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72화 (72/858)

제72화

맹씨는 냉랭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러나 이미 벌어진 일이니 더 말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엽이채, 내 말을 잘 듣거라. 너를 우리 가문으로 들인 건 그렇게 하지 않으면 더 큰 웃음거리가 되기 때문이다. 널 어찌할 방법이 없어서 그리한 게 아니란 말이다! 알겠느냐?”

“예.”

엽이채는 맹씨가 마지막에 내뱉은 말에 기겁하여 바로 대답했다. 맹씨는 작게 한숨을 내쉬더니 방금 전 서슬 퍼렇던 모습을 거두고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 장씨 가문에 들어온 이상 너는 이제 장씨 가문 여인이다. 그러니 앞으로 점잖고 예의 바르게 행동해야 한다. 전처럼 비천한 언행은 용납할 수 없다! 네가 예법에 걸맞게 행동하며 자신의 본분을 다하면 우리 장씨 가문도 너를 박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자 엽이채가 얼른 대답했다.

“점잖게 행동하고 어머님 말씀도 잘 따르며 본분을 다하겠습니다.”

맹씨는 그렇게 일장 훈계를 늘어놓은 후 밖으로 나갔다. 엽이채는 장씨 가문 사람들이 자신을 못살게 굴 거라고 생각했으니, 맹씨의 말은 정말 뜻밖이었다. 훈계이기는 했지만 어쨌든 전부 그녀를 위해 한 말이었으니까.

이튿날, 차를 마시는 자리에서 맹씨가 엽이채에게 마노에 홍옥을 상감한 머리 장신구를 하사했고, 시아버지와 시할아버지도 그녀에게 사근사근 대해 주었다. 서출인 둘째, 셋째, 넷째 시숙부들도 자리에 있었지만 감히 그녀를 비웃거나 난처하게 하지 못했다.

엽이채는 완전히 시름을 내려놓았다. 자신은 사모하는 사람에게 시집을 갔고, 그에게 총애를 받았다. 그뿐이랴, 시어머니도 저를 품어주고 장씨 가문 사람들도 저를 귀히 여기고 있었다.

‘이제 적장손만 하나 낳으면 앞으로 더욱 떵떵거리며 살 수 있다!’

* * *

한편, 푸른 덮개가 달린 마차가 사람들로 붐비는 대로를 지나가고 있었다. 엽연채와 추길, 주운환이 조그마한 마차 안에 앉아 있으니 내부가 좀 비좁은 듯도 했다.

마차는 도성 중심의 주요 도로를 벗어나, 마필을 파는 상점을 지나가는데도 멈추지 않았다. 이 마차는 상점에서 빌린 것이 아니라 주씨 가문 마차였으니 멈출 이유가 없었다.

마차는 사실 중간에 망가진 적이 없었다. 집을 나선 엽연채는 주운환을 데리고 진귀루에 가서 아침 식사를 했고, 거기서 한 시진쯤 앉아 있다가 느긋하게 정안후부로 향했다. 그녀는 장씨 가문 사람들이 현명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엽이채는 분명 별문제 없이 장씨 가문으로 들어갔을 것이고 집안사람들은 그녀에게 잘 대해 주며 체면까지 살려 줬을 것이었다.

장씨 가문이 엽이채를 귀히 여기면 손씨는 또 거들먹거리며 허튼수작을 부릴 텐데, 그런 그녀가 할 첫 번째 허튼짓은 다름 아닌 자신을 비웃고 짓밟는 일일 것이었다. 뭐 그렇다면 그냥 비웃게 내버려 두면 되었다. 조롱하는 말 몇 마디 했다고 바로 맞받아치면 시시할 뿐이었다. 그들의 멸시가 극에 달했을 때 맞받아쳐야 진정으로 속이 시원할 것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엽연채는 입꼬리를 씨익 올리더니 저도 모르게 또 주운환을 쳐다봤다. 그는 늘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침에 그를 데리고 진귀루에 가서 아침 식사를 했을 때도 그는 별말 없이 젓가락을 움직일 뿐이었고, 정안후부에 도착한 후 마차 때문에 늦었다는 거짓말을 했을 때도 가만히 듣기만 할 뿐 아무 내색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식사를 할 때는 그녀에게 반찬을 집어 주며 금실 좋은 부부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굳이 설명을 듣지 않아도 이편의 생각을 이해하고는 말없이 그 뜻에 따라 준 것이다.

