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여독비-393화 (393/442)

393화 반란

이를 들은 월왕은 곧장 목운요의 앞을 가로막으며 냉랭한 얼굴을 했다.

“이 승상, 왕비를 모함하는 건 중죄에 해당합니다. 아무 증거 없이 함부로 모함하는 거라면 당신과 이씨 가문에 죄를 물을 겁니다!”

하나 이경주가 대꾸하기도 전에, 흠천감(欽天監) 사람이 향로에서 타다 만 향초를 들고 황제에게 아뢰었다.

“폐하, 향이 다 타기도 전에 꺼진 건 분명 하늘이 뭔가 불만이 있음을 나타내는 겁니다.”

그쯤 되자 관원들도 일제히 목운요를 쳐다보았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이경주가 한 발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폐하, 향로가 하필 월왕비 쪽으로 쓰러진 것이야말로 하늘의 계시 아니겠습니까? 통촉하여 주십시오, 페하. 소인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월왕비께선 시골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시서예약(詩書禮樂)에 능통하고 자수와 다도조차 뛰어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짧은 시간 안에 대력조 곳곳에 하운방과 불선루를 세워 돈을 벌어들이는 한편, 곡식을 나눠 줌으로써 민심을 매수하는 수작을 부려 백성들 사이에서 큰 명성을 얻었습니다.”

이경주의 발언에 사람들은 하나둘 미간을 찌푸렸다. 듣고 보니 목운요같이 연약한 여인이 이렇게까지 명성을 떨치는 건 결코 흔치 않은 사례이긴 했다.

“폐하의 위엄과 명망에 비하면, 월왕비의 이런 민심을 매수하는 수단은 새 발의 피에 불과하겠지요. 하지만 그보다도 더욱 큰 죄는 궁중을 문란하게 한 죄입니다. 월왕 전하가 황자이고, 월왕비가 장공주의 외손녀인 건 명백한 사실입니다. 두 사람은 혈연관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항렬의 차이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륜을 어기며 부부 사이로 맺어졌으니, 하늘이 어찌 노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목운요가 싸늘한 눈빛으로 이경주를 노려보았다.

지난번 연회에서 황제가 월왕을 친자식이라고 공공연히 인정한 사실을 빌미로, 어떻게든 그들에게 윤리 위반이란 죄명을 씌울 작정인 듯했다.

황제는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지며 입술이 파랗게 질리기 시작했다.

“이 승상, 저 둘의 혼사는 짐이 직접 허락한 일이고…….”

“폐하께서는 그동안 무엇보다도 예절을 중요시해 오셨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두 사람의 혼사를 허락해 주시니, 저를 비롯한 다른 대신들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이었습니다. 소인이 직접 고승을 불러 알아봤더니, 황궁 내에 요녀의 기운이 맴돈다고 하더군요. 폐하,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장공주 전하께서 목운요를 외손녀로 맞이한 후로, 조정 내에 여러 가지 일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강둑이 무너져 백성들이 수해를 입고, 역병이 판을 치고, 월빈과 유왕비께서 유산의 아픔을 겪고…… 폐하의 옥체는 하루하루 쇠퇴해져 갔습니다. 이 모든 화를 초래한 장본인이 바로 월왕비입니다. 당장 사형에 처하셔야 합니다, 전하!”

이경주의 말이 끝나자, 그 뒤에 서 있던 관원들이 허둥지둥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목운요는 그자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기억해 두었다.

그사이 월왕이 반박에 나섰다.

“부황, 이 승상의 발언은 모함하기 위한 거짓일 뿐입니다. 운요는 어려서부터 부모님의 가르침을 받아 왔고, 하운방과 불선루도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수많은 역경을 거쳐 이루어 낸 성과입니다. 이 승상은 결과만 가지고 악의적으로 모함하는 것입니다.”

하나 월왕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경주가 다시 목청을 높였다.

“폐하, 보셨지요. 월왕비, 이 요녀는 조정을 휘저어 놓았을 뿐만 아니라 월왕 전하를 완전히 미혹에 빠뜨린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런 요녀는 마땅히 죽여야 합니다, 폐하!”

“죽여야 합니다, 폐하!”

다른 관원들도 다 같이 외쳐 댔다.

월왕은 살기등등한 모습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바로 그때, 한 관원이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

“흙 속에 뭔가 있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로 향했다.

관원은 흙 속에서 커다란 돌멩이 하나를 꺼내 들었다.

“요녀가 나라를 망쳐 오륜에 어긋나니, 불태워 죽이면 나라가 평안하리…….”

관원들이 하나둘씩 모여 돌멩이를 찬찬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잠깐, 여기 꽃무늬 모양이 ‘목’ 자 아니오?”

“듣고 보니 그러네……. 요녀가 나라를 망쳐 오륜에 어긋나니……. 폐하, 이 승상의 말이 맞습니다. 월왕비를 죽여 나라를 구하셔야 합니다.”

“쟁기가 갑자기 부러진 게 수상하다 했더니, 역시 하늘의 계시였군!”

“이 승상 말대로 월왕비가 요녀임이 틀림없습니다. 하늘의 계시대로 죽여야만 나라를 살릴 수 있습니다.”

황제가 난처한 표정으로 목운요를 바라보았다.

이를 눈치챈 관원들이 기회를 놓칠세라 연신 간언했다.

“폐하, 월왕비가 장공주 전하의 손녀이긴 하지만, 궁중을 문란하게 한 건 사실입니다. 속히 결단을 내려 주시옵소서, 전하.”

“운요와 군월의 혼사는 짐이 직접 허락한 일이거늘, 혹시 짐의 결정에 불만을 표하는 것인가?”

