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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여독비-314화 (314/442)

314화 원한을 드러내다

* * *

진왕의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방 안에 앉아 있는 월왕과 눈이 마주친 목운요는 얼떨떨해하며 인사를 올렸다.

“셋째 외당숙과 월왕 전하를 뵙습니다.”

“두 사람, 약속이라도 했느냐? 월왕이 들어오자마자 운요도 도착했군.”

목운요가 작게 웃으며 대답했다.

“우연입니다. 월왕 전하께서 같이 계실 줄은 몰랐네요.”

“그런데 왜 나는 셋째 외당숙이라 부르고 아우는 월왕 전하로 부르는 것이냐?”

진왕이 눈웃음을 지으며 묻자 목운요도 환한 웃음으로 답했다.

“이미 답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혹시 일부러 저희를 시험하시는 건가요?”

진왕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눈을 가늘게 떴다.

“허허, 운요가 이리 솔직한 아이인 줄은 몰랐구나.”

“셋째 외당숙께 비밀로 할 이유가 없지요. 다만 전하께만 솔직히 말씀드렸으니, 비밀로 해 주실 거지요?”

“당연하지.”

월왕은 목운요의 손에서 약상자를 건네받아 한쪽에 두었다. 진왕이 사람을 시켜 목운요를 불렀다는 소식을 듣고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던 차였다.

그동안 목운요는 진왕에 대한 적의를 대놓고 드러냈다. 둘이 언제 큰 원한을 맺었는지는 모르지만, 진왕의 위선적인 성격을 잘 알기에 목운요와 단둘이만 있게 둘 수가 없었다.

목운요가 진왕의 상처를 들여다보았다. 상처에서 이상한 냄새가 났고 변두리는 새까맣게 변해 가고 있었다.

“전하, 아시다시피 임강성 수해로 수많은 사람이 빠져 죽은 탓에 강물도 오염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상처가 낫지 않는 것도 강물과 연관이 있습니다.”

그 말에 진왕은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그 말인즉…… 역병이란 말이냐?”

“네.”

“운요, 네가 역병을 치료하는 처방전을 가지고 있지 않느냐? 그럼 나도 무사한 거지, 그렇지?”

진왕이 목운요를 간절히 쳐다보며 물었다.

목운요는 고개를 들어 그런 진왕을 바라보았다. 안색이 창백했지만 여전히 준수한 그를 보자 과거의 일들이 뇌리를 스쳤다.

목운요가 진왕부로 들어가고 나서 한동안은 편안한 나날을 보냈다. 진왕의 연기는 빈틈없이 완벽했고 아마 스스로도 거기에 도취되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중요한 건 오직 권력뿐이었다. 그녀가 아무리 그의 맘에 들기 위해 노력해도, 결국에는 이용당하고 내팽개쳐질 운명을 피하지 못했다.

문득 목운요의 눈빛을 본 진왕은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녀의 눈빛은 언제나 맑고 투명해 보는 이로 하여금 기분이 좋아지게 했다.

그러나 방금 본 그 눈빛은 마치 고요한 호수에 광풍이 몰아치는 것만 같았다. 그 속에서 미치도록 차가운 감정이 전해졌다. 바로 증오의 감정이었다.

목운요가 시선을 거두며 다시 예전의 맑은 눈빛으로 바뀌었다.

“셋째 외당숙, 역병 치료제는 이미 사람들한테 나눠 줘서 남은 게 없습니다. 지금 바로 돌아가서 만들도록 하지요. 상처가 난 팔은 최대한 사용하지 마시고 물에도 닿지 마십시오. 마음을 편하게 가진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을 겁니다.”

“그래.”

진왕이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했다. 그러나 심장은 여전히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목운요와 월왕이 떠나자 진왕은 그제야 깊은숨을 들이마셨다. 등 뒤에 식은땀이 엄청 나 있었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예전의 일을 돌이켜 보았다. 비록 소씨 가문을 도와준 적은 있지만, 어디까지나 사람들의 눈을 피해 은밀히 행동했고, 소씨 가문이 몰락한 후로는 아무런 왕래도 없었다.

