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대를 뺏겠습니다-83화 (83/92)

83화

그랬구나. 내가 사람을 찾는다는 소식이 건너서 전해졌구나.

모두들 그때 일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했지만 전화를 돌려본 일은 헛수고가 아니었다.

수진은 정식으로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그때 실종되신 망양호 승선원 진동호 씨의 딸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저희 아버지를 아신다고요?”

“그럼요. 제 이름을 모르시겠지만, 제 얼굴을 봐도 모르시겠지만…… 저는 진수진 씨를 잘 알고 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만나 뵙고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수진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이제 비밀이 밝혀지는 건가?

“제가 성함을 여쭤봐도 될까요?”

“제 소개는 얼굴을 보고 하죠.”

“알겠습니다. 그럼 언제 어디서…….”

“수진 씨가 오셔야 합니다.”

“아, 물론이죠. 어디든 찾아뵙겠습니다.”

수진은 목소리를 낮춰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강인권 선장님도 아십니까?”

아직 이름을 알려주지 않은 남자는 잠시 말이 없었다. 수진은 귀 기울여 그의 호흡을 듣고 아직 전화가 끊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가만히 기다려주었다.

“네. 알고 있습니다.”

“그분 아드님도 이 일에 관심이 많습니다. 저처럼 유족이기도 하고요. 함께 가도 되겠습니까?”

“그러시지요. 다만…….”

옅고 긴 한숨이 들렸다.

“제가 드릴 말씀이 두 분이 원하는 내용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저희가 뭘 원하는지 어떻게 아시죠?”

“제가 말씀드릴 내용이 유족이 듣기에 좋은 말은 아니라는 겁니다.”

아까 핸드폰이 울렸을 때 중요한 전화라는 예감이 들었던 것처럼,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그저 태풍 때문에 배가 전복된 사고가 아니라는 뜻이겠지.

차라리 천재지변으로 인한 사고였다면 유족 입장에서 그저 하늘의 뜻이거니 체념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는 뜻이겠지.

역시 이 회장인 건가?

“유족으로서 제 기분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선생님을 뵙기 전에 이건 확인해보고 싶네요.”

“말씀하십시오.”

“선생님께서 저에게 말씀해주실 내용이 진실입니까? 추측이나 짐작이 아닌 사실 그대로의 진실입니까?”

“그것만은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진실입니다.”

드디어 끝나겠구나. 15년 동안 마무리되지 않던 비극의 커튼을 닫을 수 있겠구나.

수진은 상대가 볼 수도 없는 곳에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

.

.

그날 저녁, 한해의 퇴원을 축하하는 저녁 식사를 했다.

이태화 회장과 관련한 일만 아니라면 강과 레이나 커플도 부르고 소월과 레오 커플도 불러서 떠들썩하게 파티를 했겠지만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심지어 축하해주러 오겠다는 사토시 씨의 방문도 마다했다.

대신 정원에 바비큐 그릴을 꺼내놓고 펜션에 놀러 온 것처럼 고기를 굽고 술을 마셨다.

수진은 잔을 들고 말했다.

“축하해. 엄청난 액땜을 했다고 생각해. 이제 오빠 남은 생에 몸을 다칠 일은 없을 거야.”

“고마워.”

한해는 술잔을 비우지 않고 한 모금만 마셨다.

의사가 아직 술을 마시면 좋지 않다고 했다.

어느 정도 배가 찼을 무렵, 수진은 의문의 남자와 통화한 내용을 들려주었다.

“아까 제보자의 전화를 받았어.”

“당장 만나보고 싶은데?”

“나도 그래. 하지만 그 사람이 시간과 장소를 아예 정해줬어.”

수진은 따로 메시지로 받은 내용을 직접 보여주었다.

시간은 이번 주말. 장소는 울진의 어느 평범한 연립주택 주소였다.

“구글 지도로 확인해봤는데 평범한 주택이야. 그 사람 집 같아.”

“대체 누굴까?”

한해는 먼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수진은 그의 마지막 말을 떠올렸지만 한해에게는 말해주지 않았다.

‘제가 드릴 말씀이 두 분이 원하는 내용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대신 그녀는 이렇게 말해주었다.

“확실한 진실만을 말해주겠대.”

“뭔가를 알고 있다는 뜻이네.”

“생각해봐. 그저 그런 내용이거나 추측 정도라면 이렇게 번거롭게 나한테 연락까지 했겠어? 내가 무슨 사례를 하겠다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한해도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너무 분위기가 심각해지는 것 같아 수진은 그의 목을 끌어안고 뺨을 비볐다.

