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809화 (809/858)

제809화

사람들이 감은전으로 한달음에 향했으나 다행히 불길이 난 곳은 편전이었다. 유 재상과 사람들은 크게 안도하면서 불을 끄는 승려를 붙잡고 물었다.

“폐하는, 폐하는 어디 계시는가?”

스님이 깜짝 놀랐다.

“아… 폐하… 폐하는… 저희는 모릅니다…….”

이야기를 하는 중에 주운환이 사람들을 데리고 감은전에 들이닥쳤다. 과연 양왕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주운환은 경위영을 시켜 법화사를 이 잡듯 뒤졌고 유 재상과 사람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폐하…….”

그제야 뒤따라 올라온 수풍과 부하들은 황제가 사라진 것을 보고 당황했다.

“밀서의 내용대로라면 누군가 폐하를 해하려 하는 겁니다. 갑시다.”

주운환이 차갑게 내뱉었다. 그가 돌아서자 수풍이 중상을 입었음에도 다시 검을 들고 그의 앞을 막았다.

“진서왕…….”

“무엇을 기다립니까? 폐하께서 사라졌으니 본왕이 출병하여 폐하를 구해야 하겠습니다. 나를 막는 자는 죽게 될 겁니다!”

주운환의 얼굴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는 검으로 수풍을 밀어내더니 경위영을 이끌고 죽음의 신처럼 빠르게 멀어져 갔다. 수풍과 부하들은 주운환의 뒷모습을 보며 분해서 치를 떨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금위군을 따라온 기해는 이대로 죽고만 싶은 심정이었다. 이 모든 게 진서왕의 계획이란 심증이 강하게 들었다! 산에 올라갈 이유를 만들기 위해 주운환이 불을 놓으라 시킨 것일지도 모른다. 산에 있어야 할 황제가 보이지 않으면 병사를 풀어 구출하러 갈 정당한 명분이 생기지 않는가!

수풍이 금위군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따라간다!”

주운환을 막아야 했다. 수풍은 2백 명의 금위군만 남겨 두고 병사를 이끌고 떠났다.

주운환은 바람같이 산에서 내려와 여한 등 친위대를 데리고 대대적인 수색을 펼쳤다.

“지금은 폐하의 안위가 중요합니다. 정 부윤은 포졸을 더 데려와 금위군들과 함께 법화사를 조사하십시오.”

상황을 지켜보던 유 재상이 차가운 목소리로 분부했다.

“아이들의 일은 어찌합니까?”

여지가 물었다.

“지금 제일 급한 건 폐하가 아닙니까?”

오봉이 차갑게 웃으며 되묻자 여지는 버럭 화를 냈다.

“당연히 폐하가 가장 중요합니다. 하나 아이들의 일도 관련되어 있을지 모르니 여러 각도에서 알아봐야 한단 얘깁니다!”

“그렇다면 이 사건은 본왕에게 맡겨 주십시오! 그리고 오 상서와 여 상서도 함께 수사합시다!”

노왕이 나서니 유 재상이 두 눈을 반짝이며 고갯짓으로 동의했다.

“노왕 전하의 말씀이 옳습니다.”

모두가 바삐 움직였다.

유 재상과 장찬, 정 부윤 등은 법화사에서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 선생과 사람들은 궁으로 돌아가 소식을 기다리며 정무를 보았다.

* * *

진서왕부.

주운환은 법화사에서 경위영의 병사를 재배치한 후 집으로 돌아와 엽연채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이들 일은 너무 조바심 내지 말아요. 만약 사실이라면 아직까지는 안전할 겁니다. 내가 반드시 찾아올 테니까 안심해요.”

엽연채는 고개를 끄덕였다. 양왕이 주요를 데리고 있다면 그건 최악의 일이었다. 그 말은 곧 주운환이 맞서는 상대가 조정이고 심지어 반역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하지만 동시에 최선의 소식이기도 했다. 적어도 주요는 아직 살아 있을 것이다!

“부군, 나도 함께 갈래요!”

엽연채가 결연한 표정으로 주운환을 바라보았다.

“바깥은 위험합니다. 날 믿고 집에서 기다려 줘요, 네?”

