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8화 황당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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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옥화궁으로 돌아간 목운요는 월왕과 함께 중화궁을 돌보는 한편, 혼례복 준비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민씨 가문에선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민 각로는 오랫동안 소장하고 있던 고대 의서 몇 권을 선물했고, 초씨 노부인은 직접 궁에 방문하여 감사의 뜻을 전할 정도였다.
초씨 노부인과의 만남이 끝나자, 목운요는 눈여우를 안고 오랜만에 독 낭자가 있는 측전으로 향했다.
한데 문 앞에 복잡한 표정의 사서가 서 있었다. 사서는 목운요의 명으로 최근 독 낭자의 곁에 머무는 중이었다.
“사서, 무슨 일이야?”
사서는 목운요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소저를 뵙습니다. 혹시 독 낭자를 보러 오신 건가요? 그렇다면 다음에 다시 오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혹시 독 낭자가 또 무슨 사고라도 친 거야?”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목운요는 눈앞의 광경에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머리부터 목까지 붕대를 칭칭 감은 사람이 눈앞에 서 있었다. 다름 아닌 독 낭자였다.
독 낭자의 몰골을 본 목운요는 걱정부터 앞섰다.
“지금 뭐 하는 짓이야?”
독 낭자가 종이 한 장을 꺼내 들더니 막대 숯으로 글씨를 썼다.
[다시 예뻐지려고.]
목운요는 애써 웃음을 참은 채 사서한테 분부했다.
“빨리 가서 얼음을 얻어 와요. 이 더운 날 저러고 있다간 머리가 더 나빠질지도 몰라요.”
독 낭자는 붕대 사이에 나 있는 아주 작은 구멍으로 목운요를 째려보더니 다시 글자를 적어 내려갔다.
[중화궁 환자를 돌보지 않고 왜 여기 온 거야?]
결국 참지 못한 목운요가 웃음을 터트렸다.
“얼굴만 훼손된 것인데, 왜 목까지 감아 버린 거야?”
[네가 어렵게 구한 약재가 남았는데 버리기 아까워서 목에도 발랐거든. 붕대를 제거하면 백옥같은 피부로 새로 태어날 거야.]
목운요가 더 크게 웃었다.
“네가 정말 생각을 바꾼 게 틀림없구나.”
예뻐지려고 이런 고생을 자처하다니, 참으로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다.
독 낭자가 쪽지 하나를 또 건넸다.
[네 것도 남겨 뒀으니 끝나고 나서 해 줄게.]
이 더운 여름날, 자신도 독 낭자처럼 겹겹이 싸매야 한다고 생각하니 목운요는 저도 모르게 등골이 오싹해졌다.
“난 괜찮아.”
독 낭자가 연신 고개를 저었다.
[좋은 건 나눠야 하는 법이지. 너와 꼭 나눠 쓸 거야.]
“정말 괜찮아. 난 아직 멀쩡하거든.”
그녀가 다급히 거절했다.
목운요가 품에 눈여우만 안고 있지 않았더라면, 독 낭자는 아마 진작에 그녀를 덮쳤을 것이다. 독 낭자가 아쉬움에 혀를 쯧 찼다.
“그보다 이렇게 얼마나 있어야 하는데?”
[사흘에 한 번씩 약을 갈아야 해. 오늘이 첫째 날이야.]
목운요는 앞으로 이틀 동안 자주 놀러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독 낭자의 모습을 보면 하루 종일 웃을 수 있을 것 같았다.
* * *
독 낭자와 웃고 떠들다 보니 날이 벌써 어둑해지기 시작했다.
금란, 금교와 함께 옥화궁으로 향하는데, 검은 그림자가 나타나더니 목운요 앞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누구냐!”
금란이 소리치며 재빨리 목운요의 앞을 막아섰다.
“운요! 나야, 소우의. 제발 날 살려 줘!”
그림자가 목운요를 향해 다급히 애원했다.
금란이 놀라서 물었다.
