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여독비-313화 (313/442)

313화 운이 나쁜 진왕

독 낭자가 떠나자 월왕도 그제야 경각심을 늦추었다.

“요아, 방금 저 사람이 네가 말한 독에 능한 고수인 것이냐?”

“네. 워낙 성격이 거칠어 혹시라도 실례를 범했더라도 눈감고 넘어가 주세요.”

“적대심이 꽤 강해 보이던데, 너무 방심하지는 말거라.”

월왕이 자리에 앉더니 손수건으로 목운요의 얼굴에 묻은 약을 닦기 시작했다.

목운요는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월왕의 손길을 느꼈다.

“염려 마세요. 독 낭자는 겉으로 봤을 땐 거칠어 보이지만, 본인이 인정하는 사람은 진심으로 대하는 좋은 사람이에요.”

물론 적을 대할 땐 엄청나게 잔인하기도 했다.

“독 낭자라…… 어디선가 들어 본 적이 있는 듯하구나.”

“원성의 한씨 가문 일가가 전멸한 사건을 기억하세요?”

“알지. 한씨 가문은 당시 급속도로 부상한 의약 명문가로 온 세상에 명성이 자자했다. 그런데 하룻밤 사이에 몇십 명이나 되는 일가족이 전부 살해당해 사람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지. 소문으로는 독왕곡 사람들과 연관이 있다 하더군.”

“독왕곡 사람들이 얼떨결에 누명을 쓰게 되었지만, 실제로 일을 저지른 사람은 바로 독 낭자예요.”

“그게 사실이냐?”

월왕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네. 한씨 가문이 갑자기 입신양명하게 된 건 모두 독 낭자의 의술 덕분이었어요. 독 낭자는 당시 약선곡 곡주의 딸로 실력이 무척이나 뛰어났죠. 그러다 처음 세상 밖에 나갔을 때 한씨 가문의 자제 한묵진을 만나게 되고, 그를 사랑하게 되었어요. 곡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한씨 가문에 시집가려 하다가, 결국 부녀의 연도 끊겼지요. 그리고 한씨 가문에 모든 의술을 빼앗기고, 구금당해 얼굴과 목소리를 잃은 데다 목숨까지 잃을 뻔했어요. 게다가 한씨 가문이 내부 도면을 독왕곡 사람들한테 넘기는 바람에 약선곡이 전멸했죠. 그 뒤로 독 낭자는 기회를 엿보다 한씨 가문 일가를 모두 독살한 다음 자취를 감추었어요. 제가 가지고 있던 역병 처방전도 독 낭자한테서 받은 거예요.”

“요아, 정말 믿을 만한 사람인 것이냐?”

“사야, 절 믿으세요. 독 낭자가 비록 성격은 괴팍하지만 사리 분별 못 하는 사람은 아니에요. 한씨 가문을 독살한 것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고요. 게다가 저한테는 은인 같은 사람이라, 절대로 저희를 해치지 않을 거라 장담합니다.”

“알겠다.”

월왕이 손수건을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독 낭자가 꼬집어 빨갛게 상기된 목운요의 볼을 보자 왠지 모르게 마음이 불편했다.

“의심이 의심을 낳는 법이지. 네가 그자를 믿는다면, 난 너를 믿는다.”

* * *

독 낭자의 떠나겠다는 말에, 진왕은 한참 동안 미간을 찌푸린 채 생각에 잠겼다.

그에 옆에 서 있던 심복이 입을 열었다.

“왕야. 독 낭자는 성격이 드셀 뿐만 아니라, 강남으로 가는 도중 갑자기 접근한 것도 뭔가 수상했습니다. 제 발로 떠나겠다고 하니 차라리 잘된 일이지요.”

진왕도 사실 모든 것이 비밀스러운 독 낭자가 썩 맘에 들진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갑자기 목운요에게로 간다고 하니 영 내키지 않았다.

“잘 감시하거라. 독 낭자 그자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뭔가 심상치 않은 사람인 건 틀림없다.”

