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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여독비-418화 (418/442)

418화 계획 변경

* * *

북강 사신들을 이끌고 돌아온 도오는 즉시 계책을 도모했다.

“대왕께 쓴 서찰을 오늘 보내도록 하세요. 그리고 월왕이 언제 서릉을 뜰지 모르니 사람을 보내 감시하고요.”

“대인, 월왕이 서릉을 떠날 거라는 말입니까?”

“사태가 이리 커졌으니 황실의 체면 때문에라도 황제는 월왕비를 유산시키려 들 것입니다. 한데 오늘 월왕의 태도가 어디 제 아이를 포기할 사람으로 보입디까? 안전한 곳으로 몸을 피할 것이 분명합니다.”

일이 도오의 예상보다 훨씬 술술 풀리고 있었다. 하늘이 북강의 편에 선 것만 같았다. 이제는 옆에서 부채질만 해도 대력조에 크나큰 분란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도오가 한쪽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그들이 서릉을 떠나는 즉시 우리는 황실 사람으로 위장해 아이를 없애면 됩니다. 그럼 자식을 잃은 월왕이 십중팔구 반역을 꾀하지 않겠습니까?”

“대인, 앞서 준비해 뒀던 걸 지금 쓸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이전부터 북강은 암암리에 무기와 전투용 말을 준비해 두었었다. 하지만 영군진이 참패하면서 대부분은 써 보지도 못하고 대기 중이었다.

“그 말씀을 하시니 좋은 수가 하나 떠올랐습니다. 필묵을 주세요. 월왕에게 서신을 보내야겠습니다.”

“대인, 월왕이 우리 북강에게 이를 갈고 있는데 지금 서신을 보내면 받겠습니까?”

“이를 간다고요? 한 핏줄인 황제와 월왕을 보세요. 어느새 형제에서 원수가 됐습니다. 같은 이치예요. 이제껏 월왕은 북강을 적으로 여겼지만, 이제는 우리를 지원군으로 반길지도 모를 일입니다.”

도오가 확신에 찬 투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북강은 월왕과의 전투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셨어요. 그런 우리가 먼저 손을 내미는데 덥석 잡지 않겠습니까?”

“그럼 월왕의 반역을 돕겠다는 뜻입니까?”

도오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그의 눈에 예리한 빛이 스쳤다.

“우리가 갑자기 태세를 전환하면 월왕이 의심부터 하고 들 겁니다. 차라리 거래를 제안하는 편이 나아요. 우리 손에 있는 무기를 내주고 역병 처방전과 식량을 얻어 내는 겁니다.”

역병 처방전은 목운요가 만든 것이었다. 그러니 다시 작성하는 일은 식은 죽 먹기일 터. 이는 월왕에게 월등히 유리한 거래였다. 그가 거절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도오는 이 모든 게 연극이라는 것은 꿈에도 모른 채, 월왕의 마음을 움직일 글귀가 뭘까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 * *

대신들이 모두 물러가자 장공주는 궁녀와 내관들도 모두 내보냈다.

그러자 황후 민방화가 목운요의 손을 꼭 부여잡고는 걱정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운요, 괜찮느냐?”

잠시 휴식을 취한 목운요는 안색이 호전돼 있었다.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괜찮습니다, 마마. 걱정 마세요.”

하지만 민방화는 도무지 미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아깐 나도 너무 놀랐네. 그 궁녀는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어. 대체 누구의 지시를 받은 건지. 하나 염려 말게. 내 반드시 낱낱이 조사해서 밝혀낼 테야.”

“황송하옵니다, 마마.”

조금 전의 일을 전혀 마음에 담아 두지 않는 듯 목운요의 미소는 더없이 평화로웠다.

그에 민방화는 내심 안도하며 여태 궁금하던 걸 물었다.

“한데 아까 한 말은 뭔가? 설마하니 정말…….”

황후의 눈이 목운요의 배로 향했다.

그에 얼굴이 붉어진 목운요가 고개를 살며시 들었다. 황제, 장공주, 월왕이 바로 코앞에서 눈을 반짝이며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선령이 오늘 맥을 짚으며, 한 달이 채 안 된 것 같다고 했어요. 그래서 맥이 아직은 약합니다.”

국상 기간이 끝나고 월왕과 동침한 날 아이가 들어선 것이 분명해 보였다.

월왕은 감격을 주체하기 어려웠다. 당장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목운요를 끌어안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체통이라는 것이 그를 말렸다.

벅찬 마음을 애써 진정시킨 그가 목운요의 배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렇게 한참을 있더니 짐짓 심각한 투로 말했다.

“아들아, 내가 네 아비다.”

목운요는 월왕의 말에 양 볼이 발그레해졌다.

“사야!”

조금 전까지 무시무시했던 월왕은 온데간데없이 인자한, 그리고 창피함을 모르는 사내만 앞에 있었다.

그에 황제와 장공주는 웃음을 터트리며 즐거운 얼굴로 월왕과 목운요를 바라봤다.

얼굴에 잠깐 부러움이 스친 민방화가 옆에 서 있는 선령에게 다가가 나지막이 물었다.

“선령, 월왕비의 건강은 어떠하더냐. 태아는 무사한 것이지?”

“황후 마마께 아룁니다. 다행히 여름철이라 물이 그리 차지 않았습니다. 단지 놀라신 것뿐이니 근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민방화가 고개를 끄덕이며 살며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

이번 일로 목운요가 아이를 잃기라도 했다면 평생 그녀의 마음에 짐으로 남았을 것이다.

장공주는 목운요를 제 앞에 끌어 앉히고는 말했다.

“요아, 여인이 생명을 잉태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은 없다. 불편한 일이 있거나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마음에 담아 두지 말고 꼭 군월에게 얘기하도록 해.”

