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8화 두 황자와 북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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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초하룻날, 새해 인사를 마치고 옥화궁으로 돌아온 목운요는 그대로 침상에 누워 잠이 들어 버렸다.
조심스레 담요를 덮어 준 뒤 밖으로 나오던 금란은 문어귀에서 월왕과 마주쳤다.
월왕은 조용히 하라는 손짓을 하며 살며시 방 안으로 들어갔다.
난롯불로 따뜻하게 데운 방 안은 향기로 가득했다. 침상 옆으로 다가가 연분홍빛을 띠는 어여쁜 얼굴을 보고 있자니, 숨이 턱 멎을 것만 같았다.
월왕이 조심스레 손을 뻗는데, 목운요가 뒤척이며 움직이더니 그의 손 위에 얼굴을 대고 누웠다.
순두부 같은 촉감이 손에 닿는 순간, 월왕은 숨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그때, 목운요가 갑자기 눈을 뜨더니 가늘어진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제가 깰 때까지 이렇게 가만히 계실 생각이었나요?”
그녀의 눈망울과 마주친 월왕은 다가가 이마에 입맞춤을 했다.
“나쁜 계집.”
목운요가 코를 찡긋하며 물었다.
“어디가 나쁜데요?”
참다못한 월왕이 곧장 그녀의 탐스러운 입술을 훔쳤다.
깜짝 놀란 목운요는 눈이 휘둥그레진 채로 입술에서 전해지는 따스함을 느끼다가, 혀를 살짝 내밀었다.
작고 귀여운 혀끝에, 월왕은 귀 끝까지 빨개졌다.
“지금 일부러 날 놀리는 거지?”
당황해하는 월왕의 모습이 마냥 귀여운 목운요는 시치미를 뚝 뗐다.
“놀리다니요? 제가 언제요?”
“오늘 고모님께 새해 인사드리러 왔더니 세뱃돈을 달라고 하지 않나.”
“사야는 제 외당숙이잖아요. 세뱃돈 주는 게 당연한 일 아닌가요?”
월왕이 못마땅한 얼굴을 지었다.
“난 너의 부군이다.”
그에 목운요가 미소를 지었다.
“알겠어요, 부군. 부군한테서 살림하는 돈을 받는 건 더 당연한 일이죠.”
월왕은 대답 대신 입술로 그녀의 입을 막아 버렸다. 이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것이 뭐냐고 묻는다면 그녀의 입술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천천히 입술을 뗀 그가 약간 난처한 얼굴을 했다. 부군이 생계를 유지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자신이 목운요한테 빚을 가득 진 게 지금의 현실이었다…….
“요아. 사실 나…… 빈털터리나 다름이 없다…….”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린 목운요가 두 팔로 월왕의 목을 끌어안았다.
그녀의 힘에 이끌려 침상에 누운 월왕이 그녀를 품 안에 꼭 안았다.
“요아…….”
목운요는 그의 준수한 얼굴에 쪽 소리가 날 정도로 입을 맞추며 대답했다.
“괜찮아요. 빈털터리라 해도 사야가 좋은걸요.”
빨개진 얼굴과 달리, 월왕의 눈빛은 한없이 부드러웠다.
“너만 좋다면 난 평생 네 곁에 붙어 있을 거다.”
“약속한 거예요? 제가 손을 놓지 않는 이상, 평생 이 자리에 있어야 해요.”
월왕이 환하게 웃으며 약속했다.
“그래. 누가 억지로 끌어내더라도 절대 움직이지 않으마.”
두 사람은 그렇게 한참을 장난치고 나서야 침상에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목운요가 월왕을 탁자 앞에 앉히며 물었다.
“새해 인사 다 올리셨을 텐데 왜 여태 여기 계신 거예요?”
“사람들이 귀찮게 구는 게 싫어서 왔다.”
“조정 관원들 중에 아직도 눈치 없이 사야를 찾아가는 이가 있나요?”
