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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서부-2화 (2/858)

제2화

엽승덕은 성가시다는 듯 눈살을 찌푸리며 두 여종에게 온씨를 데리고 나가라고 지시했고, 자신 또한 그 틈을 타 슬그머니 자리를 떴다. 지금 곤경에 빠진 사람이 자기 딸이 아니라 생판 남인 양 무관심한 태도였다.

그때 사동 하나가 안으로 달려 들어왔다.

“어르신!”

“어찌 되었느냐? 꽃가마가 도착했느냐?”

엽학문이 그에게 성큼 다가서며 물었다.

“아직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사동이 난처한 얼굴로 고했다.

“소인이 서둘러 장씨 댁으로 가 보았는데, 신부 맞이 행렬은커녕 혼례식이 아예 없는 일인 양 문조차 열지 않고 있었습니다. 찾아오는 손님이야 많았지만 장씨 댁 문이 닫혀 있자 하나둘 발길을 돌렸습니다.”

그 말을 들은 엽학문의 몸이 노여움으로 부르르 떨렸다.

“어디 이런 경우가 다 있단 말이냐! 장박원 그 빌어먹을 놈이 도망갔더라도 장씨 가문에서는 꽃가마를 보내 우선 이 혼사를 매듭지어야 할 것 아니더냐! 장찬 이 늙은이는 도대체 무슨 생각인 게야?”

여태 차만 홀짝이던 묘씨가 냉랭한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장씨 가문은 지금 체면이 말이 아니라고 생각할 겁니다. 둘째 그 계집애가 자기네 공자를 꾀어냈다고 생각하겠지요. 홧김에 혼사를 엎을 모양입니다.”

“그 늙은이가 감히 날 망신시키겠다고! 촌놈 주제에 감히! 삼대가 땅이나 파먹고 살던 하찮은 족속 주제에! 퉷!”

엽학문은 욕지거리를 한바탕 퍼부었다. 엽학문이 말한 것처럼 장찬의 집안은 본디 농사를 짓고 살던 가난한 집안이었다.

그런데 장찬이 돈을 빌려 공부를 하더니, 향시鄕試(과거 시험은 총 세 단계로 구성돼 있는데, 이 중 가장 먼저 치르는 시험을 뜻함)에 급제한 것이다. 이후 그는 엽학문과 같이 전시殿試(황제가 친히 주재하는 최종 시험)에 응시했는데, 엽학문은 7등, 장찬은 8등으로 진사進士에 급제해 함께 한림원翰林院에 들어갔다.

함께 일하는 동료임에도 엽학문은 장찬을 제대로 인정한 적이 없었다. 장찬은 출신이 미천하고, 성적 또한 자신보다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누가 알았겠는가? 엽학문은 수십 년이 지나도록 그저 책이나 관리하는 종4품 비서소감祕書少監에 불과했지만 장찬은 정3품 대리시경大理寺卿(형옥을 관장하는 대리시의 우두머리)이 되어 성총을 한 몸에 받게 될 줄은.

엽학문은 그 사실이 언짢아 죽을 지경이었다. 게다가 속으로는 장찬의 아첨하는 솜씨가 수준급이라며, 그를 뻔뻔스러운 인간이라고 조롱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자신보다 그런 촌놈이 먼저 진급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첫째 며느리인 온씨와 장씨 집안 며느리가 친분을 쌓게 되었다. 그리 마음에 들지는 않았으나, 엽학문은 그냥 내버려 두었다. 그랬더니 두 여인이 사돈을 맺자는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엽학문은 여전히 장찬을 업신여겼지만 장씨 가문이 황제의 총애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거기다 먼저 혼사 이야기를 꺼낸 쪽은 장씨 가문이 아닌가. 결국 그는 못 이기는 척 장씨 가문과 혼사를 맺기로 했다.

이 소식에 사람들은 이렇게 좋은 집안과 사돈을 맺다니 엽학문이 복도 많다고 뒤에서 수군거렸다. 엽학문으로서는 정말이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을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자신의 가문은 어엿한 정안후부靖安侯府로, 주요 관직을 역임해 온 명문대가였다. 그러니 자신의 가문보다 신분이 높은 가문과 인척 관계를 맺을 필요가 전혀 없었다. 무엇보다 장씨 집안은 농사나 짓던 한미한 가문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쪽 늙은이가 예를 제법 잘 갖추었기에 엽학문은 시시콜콜 따지고 들지 않기로 아량을 베푼 것이었다.

