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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부인의 비밀 의상실-136화 (136/212)

# 136

공작 부인의 비밀 의상실 136화

결국 그녀는 화를 참지 않고 소리쳤다.

“없다니까!”

“하.”

정작 도움이 필요한 건 요청하지 않고 쓸데없는 부탁이나 하다니. 에드가는 한숨 섞인 웃음을 흘리고 기분 나쁜 티를 냈다. 하지만 그의 그런 반응에 루비카는 외려 기뻐 보였다.

“보석은 엄청 크고 비싼 걸로, 내 예산 말고 당신 예산으로 사 주기다?”

“아아.”

전형적인 대사를 치는 그녀를 보고 에드가는 감을 잡았다.

루비카는 ‘개인 재산을 자칼 은행으로 옮겨 달라. 당신 돈으로 보석을 사 달라.’ 같은 철없는 느낌의 요구는 척척하면서 정작 아이작에 관해서는 그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보아하니 아이작의 일은 그의 속을 썩이지 않고 알아서 해결할 속셈인 듯했다.

‘하.’

정작 그가 신경 써야 할 일은 뒤로 숨기고, 철없어 보이는 요구를 하는 속셈은 뻔했다.

‘정 떨어지게 만들어서 내가 자길 싫어하게 만들려는 속셈이구나.’

고백하는 남성을 단호하게 거절했다가 애꿎은 꼴을 당하는 여성도 있다. 어떤 자들은 거절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쫓아다니거나 진심을 말하라며 상해를 가하기도 했다. 그런 경우를 피하기 위해 몇몇 여인들은 꾀를 냈다. 누군가는 이를 가리켜 ‘안전한 거절’이라 했다.

‘내 주먹만 한 에메랄드가 가지고 싶어. 날 좋아한다면 그 정도는 해 줘야지.’

들러붙는 남성에게 그런 무리한 요구를 한다. 그러면 남자들은 ‘돈 밝히는 여인이네, 사치스럽네.’라고 여인을 비난하며 떨어져 나간다.

설사 그런 비난을 듣는다 해도 거절하는 것보다 거절당하는 게 백배 안전하다. 에드가는 아름다운 어머니로 인해 이 수법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이를 차용해 그에게 접근하는 여성들에게 최대한 차갑게 굴어 질리게 만들었다.

‘진짜 자존심 상하네.’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을 상대로 ‘안전 거절’이란 수를 쓰게 되는 날이 올 줄은 몰랐다. 다 가졌다고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까지 가질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내가 아르망이란 사실을 알게 되면 땅을 치고 후회할 텐데…….’

이거면 아르망을 저주하고 욕하며 어떻게든 깍아내리려 했던 그의 부끄러운 과거와 비등해질 것 같았다.

‘좋아, 그래. 돈으로 나를 도발했다 이거지? 어디 한번 클레이모어의 부를 제대로 보여 주지.’

“칼에게 내일 저녁까지 수도에서 제일 유명한 보석상과 세공사를 데려오라고 하지. 아, 구두는 안 필요해? 지금은 편한 가죽 구두만 가지고 있는 것 같던데. 다이아몬드로 장식한 구두 정도는 있어야지.”

다이아몬드로 장식한 구두?

루비카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는 드레스의 색상에 맞춰 구두를 구입하긴 했으나 보석으로 장식할 생각까지는 못했다. 어차피 폭 넓고 긴 치마를 입으면 구두가 보일 일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부채가 이게 뭐야.”

“부, 부채가 뭐. 레이스도 사르망제이고, 자수도 엄청 예쁘잖아.”

“부챗살이 옥이 아니잖아.”

에드가는 테이블에 놓인 작은 부채에도 혹평을 가했다. 그리고 자수 바구니에 있던 돋보기를 꺼내 볼멘소리를 했다.

“이건 왜 은제야. 금이 아니고.”

그리고 루비카에게 말할 기회도 주지 않고 바로 하인을 불렀다.

“이거 싹 다 금으로 교체해.”

루비카는 상상도 못한 부분에서 돈 쓸 곳을 찾아내는 그의 행동에 놀랐다. 처음 공작가로 올 때 마차 안에서 본 ‘검소한 척하지만 장인의 손목을 갈아서 만든 듯한 장식’을 그냥 보아 넘기는 게 아니었다.

“칼, 수도에 마차를 보내.”

루비카는 왕국 최고의 보석상을 데려오기 위해 에드가가 마석마차를 수도로 보낼 것을 명령하는 광경까지 두 눈 뜨고 지켜봐야 했다. 그리고 그는 규방은 물론 침실을 한 바퀴 둘러보며 루비카는 상상도 못한 기상천외한 주문을 하기 시작했다.