“그 사람이 무슨 얘기를 할지 모르겠지만 오빠랑 같이 가니까 다 견딜 수 있을 것 같아.”

“나도 그래, 수진아.”

동물들이 서로의 얼굴을 부비며 가족임을 확인하듯 둘은 체취와 촉감으로 충만한 애정을 확인했다.

그녀는 술을 한 잔 더 마시고 물었다.

“이태화 회장은 연락 없었고?”

“그게 좀 이상해. 합의해달라고 그렇게 싹싹 빌던 사람이 갑자기 뚝 연락을 끊었어.”

“변호사들이 조언했겠지. 너무 급하게 조르지 말라고.”

한해는 가만히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이제 상관없어. 주말에 울진에 내려가서 듣는 얘기가 뭔지에 따라서 모든 게 달라질 테니까.”

“만약 해상 사고가 이태화 회장이 고의로 유도한 거라면…… 증거가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사람 증언만으로는 재판에서 이길 수 없을 것 같은데.”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봐야지. 그 사람이 증거를 갖고 있을 수도 있고.”

“지금까지 증거를 갖고 있으려면 그 사람도 그 일에 가담했을 가능성이 높은데…… 자기도 처벌받을지 모를 자백을 할까?”

“듣기에는 어땠어?”

수진은 몇 시간 전에 들었던 음성을 다시 떠올려보았다.

“목소리가 차분했어. 좀 비장하달까?”

“양심의 가책 때문에 오랜 세월 지나서 양심선언을 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옆에서 그의 시선을 쫓던 수진이 물었다.

“그런데 오빠 뭘 보고 있는 거야?”

“너 보고 있잖아.”

“거짓말. 하늘 보고 있으면서. 지금도.”

한해는 손을 들어 반짝이는 별들을 가리켰다.

“나에겐 같은 말이니까. 진수진. 별.”

수진은 그가 이름을 불러줄 때마다 가벼운 마법에 사로잡히는 기분이었다.

누군가 그랬다. 사랑이란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매일 한 사람의 이름을 불러주는 일이라고.

매일 내 이름을 불러주고 나를 바라보는 남자.

그 남자의 품에 안길 수 있어서, 오늘 밤도 참 다행이었다.

그의 턱에 입맞춤을 하고 속삭였다.

“퇴원을 축하해, 오빠.”

*

법무법인 대서양의 대표 변호사가 직접 이태화 회장을 면담했다.

두 명의 에이스 변호사가 올린 보고서를 건네주었다.

“회장님 사건만 일주일 내내 고민한 끝에 낸 결론입니다.”

이 회장은 자기 회사에서 올라오는 결재서류들보다 훨씬 꼼꼼하게 보고서를 읽었다.

“최종 전략은 다른 방향을 제시하고 있네요?”

“네. 아무래도 강한해 씨는 저희가 다루기에 너무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거액의 합의금도 소용없을 것 같고요.”

강한해의 강함을 인정하는 일조차 불쾌했지만 자존심 따위 부릴 상황이 아니었다.

이 회장은 법률용어로 가득한 보고서를 읽은 뒤 내려놓았다.

“그래서 당신들의 전략은 청부업자 호영이한테 책임을 미룰 수 있는 만큼 미루자?”

“뭐…… 표현이 좀 거칠지만 맥락은 그렇습니다.”

“지금 강한해가 갖고 있는 녹취파일에 살해를 지시하는 내 발언이 들어가 있잖아요?”

“네. 그러나 일반적으로 청부 살인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살인은 중간에 멈추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나도 그 이후에 살해지시를 철회했다? 그런데 호영이가 내가 하지 말라는 짓을 저질렀다?”

로펌 대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유는? 호영이 입장에서 말해봐요.”

“과잉충성. 회장님이 차마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번복하자 자신이 자의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거죠. 이 경우 회장님의 형량은 매우 낮아져 강한해의 합의가 없어도 집행유예로 빠질 수 있습니다.”

“대신 그만큼 호영이이 형량이 높아지잖아요?”

로펌 대표는 대답하지 않고 느슨하게 끼고 있던 팔짱을 풀었다.

“회장님. 지금부터 제가 하는 질문에 최대한 솔직하게 답해주셨으면 합니다.”

이 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하는 질문 중에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에 대한 질문도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정말 솔직하게 회장님의 마음을 말씀해주셔야 합니다.”

그는 판사처럼 정색하고 물었다.