그런데 오늘, 손녀의 혼례식을 성대하게 준비해 놓았더니, 이 늙은이가 문을 걸어 잠그고 자신의 손녀를 맞이하지 않고 있었다. 그럼 자신의 체면이 어떻게 된단 말인가?

사동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르신, 이제 어찌하면 좋을까요? 혼사는 없던 일이 되는 걸까요? 손님들을 모두 돌려보낼까요?”

엽학문이 벌컥 화를 냈다.

“헛소리 말거라! 장씨 가문이 아니면 우리 엽씨 가문 여식이 시집갈 데가 없겠느냐!

…그저께 형편이 안 좋은 친지가 우리 집에 와서 돈을 요구하지 않았더냐? 아직 돌아가지 않았으렷다? 그자의 아들이 아직 배필을 구하지 못했다고 들었는데…….

유이야, 가서 큰아가씨를 배필로 맞을 사람이 있는지 물어보거라. 있다면 새신랑이 입을 예복으로 갈아입고 대청으로 와 혼례를 치르라고 하거라.”

셋째 며느리 나씨가 깜짝 놀라 외쳤다.

“아버님, 절대로 아니 됩니다!”

손씨가 손수건 아래의 눈알을 대굴대굴 굴리더니 ‘쿵’ 하고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녀가 눈물을 닦으며 호소했다.

“아버님, 그러시면 아니 됩니다. 저희 가문 적장녀를 어찌 그런 작자에게 시집보내신단 말씀입니까? 게다가 이 일이 알려지면 체면이 땅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장씨 가문에서 퇴짜 놓는 바람에 가문의 적장녀를 궁상맞고 초라한 집안에 되는 대로 시집보냈다고 사람들이 비웃을 겁니다.”

“그럼 어쩌란 말이냐!”

엽학문은 노여움에 소리를 질렀다. 더 좋은 수가 있다면 누가 이런 하책 중의 최하책을 택하겠는가.

그러자 손씨가 말했다.

“이 일은 어찌 됐든 둘째 때문에 벌어진 일입니다. 그러니 둘째의 남편을 데려오라고 하시지요.

장씨 가문에서 먼저 문을 걸어 잠갔으니, 저희도 이번 일은 없던 셈 치고 연채를 주씨 가문에 보내면 됩니다. 사람들에겐 연채가 시집갈 곳은 원래 주씨 가문이었다고 알려야지요.

어차피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 해 봐야 엽씨 가문 아가씨 중 한 명은 장씨 가문과, 다른 한 명은 주씨 가문과 혼사를 정했다는 정도입니다. 누가 어느 집안과 정혼했는지는 아직 모르니까요.”

이에 나씨가 눈을 부릅뜨고 냉소를 지었다.

“참 좋은 생각이긴 한데 손님들이 어디 눈뜬장님입니까? 청첩장에 분명히 적혀 있는데 어찌 그렇게 우긴단 말씀이셔요.”

“하인들이 일 처리를 똑바로 못해 잘못 적힌 거라고 둘러대면 되지.”

손씨가 침착하게 반박했다.

“내가 낸 방도도 하책이기는 하나, 이쪽이 듣기에도 낫고 그나마 덜 창피하지 않겠어? 게다가 백부伯府인 주씨 가문이 돈이나 요구하는 궁상스러운 집안보다는 훨씬 나아.”

순간 말문이 막힌 나씨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손씨의 속셈을 뻔히 알고 있지만, 체면을 목숨만큼 중요시하는 엽학문의 성정을 볼 때 그는 절대로 혼례식을 취소하지 않을 것이었다.

게다가 손씨의 계산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기는 했다. 이도 저도 아닌 가난한 친지에게 시집가느니 서자이기는 해도 백부 집안에 시집가는 편이 훨씬 낫지 않은가.

상석에 앉아 있던 묘씨는 눈썹을 살짝 치켜세울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첫째든 둘째든 셋째든 다 자기 배로 낳은 자식이 아니니, 그들의 자식이 어찌 되든 관심이 없는 까닭이었다.

엽학문이 물었다.

“둘째가 말하는 주씨 가문이 어디를 말하는 것이냐?”

