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여독비-344화 (344/442)

344화 소우의의 협박

목운요는 웃음을 참으며 질문을 던졌다.

“사야께서 왜 마음이 아프신 걸까요?”

“질투 나니까.”

“네?”

“둘째 형님은 벌써 혼인하셨는데 난 아직 두 달이나 더 기다려야 해서 질투가 나. 요아, 우리도 일 년 기약이 끝나자마자 혼례를 치르는 건 어떻겠느냐?”

월왕의 간절한 눈빛을 보자 마음이 약해졌다.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려던 그때, 궁녀 한 명이 다급히 뛰어오더니 큰 소리로 외쳤다.

“유왕비께서 위험하세요!”

날카로운 외침이 어두운 밤하늘에 넓게 퍼졌다.

월왕과 목운요가 영문을 묻기도 전에, 유왕이 부리나케 뛰쳐나오더니 민방화가 있는 신방으로 곧장 향했다.

월왕도 그 뒤를 따랐다.

목운요가 궁녀한테 태의를 부르라고 시키는데, 문득 문어귀에 서 있는 릉왕이 눈에 들어왔다. 입가에 차가운 웃음을 짓고 있는 릉왕의 눈빛은 포악 그 자체였다.

* * *

신방에 도착하자마자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에 목운요는 미간을 찌푸렸다.

‘소우의?’

방 안에선 소우의가 민방화를 뒤에서 부둥켜안은 채 민방화의 목에 비수를 들이밀고 있었다. 민방화의 목에선 핏자국이 선명했다.

그 광경을 본 유왕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월빈 마마,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월빈이 냉소를 짓더니 목운요를 보며 말했다.

“목운요, 마침 잘 왔다. 당장 내 배 속의 아이를 낙태시키는 약을 처방하거라. 그렇지 않으면 민방화를 죽인 다음 나도 죽어 버릴 것이다!”

소우의가 흥분하는 바람에 비수가 살갗을 파고들었다. 민방화는 고통스러운 듯 낮은 신음 소리를 냈다.

유왕이 한 발자국 다가가며 소리쳤다.

“그녀를 다치게 하면 가만두지 않을 테다……!”

월왕은 유왕의 팔을 잡으며 말렸다. 괜히 상대를 자극했다간 큰 화로 돌아올 수도 있었다.

그사이 목운요가 다가가 말했다.

“월빈 마마,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움직이지 마! 한 발자국이라도 움직이면 바로 목을 베어 버릴 거야!”

“방금 저에게 낙태 처방을 해 달라 하지 않으셨나요? 낙태는 위험이 커서 사전에 맥을 짚어 보지 않고 처방을 내릴 경우, 크게 다칠 수도 있습니다. 제 약 처방을 원하신다면 일단 맥을 짚게 해 주시죠.”

“내가 다쳐도 상관없으니 일단 처방이나 내놓거라.”

목운요가 강경한 태도로 고개를 저었다.

“그건 의사로서 용납할 수 없습니다. 제가 내린 처방이 혹시라도 사람을 다치게 한다면 제 명성에도 먹칠을 하게 되니까요. 제가 맥을 짚도록 허락하든지, 아니면 이대로 폐하의 도착을 기다리시지요.”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목운요는 늘 독약을 몸에 지니고 다녔다. 하지만 대부분 가까이에서 써야 효력을 보는 것들이었다.

소우의가 발악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네가 의술뿐만 아니라 독술에도 능하니 나한테 무슨 짓을 할지 누가 알아! 그러니 옷을 다 벗고 가까이 오거라.”

월왕의 두 눈에 살의가 스쳐 지나갔다.

목운요는 인상을 찌푸리며 조소했다.

“이 상황에서도 나에게 모욕감을 주려는 걸 보아하니, 나에 대한 원망이 엄청나구나.”

“그래, 너 때문에 소씨 가문이 망했고, 너 때문에 내 인생이 만신창이가 됐어. 할 수만 있다면 널 당장 죽여 버리고 싶은 마음이야! 허튼수작은 취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내가 왜 이 자세로 요지부동하는지 알아? 내가 등으로 쇠뇌 기관을 누르고 있거든. 혹시 내가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등 뒤의 기관에서 독이 묻은 활이 발사될 거야. 난 더 이상 삶에 미련이 없으니 민방화를 데리고 황천길에 같이 오르는 것만으로도 만족해.”

목운요가 월왕에게 눈길을 주자, 월왕이 소우의의 등 뒤를 유심히 살폈다. 이내 그가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제야 소우의는 만족스러운 듯 입꼬리를 올리며 웃음을 지었다. 평소라면 사람들의 혼을 쏙 빼놓을 정도로 매혹적이었겠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마귀와도 같았다.

유왕이 간신히 마음속의 살기를 누르며 말했다.

“월빈 마마. 배 속의 아이를 낙태시키려 하다니, 혹시 부황께 불만이 있어서 그러시는 겁니까?”

아이 얘기에 소우의가 다시 흥분하기 시작했다.

“그 입 다물어! 목운요, 진맥하겠다며? 허락할 테니 지금 당장 발가벗은 채로 진맥한 다음 낙태 처방전을 내려라.”

목운요가 입가에 냉소를 지었다.

“소우의, 넌 정말 날이 갈수록 머리가 나빠지는구나? 나에게 모욕감을 주고 싶었던 거라면, 적어도 내가 아끼는 사람으로 협박을 해야지. 고작 민방화를 위해 내가 그렇게 할 것 같아?”

소우의의 표정이 굳어졌다.

“네가 직접 혼례복까지 만들어 줬잖아?”

