황태자를 사랑하게 되어 악녀의 꾐에 넘어가 여주인공의 뒤통수를 친다. 물론 걸려서 한밤의 이슬로 사라지긴 한다만, 어쨌든 이벨린은 극중 내내 진짜 친구라고 할 법한 이가 없는 셈이었다.

“ 잘하면 공략이 될 것 같은데….”

중얼거리며 고개를 바로 했다. 아, 목 뻐근해. 문득 이런 고민이나 하고 있어야하는 내 처지가 서글프게 다가왔다. 아니, 먼저 거지같이 군 놈에게 짭조름한 응징 좀 해줬기로서니 그게 그렇게 죽을죄냐 이거다. 솔직히, 어? 지가 공작이면 다야? 남주인공이면 다냐고? ……다인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이 재수 없는.

나는 투덜거리다 책상에서 침대로 비척비척 몸을 옮겼다. 안하던 전력질주를 해서 그런지 피곤이 몰려오는 기분이었다. 난 전신에 힘을 쭉 빼고 침대 위로 널브러졌다. 아, 완전 푹신. 편안함을 느끼며 눈을 느리게 깜박였다. 후, 정말 여주인공이랑 무슨 수로 친해진담. 난 이벨린이 평범한 왕국민이 아닌 차원이동녀나 환생녀였더라면 좋았겠단 생각을 하며 이불 위를 굴렀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 그러다 어느 순간 잠에 빠진 것 같다.

그리고 나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수많은 케니스들에게 팝콘을 던져 맞추는 괴상한 악몽을 꾸고 깜짝 놀라 새벽에 깼다.

“ …….”

별 거지 같은…….

*

동도 트기 전 구린 기분으로 기상하긴 했지만, 그래도 금일은 제법 재밌는 일이 예정된 날짜였다. 어제의 케니스에 이어 오늘은 아윈이 등장할 차례였기 때문이다. 아윈 헤브림, 위치는 비록 제국 내에 있으나 실상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적인 단체 마탑의 주인. 천사처럼 고운 외모와 달리 손쉽게 사람을 죽이는 잔인한 성정이나, 이벨린의 앞에서는 순한 양 마냥 내숭을 떤다…는 설정의 남주인공이었다. 이벨린은 그를 놀러나간 저잣거리에서 우연히 시비에 휘말리면서 만나게 된다.

난 이른 시각부터 나갈 채비를 서둘렀다. 평소라면 예나 지금이나 아침잠이 많은 내가 여전히 침대에서 꼼지락댈 시점이었지만, 조금만 더 지체했다간 아침산책을 나가신 어머니께서 돌아오실 터였기에 어쩔 수 없었다. 난 오늘 저잣거리에서 이벨린과 함께 위험에 처할 계획이었으므로, 호위 따위를 대동하는 일은 피해야했다.

============================ 작품 후기 ============================

케니스가 어떻게 팝콘을 뺐을지는 여러분들의 상상에 맡길게요 (..

별 거 있겠나요 그냥 흥! 하고 뺐을 듯 흥! 크흥!!

+

나: 왘ㅋㅋㅋㅋ야 이거 봐 나 12편 댓글 400개 넘었어ㄷㄷㄷ

동생: ㅉㅉ조아라도 이제 망했네

나: .....

++

노연애라도 재밌다고 해주셔서 곰마워요 (하트

하지만 난 여러분이 반대해도 로맨스를 쓸 것이다(의지

+++

저번편에 감히 신성한 팝콘이 남주 콧구멍 따위에 들어갔다고 아까워하는 댓글이 많아서 빵터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팝콘>>넘사>>남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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