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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여독비-394화 (394/442)

394화 짐승의 먹이

이경주는 그런 그들을 향해 비아냥대기 시작했다.

“폐하께선 이미 죽으셨습니다. 범인은 바로 목운요, 영군유와 영군월이지요. 후세 사기에 이렇게 적힐 겁니다.”

“이경주, 너…… 대체 짐한테 무슨 원한이 있길래…… 이렇게 반역을 꾸미는 것이냐?”

“폐하께서도 연세가 지긋하시니 현명한 자에게 황위를 물려줄 때가 되었지요. 그 자리에 가장 적합한 자가 바로 진왕 전하입니다. 그리고 소신은 반란이 아닌, 폐하의 죽음을 위해 복수한 어질고 현명한 신하가 되겠지요.”

이기는 자는 왕이 되고, 지는 자는 역적이 되는 법. 성공해서 스스로 충신임을 자칭하면 역사에 길이 기억될 충신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황제는 이경주의 본모습에 충격을 금치 못했다.

그사이 순율이 명을 내리자 병사들이 빠르게 몰려와 공격하기 시작했다.

월왕과 유왕 등이 막아섰지만 관원들 대부분이 무공을 모르는 탓에 역부족이었다.

결국 얼마 버티지 못하고 전부 결박당했다.

진왕의 눈이 목운요에게로 향했다. 비록 얼굴이 창백해지긴 했지만, 그녀의 눈빛은 두려움이 아닌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진왕은 문득 혼례식 날 빨간 혼례복을 입었던 목운요의 아름다운 모습이 떠올랐다.

순간 질투심이 솟구친 그는 월왕의 가슴팍을 힘껏 걷어찼다. 몇 번의 발길질 후에 그가 목운요에게 다가가 그녀의 턱을 잡고 억지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

목운요는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진왕을 쏘아보았다.

“영군진, 당신은 정말 역겨운 인간이야!”

진왕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그가 그녀의 턱을 꽉 잡으며 말했다.

“애원해 봐. 그럼 목숨만은 살려 주지.”

목운요가 냉소를 지었다.

“당신 살길이나 알아보지 그래? 이경주, 저자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나 해? 몰래 북강과 내통해 철기 밀매로 대력조의 근간을 갉아먹는, 눈앞의 이익 외에는 아무것도 뵈는 게 없는 사람이거든. 그런 사람을 믿고 부황과 형제를 죽이려 하다니, 업보가 두렵지도 않아?”

“업보? 허.”

진왕이 코웃음을 쳤다.

“업보 같은 건 모르겠고, 내가 믿는 건 나 자신뿐이다.”

월왕은 단단히 포박된 데다 내력을 약화시키는 약까지 먹은 탓에 옴짝달싹 못 하는 몸으로 분노에 가득 차 소리쳤다.

“영군진, 운요한테서 손 떼! 죽여 버릴 거야!”

그에 진왕이 일어서더니 다시 한번 월왕을 향해 발길질한 뒤 통쾌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보지?”

그때, 진왕의 심복이 말을 타고 달려와 알렸다.

“전하, 황궁에 남아 있던 장공주와 혜의 부인, 그리고 근위병들도 전부 제압했습니다. 다만, 옥새를 아직 못 찾았습니다.”

진왕의 안색이 급변하더니 황제한테 다가가 물었다.

“부황, 옥새를 어디다 숨긴 거죠?”

황제는 바닥에 누운 채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위풍이 넘치는 용포는 흙투성이가 되어 빛을 잃은 채였다.

“불효자식……. 절대로 옥새를 너한테 넘기지 않을 것이다.”

진왕은 황제의 옷깃을 잡아당겨 그를 바닥에 앉혔다. 그러고는 용포에 묻은 흙을 털어 주며 무심한 듯 말했다.

“부황, 그래도 부자의 정을 봐서 서로 추한 꼴은 보지 맙시다.”

“난 너 같은 불효자식 둔 적 없다!”