“네.”

* * *

하늘이 도와주는 듯 지난번 폭우가 쏟아진 뒤로 날씨는 쭉 맑았다. 덕분에 제운의 수리 공사도 계획대로 잘 진행되고 있었다.

목운요는 하운방과 불선루의 장부를 살피며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일로 그동안 모아 둔 은자도 거의 동이 나서 다시 벌어들일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 시각 서릉 황궁 내.

얇은 내의만 걸친 진비가 황제의 서재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폐하,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서립은 조용히 찻잔을 황제의 앞에 내려 두며 숨죽인 채 한쪽에 섰다.

황제가 차를 한 모금 들이키더니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하명차가 아니구나?”

“폐하께 아룁니다. 궁으로 보내지는 하명차는 온한 군주께서 친히 고르고 말린 다음 덖은 차입니다. 올해는 군주께서 강남에 계시는 바람에 아직 공수하지 못했습니다.”

황제는 찻잔을 내려놓고 다시 상주서를 보다가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

“사람을 시켜 진비를 궁으로 보내거라. 그리고 시간 날 때마다 불경을 베끼면서 마음을 다스리고 전해라.”

“네.”

서립이 나오자 진비가 황급히 물었다.

“서 공공, 폐하께서 드디어 허락하셨나요?”

“진비 마마, 폐하께서 명하시길 궁으로 돌아가 불경을 베끼며 마음을 다스리라 하십니다.”

진비는 순식간에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며칠 전, 누군가가 자신의 친정 오라버니가 농지를 강제로 차지하고 사람을 때려죽인 사실을 황상에게 상주했다.

이에 황상은 크게 노했고, 그녀는 어떻게든 오라비의 결백을 증명하려 했으나 황제가 얼굴 볼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외려 그는 형부에 철저히 조사하라고 명을 내렸다. 이대로라면 친정 집안이 풍비박산 날지도 몰랐다.

“서 공공, 폐하께 한 번만 만나게 해 달라고 전해 주세요. 친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서립이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진비 마마, 그만 돌아가시지요.”

그러곤 그가 바로 서재로 들어갔다.

진비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지금까지 그녀는 미천한 출신인 친정 식구들에게 힘을 실어 주고 있었다. 드디어 상황이 호전되기 시작했는데, 또다시 물거품으로 돌아가게 생겼다.

형부는 릉왕의 관할인 데다 진비의 가족과 관련된 사건이다 보니, 그 어느 때보다도 빨리 진행됐다. 엿새 만에 사건 판결 문서가 황제 앞으로 보내졌다.

임강성에 머물고 있는 진왕한테도 소식이 전해질 무렵, 이미 처형과 유배는 진행된 뒤였다.

서릉으로부터 전해진 소식을 들은 진왕은 찻잔을 내던지다 상처 부위가 다시 찢어지고 말았다.

태의가 상처 부위에 붕대를 감아 주고 있는데, 릉왕이 찾아왔다.

“상처 난 지 열흘도 넘었을 텐데, 왜 여전히 피가 나는 거지?”

진왕이 물에 뛰어들어 사람을 구한 것은 평판을 위해서였다. 그런데 좋은 평판이 쌓이기도 전에 외가가 패가망신했으니, 서릉으로 돌아가면 아마 얼굴도 들고 다니지 못할 것이다.

아픔 때문인지 아니면 화가 나서인지, 진왕의 상처 입은 팔이 부들부들 떨렸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릉왕은 냉소를 지었다. 분명 속으로 열불이 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품위를 지키는 척 행동하는 진왕이 역겹기까지 했다.

“아우, 진비 마마께선 친정 일로 쓰러져 계시고 부황께서도 크게 노하셨다는군. 그래도 모비와 다른 비빈들이 그동안의 정을 보아서라도 잘 챙겨 줄 것이니 걱정 말거라.”

진왕이 차가운 눈빛으로 상대를 쳐다보며 대답했다.

“서릉으로 돌아가면 이 귀비께 찾아가 제대로 인사 올리지요.”

