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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부인의 비밀 의상실-165화 (165/212)

# 165

공작 부인의 비밀 의상실 165화

“절대 안 놓을 거야!”

루비카는 자신의 팔 힘으로 키가 큰 에드가를 잡고 버틸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하지만 이대로 에드가 혼자 떨어지게 둘 수 없었다. 만약 그가 잘못된다면 남은 여생을 후회와 눈물 속에서 살 것 같았다.

“부인!”

땅 속에 있던 미노스가 위로 튀어나와 그들을 향해 달려갔다. 말에서 떨어지는 공작 부부를 어떻게든 잡고자 했지만 너무 늦었다. 공작 부부는 낭떠러지를 향해 떨어지고 말았다.

“젠장!”

놀란 건 스테판 일행도 마찬가지였다. 아마눈의 진짜 목적은 에드가였다. 그들은 루비카를 인질로 에드가에게 스텔라의 설계를 시킬 계획이었다.

공작이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것은 그들이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낭떠러지의 높이를 계산했을 때 간신히 목숨을 건져도 평생 침대 위에서 반신불구로 살아야 할 정도였다.

‘일이 이렇게까지 꼬일 줄이야.’

스테판은 마물인지 뭔지 정체를 알 수 없는 강한 존재와 계속 싸우는 것보다 도망치는 게 낫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상대도 힘이 빠졌으나 이제 날이 밝아와 어둠을 이용해 상대의 눈을 교란시키는 것도 어려워졌다. 스테판은 이오스를 향해 연막탄을 던졌다.

“야! 아, 이게 뭐야!”

자욱한 연기가 이오스의 눈앞을 덮쳤다. 심지어 연기는 매우 맵고 독하기까지 했다. 그의 권속들과 달리 정작 이오스는 인간과 싸운 경험이 전무했기 때문에 이런 식의 공격에 대처할 방법을 몰랐다.

이오스가 고통스러워하는 사이 스테판은 재빨리 남은 말에 탔다. 공작의 연구 자료는 만일을 대비해 두 말에 나눠 실었다.

만약의 경우 자료의 반쪽만이라도 건지려는 속셈이었다.

삐익!

스테판은 휘파람 신호가 난 쪽으로 말을 몰아 기다리고 있던 그의 형제를 태우고 사라졌다.

그 모든 상황을 다 지켜본 미노스는 한숨을 쉬었다. 가슴이 답답해 미칠 것 같았다.

신은 참 야속하다. 왜 머리를 굴려 상황을 타파할 줄 아는 자신은 고블린이란 가장 약한 존재로 태어나게 하고, 제 힘을 제대로 쓸 줄도 모르는 멍청이 이오스는 드래곤이란 엄청난 존재로 태어나게 했는가.

“콜록, 콜록.”

이오스가 한참 기침을 하느라 머리에서 엄청난 황금 덩어리가 떨어지고 있었으나 미노스는 줍지 않았다.

그의 평생 처음으로 이오스를 쫓아다니는 걸 그만두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 미노스는 마음을 추스르고 낭떠러지 쪽으로 가 외쳤다.

“부인! 무사하신가요?”

손을 모아 소리쳤건만 어떤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낭떠러지 아래는 울창한 숲이라 공작 부부의 흔적을 육안으로 찾는 건 불가능했다.

공작이 님프인 이상 목숨이 위험할 일이 있을까 싶었으나 부인에게 자신의 정체를 숨긴 것도 그렇고 집사와 나눈 대화까지, 걱정스러운 게 많았다.

“각하!”

다시 한번 애타게 불러 봤지만 역시 대답이 없다. 심하게 다친 건 아닌지 덜컥 걱정이 들었다.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제가 내려가겠습니다.”

미노스는 옥수수 밭 근처 농업용수로 쓰기 위해 만들어진 개울가로 갔다. 마침 조롱박이 있었다. 깨끗한 개울물을 담으려던 미노스의 손이 멈췄다.

‘저놈은 좀 당해 봐야 해.’

그는 일부러 물 반 흙 반인 흙탕물을 조롱박에 퍼 담고 이오스에게 갔다. 멍청한 드래곤은 여전히 매운 기운 때문에 눈을 뜨지 못하고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고 있었다.

“이오스 님, 물을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아낌없이 이오스의 얼굴에 흙탕물을 끼얹었다. 어디 한번 당해 봐라, 요놈아!

“으, 퉤퉤.”

이오스는 입 안 가득 들어온 흙탕물을 뱉어 냈다. 덕분에 매운 기운이 가셨다. 이오스는 활짝 핀 얼굴 가득 퍼진 흙냄새를 들이마시며 미소 지었다.