그런데 왜 목운요가 자신에게 그토록 깊은 원한을 가진 걸까?

* * *

월왕이 목운요와 함께 정자에 앉았다.

“요아, 방금 일부러 그런 거지?”

목운요가 바람에 날린 머리카락을 정리하며 대답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가요?”

그가 손을 뻗어 그녀의 이마를 톡 하고 쳤다.

“방금 일부러 진왕 앞에서 원한의 감정을 드러낸 거지? 그러면 진왕의 소심한 성격에 절대로 네가 준 약을 먹지 않을 테니까. 내 말이 맞느냐?”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제가 그리 나쁜 사람인가요?”

목운요가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 모습을 보고 월왕은 저도 모르게 손을 다시 뻗었으나, 살짝 빨개진 목운요의 이마를 보자 마음이 아파 와 살짝 매만지기만 했다.

그녀는 말랑말랑한 두부와도 같았다. 최대한 힘을 쓰지 않고 다루더라도 혹여나 다칠까 조마조마했다.

목운요는 월왕의 손을 잡아 손바닥에 생긴 굳은살을 천천히 어루만지며 물었다.

“사야. 치수 공사는 제 대인께서 맡으셨으니 저희 곧 서릉으로 돌아갈 수 있겠죠?”

“하늘이 도와 비를 안 내린다면 바로 돌아가자꾸나.”

“그럼 릉왕과 진왕은요?”

“두 사람은 부황의 명을 받고 둘째 형님을 도와주러 왔으니, 아무래도 강둑 수리가 끝날 때까지 있어야 할 것이다.”

그 말에 목운요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월왕이 큰 손으로 자신의 손을 완전히 감싸 잡자 해맑게 웃음을 지었다.

“사야, 서릉에서 온 소식이 있나요?”

“아직 없지만 곧 올 것 같아.”

“그렇군요.”

월왕은 목운요의 손을 힘주어 잡아 보았다. 그녀의 손은 마치 뼈가 없는 것처럼 보드랍고 말랑말랑했다. 세상 모든 여인이 다 이런 촉감인 걸까?

월왕의 멍한 모습을 보고 목운요는 저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때, 사금이 어두운 표정으로 다가와 아뢰었다.

“월왕 전하, 목 소저를 뵙습니다. 허 소저께서 밖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목운요가 웃음기를 거두며 물었다.

“허 소저라면, 허기 말인가요?”

“네.”

목운요가 손을 빼서 제 주머니에 넣으며 물었다.

“사야, 허 소저를 만나러 가셔야죠?”

목운요의 손이 빠져나가자 월왕은 못내 아쉬움이 밀려왔다.

“내 지조를 더럽히지 말거라. 허 소저가 찾아왔다 한들, 운요를 찾으러 온 거겠지.”

지조라는 말에 목운요는 웃음이 터져 버렸다. 방금까지 있었던 질투심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알겠어요. 그럼 다녀올게요.”

어찌 됐든 간에 허기의 부친은 외할머니의 수양아들이었다. 허기가 도를 넘는 행동만 하지 않는다면 목운요도 피할 생각은 없었다.

대청으로 나온 목운요는 먼 길을 달려온 듯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허기를 볼 수 있었다.

들려오는 발걸음 소리에 허기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러나 목운요 혼자 온 걸 보고 얼굴이 살짝 굳어 버렸다.

“온한 군주를 뵙습니다.”

“예를 거두세요.”

허기가 일어서며 미소 지었다.

“군주, 그동안 잘 지내셨죠?”

“예전처럼 운요라 불러 주세요. 보다시피 잘 지내고 있지요. 걱정해 줘서 고마워요.”

초췌해 보이는 허기를 향해 목운요가 걱정스레 말했다.