사건의 배후에 이씨 가문이 있는 게 틀림없다!

릉왕은 그의 말속에서 위협감을 느꼈지만, 전혀 아무렇지 않았다.

“그래, 그럼 잘 요양하거라. 서릉으로 돌아가기 전에 상처가 아물어야지.”

릉왕이 나가자 화를 못 이긴 진왕이 찻잔을 집어 바닥에 힘껏 내던졌다. 팔뚝의 상처가 다시 터져 피가 새어 나왔다.

“태의를 다시 부르거라.”

“네.”

태의들은 도통 이해가 안 갔다. 진왕의 상처는 그리 심각한 편이 아니었다. 열흘이라면 더 심한 상처라도 이미 아물고도 남았을 텐데, 유독 진왕의 상처만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혹시라도 독이 든 게 아닌지 조사도 해 보았으나, 아무런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

어쩔 도리가 없는 태의들은 진왕한테 완곡한 부탁을 올렸다.

“진왕 전하, 소관들의 의술이 천박하오니 온한 군주께 도움을 청하는 게 어떨는지요? 군주께선 의술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역병에 효과적인 약도 만들어 내셨습니다. 군주라면 상처를 빨리 낫게 해 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지.”

* * *

목운요는 환약을 만들 약재를 고르고 있었다.

그 옆에서 독 낭자는 그녀의 침대에 누워 포도알을 입 안으로 던져 받아먹는 중이었다.

방으로 들어온 사금은 눈앞의 광경을 보고 입을 삐죽거렸다. 소저께선 독 낭자한테 유난히 관대했다. 뭘 하든 내버려 두는 이유가 뭔지 궁금했다.

“소저, 진왕 전하께서 상처를 봐 달라고 하십니다.”

목운요는 잠깐 멈칫하다가 입꼬리를 올리며 대답했다.

“알겠어. 물건 챙겨서 바로 간다고 전해 줘.”

“네, 소저.”

사금이 떠나자 독 낭자가 침대에서 일어나 앉으며 물었다.

“네가 치료해 주면 평생 못 나을 텐데?”

“그럴 리가. 어쨌든 내 셋째 외당숙인데 설마 내가 해치기라도 하겠어?”

독 낭자가 이마를 찌푸렸다. 상처투성이인 얼굴이 더 일그러져 보였다.

“대체 진왕한테 어떤 악감정이 있는 건데? 내가 약이라도 만들어 줄까? 소리 소문 없이 없애 버리는 거지.”

“됐거든. 상대는 아무개가 아니라 진왕 전하야. 독살하면 나한테 좋을 것 하나 없어. 그리고 고통을 주는 방법이 많고 많거늘, 한 번에 독살하는 건 너무 다정한 수법이지.”

독 낭자가 혀를 끌끌 차며 감탄했다.

“진왕에 대한 미움이 뿌리 깊이 박혀 있구나. 어디 한번 말해 봐. 대체 너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이전 생에서 날 죽인 거라면 철천지원수라 할 만하지?”

“너 진짜…… 흥.”

독 낭자가 다시 침대에 눕더니 너울로 얼굴을 가려 버렸다. 진지한 대화를 하려 할 때마다 목운요가 이전 생을 들먹이는 탓에 정말 믿어야 할 것만 같았다.

목운요는 그 모습을 보고 웃음을 지었다.

“혼자 놀고 있어. 금방 다녀올게.”

목운요가 떠난 뒤, 독 낭자도 곧바로 따라 나갔다.

목운요와 함께한 뒤로 그녀는 더없이 자유로움을 느꼈다. 심지어 늘 가리고 있던 너울도 거리낌 없이 벗곤 했다.

왠지 모르게 목운요는 절대로 그녀의 외모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마저도 처음 느껴 보는 감정이었다.

원래는 그저 소금세 사건에 대해 알아보려던 것이었으나, 어렵게 자신과 잘 통하는 사람을 만나게 됐으니 더 챙겨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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