“아, 상쾌해.”

지룡인 이오스에게 흙냄새란 무척 기분 좋은 아로마 향에 불과하다. 그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니……. 소심한 복수마저 실패한 미노스의 어깨가 축 처졌다.

“역시 미노스 너뿐이야. 아, 감히 이오스 님의 눈에 그런 걸 뿌려? 미노스! 얼른 그놈들을 잡으러 가자.”

“이오스 님, 그럴 때가 아닙니다. 루비카 님을 찾으러 가야 합니다. 저기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졌다고요.”

미노스는 제법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이오스는 그러거나 말거나 머리를 통통 쳐 오른쪽 귀에 들어간 물을 빼기 바빴다. 참다못해 미노스가 발을 동동 구르며 소리쳤다.

“루비카 님이 걱정되지 않습니까?”

“무사한데 뭐가 걱정이야.”

“무사하십니까?”

“응.”

미노스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럴 때는 이오스의 뺨에 뽀뽀라도 하고 싶어진다. 조금만 더 똑똑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랬으면 지금보다 더 골치가 아팠을지도 모른다. 똑똑한 욕심쟁이라니, 세상에서 제일 곤란한 존재다.

“그럼 당장 그 쥐새끼를 잡으러 가자. 루비카의 권속 같아서 좀 봐주니까 이것들이 겁을 완전 상실했잖아. 내가 그놈들에게 세상의 질서를 알려 줘야겠어!”

아직 빨간 기운이 사라지지 않은 눈으로 이오스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바로 곁에서 본 미노스가 판단하기에 이오스는 봐주기는커녕 스테판을 잡으면 당장 허리를 두 동강 낼 것처럼 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고작 인간 정도가 자신을 철저하게 가지고 놀았다는 걸 인정하기에 이오스의 자존심은 유치할 정도로 높았다.

미노스는 땅속으로 들어가 스테판을 쫓으려는 이오스의 바짓가랑이를 간신히 잡았다.

“잠깐, 이오스 님, 그냥 가지 마시고 계책을 세워 갑시다.”

“계책? 내가 인간을 상대로 그런 걸 해야 해?”

“그냥 인간이 아니라 님프랑 관련된 인간이지 않습니까? 그런 인간을 계책으로 이기면 님프에게도 이긴 것이 되지요.”

“흐음.”

관심 없는 척하지만 이오스의 귀가 쫑긋 서는 것을 미노스는 똑똑히 보았다. 드디어 이 막무가내 드래곤이 자신의 말을 좀 들어줄 것 같았다.

‘움직이지 않는 뇌 대신 날 데리고 다니는 거면 제발 행동하기 전에 물어보란 말이야!’

미노스는 어디 대나무 숲에 찾아가 소리 지르고 싶은 심정을 참고 스테판을 어떤 식으로 잡는 게 좋을지 여러 가지 계획을 이오스가 이해하기 쉽게 들려 주기 시작했다.

* * *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순간 에드가는 죽음이 코앞까지 왔음을 직감했다. 자신의 죽음은 두렵지 않았으나 루비카의 미래는 두려웠다.

왜 이 바보 같은 여자는 떨어지는 자신의 손을 잡은 것일까? 거기서는 놓아야 했다. 그래야 두 사람 중에 적어도 한 사람, 그녀는 안전할 수 있다.

하지만 그녀는 손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그의 손을 꼭 잡았다. 하는 수 없이 에드가는 그녀를 잡아 당겨 최대한 자신의 품 안에 안고 몸을 둥글게 말았다.

땅에 닿을 때 제 몸이 쿠션 역할을 해 그녀에게 줄 충격을 어떻게든 완화시키고자 싶었다.

울창한 숲의 나뭇가지도 떨어지는 속도가 빨라 감속에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큰 아픔을 예상한 그는 그녀를 껴안은 팔을 더욱 단단히 만들었다. 하지만 땅에 떨어지는 순간 예상과 다른 일이 벌어졌다.

마치 고무처럼 변한 땅이 부드럽게 그를 튕겨 내어 충격을 완화시켰고 다음에는 요람처럼 그들을 품었다.

이오스가 미리 땅에 무슨 마법이라도 걸어 둔 것일까? 침대에서 떨어졌을 때가 이보다 더 아팠다.

에드가는 자신이 무사하다는 사실보다 그녀가 무사하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에드가!”