루비카가 하나 깜빡한 게 있다. 비록 그녀가 무역상 집안 출신이라 할지라도 사치에 대해 아는 기준은 어디까지나 검소를 미덕으로 삼는 세리토스 왕국 수준이었다. 하지만 에드가는 아론의 아카데미를 다니는 동안 귀족의 미덕은 소비이고 부를 자랑하는 것이라 믿는 나라의 사람들을 만났다. 사치품에 관한 에드가의 견문은 루비카가 다다를 수 없을 정도로 넓었다.

역시 돈도 써 본 놈이 더 잘 쓴다.

* * *

매일 에드가가 보낸 선물이 루비카의 방에 산처럼 쌓였다. 그녀보다 하녀들이 더 기뻐하며 선물 상자를 풀었다.

“어머, 마님. 구두에 달린 레이스 좀 보세요. 진짜 얇아요.”

“부챗살이 백옥인데 나무로 만든 것보다 섬세해요. 이것 봐요. 여기 새겨진 아기 천사님이 너무 귀엽네요. 각하는 어디서 이런 걸 구하신 걸까요?”

하녀들은 호들갑을 떨며 물건을 구경했다. 다른 때였다면 그들보다 더 열정적이었을 루비카는 한숨을 푹 쉬었다.

‘콩깍지를 벗기려다 이런 선물 폭탄을 맞게 되다니…….’

루비카는 에드가의 짐작대로 그가 자신에게 정을 뗐으면 하는 마음에 보석을 사 달라 했다. 하지만 안전 거절을 계산하고 한 행동은 아니었다.

그녀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지다 못해 아름답기까지 한 남자가 평범한 자신을 사랑하다니! 자신은 특출하게 예쁘지도 똑똑하지도 않았다. 어쩌면 다른 사람을 좋아한다는 말에 괜히 경쟁심이 올라서 그런 건지도 모른다.

루비카는 그의 눈에 낀 콩깍지가 한 꺼풀 떨어져 나가면 자신에 대해 가진 특별한 마음을 쉬 버릴 수 있으리라 믿었다. 클레이모어 공작 부인 자리에는 자신보다 더 능력 있고 예쁜 여자가 어울렸다. 역대 공작 부인의 면면 옆에 자신을 가져다 대기에는 그녀들의 수준이 너무 높았다.

그가 정신을 차리게 해 주려 했건만 에드가는 정신을 차리기는커녕 더 이상해졌다.

“내일쯤 보석상에 주문한 목걸이가 온다면서요?”

“그렇게 예쁘고 큰 루비는 처음 봤어요.”

루비…….

그 목걸이를 주문하던 때를 떠올리면 루비카는 지금도 닭살이 돋아 죽을 것 같았다. 에드가는 마석마차를 타고 온 보석상이 내민 수많은 보석 중 가장 크고 비싼 루비를 대뜸 골랐다.

―당신 눈 색이랑 좀 비슷하군. 좀 더 반짝이면 좋을 텐데…….

―아니, 내 눈은 저렇게 반짝이지 않아. 잘 봐. 갈색에 그냥 붉은 기운이 도는 정도야.

―무슨 소리야. 저것보다 더 반짝이는데.

그리고 루비카의 목에 대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더 질 좋은 건 없어?

―각하, 그건 특상 중의 특상품입니다.

―……어쩔 수 없군. 당신 눈동자보다 한참 떨어지지만 이걸로 만족하지.

괜히 그를 도발했다. 에드가가 이렇게 돈 쓰는 데 재능이 있을 줄은 몰랐다. 그는 수많은 디자인화 중 목이 아플 정도로 보석을 주렁주렁 단 목걸이를 선택했고 세트로 귀걸이와 반지까지 주문했다. 결국 참다못한 루비카가 에드가를 말렸다.

―에드가, 당신 예산에 무리 아냐?

―이건 예산으로 사는 거 아냐. 내 개인 재산으로 사는 거니까 괜찮아.

―하지만 그래도 너무 비싸.

―돈 벌어 어디다 쓰겠어. 내가 목걸이를 사? 귀걸이를 사? 당신한테 보석 사 주는 재미를 빼앗지 마.

그러고는 구두에 장식할 용도로 에메랄드와 다이아몬드를 더 주문했다. 벌써 2년 치 수입 이상을 번 보석상은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이후에도 그는 각종 장인을 불러 대기 시작했다. 부채부터 물건을 담는 주머니까지 그는 금칠을 해 댔다.

