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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를 뺏겠습니다-73화 (73/92)

73화

한해의 목소리에 수진은 한숨 쉬었다.

이제 환청까지 들리는구나.

그런데 또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 나으면 같이 스키장 가자.”

환청치고는 너무 생생한 음성이었다.

수진은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을 한번 감았다가 다시 떴다.

오빠가 일어났다! 그는 반쯤 눈을 뜨고 있었다.

수진의 가슴 속에서 기쁨의 화산이 폭발했다.

“오빠!”

“소리치지 마. 눈썰매 타는 것도 아니고.”

며칠이나 의식을 잃고 있던 한해는 농담까지 하며 낮잠 자다 깬 사람 같아 보였다.

실제로 그의 상태가 그랬다. 정신을 잃은 뒤에 흐른 시간은 그냥 공백일 뿐.

주차장에서 칼에 찔렸고, 바닥에 쓰러져 죽은 줄 알았는데 깨어보니 병실인 상황이었다.

살았구나. 그리고 수진이가 옆에 있구나.

그 사실만이 중요했다.

아직 몸 안에 머무르고 있는 뭉근한 통증과 기이한 이물감은 그다음 문제.

“얼마나 놀랐는데!”

수진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그에게 안겼다.

“아아. 수진아 오빠 아직 상처가…….”

한해는 날카로운 아픔에 얼굴을 찡그렸다.

“아! 맞다, 미안!”

수진은 몸을 일으키고 대신 그의 이마에 입 맞췄다.

“고마워, 오빠! 고마워! 난 오빠가 돌아올 줄 알았어!”

“어떻게 된 거야? 주차장에서 정신을 잃은 뒤로는 기억이 없어.”

“내가 다 얘기해줄게. 일단 선생님한테 말씀드리고.”

수진은 의료진을 불렀다.

한해는 간단한 검사를 하고 다시 병실로 돌아왔다.

함께 온 의사가 말했다.

“이제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차분하게 안정 취하시고 회복 속도 봐가면서 퇴원 시기를 결정하시죠.”

의사의 표정도 밝아 보였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한해는 거듭 인사했다. 아직도 죽음의 문턱으로 끌려가던 감각이 생생했으니까.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했다.

의사가 병실을 나가고 다시 둘만 남았다.

한해는 배에 붕대를 칭칭 감은 몸으로 누웠다. 수진은 곁에 앉아 그의 손을 잡고 뺨에 대었다.

“너무 좋다, 오빠.”

한해는 창밖에 내리는 눈을 턱으로 가리켰다.

“눈 오는 날은 좋은 날이야.”

“큰일 날 뻔했잖아. 정말 위험했어. 조금만 늦었어도…… 어머님이 미리 경고해준 덕분에 신경을 쓰고 있어서 다행이었어.”

“아직도 얼떨떨해. 살아 있다는 게.”

“얼떨떨해? 그럼 좀 더 확실하게 느끼게 해줄까?”

수진은 슬쩍 몸을 일으킨 뒤 그에게 키스해주었다.

“이제 더 실감나?”

그는 지그시 눈을 감고 키스의 여운을 음미했다.

“달다. 확실히 살아 있네.”

그녀도 더 실감났다.

오빠가 돌아왔어. 죽음에서 내 품으로.

“다들 알고 있어? 이 일?”

“휴우…… 아주 난리가 났지.”

수진은 그사이에 있었던 일을 차근차근 전해주었다.

희귀 혈액형 때문에 수혈을 못 하고 있다가 강이 와서 피를 줬다는 얘기에서, 한해는 온 얼굴로 웃었다.

“녀석이 멀쩡한 사람을 죽었다고 하더니 이번에는 죽을 사람을 살려줬네.”

“안 그래도 강이 오빠가 그랬어. 빚 갚은 거라고.”

“일단 사람들에게 알려줘. 괜히 더 오래 걱정하지 않게.”

수진은 이번에는 기쁜 마음으로 단체문자를 보냈다.

그녀는 경찰 수사 상황도 전해주었다. 용의자를 찾지 못해 수사가 난항을 겪고 있다고.

“오빠한테 원한 가질 만한 사람이 누가 있을까?”

한해는 은은하게 번져 있던 미소를 거두었다.

“수진아. 이제부터 내 말 잘 들어.”

그는 의식을 잃기 전 마지막 기억을 떠올렸다.

“나를 찌른 사람을 기억해. 얼굴은 모르지만 그 사람이 한 말은 정확히 기억나.”

“뭐라고 했는데?”

“오토바이 헬멧을 쓴 남자가 나를 찌른 뒤에 말했어. 벌 받는 거라고. 네 옆에 둬서는 안 될 여자를 탐한 벌이라고.”