이각쯤 지나자 마차는 모퉁이를 돌아서 정국백부 동쪽 측문으로 들어선 후 수화문 밖에 멈춰 섰다. 두 사람이 마차에서 내리자 진씨의 여종인 녹지가 대나무 숲 아래서 그들을 맞았다. 기다리고 있던 녹지가 벌떡 일어서며 말했다.

“마님께서 이 시간이면 셋째 도련님과 셋째 마님이 돌아오실 거라며 저를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두 분께 일상원에 들렀다 가시라고 하셨습니다.”

엽연채는 미간을 찌푸렸으나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알겠다.”

두 사람은 녹지의 뒤를 따라 수화문을 넘어 남쪽으로 걸어갔다. 잠시 후, 일상원에 도착하자 녹지는 발을 열고 두 사람을 안으로 들여보냈다.

서차간으로 가 보니 진씨가 침상 위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무릎 위에 앉힌 주학해를 어르며 계화꽃떡을 먹고 있었고, 백 이낭은 하좌에 놓인 권의에 앉아 있었다.

“어머님.”

엽연채와 주운환이 앞으로 다가서며 인사를 올렸다.

“어, 돌아왔구나.”

진씨의 싸늘한 시선이 어린 부부의 얼굴로 향했다. 그녀는 곱고 잘생긴 두 사람을 보자마자 또 속이 뒤틀렸다. 진씨는 주학해를 살짝 일으켜 자신의 오른쪽 팔꿈치 안쪽에 기대게 한 후에 다시 입을 열었다.

“저번에 네가 친정으로 인사를 드리러 갈 때 셋째가 함께 가지 못했는데, 마침 오늘이 엽씨 가문 둘째 아가씨가 친정으로 인사를 드리러 가는 날이라 함께 가서 친척들과 인사를 나누며 얼굴을 익혔다고 들었다. 노야와 태태太太(부인)께서는 뭐라고 하시든?”

주운환이 대답했다.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좋은 분들이셨고, 저에게 연채를 잘 보살펴 주라고 하셨습니다.”

진씨는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주운환과 처갓집 식구들 사이의 일에 정말 관심이 있어 이리 물은 것이 아니라 그저 적당한 이야깃거리를 떠올린 것뿐이었다.

“잘되었구나. 오늘 처갓집에 방문한 이야기를 물어볼 겸, 그 김에 너희들에게 할 이야기가 있어서 이리 불렀다. 오월 초사흗날이 묘화의 생일이다. 올해 그 아이가 열다섯이 되었고 또 시집을 보낼 나이이기도 하니 성년식을 치를까 한다. 그때 사돈댁 식구들도 오셔서 함께 보셨으면 하는구나.”

엽연채는 어리둥절했다.

‘주묘화가 열다섯이 되었다고?’

그러나 미소를 지으며 차분히 대꾸했다.

“예.”

진씨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때가 되면 네가 사돈댁에 알려 드리거라. 피곤할 테니 이제 어서 가서 쉬고!”

엽연채와 주운환은 돌아서서 물러났다. 발이 닫히는 모습을 보고 있던 진씨는 고개를 돌려 백 이낭을 쳐다보며 말했다.

“묘화의 성년식을 성대하게 치를 것이다.”

백 이낭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마님.”

그러나 백 이낭은 말 그대로 성대하게는 치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3개월 전 주묘서의 성년식을 치를 때도 진씨의 친정 식구, 강심설의 친정 식구, 그리고 주씨 가문의 시집간 딸만 초대했었다. 주묘화는 서녀에 불과한데 어떻게 그녀의 성년식을 주묘서의 성년식보다 더 성대하게 치를 수 있겠는가.

진씨가 주묘화의 성년식을 핑계로 온씨를 부르자고 제안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친척들도 초대하지 않고 집안 식구들끼리 밥이나 먹고 머리에 비녀를 꽂는 정도에서 끝냈을 것이었다.

백 이낭은 진씨를 모셨던 심복답게 진씨가 속으로 분명 이런 생각을 할 줄 다 알고 있었다. 주묘서가 점점 나이를 먹으니, 진씨는 언제까지고 엽연채가 주묘서를 데리고 밖으로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좋은 인연을 만나게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수 없었다.