“월빈 마마?”
얇은 옷을 걸친 소우의의 얼굴에는 핏기가 전혀 없었다. 그녀는 마치 무언가에 쫓기듯 수시로 뒤를 보며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목운요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
“월빈 마마, 왜 혼자 이곳에 있는 거죠?”
“자세한 건 나중에 다 말해 줄 테니, 일단 이 배 속의 아이부터 없애 줘. 날 도와준다면 앞으로 무슨 일이든 시키는 대로 다 할게.”
소우의가 목운요의 치맛자락을 붙잡기 위해 가까이 다가가려다가 금란한테 제지당했다.
“월빈 마마, 폐하의 자손을 품는 건 복입니다. 간절히 바라도 안 생기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요. 한데 왜 그러는 것이죠?”
소우의가 힘껏 고개를 저었다.
“처음엔 나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는데, 누군가의 음해로 두 번이나 크게 넘어졌는데도 아이가 무사했어. 그때부터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홍화가 든 탕약까지 먹었는데도 아무렇지 않았지……. 덕비는 내 목숨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아이를 살리는 약만 먹이려고 하고……. 운요, 네 말이 맞아. 덕비는 처음부터 이 아이만 살려 두려는 거였어. 그러니 나 좀 제발 살려 줘!”
목운요의 눈빛이 흔들렸다. 소우의의 후궁 생활도 참 쉽지 않구나 싶었다.
“폐하의 자손을 모해하는 건 죽을죄입니다. 난 할 수 없으니 다른 사람한테 가서 사정해 보세요.”
“운요…… 아니, 군주 전하.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이번에 도와주신다면 큰 비밀 하나를 말씀드릴게요. 월왕의 출신에 관한 비밀이야!”
목운요가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답했다.
“월왕 전하는 폐하의 넷째 아들일 뿐, 출신에 무슨 비밀이 있다는 거죠? 게다가 내가 왜 당신을 통해 알아야 하지? 전 이만 옥화궁으로 가 봐야 하니 몸 보중하십시오.”
“……목운요! 분명 후회할 거야. 날 도와주지 않으면 후회하게 될 거야!”
그러나 목운요는 냉소를 지으며 빠른 걸음으로 떠날 뿐이었다.
힘겹게 몸을 일으킨 소우의는 주먹으로 자신의 배를 힘껏 내리쳐 보았다. 하지만 아무런 느낌도 전해지지 않았다. 이 순간 배 속에 든 것이 아이가 아니라 괴물인 것만 같았다.
그때, 궁녀들의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소우의는 냅다 도망갔지만, 얼마 못 가 궁녀들한테 따라잡혔다.
“월빈 마마, 덕비 마마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혼자 이렇게 다니지 마십시오.”
소우의가 저항할 새도 없이 궁녀들이 양옆에서 팔을 잡고 강제로 그녀를 끌고 갔다.
* * *
옥화궁에 도착한 목운요는 장공주, 허연한과 함께 담소를 나누다 소우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며 궁금증을 드러냈다.
“외할머니, 혹시 후궁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시나요?”
“요즘 후궁이 시끌벅적했지. 이 귀비가 소우의한테 가임초를 먹였다는 사실이 진비의 귀에 들어가서, 이 귀비와 덕비가 피 터지게 싸우길 바라는 진비가 이때다 싶어 소우의한테 손을 쓰기 시작했다. 소우의 스스로 배 속의 아이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게 한 뒤, 도움을 구할 길을 다 끊어 버린 거지. 심지어 덕비 몰래 태의를 매수해, 소우의 배 속의 아이가 황자라고 덕비한테 소식을 흘리라 했다는구나.”
장공주의 말에 목운요는 상황을 얼추 눈치챘다.
“소우의의 아이가 황자란 걸 알게 되면 덕비는 무슨 수를 써서든 아이를 살리려고 할 것이고, 배 속의 아이가 이상함을 느낀 소우의는 어떻게든 아이를 없애려고 하겠지요. 하지만 결국에는 진짜 임신이 아니기에 아무리 애써 봤자 소용이 없는 것이고요.”