한해가 깨어난 뒤 수진은 몸 안에 봄이 찾아온 기분이었다. 그런데 금방 봄바람이 사라지고 심장부터 얼어붙는 것 같았다.

“내가…… 이유였다고?”

한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사경을 헤매던 며칠 동안 수진은 고민하고 의심하고 또 회피하곤 했다. 바로 이 생각을 두고.

‘오빠가 이 지경이 된 이유가 나 때문일까?’역시 그랬구나.

슬그머니 물러나는 수진의 손을 한해가 잡았다.

“나도 부인하고 싶었어. 그러나 사실이야.”

그녀의 커다란 눈이 눈물의 호수로 변했다.

“결국 난 오빠에게 불운을 가져다주는 사람일까?”

한해는 고개를 저었지만 그녀는 자책을 멈추지 않았다.

“되풀이되고 있잖아. 이건 마치 신이 경고하는 것 같아. 너희는 함께 있으면 불행해진다.”

“이해해. 그런 생각 들 수 있어. 그래서 감출까 생각도 했어.”

“뭘 감춰?”

“내가 정신을 잃으면서 들었던 경고.”

그녀가 감당하지 못할까 봐 걱정했지만 그렇다고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면 더 참혹한 미래가 찾아올 테니, 다 말해주기로 했다.

“난 공포와 싸우는 일에 익숙해. 너에게까지 그 싸움을 강요하고 싶진 않아.”

“아니. 나도 싸울래.”

수진은 눈앞에 어떤 적이라도 있는 것처럼 주먹을 꽉 쥐었다.

“지금 이 장면을 신이 보고 있을지도 모르지. 내 모습이 불경해 보일 수도 있고.”

그녀는 창밖의 쏟아지는 눈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마 언젠가는 내가 오빠처럼 당할지도 모르지.”

“수진아. 그런 소리는…….”

“아니. 상관없어. 괜찮아. 그래도 난 오빠랑 같이 있을 거라고.”

그녀는 한해를 껴안으며 힘주어 말했다.

“선언하는 거야.”

한해는 비장한 그녀의 모습이 안타깝기도 하고 귀엽기도 했지만 통증이 먼저였다.

“야야. 아프다니깐…….”

“아, 맞다. 미안.”

그녀는 한해를 놓아주며 혀를 쏙 내밀었다.

.

.

.

커피를 사러 병실에서 나온 수진은 한해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머님. 저 수진이에요.”

“그래. 아까 문자 봤다.”

“많이 걱정하셨죠?”

“아니. 이미 알고 있었어.”

어머니의 목소리는 느긋했다. 방금 전까지 비장했던 수진은 묘한 위안을 받는 느낌이었다.

“어느 눈 오는 날 네가 병원 복도에서 절규하는 모습을 본 것처럼, 역시 어느 눈 오는 날 너와 한해가 손잡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도 보이더라.”

“어머니. 오빠를 이렇게 된 이유가 저 때문이래요.”

“그게 무슨 소리냐?”

“오빠를 찌른 사람이 그랬대요. 저 때문에 이렇게 되는 거라고 경고했대요.”

“그래서?”

“그런데도 전 오빠를 포기할 수 없어요. 죄송해요.”

먼 웃음소리가 들렸다.

“미안하다, 수진아. 웃음이 나서.”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웃을 수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아, 수진은 얼떨떨해졌다.

“원래 바보를 보면 웃음이 나지.”

내가…… 바보라고?

몸에 힘이 쭉 빠졌다.

“너는 정말 바보같이 착하구나. 한해가 당한 이유가 너 때문이라고 하는 건 가해자가 하는 말이잖아. 왜 그 말을 받아들여?”

“아니…… 결과적으로는…… 제가 아니었으면 오빠가 이런 일을 당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행운보다는 불행이 훨씬 더 익숙했던 그녀는 그런 식의 인생을 버텨내는 법을 터득했다.

남의 탓을 하면 분노 때문에 무너지고, 신세 타령을 하다가는 무력해지고, 그나마 자기 탓을 해야 우울하지만 한 걸음 뗄 힘 정도는 억지로 짜낼 수 있었다.

“그런 식이라면 누군가 힘들 때면 부모를 원망해야겠네? 태어나지 않았으면 이런 고통을 겪을 필요도 없을 테니.”

그제야 수진은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짐작이 갔다.

“이번 일에 네 책임은 하나도 없어.”

남자친구의 어머니에게 진심으로 위로받는 경험을 해본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수진은 만신의 너른 품에 안겨 있는 기분에 스스륵 눈을 감았다. 너의 탓이 아니라고, 몇 번이고 그녀가 다독여주었다.