“그나저나 안색이 영 안 좋네요. 먼 길 오느라 피곤했을 텐데, 일단 씻은 다음 옷을 갈아입으시죠.”

허기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럼 신세 좀 질게요.”

사기가 허기를 데리고 나간 뒤, 목운요는 자신의 방으로 가서 다시 약재를 정리했다.

침대에 누워 있던 독 낭자는 그녀가 말없이 일만 하고 있자, 일어나서 일부러 약초를 어지럽혔다.

목운요는 눈을 크게 뜨며 독 낭자의 팔을 탁 내리쳤다.

“그만해. 빨리 정리해야 한단 말이야.”

독 낭자가 코를 찡긋하면서 물었다.

“나갔다 온 이후로 기분이 안 좋아 보이네? 혹시 진왕이 화나게 한 거야? 내가 가서 혼쭐을 내 줄까?”

“아니.”

“그럼 왜 그러는 건데? 아하, 혹시 밖에 있는 예쁘장한 여자가 월왕을 찾으러 온 건가? 뾰로통해 있는 걸 보니 질투 났구나?”

목운요가 잠깐 멈칫하더니 독 낭자를 한쪽으로 밀치며 침대에 털썩 누워 버렸다.

“그래, 질투 나서 그런다.”

독 낭자가 침대 팔걸이에 비스듬히 앉더니, 목운요의 어깨를 주물러 주며 다독였다.

“내가 그랬지? 남자들은 다 똑같다고. 앞으로 계속 속상하지 않으려면 그만 마음 접어. 나랑 같이 세상을 떠돌지 않을래? 내가 세상 구경시켜 줄게. 세상을 떠돌며 사사로운 감정에 얽매이지 않는 거지.”

목운요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리며 독 낭자의 손을 치웠다.

“자꾸 내 몸에 손을 대는군.”

딱히 악의가 없는 건 아니었다. 단지 예쁘고 말랑말랑한 걸 좋아할 뿐. 전에는 애완동물도 여러 번 키워 봤지만, 전부 오래 살지 못하다 보니 더 이상 키우지 않게 되었다.

독 낭자는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어쩔 수 없이 손을 거둬들였다. 남자였다면 절대로 닿지도 않았을 것이다.

“세상을 떠돌자는 제안은 어떤 것 같아?”

“별로.”

목운요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난 세상을 떠도는 것도, 감정에 얽매이지 않는 것도 바라지 않아. 현재의 삶을 잘 살아가고 싶을 뿐이지. 나와 월왕은 적을 많이 둬서 앞으로의 길이 쉽지만은 않을 거야. 하지만 내가 선택한 길이니 절대로 후회하거나 피하진 않을 거야.”

독 낭자는 잠시 멈칫하다가 복잡한 감정이 담긴 눈빛으로 목운요를 바라보았다.

“월왕의 마음이 거짓일까 봐 두렵지 않아?”

“전혀.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월왕뿐만이 아니거든. 어머니, 외할머니, 양부모님, 시녀들, 그리고 애완 여우도 있고, 내가 경영하는 하운방과 불선루도 있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설사 사랑에 실패하더라도 살아갈 이유는 분명히 있을 거야.”

독 낭자는 멍하니 있다가, 손을 뻗어 웃고 있는 목운요의 얼굴을 만졌다. 따뜻한 웃음을 짓고 있는 그녀의 얼굴을 만지는 것만으로도 그 따뜻함이 손을 타고 마음속을 파고드는 것만 같았다.

독 낭자는 저도 모르게 아쉬움이 들었다. 좀 더 일찍 목운요를 만났더라면 자신도 지금 이 모습이 아니었을까?

쓸쓸해 보이는 독 낭자를 보며 목운요는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역병 처방전이 네 것이니, 서릉으로 돌아가자마자 황상께 상을 청할 거야. 그걸로 한씨 가문을 독살한 죗값을 치르면 앞으로 더 이상-”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독 낭자가 독침을 꺼내 목운요의 목 가까이에 댔다.

“지금 뭐라고 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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