소우의가 반항할수록 덕비는 더욱이 아이만 살리려고 할 것이고, 안간힘을 써 봐도 아이가 없어지지 않으니 소우의는 점점 미쳐 갈 것이다. 거기에 진비가 계속 부채질한다면 큰 화로 번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나중에 이 귀비의 소행이 드러나면 또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장공주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후궁의 것들은 배가 불러서 말썽 피울 궁리만 하는 게다. 앞으로 덕비와 진비 두 사람을 경계하거라. 혹시라도 무슨 짓을 벌일까 봐 걱정되는구나.”
“외할머니, 걱정 마세요. 잘 대비하겠습니다.”
“그래. 그보다 유왕도 강남에서 돌아왔으니 황상께서 상을 내리실 때가 됐구나. 진왕의 내막에 대해서도 알릴 때가 온 듯하다.”
“그림자 호위한테 분부해 진실을 폐하께 알리라고 하겠습니다.”
“그래.”
* * *
그날 밤, 그림자 호위의 비밀 상주서가 황제의 탁자 위에 놓였다.
상주서를 읽은 황제는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손으로 이마를 감쌌다.
진왕 중독 사건이 수상하다 느껴져 그림자 호위를 시켜 몰래 조사하게 했는데, 진실이 이토록 황당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애초에 진왕은 누군가가 자신을 해치려는 것처럼 꾸미려고, 일부러 독약을 복용한 것이었다.
하지만 진왕이 꿈에도 생각지 못한 것이 있었으니, 변절자가 이 귀비한테 이 소식을 전한 것이었다.
이 귀비는 희귀한 독약을 구해 진비한테 보냈고, 진비는 그 독약이 약효가 세지 않은 오두독인 줄로만 알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진왕은 제 꾀에 넘어가 남은 생을 망쳐 버린 셈이었다. 더 어처구니가 없는 건 진왕은 아직까지 무슨 영문인지도 모른 채, 애꿎은 이들만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서립이 걱정스레 물었다.
“폐하, 안색이 좋지 않습니다. 태의를 부를까요?”
“필요 없다.”
황제는 비밀 상주서를 촛불에 태워 버린 뒤 칠흑 같은 밤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중화궁으로 가자.”
* * *
중화궁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진왕은 탁자 앞에 앉아 있었고, 탁자 위에는 촛불 하나가 켜져 있었다.
황제는 서립마저 밖에서 기다리게 한 채 홀로 안으로 들어갔다.
발걸음 소리를 들은 진왕이 고개를 돌렸다.
“부황, 소자의 거동이 불편해 인사 올리지 못하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황제가 촛불에 비친 진왕의 얼굴을 가만히 보았다. 그 어느 때보다도 예의 바른 군자의 모습이었다.
진왕은 어렸을 때부터 황제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었다. 어른이 된 후에도 나름 잘해 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하필 성격이 점점 더 나쁜 쪽으로 치우쳐져 막다른 길로 들어서 버린 것이다…….
“군진. 우리 부자가 함께 식사한 지도 오래됐구나. 오늘 밤 함께 술 한잔 기울이지 않겠느냐?”
“하지만 소자 눈이 보이지 않아 술을 따라 드릴 수가 없습니다.”
“괜찮다. 내가 따라주면 될 것을.”
곧 서립이 술잔을 가져다준 뒤 밖으로 나갔다.
황제는 잔뜩 채운 술잔을 진왕의 손에 쥐여 준 다음, 자신의 잔에도 술을 부었다.
진왕이 안절부절못하며 물었다.
“부황, 혹시 무슨 고민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그냥 옛 추억이 생각났을 뿐이다. 짐이 네 나이 때 황위에 올랐었지. 너를 볼 때마다 젊었을 때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구나.”
진왕은 술잔을 힘주어 꽉 잡았다. 부황의 속내를 통 알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