―이거 말고도 뭐 필요한 거 없어? 힘든 거나. 도움이 필요 한 거.

그리고 주문을 끝낼 때마다 그녀를 꿰뚫듯이 쳐다보며 질문했다. 이건 뭐 신종 고문도 아니고 루비카는 당혹스럽기 그지없었다.

―제발, 방이 넘칠 지경이야. 에드가, 난 됐으니 그만, 그만 주문해. 더 필요한 건 없어.

―그러고 보니 우산이랑 양산이 너무 평범했어. 고작 나무로 대를 만들다니, 당신은 그것보다 더 비싼 걸 들어야 해. 금은 쉽게 휘어지니 은이 괜찮을까?

―에드가, 제발.

―왜? 은은 별로야? 옥으로 할까?

천연덕스럽게 에드가가 질문했다. 그는 루비카가 여태 아이작 문제를 말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살짝 심통이 나 있었다. 그는 루비카가 두 번 다시 ‘무리한 금품 요구로 자신을 싫어하게 만든다.’라는 술수를 쓰지 않도록 산처럼 많은 선물을 보냈다.

그리고 이를 목격한 상인들은 수도에 올라가자마자 소문을 냈다. 공작이 부인에 미쳐서 돈을 마구 쓰고, 부인이 이를 말리고 있는 형국이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어느덧 루비카는 자신도 모르게 검소한 공작 부인이 되었다.

“어떻게 취소할 방법이 없을까.”

“그런 말씀 마세요. 이렇게 정성 들여 만들었는데 취소하시면 상인 입장에서도 곤란할 거예요.”

“그건…… 그렇지.”

어쩔 수 없이 떨떠름한 기분을 느끼며 루비카는 옥으로 만든 부채를 펼쳤다. 예쁘기는 정말…… 황홀할 정도로 예뻤다.

“마님, 마담 카나께서 왔습니다.”

“카나가? 아, 주문한 드레스가 완성되었나 보네. 규방에서 기다리라고 전해. 엘리제, 잠시 이걸 앤에게 전해 주겠니?”

루비카는 일부러 엘리제를 앤에게 보냈다. 그리고 선물의 산으로 빼곡한 침실을 빠져나가 규방으로 갔다. 카나는 약속한 대로 리본을 사용한 세 벌의 드레스를 가지고 왔다.

“와, 정말 예쁘구나.”

가봉을 간신히 끝냈음에도 드레스는 상상한 것보다 예뻤다. 처음 이 드레스를 떠올리게 한 로열블루 천으로 만든 것도 예뻤지만 루비카를 위해 하얀 천 위에 이국적인 꽃무늬가 큼직하게 들어간 드레스도 만만치 않았다.

“한 번 입어 보세요. 불편한 부분은 없는지 체크해 볼게요.”

“그래. 일단 입어 보자.”

그러나 처음 보는 형식의 드레스에 당황한 하녀들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옷만 잡았다. 이에 루비카가 차분한 목소리로 지시를 내렸다.

“이 부분은 핀으로 고정해 주고, 거기는 끈으로 묶어 줘.”

능숙한 루비카의 지시에 카나는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옷에 대해 배운 적이 없는 공작 부인이 어쩜 그렇게 정확한 지시를 내릴 수 있을까. 이후 장갑을 선택하고 목걸이를 선택하는 것까지 완벽해서 그녀는 무어라 더 보탤 말이 없었다.

“와.”

옷을 다 차려입은 루비카를 본 하녀들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여태 본 적이 없는 색다른 디자인의 드레스였다. 낯설었지만 충격적일 정도로 예뻤다. 특히 가슴을 장식한 매듭은 보석을 휘황찬란하게 단 스토마커보다 화려했다.

“마님.”

제니가 홀린 듯 루비카에게 다가갔다. 질문하지 않아도 루비카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알고 있었다.

“괜찮아. 해도 돼.”

순식간에 드레스에 어울리는 머리와 화장이 완성되었다. 그리고 제니는 화병의 꽃을 몇 개 집어 루비카의 머리에 꽂았다. 드레스의 화려한 꽃무늬와 그림같이 잘 어울렸다.

“정말 신기하고 예뻐.”

“특이한 옷이라고 생각했는데 마님이 입으니까 정말 예쁘다.”

“가슴에 저 장식은 뭐지? 일반적인 매듭과 다른 것 같은데.”

“리본이라고 해요.”

하녀들의 수군거림에 카나가 답했다.

“리본이요?”

“네, 마담 베리의 아이디어랍니다.”

루비카는 볼이 순간적으로 화끈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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