목운요는 문득 어젯밤 연회가 떠올랐다.
“설마, 북강 사신들이 찾아온 건 아니죠?”
월왕이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어제 연회에서 우리가 함께 지도를 그렸다는 걸 듣고, 월왕부로 찾아와 정탐하더구나.”
“북강 사신들이 잘못 짚었네요.”
월왕이 지도 제작에 도움을 준 건 맞지만, 그에게서 무언가를 알아낼 수는 없을 것이다.
월왕은 조심스레 목운요의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며, 눈썹 끝의 검은 자국을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그에 목운요는 곧장 거울 앞으로 달려갔다. 이내 거울을 본 그녀가 얼굴을 부여잡고 울부짖기 시작했다.
“사야! 화장이 이렇게까지 번졌는데 왜 가만히 계신 거예요?”
“그게 무슨 상관인데? 화장이 번져도 예쁘다.”
목운요가 씩씩거리며 화장을 고쳤다.
“사야는 사탕 발린 말만 하죠.”
“사탕 발린 말이지만 진심이기도 하지.”
* * *
훈훈한 옥화궁의 분위기와 달리, 릉왕부의 서재는 엉망진창이 되어 가고 있었다.
이경주가 미간을 찌푸리며 릉왕을 말렸다.
“왕야, 고정하십시오. 이미 벌어진 일로 화를 내 봤자 몸만 상합니다.”
릉왕의 두 눈은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외할아버지, 아무래도 부황께서 노망이 난 것 같습니다. 어쩜 시종일관 유왕 편만 들고 이 장남은 거들떠보지도 않을 수가 있죠?”
이경주의 두 눈에 어두운 빛이 스쳐 지나갔다.
“전하, 그런 말을 입 밖에 내서는 안 됩니다.”
릉왕이 콧방귀를 뀌며 대답했다.
“흥, 막무가내로 유왕 편만 든다면 저도 더 이상은 참지 않을 겁니다. 외할아버지께서도 아시다시피, 이씨 가문이 제씨 가문에 의해 점점 더 뒤로 물러나고 있습니다. 하루빨리 반격하지 않으면 소씨 가문과 똑같은 최후를 맞이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전하, 결심하신 겁니까?”
“군왕이 되기 위해선 피바다 정도는 각오해야지요!”
릉왕의 눈빛은 끔찍할 정도로 잔혹했다.
이번 제 귀비의 일로 그는 부황이 유왕을 편애한다고 확신했고, 이대로 가만히 유왕의 발판이 되고 싶진 않았다.
“전하, 조급해해서 될 일이 아닙니다. 폐하께서 군대를 엄격히 통제하고 있어, 명이 내려지는 순간 아마 모기 한 마리도 쉽게 황성을 통과하지 못할 겁니다. 저희는 지금 기회를 노리되, 졸개로 쓸 만한 사람을 찾아야 합니다.”
“졸개요?”
“그렇습니다. 진왕이 두 다리를 회복한 이상, 과연 유왕을 두고 보기만 할까요? 진왕부에 심어 둔 첩자가 보내온 소식에 의하면, 진왕이 몰래 북강과 연락하고 있는 듯합니다.”
릉왕의 두 눈이 번쩍 떠졌다.
“진왕과 북강이라? 설마 반역하려는 건가요?”
“반역할 그릇은 못 되고, 아무래도 북강을 이용해 권력을 다투려는 것 같습니다. 북강도 그동안 내전이 빈번하고 역병이 자주 돌아, 백성들이 큰 불만을 품고 있다고 합니다. 민심을 안정시키기 위해 이번에 사신을 보낸 것이지만, 알다시피 폐하의 태도가 냉랭하고 목운요의 강역도 선물 또한 북강에 큰 위협이 되다 보니, 북강에서 황자 한 명을 골라 황위에 앉히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릉왕이 잠시 머리를 굴렸다.