“어느 가문이겠습니까? 당연히 정국백부定國伯府를 말하는 것이지요.”

엽학문은 ‘음’ 하며 수염을 만지작거리더니 곧 생각이 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정국백부는 도성 안에서 몰락한 집안으로 유명했다.

정국백부는 본래 장군 가문으로, 조상 대대로 늠름한 대장군들을 배출한 명문가였다. 하지만 8년 전 주씨 가문의 선대가 군대를 이끌고 출정했다가 패전하고 말았다. 황제는 그에게 옥안관玉安關 참패의 책임을 지게 하여 병권을 박탈했다.

그 후로 황제는 주씨 가문 사람들을 거들떠보지 않았다. 그렇게 주씨 가문 사내들은 문인도 무인도 될 수 없는 처지가 되었고, 정국백부는 몰락하고 말았다.

“오늘 주 백야께서도 오셨느냐?”

엽학문의 물음에 손씨가 얼른 대답했다.

“조만간 사돈댁이 될 분이시니 당연히 오셨죠. 유이야, 혼사에 관해 상의할 것이 있으니 얼른 가서 주 백야를 모셔오너라.”

유이는 엽학문을 한번 쳐다본 후 달려 나갔다.

잠시 후, 주 백야가 어기적거리며 걸어왔다. 그는 활기가 없어 보이는 중늙은이로, 이제 마흔 줄에 접어들었지만 초췌한 얼굴 탓에 오십은 되어 보였다.

엽학문은 주 백야에게 무언가를 말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수치스러워서 차마 그 말을 내뱉지 못했다. 그는 결국 콧방귀만 뀌고 뒷짐을 지며 돌아서 버렸다.

이에 손씨가 서둘러 혼사를 확정 짓기 위해 본론을 꺼냈다.

“어떤 때려죽여도 시원치 않을 놈들이 저희 가문 둘째 여식의 평판에 흠집을 내고 있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 어찌 둘째 여식을 어르신 댁에 시집보낼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저희 아버님께서 대신 어르신 댁 셋째 공자님께 저희 적장녀 연채를 시집보내기로 하셨습니다. 저희 연채는 어엿한 적출 소생이니 서출인 둘째 여식보다 고귀한 신분인 건 더 말할 것도 없지요.”

손씨는 엽씨 가문 적녀가 너희 가문 서자에게 시집가는 건 이쪽에서는 엄청난 손해이나 그쪽에게는 큰 이득이라는 듯 거만한 얼굴로 말했다.

주 백야가 어리둥절하여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요?”

말을 내뱉자마자 밖에서 들리던 소문이 떠올랐다. 새신랑이 처제와 도망을 갔는데 공교롭게도 그 처제가 자신의 며느리가 될 사람이라는 소리였다. 그런 상황에 새신부가 시집갈 곳도 없어졌으니 저쪽에서는 그녀를 자기 가문에 밀어 넣을 심산인 것이다.

자신이 아무리 힘없는 사람이라 해도 엄연히 정국백부 주씨 가문의 주인이었다. 그런데 마음대로 주무르고 핍박해도 되는 만만한 사람 취급을 당하다니! 체면이 말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감히 성을 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몰락한 가문 주제에 주 백야가 망설이는 태도를 보이자, 엽학문은 수치심에 못 이겨 벌컥 성을 냈다.

“받아들이지 않으실 겁니까?”

주 백야는 감히 엽학문의 미움을 사는 행동을 할 수 없었다. 그러니 어찌 엽학문이 호통을 치는데 감히 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 그럼… 그렇게 합시다!”

“그럼 어서 가서 꽃가마를 보내세요. 아, 그럴 것 없이 저희 쪽에서 보내지요! 유이야, 유이야! 어서 가서 꽃가마를 빌려오고 신부 맞이 행렬을 맞이하거라. 서둘러!”

손씨가 재촉했다. 일이 이렇게 결론이 났으니 나씨도 더는 나설 수 없어 자리를 뜰 수밖에 없었다.

나씨가 안녕당 밖으로 나오니 엽미채와 혜연이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밖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나씨는 얼른 혜연을 끌고 가 안에서 벌어진 이야기를 전부 들려줬다. 그러곤 돌아가서 엽연채에게 이 사실을 알리라고 분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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