차라리 온씨를 직접 불러 좋은 사람을 찾아 달라고 부탁하는 편이 훨씬 더 나았다. 하지만 먼저 온씨에게 주묘서의 혼담을 꺼내면 없어 보일 테니, 온씨가 먼저 혼담 이야기를 꺼내며 도와주겠다고 말하도록 유도해야 자기 체면이 서리라고 판단했을 터였다.

* * *

서과원에 도착하자 주운환은 곧장 난죽거로 돌아갔다. 엽연채는 궁명헌에 들어서자마자 얼른 의복을 갈아입은 후 나한상에 기대어 하품을 했다.

“피곤해 죽겠네.”

추길이 베개를 가져와 엽연채의 머리 밑에 받쳐 주며 말했다.

“방금 전 이 집안 마님께서 둘째 아가씨 성년식에 저희 마님을 초대하셨는데, 제 생각에는 불순한 목적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러자 엽연채는 웃으며 대꾸했다.

“어머니께 주묘서의 혼처를 알아봐 달라고 하려는 게다!”

“네?”

추길은 깜짝 놀라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둘째 아가씨께서는 그런대로 괜찮은 분이시던데, 큰아가씨께서는 어쩜 그리 말썽만 부리시는지…….”

엽연채도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때가 되면 어머니께 미리 말씀드려야지. 부탁에 응하지 마시라고 말이야.”

사실 주씨 가문 아가씨의 혼처를 알아봐 주는 것은 별일 아니었다. 다만 주묘서가 보통 말썽을 부리는 아가씨가 아닌지라 그러고 싶지 않았다. 하자 있는 청년을 소개해 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앞날이 창창한 청년을 소개해 주는 건 그 청년에게 화를 입히는 일이 될 수 있으니, 무조건 피하는 게 상책이었다.

그때 혜연이 물그릇을 들고 걸어왔다. 그녀가 그릇에 손수건을 담근 후 꽉 짜서 엽연채에게 건네자, 엽연채는 그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은 후 화본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 * *

이튿날 아침, 주묘화가 엽연채를 찾아왔다.

“새언니.”

주묘화는 두리번거리며 뜰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엽연채는 소청에서 흰죽과 소가 들지 않은 찐빵을 먹고 있었다. 평소 푸짐한 식사를 하니 가끔 이렇게 흰죽과 소가 없는 찐빵을 먹는 것도 또 다른 별미였다.

무늬가 조각된 소청의 나무문은 칠이 벗겨져 있었는데, 문이 활짝 열려 있는 터라 뜰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엽연채가 고개를 들어 보니 흰색 바탕에 오밀조밀한 화훼 무늬가 들어간 긴 배자를 입은 주묘화가 다가오고 있었다.

“둘째 아가씨께서 왔군요.”

엽연채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손짓했다.

“앉으세요. 식사 전이면 아침 같이 들어요.”

소청으로 걸어 들어오던 주묘화가 고개를 숙이고 보니, 작은 원탁 위에는 소가 없는 커다란 찐빵 세 개가 접시 위에 놓여 있었고, 그 옆에는 짠지 한 접시와 흰죽이 든 냄비뿐이었다. 그리고 추길과 혜연도 자리에 앉아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주묘화는 저도 모르게 표정을 굳혔다. 셋째 오라버니의 식사가 소문대로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자신만 해도 오늘 아침에 고깃죽과 고기만두를 먹었는데 말이다. 주묘화는 손사래를 치며 사양했다.

“괜, 괜찮아요. 전 이미 먹었어요.”

“그럼… 둘째 아가씨께서 오늘 무슨 일로 절 찾아오셨을까요?”

엽연채는 숟가락을 내려놓더니 손수건으로 입가를 살짝 누르며 말했다. 그녀는 이미 배가 찬 상태였다.

주묘화는 엽연채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자 그만 말문이 막혀 버렸다. 자신이 평소 찾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용무가 없이는 방문하지 않을 것처럼 비쳐도 할 말이 없었다. 그녀는 살짝 붉어진 얼굴로 말했다.

“보름 뒤면 제 성년식이라 어머니께서 은화 삼십 냥을 주시면서 새 옷을 한 벌 해 입고 장신구 두 개도 사라고 하셨는데, 제, 제가 고를 줄을 몰라서요. 새언니가 도와주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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