정신을 차린 루비카가 먼저 그의 안부를 확인했다. 일촉즉발의 상황인 데도 품안에서 느껴지는 그녀의 촉감에 그는 미소 지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에 붙어 있는 나뭇잎조차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괜찮아?”

“그럼. 이오스란 놈이 뭔갈 했는지 땅이 부드러웠어.”

“아, 당신이 다치지 않았다니 다행이야.”

새파랗던 루비카의 얼굴 혈색이 그제야 돌아왔다. 청록의 나뭇잎이 그녀의 맑고 하얀 피부를 더욱 돋보이게 하였다.

생각해 보니 이렇게 찬란한 햇살 아래에서 얼굴을 마주한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녀와 얼굴을 맞대었을 때에는 항상 어둠이 함께했었지.

에드가는 얼굴에 묻은 풀잎을 털어 주는 척 그녀의 뺨을 슬며시 만졌다. 보드라운 촉감은 그곳이 어디든 천국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참, 무겁지?”

잠깐 그의 손길에 취해 얼굴이 발그레해진 그녀가 퍼뜩 정신을 차려 일어섰다.

상체를 누르던 그녀의 무게가 빠져나가자 그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한편으로 그녀가 너무 가벼운 것 같아 걱정스러웠다.

“미노스가 오기 전까지 몸을 숨기고 있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낭떠러지 위의 사정을 모르는 루비카는 스테판이 여기까지 내려오는 게 아닐지 걱정스러웠다.

애초에 스테판의 목적은 자신이 아니라 ‘스텔라’를 만들 수 있는 에드가였다.

주변을 둘러보던 그녀의 눈에 낭떠러지의 자그마한 동굴이 보였다. 거기에 몸을 숨긴 다음 입구를 나뭇가지로 가리면 감쪽같이 위장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단 저기에 숨어 있자.”

루비카가 그를 재촉했다. 하지만 별 충격을 받지 않았다던 에드가에게서 일어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눈이 마주치자 그가 곤란한 미소를 지었다. 설마 괜찮다는 말은 자신을 안심시키기 위해 한 거짓말인 걸까? 그녀는 겁이 덜컥 났다.

“에드가, 어디 다친 거야?”

“아아.”

그녀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에드가는 잠시 고민했다. 뭐라고 설명하는 게 좋을까? 무턱대고 저주라고 말하자니 그녀가 더욱 불안해할 것 같았다.

그가 땅을 짚고 상체를 일으키자 그녀가 깜짝 놀라 부축했다.

단단한 팔에 밀가루 반죽처럼 부드러운 그녀의 팔이 얹어졌다. 항상 지켜 줘야만 할 것 같았던 그녀가 자신을 지켜 주려는 모습에 에드가는 쑥스럽고 또 기뻤다.

“크게 다친 건 아니고 잠깐 다리가 마비돼서 못 움직일 뿐이야. 해가 지면 다시 괜찮아질 거야.”

“다리가 움직여지지 않는다고? 그럼 크게 다친 거잖아.”

최대한 안심시키려 여상히 말했으나 역시 루비카는 경악했다. 그녀의 외침에 깜짝 놀라 새가 푸드덕 날아갔다.

루비카는 황급히 입을 가리고 주변을 살펴 보았다. 다행히 아직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일단 저쪽 동굴에 숨어 있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에드가, 다리는 다 못 움직이겠어? 아니면 하나만?”

“다.”

루비카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예상보다 에드가의 상태가 심각했다. 이럴 때 스테판이 나타난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판이었다.

그녀는 아무런 방비도 없이 숲속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고 쫓긴 아비규환의 기억이 있었기에 더욱 불안했다.

불행은 때를 가리지 않고 찾아오는 존재이나 피하려 노력하는 사람에게 조금이나마 덜 찾아오는 것도 사실이었다.

“움직이면 다리가 아플까?”

“아프진 않아.”

“내가 부축할게. 저기로 가자.”

에드가도 루비카가 가리킨 쪽의 동굴을 봤다. 몸을 숨기기에 딱 적당해 보였으나 거리가 꽤 되었다.

그는 퍽 건장한 편이다. 이런 자신을 그녀가 어찌 부축하고 간단 말인가. 에드가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여기 있어도 괜찮아. 위험하니 당신은 일단 저기에 몸을 숨겨.”

“그런 말이 어디 있어?”

화가 난 루비카가 그의 등을 퍽 때렸다. 근래에 드물게 감정이 들어간 주먹이었다.

루비카는 볼뿐만 아니라 이마까지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건 결코 부끄러워서 빨개진 게 아니라 화가 났다는 적신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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