“하, 역시 처음부터 저를 성에 안 차 하셨던 거군요! 왜 제가 황위를 계승할 수 없는 겁니까? 저도 똑같은 황자 아닌가요? 제가 유왕보다 못한 게 뭐죠? 그 무엇도 뒤처지지 않은데, 부황께선 처음부터 저에게 그 흔한 기회조차 주지 않으셨어요!”

진왕이 분노에 찬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능력이 좋은들 무슨 소용이 있느냐……. 넌 마음이 좁고 고집이 세서…… 이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다…….”

“집어치워요!”

진왕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오만한 표정으로 황제를 내려다보았다.

“대력조는 이제 곧 제 것이 될 겁니다. 부황께서 아끼는 영군유와 영군월이 고통 속에서 죽는 걸 보고 싶지 않으면, 지금 당장 옥새를 어디다 숨겼는지 말하세요. 저들의 살을 한 점, 한 점 베어 내 짐승 먹이로 줘 버릴 겁니다!”

“이…… 후레자식!”

“어서!”

진왕이 순율을 시켜 유왕을 눈앞에 데려왔다. 그러고는 장검으로 그의 가슴팍을 푹 찔렀다.

순간, 새빨간 피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부황, 제 인내심이 그리 많진 않습니다. 유왕으로 부족하면 장공주, 제 귀비, 그리고 여기 충신들까지. 이들이 전부 짐승 먹이가 되는 꼴을 보고 싶진 않겠지요?”

“그만…… 그만해, 다 말해 주마…….”

“그럴 필요 없어요. 옥새 찾았어요.”

어디선가 요염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보니 북강 공주 혁련이락이 옥새를 손에 들고 다가오고 있었다.

“폐하께서 외출할 때 비밀 상자를 가지고 다니실 줄은 몰랐네요.”

옥새를 본 진왕의 두 눈에는 흥분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가 옥새를 받으려 다가가는 순간, 혁련이락이 갑자기 뒷걸음치더니 호위들의 뒤로 몸을 숨겼다.

진왕은 자리에 멈춰선 채 의아한 눈빛을 했다.

“혁련이락, 지금 뭐 하는 짓이지?”

혁련이락이 입꼬리를 올리며 매혹적인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눈빛에는 짙은 비웃음이 어려 있었다.

“진왕 전하, 전에 분명 약속하셨지요. 제가 도와주면 함께 영광을 누리기로요.”

진왕은 순간 가슴이 덜컹했다. 그녀가 예전과 달리 너무나도 낯설었기 때문이다. 문득 지금껏 그녀가 보여 줬던 모습들은 전부 오늘을 위한 연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애써 평온함을 유지했다.

“물론. 내가 뱉은 말은 무조건 지킬 것이다.”

이에 혁련이락이 만족스럽다는 듯 앞으로 다가가 진왕한테 옥새를 건넸다.

진왕이 손을 뻗어 받으려는데, 그녀가 돌연 몸을 돌리며 피했다.

애써 화를 누르고 있는 그의 모습에 혁련이락은 크게 웃었다.

“하하하, 저도 당연히 전하의 약속을 믿어요. 하지만 아무래도 중요한 약속이다 보니 뭔가 징표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당분간 옥새는 제가 보관하고 있을게요. 저에 대한 마음이 진심이라면 이 정도는 허락해 주시겠죠?”

진왕이 냉소를 지었다.

“내 허락 없이 옥새를 가져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느냐?”

혁련이락의 눈에 비웃음이 더욱 짙어졌다.

“흠,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됐나 보네요. 이 대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누군가가 진왕의 오금을 힘껏 찼다. 그 바람에 진왕의 한쪽 무릎이 바닥에 꿇렸다. 아픔을 참으며 돌아보니 이경주가 무표정한 얼굴로 뒤에 서 있었다.

“그동안 애쓰셨습니다, 이 대인.”

“북강의 번영을 위해서라면 더한 것도 할 수 있습니다.”

이경주가 혁련이락의 앞으로 다가가 인사 올리며 답했다.

