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0화 되찾은 미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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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왕에게 감금령을 내린 황제는 며칠 동안 표정이 굳어 있었다. 관원들은 눈치를 보며 좋은 일만 아뢰고, 나머지 일은 일단 뒤로 미뤄 두었다.
그런 조정의 침울한 분위기와 달리, 백성들은 기쁨에 잠겨 있었다.
이번 임강 강둑 사건으로 세 군데의 성이 피해를 입었지만, 결과적으로 봤을 땐 큰 경사였다. 왜냐하면 이번 재해를 끝으로 더 이상 역병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역병 처방이 전부 온한 군주 덕분이라는 사실을 안 백성들은 자발적으로 하운방 앞에 찾아가 향을 피우고 절을 올렸다.
강남에선 서릉으로 총 아홉 개의 만민산을 보내왔다. 황제의 명령에 따라 만민산은 궁전 앞 광장에 놓였고, 관원들은 그 광경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백성들의 뜨거운 지지 덕에, 내내 울적해 있던 황제도 드디어 웃음을 되찾았다.
거기에 더해 그날 오후, 목운요가 궁으로 은자를 실어 보냈다.
정전에 놓인 상자들을 본 황제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고작 한 달 만에 이렇게나 많이 벌어들였단 말이냐?”
목운요가 뿌듯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중에 만육천 냥은 폐하의 몫이고, 나머지 만육천 냥은 외할머니의 몫입니다. 제가 직접 장부를 작성해 두었는데, 확인해 보시겠어요?”
“그럴 필요 없다. 널 믿는다.”
황제는 믿기지 않는 듯이 상자들을 쳐다보았다.
“그나저나 백성들이 하운방 주변에서 향을 피워 손님들이 출입에 불편을 겪었다던데, 지금은 괜찮아졌느냐?”
목운요가 난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안 그래도 그 일로 폐하께 부탁을 드리고자 합니다. 백성들이 자꾸 하운방 근처에 모여드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가게 문을 잠시 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경제적 손실도 생기게 되었고요. 정말 얼마나 애가 타는지 모릅니다. 사람을 시켜 몇 번이고 만류해 봤지만 백성들이 도저히 들으려고 하지 않더군요.”
황제가 웃음을 터뜨렸다.
“백성들의 옹호를 받고 싶어 안달 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어찌 네 입에선 달갑지 않은 일이 된 것이냐. 역시 아직은 어리구나.”
“폐하. 제가 하운방을 운영하는 목적은 이익 때문입니다. 물론 어느 정도 명성이 쌓이면 좋겠지요. 하지만 그 이상은 바라지 않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폐하께서 현재 상황을 해결해 주실 수 없을까요? 명성이 너무 과하면 수익에 영향을 미친다고요.”
“안 그래도 짧은 시일 내에 사찰 하나를 세울 생각이다. 이번 일로 목숨을 잃은 백성들을 기리는 동시에, 역병을 이겨 낸 공적을 기록해 두어 후세들이 우러러볼 수 있게 하는 거지.”
목운요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좋은 생각이십니다. 그렇게 되면 백성들도 앞으로 하운방 앞에서 향을 피우지 않겠지요.”
목운요의 한결같은 걱정에 황제는 어처구니가 없어 웃음만 나왔다.
* * *
보름이 지나 독 낭자의 얼굴을 감싸고 있던 붕대를 푸는 날이 다가왔다.
목운요는 아침 일찍 일어나 직접 붕대를 풀어 주겠다며 고집을 부렸다.
“쳇. 이제 와서 잘 보이려고 노력해도 소용없어. 난 이미 장공주 전하의 곁에 남기로 결심했거든. 그러니 꿈도 꾸지 마.”
목운요는 그런 독 낭자를 가볍게 무시하곤 조심스레 붕대를 풀기 시작했다.
그 진지한 모습에 독 낭자는 오히려 수상함을 느꼈다.
“혹시 나한테 뭐 잘못한 거 있어? 설마 약재에 독이 들어 있었던 거 아니야? 그래서 일부러 직접 해 주는 거 아니냐고!”
목운요가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뿐인 줄 알아? 네 밥에도 독을 탔어. 아마 곧 있으면 발작해서 죽을 거야.”
독 낭자가 입을 삐죽거리면서 목운요의 볼을 꼬집었다.
“웃기고 있네. 네가 독을 타면 내가 모를 줄 알아?”
“거야 모르지. 그동안 열심히 의술을 연구했거든. 아마 너의 실력보다 훨씬 앞섰을걸?”
그러면서 목운요가 독 낭자의 손을 탁 쳤다.
“방해하지 마. 잘못하면 네 코가 삐뚤어질 수도 있어.”
독 낭자가 깜짝 놀라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었다.
붕대를 모두 푼 목운요는 물에 젖은 손수건으로 독 낭자의 얼굴에 묻은 약초를 천천히 떼어 냈다. 끔찍했던 흉터들이 한결 옅어져 있었다. 그녀는 그제야 긴장이 풀렸다.
거울에 얼굴을 비춰 보던 독 낭자는 저도 모르게 멈칫했다.
“이 얼굴을 평생 못 볼 줄 알았는데…… 여전히 아름답구나.”
목운요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사람을 시켜 깨끗한 물을 가져오게 했다.
“어서 깨끗이 씻기나 해.”
독 낭자는 곧장 얼굴을 씻은 후 다시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운요, 너도 꼭 해 봐. 효과가 정말 좋은 것 같지 않아?”
“사양할게.”
“호의를 거절하다니. 지금 내 피부를 봐. 열여덟이라 해도 믿을 것 같지?”
“피부만 보면 그렇지. 근데 얼굴이 너무 두꺼워서 자세히 보면 큰일 날걸.”
