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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여독비-346화 (346/442)

346화 적합한 후계자

“가임초?”

황제가 휘청거리며 물었다.

“그 말인즉, 월빈이 처음부터 임신이 아니었단 것이냐?”

“예.”

“그래, 그렇단 말이지…….”

황제의 얼굴에 살의가 가득해졌다.

“후궁이 이 지경으로 무질서한지 이제야 알았네! 가임초로 장난을 치다니, 혹시 짐까지 죽일 셈이었더냐?”

이 귀비 등이 곧바로 무릎을 꿇었다.

“폐하, 고정하십시오. 신첩은 간이 작아 감히 폐하께 해를 끼치는 일을 하지 못합니다. 덕비, 소우의는 자네의 질녀 아닌가! 이번 일에 자네도 책임을 져야 할 것이야!”

덕비가 다친 팔을 부여잡고 연신 사죄했다.

“폐하, 신첩은 아무것도 모릅니다. 신첩은 월빈이 임신한 줄 알고 그동안 정성 들여 보살핀 죄밖에 없습니다…….”

“그만! 모두 그 입 다물라!”

단단히 화가 난 황제가 무섭게 소리쳤다.

“사실을 낱낱이 파헤칠 테니 그 누구도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다!”

겁에 질린 이 귀비는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반면 덕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은 기껏해야 월빈한테 원기를 북돋아 주는 약을 먹인 죄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황제는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바닥에 내팽개쳐진 월빈을 노려보았다.

“태의, 저자를 살려 내거라. 쉬이 죽게 내버려 둘 순 없지. 살아서 모든 죗값을 치르게 할 것이다.”

“예.”

월빈이 끌려 나가자 황제의 표정이 한층 온화해졌다.

“이곳에서 피를 봤으니 신방으로는 쓰지 않는 게 좋겠다. 력양궁(沥陽宫)을 비울 테니 일단 그리로 들어가거라.”

력양궁이라니?

릉왕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력양궁은 자고로 대력조의 역대 태자들이 거주하던 곳이었다. 그런데 유왕에게 그곳을 내주다니, 이건 명백히 유왕을 태자로 세우겠다는 뜻이 아닌가?

릉왕의 표정을 살피던 황제가 곧바로 시선을 돌렸다.

“오늘부로 후궁은 제 귀비가 맡도록 하지. 그리고 모든 비빈의 외출을 금하노라. 짐의 명령 없이 아무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다!”

“네, 폐하.”

“다들 그만 가 보거라.”

장공주와 서립만 남고 사람들이 모두 떠나자, 황제가 갑자기 가슴을 움켜쥐고 고통스럽게 숨을 들이쉬기 시작했다.

장공주는 서둘러 다가가 황제를 부축했다.

“황상, 화를 가라앉히고 천천히 숨을 쉬십시오.”

순간 황제의 이마에 시퍼런 핏줄이 서더니 그가 피를 한 움큼 토해 냈다.

서립은 깜짝 놀라 외쳤다.

“폐하!”

그에 장공주가 서립을 노려보며 말했다.

“입 다물거라. 아무도 모르게 운요를 데려오너라.”

“네.”

서립이 다급히 밖으로 뛰어가 목운요가 떠난 방향으로 냅다 달렸다.

멀리 가지 않았던 목운요는 서립이 부르는 소리에 발걸음을 멈췄다.

“서 공공, 무슨 일이시죠?”

“폐…… 장공주 전하께서 부르십니다.”

안색이 창백해진 서립에 목운요가 옆에 있던 월왕을 바라보았다.

“사야, 옥화궁에 가서 제 약상자를 가져다주세요.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요.”

“그래.”

“서 공공, 어서 가시죠.”

목운요가 명광전에 다시 도착했을 때, 황제는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바로 맥을 짚어 본 그녀가 옷소매와 치맛자락에서 은침 몇 개를 뽑더니 황제의 가슴에 꽂았다.

“외할머니, 폐하를 반듯하게 눕혀야 해요.”