황제의 말에 무릎을 꿇고 있던 이경주가 벌떡 일어서더니, 목운요를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요녀, 하다못해 폐하까지 미혹시키다니! 오늘 제대로 걸렸다. 도망갈 생각은 하지도 마라!”

“이경주, 지금 반역이라도 하겠다는 것이냐?”

유왕이 큰 소리로 호통쳤다.

하지만 이경주는 옷에 묻은 흙을 털어 내며 엄숙한 표정으로 목청을 높일 뿐이었다.

“목씨 성을 가진 여인이 요녀라고 하늘이 계시를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폐하, 월왕과 유왕은 나라의 평안이 아닌 요녀를 옹호하길 선택하였으니, 세 사람이 이미 요녀의 손아귀에 사로잡혔음이 틀림없습니다. 우리가 힘을 합쳐 요녀를 무찌르고 새로운 군주를 세우는 것이 대력조를 위한 유일한 살길입니다!”

그 순간,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이 아연실색했다. 이경주를 따르던 사람들도 깜짝 놀랐다.

월왕을 탄압해 유왕의 기세를 꺾으려는 계획인 줄 알았거늘, 갑자기 새로운 군주를 세우다니? 이건 분명한 반역이었다!

그제야 이경주의 속셈을 알아차린 이들은 자신들의 선택에 후회막급했다.

하지만 이경주는 외려 의연했다. 이번 계획이 실패하더라도 그로서는 잃을 게 없었다.

황제는 이미 유왕에게 권력을 넘기기 시작했고,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춘경 대전 이후에 바로 황위를 물려줄 예정이라고 했다. 그렇게 되면 이미 끝난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월왕 탄압을 빌미로 권세에 목마른 관원들을 미리 포섭해 지금 상황을 만들어 낸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원래 계획을 드러낸 이상, 그들도 울며 겨자 먹기로 따를 수밖에 없을 테다.

관원들은 하나같이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어떤 이는 겁에 질려 무릎 꿇고 사죄하기 시작했다.

“폐하, 소신은 이경주 저자의 속임수에 빠진 것일 뿐, 절대로 반란의 뜻이 없습니다. 통촉하여 주십시오, 폐하.”

이경주가 고개를 돌리며 냉소를 지었다.

“목운요, 저 요녀가 역시 대단하군. 그새 자네까지 미혹에 빠뜨렸나 보지? 그럼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지.”

그가 옆에 있던 시위의 검을 뽑아 관원의 목을 단칼에 베어 버렸다.

이에 나머지 관원들은 겁에 질려 사죄할 엄두조차 못 냈다. 죄를 인정했다간 이경주에게 죽임당할 게 뻔하니, 차라리 모른 척 그를 따르면 목숨은 부지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상황은 점점 더 불리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이경주의 손에 들려 있는 장검에서는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오늘 하늘의 계시로 요녀를 죽일 것이니, 막아서는 자는 일체 죽인다!”

“그만두지 못할까!”

황제가 성난 목소리로 크게 호통쳤다. 그러다 가슴속의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검붉은 피를 내뿜으며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유왕은 깜짝 놀라 소리쳤다.

“부황!”

목운요가 재빨리 달려가서 황제의 맥을 짚는데, 이경주가 장검으로 그녀를 가리키며 언성을 높였다.

“요녀, 네가 폐하를 죽였다. 오늘이 바로 네 제삿날이 될 것이다!”

침묵을 지키던 목운요도 그제야 싸늘한 눈빛으로 이경주를 쏘아보며 입을 열었다.

“이 승상, 이토록 막무가내로 저한테 오명을 뒤집어씌우는 이유가 반역을 꾀하면서도 죄명을 감당하고 싶지 않아서였군요. 욕심이 지나쳐 구덩이에 빠지기라도 하면 어쩔 셈이죠?”

목운요의 눈빛은 차갑고도 흔들림이 없었다.

이경주는 저도 모르게 그 눈빛에 압도되어 겁이 덜컥 났다.

“요녀, 월왕과 유왕을 네 편으로 만들었다고 살아남을 줄 알아? 어림없다! 여봐라, 저 요녀를 잡아 폐하의 원수를 갚자!”

곧이어 갑옷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군사들이 순식간에 우르르 몰려와 장원 전체를 포위했다.

참령 순율이 말을 타고 나타나더니 진왕을 향해 공손히 인사 올렸다.

“진왕 전하, 장원을 완전히 포위했습니다. 명을 내려 주십시오.”

관원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진왕을 쳐다보았다.

진왕이 그제야 앞으로 나오며 안타까운 얼굴로 목운요를 바라보았다.

“목운요, 저 요녀가 월왕과 유왕을 미혹하는 것도 모자라 부황까지 살해할 줄이야…….”

이경주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진왕 전하, 지금은 형제의 정을 고려할 때가 아닙니다. 백성들의 안위가 우선이지요. 요녀를 죽여 태평을 지켜야 합니다.”

진왕은 한층 더 가엾이 여기는 표정을 지으며 안쓰러운 눈빛을 보였다.

“대력조를 위한 것이니 어쩔 수 없군. 여봐라, 여기 있는 영군유, 영군월, 목운요, 그리고 민방화를 포박하거라! 이들의 피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 대력조의 태평성세를 기원할 것이다!”

그때, 바닥에 쓰러져 있던 황제가 파르르 떨리는 목소리로 힘겹게 말했다.

“짐…… 짐은 아직…… 죽지 않았다!”

황제가 깨어나자 당황하던 관원들도 그제야 정신을 가다듬었다. 위국후 일행은 가장 먼저 황제의 신변 보호에 나섰다.

비록 이렇다 할 무기는 없지만, 그들은 온몸 바쳐 황제를 보호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