“지호영 씨에게 정확하게 살해를 지시한 적이 있나요?”

이 회장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후에 마음을 바꿔 지시를 번복했나요?”

그는 어금니를 꽉 물었다.

두 개의 마음이 싸우기 시작했고 승부는 오래 걸리지 않아 결정되었다.

“아마도?”

“그렇다면 그런 지시를 받은 지호영은 왜 결국 사람을 시켜 강한해를 찔렀을까요?”

“그렇게 하면 내가 좋아할 줄 알고 착각을 했겠죠.”

“이른바 과잉충성이다?”

“아마도……”

“그럼 회장님은 왜 경찰에 자수하셨을 때는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으셨습니까?”

이 회장의 눈이 번득였다. 이번에는 갈등이 아니라 머리를 굴리는, 적극적인 고민의 과정이었다.

“그때는…… 어쨌든 내가 도의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기업의 총수로서 늘 아랫사람들의 잘못에도 책임을 지는 버릇이 있어서. 이 모든 것이 제 부덕의 소치라는 생각에서 자세한 상황까지는 경찰에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로펌 대표는 박수를 짝짝 쳤다.

이 회장이 개운치 않은 표정으로 물었다.

“호영이가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

“돈으로 움직일 수 있는 인물 아닙니까?”

“청부를 맡기는 것과 직접 교도소에 들어가라는 건 차원이 다른 얘기지. 이제 호영이 나이도 적지 않고.”

“부탁이 어려울 것 같다? 아무리 돈을 많이 줘도?”

“제안은 해볼게요. 만약 놈이 거절한다면?”

“그때야말로 회장님의 결단이 필요하죠. 법정에서 지호영 씨를 밀어붙이거나…… 아니면 최악의 경우 회장님이 실형을 사시거나.”

이 회장의 미간이 한껏 좁혀졌다.

“만나보겠습니다.”

그는 바로 핸드폰을 꺼냈다.

.

.

.

그가 평생 은밀한 대화를 해왔다. 누군가를 무너뜨리고, 엄청난 돈을 챙기고, 꼭 필요한 결과를 위해 드러나서는 안 될 방법을 쓸 때가 너무나도 많았다.

그러나 이번만큼 비밀을 지켜야 할 대화는 없었다. 그래서 약속 장소도 최고의 보안등급에 맞춰 선정했다.

그 어떤 최첨단 녹음 장비나 도청 장비도 무력화될 만한 곳. 지하철 3호선이 지나는 동호대교 아래 공용주차장으로 호영을 불러냈다.

한겨울이 지나가긴 했지만 여전히 날씨가 쌀쌀한데도 굳이 차 밖으로 불러내는 이 회장을 보며 호영은 쓴웃음을 지었다.

“이 와중에 제가 회장님을 배신할까 봐 걱정하시는 겁니까?”

“새삼스럽게 왜 그러나. 난 늘 녹음이나 도청에 민감했잖은가.”

호영은 굉음을 울리며 머리 위로 내달리는 지하철 3호선 열차를 힐끗 쳐다보았다.

“이 정도까지 겁을 내진 않으셨는데요.”

“뭐 바람도 쐴 겸 해서 밖에서 얘기하자고 했네.”

이 회장은 열차가 간 뒤 조용해진 타이밍에는 혹여나 호영이 녹음을 해도 괜찮을 이야기부터 했다.

“이번 재판 관련해서 자네하고 확인해둘 게 있어서 말이야.”

“뭐든지 확인하십시오.”

“처음 내가 한해를 좀 손봤으면 싶다고 했을 때 자네가 여러 가지 방법을 제시했잖아?”

“네.”

“음…… 그중에 하나가 이번처럼 확실하게 처리하는 거였고. 나는 처음에는 망설이다가 일을 진행시켰지.”

“네.”

이 회장은 무척이나 뜸을 들이며 말했고 호영은 한 글자의 짧은 답만 내놓았다.

“그런데 사실 나는 처음부터 한해를 죽일 생각까진 없었어. 그건 자네도 알지?”

“회장님. 지금…….”

멀리서 지하철이 달려오기 시작했고 호영의 다음 말은 소음에 묻혀버렸다.

“청부살인을 최종지시하신 일을 부인하려고 이러십니까?”

“확인하려는 거지. 나이가 들어서인지 기억이 흐려져서 그래.”

이 회장의 말도 마찬가지였다. 대신 그들은 서로의 귀 가까이 소리 높여 말했다.

“재판에서 내가 최종단계에서 마음을 바꿨다고 진술하면 어떨까?”