또 눈물이 솟고 목이 메일까 봐 애써 다른 생각을 하려고도 해봤지만 감동은 파도처럼 밀고 들려왔다.

“고맙습니다 어머니. 정말 고맙습니다.”

“무슨 소릴. 못난 어미 대신 우리 아들을 챙겨줘서 내가 더 고맙지.”

“혹시…… 앞으로의 미래도 보이시나요? 원래 점에 의존하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지금 너무 불안하고 절박해서 그렇습니다. 대비를 하고 싶어서요.”

그녀는 대답이 없었다.

“말씀해주세요. 뭐가 보이시나요?”

“수진아. 만신으로서 내 역할은 여기까지야.”

수진은 복도 벽에 붙은 의자에 털썩 앉았다.

“한해의 엄마로서 나는 네가 정말 마음에 드는구나.”

통화하는 내내 울컥하는 기운이 가시지 않았다.

“그런 말씀 안 해주셔도 괜찮아요.”

“너를 위로해주려고 하는 말이 아니야. 정말 마음에 들어서 그래.”

“저는 어떻게 하면 될까요?”

“지금처럼. 사랑하는 사람 곁을 지켜주면 된단다.”

통화하는 내내 따뜻하고 침착했던 그녀의 음성이 그 순간 처음으로 떨렸다.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어. 너무 겁이 났거든.”

수진은 한해에게 들은 그녀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신내림을 받고, 남편이 끔찍한 일을 당하는 미래를 본 뒤에 집을 나갔다고.

“이미 돌이킬 수 없게 되어버렸지만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그녀는 말을 맺지 않았지만 수진은 뒷말을 알 것 같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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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문병 손님은 레이나와 강 커플이었다.

그들은 수진과 차례로 가볍게 포옹하고 침대 옆에 앉았다.

“병실 옮겼네?”

넓은 1인실을 둘러보며 강이 말했다.

“오빠 회사 대표님이 옮겨주셨어요. 복도에 사복 입은 경호원도 한 명 붙여주시고.”

수진이 대신 대답하자 레이나가 밝게 웃었다.

“한해 씨 회사에서 사랑받나 보다.”

“도움 많이 주시는 분이세요. 저도 도움이 되어야 할 텐데.”

한해는 뭔가 불편해 보이는 표정이었고, 강과 레이나도 마찬가지였다.

수진은 병실에 감도는 분위기를 감지하고 본론을 꺼냈다.

“오빠가 피습당할 때 기억이 남아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이 신호탄이 되었다. 서로 눈치를 보던 강과 레이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도 그 얘기를 하려고 왔어.”

강이 입을 열었다. 한해도 바짝 긴장했다.

“아무래도 아버지가 벌인 일 같아.”

“어째서지?”

“이걸 들어보면 알 거야.”

그는 핸드폰으로 음성파일을 들려주었다.

길지 않은 대화 내용을 다 들은 한해와 수진은 충격에 빠졌다.

한해는 오래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이태화 회장이 불쑥 전화했던 적이 있었다.

얼굴이나 한번 보자고 했지만 한해는 매몰차게 청을 거절했다. 그때 앙심을 품었던 것일까?

그는 무거운 음성으로 말했다.

“나한테 이걸 들려줬으니…… 이제 난 너희 아버지와 적이 될 수밖에 없어.”

“알아. 그래서 고민을 많이 했어.”

“어쩌면 너희 아버지를 재판정에 세우고 교도소에 가두게 될지도 모를 일이야.”

“알아. 그것도.”

“그런 걸 다 알면서…… 왜지?”

“모두를 위해서. 아버지까지 포함해서.”

한해와 강의 대화를 옆에서 듣고 있던 수진은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겨우 소리 높여 끼어들었다.

“아버님까지 위해서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요?”

“이대로 놔두면 아버지는 멈추지 않을 거야. 결국 더 끔찍한 파멸로 이어지겠지. 그전에 다른 이들을 파멸시킨 다음에 자신마저 파괴하겠지. 내가 아는 최악은 그거야.”

레이나가 그의 손을 부드럽게 잡아주었다. 강은 모두를 돌아보며 말했다.

“늘 혼자였던 내 인생에 너희들이 차례로 들어왔어. 사랑을 제대로 받아본 적도 해본 적도 없는 나는 늘 너희들을 대하는 일이 서툴렀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내 곁에 머물러 주는 너희들을 잃을 수 없어. 절대로. 너희를 지키기 위해 뭐든 할 거야.”

지금 강이 내뱉은 말은 어젯밤 레이나와의 대화에서 나온 결론이었다.