눈앞의 상황에 진왕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북강식 인사를 올리다니. 이경주, 당신…….”

“진왕 전하, 전 이씨가 아닌 곽씨입니다. 앞으로 곽경주라 불러 주십시오.”

상황을 지켜보던 목운요도 그제야 모든 의문이 풀렸다.

이경주- 아니, 곽경주와 같이 부귀영화를 실컷 누린 사람이 굳이 외적과 연합해 대력조를 배신할 이유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에 뛰어든 이유는 바로…… 그가 북강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곽씨 가문은 전조가 몰락한 이후 북강으로 도망가서 터를 잡았는데, 대력조 중신인 이경주가 곽씨 가문 출신이었을 줄이야.

진왕의 표정이 한껏 일그러졌다.

예전의 의심 많은 그라면 혁련이락의 속임수에 쉽게 넘어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복수가 절박한 마음에 여러 가지를 놓치고 만 것이다.

혁련이락이 옥새를 호위에게 건넨 뒤, 진왕 앞으로 다가와 천천히 그를 부축해 일으켰다.

“진왕 전하, 걱정 마세요. 절대로 전하를 해치진 않을 겁니다. 전하는 계획대로 대력조 황제가 될 것이고, 저는 황후가 되어 함께 영광을 누릴 겁니다.”

진왕의 눈빛이 크게 흔들리며 짙은 분노가 드러났다.

“함께 영광을 누리려는 것이 아니라, 날 꼭두각시 황제로 만들고 대력조를 뒤흔들려는 속셈이잖아!”

혁련이락이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역시 똑똑하시군요. 하하, 그럼 그렇게 해 주실 거죠? 꼭두각시 황제도 황제이니, 제 말만 잘 듣는다면 대외적으로는 누가 뭐래도 전하가 진정한 왕입니다. 물론, 제 말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전하도 짐승 먹이가 될지도 모르겠네요.”

그때, 포박당한 관원들이 목청을 높였다.

“어림없는 소리! 한낱 외족 여인 주제에 대력조를 손에 넣으려 하다니!”

“진왕, 대력조를 절대로 북강인들에게 넘겨서는 안 됩니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반박 소리에 혁련이락은 귀찮다는 듯 손가락으로 귀를 파는 시늉을 했다. 다소 거칠어 보일 수도 있는 이 행동이 그녀가 하니 오히려 한층 우아해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누구의 눈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진왕 전하, 결정 내리셨나요? 전하께서 고개만 끄덕이면 저 관원들 모두 입을 다물 텐데 말이죠.”

혁련이락이 진왕의 가슴팍에 손을 얹고 천천히 쓰다듬었다. 그녀는 진왕이 그렇게 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고 있었다.

진왕은 차오르는 분노로 온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잠시 뒤, 어금니를 꽉 깨물며 애써 화를 억누른 그가 한 글자씩 내뱉었다.

“그래, 네 말대로 하지.”

관원들은 두 눈을 꽉 감았다. 심지어 어떤 이는 목 놓아 울기까지 했다.

“대력조가 끝났구나!”

“우린 대력조에 충성을 다하는 신하로, 절대 너희 손에 놀아나지 않을 거다! 죽어서도 악귀가 되어 너희를 괴롭히고 피와 살을 먹어 버릴 것이야!”

한 관원이 그렇게 말한 뒤 땅속에서 파낸 돌멩이를 향해 돌진했다. 자결을 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누군가가 갑자기 그의 목덜미를 잡고 힘껏 잡아당기는 바람에 목이 꽉 조였다.

“컥-!”

관원을 잡아당긴 이, 우항은 뜻밖의 상황에 연신 사과했다.

“아이쿠, 오 대인. 급한 마음에 실례를 범했습니다.”

“당신…… 당신은…….”

오 대인은 상대를 보고 놀라서 차마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그때, 검은 옷차림의 시위들이 우르르 나타나더니 북강 호위들을 순식간에 모두 쓰러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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