“외할아버지, 그럼 본 왕이 북강 공주와 혼인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북강 공주가 전하의 비가 되는 건 그들에게 있어 큰 영광이지요. 다만 왕비께서 결코 허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태껏 본 왕을 위해 아이 한 명도 낳아 주지 못한 주제에, 허락하고 말고 할 게 어디 있겠습니까? 외할아버지, 최대한 빨리 북강 쪽 상황을 알아봐 주십시오. 진왕이 북강을 이용해 부황에게 위협을 가하는 그 순간, 본 왕이 호위에 나서면 모든 죄는 진왕이 안고 가게 되겠지요.”
손을 쓰려면 명예와 이익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 제격이지!
이경주가 감탄한 표정으로 허리 숙여 인사를 올렸다.
“전하의 기지에 탄복합니다. 노신, 지금 바로 사람을 보내 빠른 시일 내로 소식을 알아보겠습니다.”
* * *
진왕부 내, 심복이 북강에서 보내온 선물을 올리며 아뢰었다.
“전하, 전부 북강에서 보낸 선물입니다.”
“그래.”
북강에서 보낸 선물을 하나하나 유심히 살펴봤지만 특별한 건 없었다.
사실 북강에서 보낸 서신이 늘 그의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그때 그 서신을 마지막으로 감감무소식이었다.
심복이 선물을 정리하며 말했다.
“전하, 이씨 가문을 감시하던 부하가 소식을 보내왔습니다. 이경주가 몇 번이나 야심한 밤에 이부를 나섰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북강과 연락을 주고받는 듯합니다.”
진왕은 순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이씨 가문과 북강……. 하루빨리 결단을 내려야겠군.”
진왕도 부황이 유왕을 편애하는 걸 눈치챘다. 그리고 부황이 임강 강둑 폭파 사건의 진실을 안 순간, 자신과 릉왕은 이미 황위 후보에서 제외됐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두 사람을 조정에 내세운 건 유왕을 새로운 군왕으로 단련시키기 위함이었으리라.
이런 상황에서 가장 좋은 방법은 북강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북강도 물론 사심이 있겠지만, 진왕은 자신이 그들을 손바닥 안에 넣을 수 있다고 확신했다.
“이 서신을 몰래 북강 공주한테 전하거라.”
혁련이락이 공주 신분이긴 하나, 북강에서는 공주도 황위 계승 자격이 있다 보니 자신의 숨은 뜻을 잘 알 거라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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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신은 진왕의 손을 떠난 지 얼마 안 돼서 그림자 호위한테 빼앗겼다.
그림자 호위로부터 전달받은 서신을 확인한 목운요가 입꼬리를 올렸다.
“릉왕과 진왕이 예상대로 같은 꿍꿍이를 가지고 있군. 편지를 북강 공주한테 보내 주거라. 과연 공주가 누굴 선택할지 두고 봐야지.”
그림자 호위가 떠나자, 장공주가 차를 마시며 미소를 지었다.
“요아가 이제 제법 그림자 호위를 잘 다스리는구나. 황상과 상의한 끝에 그림자 호위를 유왕한테 넘기지 않기로 했단다. 앞으로 너와 군월이 초심을 잃지 말고 이들을 잘 다스리길 바란다.”
“외할머니, 그림자 호위를 저희가 다스리기엔 너무 과분하지 않을까요?”
“군월이 황위에 마음이 없지만 않았더라면 이 나라가 그의 것이 되었을 것이다. 고작 그림자 호위일 뿐이니 염려 말거라.”
목운요가 장공주한테 살포시 기댔다.
“네. 외할머니를 실망시켜 드리지 않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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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운요는 오랜만에 궁 밖으로 나왔다.
아침 일찍부터 영업을 시작한 하운방은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그녀는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뒷문으로 들어갔다.
이 층 방에서 기다리고 있던 육냥이 목운요를 보자마자 인사를 올렸다.
“소인, 주인님을 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