“서립, 시위들을 모두 물리거라. 유일, 얼른 나와서 폐하를 침전으로 모시거라.”

서립이 명을 받고 나가자, 유일이 뒤이어 나타나 황제를 업고 침전으로 향했다.

* * *

월왕이 약상자를 가지고 오자, 목운요가 은침을 꺼내 침술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장공주는 월왕을 향해 걱정스레 당부했다.

“지금 당장 궁을 떠나거라. 그리고 넌 아무것도 모르는 거다. 알겠지?”

황제가 위급한 게 알려지면 상황이 어떻게 번질지 알 수 없었다. 운요 하나라면 자신이 어떻게든 숨길 수 있지만, 월왕까지 함께 있다면 자연스레 의심이 생길 것이리라.

“고모님, 명심하겠습니다.”

월왕은 침술에 집중하고 있는 목운요를 바라보다 말없이 떠났다.

목운요는 한 시진이 지나서야 천천히 은침을 하나하나 거두었다.

“외할머니, 일단 긴급한 상황은 모면했어요. 지금 바로 약을 달여 올게요. 약을 드시고 나면 고열이 날 테지만, 열이 내리면 금방 쾌차하실 겁니다.”

“그래, 난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마.”

“네.”

목운요는 직접 약재를 골라 달인 후, 황제한테 복용시켰다.

예상대로 황제는 밤중에 고열이 나기 시작했고, 입으로는 끊임없이 유아를 불러 댔다.

목운요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외할머니, 유아가 혹시 사야의 생모이신 위 황후이신가요?”

장공주가 손수건을 적셔 황제의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아 주며 답했다.

“그래. 폐하와 위 황후는 어린 시기에 부부의 연을 맺었다. 두 사람이 서로 의지하며 깊은 정을 쌓았지. 다만 위 황후의 팔자가 좋지 못해 결국 제명에 못 죽었지.”

목운요는 점점 더 궁금증이 더해졌다.

“두 분이 그토록 사이가 좋으셨다면, 왜 폐하께선 황후 전하를 냉궁으로 보내신 건가요?”

장공주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황제라는 자리에 오르면,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참 많단다. 당시 상황이 유난히 복잡하게 얽혀 있어 황상께서도 여력이 없으셨지. 게다가…… 아니다. 이미 지나간 일인 것을. 그보다 요아. 군월이 나를 찾아와 황위 쟁탈에 마음이 없다고 하던데, 너는 아쉽지 않느냐?”

목운요가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외할머니. 전 영군월이라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이지, 그 사람의 권력과 지위는 전혀 상관없습니다. 게다가 황제가 된다고 해서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사야께서 어떤 결정을 내리시든 무조건 응원할 겁니다.”

장공주가 손수건을 대야에 넣으며 목운요의 손을 잡고 살며시 토닥였다.

“난 너희 두 사람을 믿는다. 앞으로의 길을 이미 결정했으니 다른 것에 휘둘리지 말고 끝까지 가거라. 외할머니는 영원히 너희 편이다.”

“명심할게요, 외할머니.”

그사이 황제도 어느덧 혼잣말을 멈추고 조용해졌다. 목운요는 황제의 이마를 만져 보더니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외할머니, 폐하의 고열이 사라졌어요. 아마 곧 깨어나실 거예요.”

“그래.”

반 시진 뒤, 황제가 서서히 눈을 떴다. 곁에서 지켜 주고 있는 장공주를 보자마자 긴장했던 마음이 순간 놓였다.

“누님…….”

장공주가 황제를 일으켜 세운 뒤 등 뒤에 베개를 대 주었다.

“황상, 앞으로 또다시 이러시면 보고만 있지 않을 겁니다.”

“누님,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정말 몰라서 묻는 겁니까? 운요랑 둘이서 꼬박 하룻밤을 지키고 있었어요. 운요의 의술이 뛰어나지 않았더라면 아마 벌써…….”

장공주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푹 내쉬었다.