“그건 유왕 전하를 봐서 해 준 거지. 유왕 전하의 호의를 살 뿐만 아니라 하운방의 명성까지 널리 떨칠 수 있는 기회인데, 그냥 놓칠 리가 없잖아? 설마 내가 민방화를 친자매처럼 생각해 목숨까지 바칠 거라 생각한 건 아니지?”

목운요가 비웃음 가득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혼란스러워하던 소우의는 이내 독한 눈으로 유왕을 바라보았다.

“잘 들었지? 앞으로 월왕과 목운요한테 속지 마. 이 둘은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당신에게 접근하는 거라고. 가까이 지냈다간 나중에 본전도 못 찾을 거야!”

유왕이 주먹을 꽉 쥐며 입을 열었다.

“방화는 목운요와 상관없으니 이제 그만 놓아주시죠.”

“목운요는 아니어도 당신한테는 위협이 되잖아? 민방화를 구하고 싶으면 목운요를 발가벗겨서 넘겨. 그럼 민방화를 놓아주지.”

유왕이 이를 갈며 부르짖었다.

“당신, 제대로 미쳤군요!”

“하하하, 그래, 나 미쳤어! 목운요, 저년 때문이지! 목운요만 없었더라면 난 여전히 소씨 가문의 귀한 딸로 사랑을 듬뿍 받고 있었을 텐데……. 그런데 지금은 할머니와 아버지를 모두 잃고, 오라버니도 오지로 유배당하고, 난 후궁에 들어와 늙은 남자를 보필하고 있고!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데, 왜!”

“지금 한 그 말로 당신 구족을 멸할 수 있어!”

“어디 한번 해 보시지. 어차피 더 이상 살아갈 이유가 없는데, 같이 죽어 버리면 그만이지!”

“당신…….”

유왕이 민방화를 구하려고 앞으로 다가갔다.

“움직이지 마!”

소우의가 손에 든 비수를 민방화의 팔에다 힘껏 내리꽂았다. 그러고는 다시 비수를 목에 가져다 댔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민방화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신음을 삼켰다.

“전하, 전 괜찮아요.”

“입 다물어!”

소우의가 큰 소리를 내질렀다.

“본인이 곧 죽을 마당에 다른 사람 걱정을 해? 유왕, 마지막으로 기회를 줄 테니 당장 목운요를 발가벗겨서 이리 보내. 그럼 민방화를 풀어 줄 거야. 그렇지 않으면 민방화는 나랑 같이 황천길에 오르게 될 것이야!”

유왕이 애원하는 눈빛으로 월왕을 바라보았다.

“넷째 아우, 한 번만 도와주게.”

월왕이 차가운 눈빛으로 답했다.

“형님. 민방화가 형님에게 있어 중요한 만큼, 운요도 저에게 그런 존재입니다. 운요의 몸에 손을 대게 할 수 없습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을 전부 내보낸 뒤, 운요가 월빈의 맥을 짚어 주면 모든 게 끝나지 않나.”

“운요를 위험에 빠뜨리게 할 수는 없습니다.”

“네 마음속엔 이 형님이 없느냐? 허락하지 않는다면 우리 형제 사이도 오늘부로 연을 끊는 것이다! 여봐라, 목운요를 잡거라.”

월왕이 냉랭한 표정으로 목운요의 앞을 막아섰다.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곧 밖에서 시위들이 들어오더니 월왕을 가로막고, 목운요를 속박하기 시작했다.

겁에 질린 듯한 목운요에, 소우의는 저도 모르게 큰 소리로 웃었다.

“목운요, 오늘 같은 날이 올 줄 꿈에도 몰랐지?”

의기양양해진 그녀는 민방화와 목운요 사이의 눈빛 교환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소우의가 한참 웃느라 손에 든 비수가 느슨해진 그때, 흰 그림자가 스치더니 날카로운 발톱이 그녀의 등에 세 갈래 상처를 냈다.

깜짝 놀란 소우의가 그만 비수를 떨어뜨리자, 민방화가 곧장 허리를 바짝 숙였다.

월왕은 시위들의 허리춤에서 장검을 뽑아 힘껏 던졌다. 장검이 휙 소리를 내며 단번에 소우의의 어깨를 관통하여 침상에 박혔다.

그사이 유왕이 민방화를 안고 멀리 피했다.

목운요는 서둘러 달려가 소우의의 어깨를 누르며 소리쳤다.

“사야, 쇠뇌 기관!”

빠르게 움직인 월왕이 소우의 뒤에 있던 쇠뇌 기관을 망가뜨렸다. 그제야 모두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목운요가 일어서자 눈여우가 그녀의 품에 덥석 안겼다.

목운요는 천만다행이라 생각하며 눈여우의 털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동안 그녀는 몰래 눈여우를 훈련시키고 있었다.

눈여우를 언제든지 부를 수 있게 특별한 향료를 만들어 낸 것이다. 좀 전에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지고 있던 향료를 부스러뜨려 향을 냈더니 눈여우가 찾아온 것이었다.

유왕이 감격스러운 눈빛으로 목운요를 바라보았다.

“운요, 아까는 상황이 급해서 어쩔 수 없었다. 다음에 제대로 사죄하러 가마.”

“유왕 전하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오니 마음 쓰지 마십시오.”

유왕이 시선을 돌려 월왕을 쳐다보았다. 월왕도 전혀 화난 기색 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사실 유왕도 눈여우가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소우의를 방심시키기 위해 일부러 월왕을 자극한 것이었다.

소우의는 어깨에 중상을 입었지만 치명적이진 않았다.

목운요가 가까이 다가가려던 그때, 문어귀에서 요란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릉왕이 황제와 장공주를 모시고 온 것이었다. 릉왕은 안의 상황을 보자마자 소스라치게 놀라며 소리 질렀다.

“월빈 마마,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황제도 미간을 힘껏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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