“네, 외할머니.”

“그리고 앞으로 이런 위험한 일은 절대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거라. 오늘 네가 물에 빠졌다는 소식을 듣고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너와 아이가 모두 무사하니 망정이지, 만에 하나 잘못됐다면…… 생각도 하기 싫구나.”

월왕이 인상을 쓰며 그녀의 말에 동조했다.

“맞습니다.”

장공주는 신신당부를 하고 나서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한 가지 제안을 건넸다.

“평소라면 금란과 금교가 부족함이 없겠지만, 지금은 네가 회임을 했잖니. 그 아이들은 아무래도 미숙할 터이니 공주부로 옮겨 와 지내는 게 좋을 것 같구나.”

월왕은 또 주책없이 그러겠다고 할 기세였다.

목운요가 그런 월왕을 얼른 가로막았다.

“외할머니, 원래 계획대로 저와 월왕 전하는 서릉을 잠시 떠나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장공주가 화들짝 놀라자, 그녀의 손을 살포시 잡은 목운요가 엷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외할머니, 계획을 절반까지 수행했는데 이렇게 포기할 수는 없어요. 이런 기회가 또 언제 올지 알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그러니 북강을 지금 완전히 무릎을 꿇게 만들어야 해요.”

장공주는 차마 말릴 도리가 없었다. 자신이 같은 입장이었어도 목운요와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손녀가 회임한 몸으로 모험을 감행한다니, 머릿속이 혼란스럽기만 했다. 마음도 아려 왔다.

황후도 장공주 편에 서서 거들었다.

“운요, 조정의 일은 폐하와 월왕이 해결하면 되네. 자네가 지금 신경 쓸 일은 몸조리를 잘하는 것뿐이야.”

“외할머니, 황후 마마. 저도 직접 가담할 생각은 없습니다. 사야 밑에 변장술에 능한 이들이 있어, 저와 체격이 비슷한 이를 골라 저로 변장시킬 참이에요. 하나 계획에 직접 참여하지 않는다 해도 서릉은 떠나 있어야 할 듯합니다. 혹 말이 새어 나가기라도 하면 폐하와 사야께서 공들이신 계획이 물거품이 돼 버릴 거예요.”

목운요는 사람들의 걱정을 덜어 주려 태연하게 설명했다. 하지만 그녀도 알고 있었다. 이번 일이 그리 녹록지만은 않을 것임을 말이다.

장공주는 걱정이 앞섰지만 한편으로는 대견한 마음이 들었다. 역시나 자신을 실망시키는 법이 없는 외손녀였다.

“그럼 이렇게 하자꾸나. 계획을 좀 변경해야겠어. 요아는 황후 때문에 유산한 척을 하거라. 그런 뒤 군월은 이 일로 폐하와 갈등을 일으키도록 해. 나는 일단은 이 일을 모른 척하고 있다가, 상황을 봐서 요아를 능서행궁으로 데려가도록 하마. 능서행궁은 능서산에 있어서 평소 사람이 드나들기가 쉽지 않아. 은신하기에 그만한 곳이 없지. 그리고 군월이 계획대로 실행하면 되지 않겠나.”

“그렇게 할게요.”

목운요가 고개를 끄덕여 동의하고는 월왕을 애틋하게 불렀다.

“사야…….”

잠시 고민하던 월왕도 결국 허락했다.

“요아, 고모님과 능서행궁에 가 있는 동안은 내가 곁에서 지켜 주지 못하니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절대 무리해서는 안 돼.”

“염려 마세요.”

목운요는 아쉬운 감정을 마음속 깊이 눌러 담고는 빛나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때로는 피할 수 없는 일도 있는 법이었다.

* * *

장공주는 연극에 완벽을 기하기 위해, 황후를 시켜 목운요가 궁에 남을 것을 명하도록 했다. 이런 상황이 연출되자 궁궐 내에는 갖가지 추측들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계획이 일사천리로 이뤄지며 사흘이 지났다.

목운요와 함께 마차에 오른 월왕은 시선이 자꾸만 그녀의 배로 향했다. 그때마다 그의 입꼬리도 조금씩 올라갔다.

그와 목운요의 아이가 태어날 걸 상상하니 따스한 기운이 온몸을 감싸는 느낌이었다.

목운요가 그런 월왕을 흘겨보며 말했다.

“사야, 자꾸 그리 쳐다보지 마세요. 그리 티 나게 웃지도 마시고요. 곧 있으면 마차에서 내릴 터인데 빌미라도 잡히면 어쩌시려고요.”

목운요의 회임 소식을 들은 지 벌써 사흘이 지났건만 월왕은 웃음을 거둘 줄 몰랐다. 황제가 그를 수차례 놀려 대도 오히려 증상은 더 심해질 뿐이었다.

목운요의 꾸지람에 월왕이 진지한 표정을 지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입꼬리가 다시 위로 쑥 올라갔다.

“요아, 우리가 아이에 대해 나눈 이야기를 이 녀석도 들었나 보다. 그러니 우리에게 온 게 아니겠어?”

월왕은 배 속의 아이가 마치 하늘에서 내려 준 것처럼 신기하기만 했다.

그 모습에 목운요는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다. 아무리 뭐라 해도 그의 마음 가득 지펴진 기쁨의 불을 끌 수는 없었다.

결국 잔소리를 그만두려는데 월왕이 그녀의 머리를 제 어깨에 비스듬히 대었다.

“좀 쉬거라. 회임한 여인들은 잠이 많아진다고 하던데.”

목운요는 ‘그것도 사람 따라 달라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월왕의 진지한 눈빛에 그저 속으로만 한숨을 내쉬고는 살며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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