주운환이 엽연채의 손을 잡고 다독였지만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물론 당신을 믿어요. 하지만 우리 요 생각에 도저히 더는 이리 가만있을 수가 없어요. 그리고 당신 곁이 제일 안전해요! 짐이 되지 않을게요, 약속해요!”

주운환의 마음속에서 여러 생각이 스쳤다. 자신이 하려는 일은 반역이 분명하니 양왕은 반드시 온갖 수단을 동원할 것이었다. 심지어 가족을 인질로 삼아 저를 협박할 수도 있었다. 하니 엽연채가 제일 안전한 곳은 자신의 곁이 맞았다.

이윽고 주운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당부했다.

“좋습니다, 따라와요. 고생스럽겠지만 조금만 참아 줘요.”

“걱정 말아요. 작년에는 동우산으로 당신을 찾아가기도 했잖아요. 난 아무것도 무섭지 않아요.”

작년 일을 떠올리자 주운환은 마음이 요동쳐 힘껏 그녀를 끌어안았다. 잠시 안고 있던 그의 머릿속에 뭔가 번뜩 스쳐 갔다.

“부인은 말을 탈 줄 모르지 않습니까.”

“금방 배울 수 있어요!”

주운환이 그녀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좋아요, 지금 연무장으로 갑시다. 가르쳐 주겠습니다.”

두 사람은 큼직한 연무장으로 갔다. 주운환은 말 한 마리를 끌고 오라고 했다. 진작부터 엽연채를 위해 준비했던 말이었다.

그녀는 작년부터 말 타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했지만 그땐 아이도 생기고 여러 가지 일이 생겨 바로 가르쳐 주지 못했다. 그리고 나중에는 짬이 나도 미루었다. 조만간 응성에 가면 가르쳐 줄 생각이었다. 그녀가 처음 말을 타는 곳이 한참을 달릴 수 있는 그 광활한 대지였으면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상황이 이리됐으니 이곳에서 부랴부랴 서둘러 가르쳐 줄 수밖에.

주운환은 우선 엽연채를 태워 한 바퀴 돌아 본 후 스스로 말에 오르게 했다. 말을 타는 것은 쉽다면 쉽고, 어렵다면 어려운 일이었다. 다만 손발이 모두 있고 대담하면 금방 배울 수 있었다. 승마 솜씨가 안정적이냐 불안하냐의 차이는 있겠지만.

다행히 엽연채는 원체 빨리 익히는 사람인 데다 주운환이 고심해 골라 둔 말도 굉장히 온순했다. 말에 오른 지 얼마 안 되어 거의 타는 모양새가 나왔고, 두어 바퀴 돌고 나서는 제대로 탈 줄 알게 됐다.

하지만 자세는 여전히 좀 불안해 낙마가 걱정된 주운환은 한 시진 정도 더 연습을 하게 한 후에야 그녀와 함께 문을 나섰다.

수화문에 도착해서 주운환은 여양에게 온씨와 엽균 식구들이 혹여나 잡히지 않도록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켜 두라고 명했다.

주운환이 중요한 사람을 보호하려고 일찍이 생각해 둔 피난처가 있었다. 작년 양왕을 도와 군사를 일으킬 때를 대비하여 준비한 장소였다. 하지만 그때는 대세를 타고 승기를 잡았기 때문에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 맞서는 사람은 양왕이었다. 황제가 된 그를 상대로 반드시 이긴다는 자신이 없었다.

여하간에 집은 혜연에게 맡기고 주운환 부부는 함께 집을 떠나 수색에 가담했다.

한데 주운환은 양왕이 가르친 사람이었다. 양왕은 주운환의 수단과 전략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고, 수풍 같은 그의 수하들이 계속해서 주운환을 저지했다. 순식간에 사흘이 지났지만 주운환은 여전히 양왕의 행적을 찾을 수 없었다.

그동안 양왕은 언동이나 하배를 보내 주운환을 저지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행적이 발각될까 걱정한 것인지 아니면 서로에게 최후의 보루를 남겨 두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마지막 선을 넘지 않기는 주운환도 마찬가지였다. 그 역시 아직 양왕의 명성에 흠이 될 만한 어떤 내용도 바깥에 알리지 않았다!