“그럼 저는요? 제가 모든 죄를 다 뒤집어쓸 텐데요?”

“우리 회사와 거래하는 최고의 로펌이 있네. 거기서 얘기하기로는 그런 경우에 5년 정도의 실형을 예상하더군.”

“회장님…….”

열차가 서서히 멀어지고 있었다.

이 회장은 다리 아래 세워둔 자신의 차로 호영을 데려갔다.

트렁크를 열자 5만 원짜리 지폐가 수북이 담긴 가방이 보였다.

이 회장은 손가락을 입에 대고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 핸드폰 메모장에 글을 적어 보여주었다.

-자네가 군말 없이 혐의를 시인해주면 지금 당장 이 돈을 갖고 갈 수 있네. 그리고 매년 이만큼씩의 돈을 주지. 호영도 필담으로 물었다.

-금액이 얼마입니까?-100장 묶음으로 200개. 10억 원일세. 매년 현금으로 준비해서 정해진 금고에 넣어두겠네. 간단한 산수였다. 교도소에 1년 갇혀 있는 대가로 10억. 5년 형을 받는다면 50억.

이 회장은 과학자가 실험 결과를 관찰하는 시선으로 호영의 표정을 살폈다.

이 녀석이 미끼를 문 것인지, 물지 않은 것인지, 혹은 문척하면서 속이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은 그는 철저하게 감정을 숨기고 있었다.

이 회장은 대답을 독촉하고 싶은 마음을 주먹 꼭 쥐고 참아냈다.

초조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 조금이라도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호영이 긴 침묵을 깼다.

“회장님. 제 나이도 이제 쉰이 넘었습니다.”

“그게 무슨 뜻인가?”

“20년 전이었다면 오래 생각할 것도 없었을 텐데…… 생각할 시간을 좀 주십시오.”

이 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을 많이 줄 수는 없어. 결정을 내리면 연락해주게나.”

그는 오랫동안 충실하게 곁을 지켜준 사냥개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호영아. 네가 정말 충실한 개라면…….

주인 대신 물려줄 수도 있지 않을까?

*

-퇴원 축하해. 곧 웃는 얼굴로 볼 수 있기를. 벌써 수십 번은 꺼내 본 문자를 한해는 또 읽어보았다.

며칠 전 퇴원하는 날 아침에 강이 보낸 메시지였다. 그 역시 짧은 답 메시지를 보냈을 뿐 서로 통화를 하거나 만난 적은 아직까지 없었다.

레이나가 수진을 찾아왔다고 하지만 진짜 당사자인 강과 한해는 대면하기가 쉽지 않았다.

어느 쪽이든 내가 결정을 내려야 편하게 볼 수 있겠지.

한해는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출발한다?”

그는 수진을 돌아보며 물었고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휴가철도 아닌 비수기의 주말 아침. 울진까지 쉬지 않고 달리면 3시간이 조금 더 걸릴 터였다.

중간에 휴게소에 들러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조금 쉬고 나서 다시 달렸다.

-저희 곧 도착합니다. 수진은 문제의 사내에게 메시지를 보냈고 금방 답장이 왔다.

-기다리고 있습니다. 날씨가 좋네요. 뭐야. 갑자기 날씨 얘기는…….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세 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

그들이 살던 바닷가 마을에서는 꽤 떨어진 읍내의 연립주택 앞이었다.

주차 때문에 주민들끼리 칼부림이 날 정도로 자리가 빡빡한 서울과 달리 골목 곳곳에 공터가 있어서 쉽게 주차를 할 수 있었다.

“공기 좋네.”

차에서 내린 한해는 일부러 별 의미 없는 말을 내뱉으며 심호흡을 했다.

수진도 빙긋 웃으며 그의 곁에서 두 팔을 쭉 뻗었다.

서로를 보는 눈빛 사이로 무언의 약속이 오갔다.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서로의 결정을 존중하겠다는.

4층짜리 연립주택 건물의 2층 집으로 올라가 초인종을 눌렀다. 철컥 문이 열리고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덩치는 컸지 많이 봐줘야 20대 초반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였다.

집을 잘못 찾아왔나 싶어 수진이 주소를 다시 확인하려는데 아이가 물었다.

“서울에서 온 손님이시죠?”

수진이 대답했다.

“네. 맞습니다.”

수진은 아직 여드름도 숭숭 나 있는 아이를 보며 말꼬리를 흐렸다.

“저랑 통화하신 분은 아닐 테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