“고작 소우의 때문에 옥체를 상하게 하시다니, 실망스럽네요.”

황제가 비통한 심정으로 말했다.

“누님, 단지 그 때문이 아니라 제가 한심해서 그랬습니다…….”

비록 나이가 들긴 했지만 눈이 어두운 건 아니었다. 이번 일은 십중팔구 릉왕과 이 귀비가 같이 꾸며 낸 짓이 분명했다.

“황상, 그동안 수많은 풍파를 겪어 오셨는데 이 정도 일로 두려워하시는 건가요?”

황제가 탄식했다.

“짐이 황자였을 때 속으로 다짐했었지요. 언젠가 황제가 되면 절대로 선황제처럼 죽기 전까지 황권을 꼭 잡고 있지 않을 거라고. 그 때문에 자식들이 서로 다투게 하지 않을 거라고. 짐은 기필코 적합한 사람을 골라 황위에 앉힌 다음, 홀연히 떠나 여유를 즐길 거라고 말입니다. 한데 마음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네요…….”

장공주가 황제의 손을 꼭 잡았다.

“급한 일들을 처리하고 난 다음, 함께 남해에 가 봅시다. 한 번도 바다를 본 적 없으시지요?”

“누님, 지금의 몸 상태로는 먼 길을 떠나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가당찮은 말씀이십니다. 운요와 군월도 함께 갈 겁니다. 운요는 황상의 건강을 돌봐 줄 수 있고, 월왕은 우리의 안전을 지켜 줄 수 있지요. 남해가 멀게 느껴져도 한 달 정도밖에 안 걸립니다. 도중에 경치도 감상하고, 황상께서 일궈 낸 세상도 구경하고. 그러다 보면 금방 도착할 겁니다.”

장공주의 말을 듣고 상상이라도 한 듯 황제의 표정이 훨씬 밝아졌다.

“누님, 유왕을 황위에 올려야겠습니다.”

목운요는 크게 놀랐지만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았다.

반면 장공주는 이미 예상한 듯했다.

“황상의 결정에 따르지요. 군유도 착한 아이라 잘 단련만 시킨다면 실망시키지 않을 겁니다.”

“누님께서 말씀하셨듯이 군유는 성격이 고지식해 음모에 능하지 않지요. 그렇게 봤을 때 가장 적합한 후계자가 아닐 수도 있지만, 짐에게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네요. 군릉은 이씨 가문에 지나치게 의지해, 혹여라도 황위에 오른다면 대력조가 이씨 천하가 될지도 모르지요. 게다가 성정이 악랄해 황위에 오르는 순간 나머지 황자들을 전부 죽일지도 몰라요……. 군월은 성격이 차갑고 자신이 중요시하는 것 외에는 전혀 마음에 두지 않지요. 누님 말씀대로 군월은 황제보다는 군유를 도와 문제를 해결하는 무기로써 힘을 보태는 게 더 적합하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이미 결정하신 거라면 더 이상 골머리를 앓지 마시고 그대로 진행하시지요.”

“누님, 일단 이씨 가문부터 없앨 겁니다.”

“이씨 가문은 뿌리가 견고하여, 납득이 갈 만한 확실한 증거를 잡기 전까진 함부로 행동해서는 안 됩니다. 군유에 대한 시험이라 생각하고 군유에게 맡겨도 좋겠군요. 저희가 있으니 본인이 할 수 있는 데까지 해 보고, 실패하더라도 저희가 수습을 해 주면 되니까요.”

“누님 말씀이 맞습니다. 군유를 불러다가 이야기해 보지요.”

뒤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목운요는 내심 눈앞의 황제에 진심으로 탄복했다. 나라를 위해 한평생을 다 바친 것도 모자라, 만병에 시달리는 이 순간까지도 적합한 후계자를 세워 나라를 이끌어 가야 한다는 걱정뿐이니 말이다.

황제의 일생을 책으로 쓰면 필시 전설로 남아 오래오래 전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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