마지막 그 순간이 오기 전에는 주운환은 정말이지 양왕과 적이 되고 싶지 않았다. 만약 양왕의 일을 알린다면 도성의 백성들은 그에게서 돌아설 것이고 심지어 여지 같은 대신들도 그에게 등을 돌릴 것이다!

하지만 이건 주운환이 감춘다고 하여 감출 수도 없는 큰일이었다. 이 사건은 이미 알려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아이들이 납치되면서 이미 칼끝은 양왕을 향해 있었다! 여지를 비롯한 대신들이 조정에서 의논하면서 알게 된 바가 있기 때문이었다. 바로 사라진 아이들의 생년월일이 모두 똑같다는 것이다!

법화사의 일 이후 노왕과 오봉, 여지는 정월 대보름과 작년 칠월 중순 사라진 아이들의 생년월일을 조사했다. 조사를 하지 않았으면 몰라도 조사를 시작하자마자 온 도성이 들끓었다!

아이들은 모두 구월 초열흘에 태어난 아이들이라 작년 칠월 사라진 아이들은 벌써 다섯 살이 되었다. 그리고 정월 대보름에 사라진 아이들도 이미 다섯 살이었다.

그리고 얼마 전 사라진 몇 명의 귀족 아이들까지 하면 정확히 백 명이었다! 사내아이와 여자아이 각각 쉰 명!

관아에서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조사가 진행됨에 따라 아이들을 잃어버린 가족이 동요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조사 자체가 아직 슬픔을 벗어나지 못한 가족들의 아픈 곳을 들쑤시는 행동이었다. 희망을 버리지 못한 가족들이 수사에 대해 백방으로 알아보려 노력했다.

바람이 통하지 않는 벽이 없듯, 이틀이 채 되지 않아 아이들의 실종 사건이 심상치 않다는 말이 온 도성에 퍼져 나갔다.

“모두 같은 날 태어난 아이들이래. 그것도 남자아이, 여자아이 각각 쉰 명씩 총 백 명. 설마 무슨 주술이라도 부리려는 것 아니야?”

“보면 몰라? 30년 전 진왕도 양기를 보하겠다며 아이들의 피를 마시는 데 미쳐 있었잖아. 그것도 같은 해 같은 달에 태어난 아이들의 피만 마셨지. 서른 명이 넘는 아이들이 목숨을 잃었고, 진왕은 결국 참형을 당했지. 쯧쯧.”

“한데 정말 효과가 있었대. 그래서 예순이 넘은 진왕이 겨우 마흔 정도로밖에 안 보였다고.”

“정말?”

“진짜래두.”

“그럼 지금 이 사건도 무슨 사술과 연관된 게 분명해!”

“지금 이 일은… 범인이 황제의 앞에서 버젓이 사람을 잡아가고 있잖아. 그것도 백 명씩이나! 이게 악귀가 관련된 일이 아니면 뭐겠어!”

“대체 누가 이런 큰일을 벌였는지 모르겠군.”

“하나 생각나는 게 있는데. 작년에…….”

누군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하며 하늘을 가리켰다.

“황제가 즉위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갑자기 도사와 승려들을 수십 명이나 궁으로 불러들였잖아? 그리고 3만 명짜리 금위군을 만들어서 민가에 보내고! 그때 명약을 찾는 데 미쳤었다고 하던데, 불로장생할 수 있는 약을 찾겠다고 말이야!”

“아이구!”

주변 사람들이 탄식했다.

“그러다 칠월 초에… 승려들이 겨우 궁에서 나왔지. 그리고 칠월 중순인가 하순인가 인신매매꾼이 나타났고 구월 초열흘에 태어난 아이들이 사라진 거야!”

“아니, 그러면……!”

아이들이 사라진 직후에 조정에서 열심히 수색하지 않아 결국 유야무야됐었다. 그리고 곧 두 번째, 세 번째 사건이 연달아 일어났다…….

그렇다면 대체 누가 인신매매꾼을 잡는다는 말인가. 결국 도둑이 도둑 잡으라고 소리친 격에 불과했다.

누군가는 황제가 선황제 폐하에게 축원을 올리기 위해 궁을 나서 법화사로 갔다가 그림자도 찾을 수 없게 되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귀족 아이들 몇 명은 그저 우연히 그때 사라져 마침 백 명이 채워진 것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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