심각한 얼굴로 고민하던 한해가 물었다.

“그렇다면 넌 내가 아버지를 경찰에 넘기기를 바라는 거냐?”

“형은 여러 가지 중 한 가지 선택을 내릴 결정권이 있어. 피해자니까.”

“이를테면?”

“경찰에 이 파일을 넘기고 우리 아버지를 살인미수 혐의로 수사받게 할 수도 있지.”

“아니면?”

“아버지가 자기 발로 경찰에 가서 자수하게 만드는 방법도 있지.”

여기서부터는 레이나의 아이디어였다.

‘청부살인을 계획했다가 실패했으니 특수상해죄에 해당하겠지. 실제 살인보다는 형량이 훨씬 낮아. 거기에 자수를 하고 만약 피해자가 선처를 부탁한다면 최소한의 형량으로 줄일 수 있어.’아버지를 단죄하되 자식으로서 최대한 형량을 줄일 수 있는 타협안이었다.

그러나 이태화 회장이 잘못을 시인하고 자수를 할지, 그리고 한해가 선처 의사를 밝힐지…… 그건 모두 당사자들의 마음에 달린 문제였다.

“네가 아들이니 제일 잘 알겠지. 이태화 회장이 자수할까?”

한해의 질문에 강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수진과 레이나는 끼어들 엄두도 내지 못할 만큼 침묵의 밀도가 엄청났다.

다시 입을 연 사람은 한해였다.

“이태화 회장이 자수를 안 하고 버틴다면, 내가 선처를 해주고 싶어도 그럴 수 없잖아?”

“응. 맞아. 그러니 자수를 해야지. 우리 아버지가 가해자니까 내가 결자해지하는 방법도 있고, 형이 피해 당사자니까 형이 얘기하는 방법도 있고.”

“내가?”

“형이 아버지를 만나려면 회복된 후가 되어야 할 테니까 시간이 더 걸리겠지. 통화는 가능할 테고.”

한해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에 잠겼다. 강이 계속 말했다.

“나에겐 선택권이 없어. 어디까지나 형의 권리야. 나는 형의 선택에 따를게. 내가 결정한 건…… 내가 알게 된 진실을 숨기지 않겠다는 것뿐이야. 그리고…….”

강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털썩, 한해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아버지의 끔찍한 범죄에 대해 아들로서 사과할게. 부끄럽고 미안해.”

“오빠…… 이럴 필요까지는…….”

수진이 그를 일으키려고 했지만 레이나가 말리고 눈으로 말했다.

내버려둬요. 밤새 고민하고 결심한 행동이니.

한해는 묵묵히 내려다보았다. 무릎을 꿇은 것으로 모자라 고개까지 숙인 동생의 모습을.

이 녀석.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구나.

아직 찢어진 뱃속이 채 아물지 않았지만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이강. 일어나. 네 마음은 충분히 알겠어.”

그는 직접 일으켜주고 싶은 마음을 수진에게 눈빛으로 보냈다. 수진과 레이나가 강을 양쪽에서 일으켜 세웠다.

그의 몸은 아직도 수치심과 죄책감으로 떨리고 있었다.

두 남자의 시선이 다시 맞닿았다.

한해가 웃어주었고 강은 눈물을 내비쳤다.

“며칠 고민해볼게.”

지금까지 고민한 한해의 결론이었다. 유보.

“휴우. 숨 막혀서 죽는 줄 알았네.”

긴긴 시간 말을 참고 있던 레이나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우리 이제 그 이야기는 그만해요. 한해 씨 심심할까 봐 이거 갖고 왔는데.”

레이나가 병문안 선물을 담은 쇼핑백을 뒤적였다.

*

“운성 신도시에 대한 기본 분석 리포트입니다.”

태화 건설 전무는 회장 집무실에서 보고를 하는 중이었다.

“운성 신도시 중에서 1급지는 상교천을 따라 형성되어 있는 평지입니다. 특히 하류 호수공원에 인접한 지역이 가장 각광 받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무테안경을 쓴 날카로운 인상의 전무가 발표하는 모습을 보며 이태화 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운성 지구는 직장과 녹지, 특히 공원과 호수가 잘 어우러져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도시개발 차원에서 보면 난개발로 지적을 많이 받기도 했지만, 신도시보다 훨씬 전망이…….”

“장점은 다 알겠고, 단점은?”이태화 회장이 끼어들었다.

“네. 최대 단점은 아무래도 서울과의 거리가 멀어서 그 사이 기존 신도시들이 여럿 있다는 점입니다.”

단점을 들으면서도 이 회장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막 도착한 메시지를 본 그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너구리 사냥 하러 갈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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