독 낭자가 콧방귀를 끼곤 얼굴의 상처를 어루만졌다. 아무리 좋은 약을 써도 흔적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목운요가 흐뭇해하며 그 뒤에 섰다.
“오늘은 내가 너를 눈이 부실 만큼 아름답게 꾸며 줄게. 일단 머리부터 빗자.”
한껏 들뜬 목운요에 독 낭자도 거절하지 않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도 않아, 독 낭자가 거울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일부러 나한테 복수하는 거지? 머리카락이 다 뽑혔잖아!”
목운요가 빗에 엉킨 머리카락들을 보다, 빗을 바닥에 버리며 말했다.
“네 머리카락이 지푸라기 같은 걸 어떡해. 내 머리는 한 번 빗으면 끝까지 잘 빗겨진단 말이야.”
“그럼 내 머리카락이 잘못한 거네?”
“잘못까진 아니지만, 뭐…….”
“나 장공주 전하한테 갈 거야……!”
“좀 더 빗겨 줄까?”
“너…… 이런 식으로 날 위협하다니!”
한 시진이나 걸린 끝에 겨우 단장이 끝났다.
목운요가 마지막으로 독 낭자의 옷매무새를 정리해 주며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완벽해.”
새하얀 피부에 어울리는 화장은 옅은 흉터를 완벽하게 가려 주었다. 동그란 얼굴에 오뚝한 코, 분홍빛이 도는 볼, 앵두 같은 입술, 그리고 검은 눈동자까지.
독 낭자도 멍한 표정으로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보았다. 오래전 약선골을 떠났을 때의 자신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세상사를 잘 몰랐던 그때는 눈빛이 맑은 샘물처럼 투명하고 깨끗했다. 심지어 슬픔 속에서도 천진난만함이 묻어 있었다.
하지만 그 사람을 만난 뒤로 모든 게 바뀌었다. 영혼까지 남김없이 바쳤지만, 그에 대한 마음은 매정하게 짓밟히고 먼지가 되어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지금, 그때의 미모를 되찾았지만 두 눈에는 더 이상 순수함이 보이지 않았다.
목운요가 그 모습을 보며 물었다.
“후회돼?”
“아니.”
목운요는 한참 동안 침묵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왜?”
“정말 사랑했으니까.”
독 낭자는 진심을 다해 한묵진을 사랑했다. 그 사랑 때문에 마음이 망가졌지만, 모든 걸 다 바칠 만큼 미치도록 사랑했던 것을 결코 후회하진 않았다.
예전의 목운요라면 아마 절대 독 낭자를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월왕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는 지금, 목운요는 그녀의 마음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월왕이 똑같이 자신을 배신한다면 아마 자신도 독 낭자와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그를 죽여 복수한 다음, 모든 애증을 마음 깊이 묻은 채 혼자 미련 없이 여생을 보내겠지. 그리고 누군가가 후회하냐고 물으면, 자신도 똑같이 후회하지 않는다고 대답할 것 같다.
독 낭자는 얼굴을 만지작거리다가 비녀가 흔들리며 구슬이 부딪치는 소리에 만족스러운 듯 말했다.
“지금 이 모습이면 앞으로 독을 타기가 훨씬 수월하겠군. 아무도 의심하지 않을 테니. 오랜만에 본래 모습을 보니 꽤 그립기도 하네.”
목운요가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뻔뻔스럽긴.”
하지만 독 낭자는 전혀 개의치 않아 했다.
“빨리 장공주 전하께로 데려가 줘. 그리고 앞으로 독 낭자라 부르지 말고 선령이라고 불러 주면 안 될까?”
목운요가 깜짝 놀라 물었다.
“본명이 선령이야?”
“응. 아버지께서 지어 주신 이름이야. 아버지께선 날 많이 아끼셨어. 내가 한묵진 그 자식한테 시집가겠다고 고집부리지만 않았어도 그리 일찍 돌아가진 않으셨겠지. 돌이켜 보면 난 참 불효자였어.”
선령의 두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그녀가 당장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눈물을 도로 삼켰다.
“운요, 고마워. 네가 아니었으면 난 지금까지도 과거에 머문 채 살고 있었을 거야. 그럼 아버지께선 죽어서도 편히 눈을 못 감으셨겠지. 그만해야겠다. 더 말했다간 울지도 몰라.”
선령이 눈물을 흘리지 않기 위해 고개를 한껏 뒤로 젖혔다.
“공들여 한 화장에 눈물 자국이 번지면 안 예쁘거든.”
목운요가 웃으며 그녀의 손을 잡아당겼다.
“가자.”
“어딜?”
“외할머니께 가겠다며? 곁에 두실 건지 물어봐야지.”
“정말 보내 줄 수 있어?”
“네가 원한다면 보내야지 어쩌겠어? 널 보내는 대신 의술과 독술에 능통한 자를 두 명이나 얻을지도 모르잖아?”
“쳇. 적어도 나만큼 예쁘진 않을걸?”
선령이 마주 잡은 목운요의 손을 꼬집으며 말했다.
목운요의 손은 따뜻하고 촉감이 좋았다. 조금만 힘줘도 부러질 것만 같은 이 손이, 바로 자신을 진흙탕에서 벗어나게 이끌어 준 손이었다.
“적어도 너만큼 뻔뻔하진 않을 거다.”
“이토록 부드럽고 매끈한 얼굴이 어디가 뻔뻔하다는 거야?”
“지금은 화장을 하도 두껍게 해서 살이 만져지지 않을 거야.”
“그럼 저녁에 깨끗이 씻은 다음에 만져 봐.”
선령이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목운요의 손을 간지럽혔다.
목운요는 당장이라도 눈여우를 데려와 선령의 품에 던져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흉터 만지면 악몽 꿀까 봐 무섭거든? 사양할게.”
“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