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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여독비-307화 (307/442)

307화 치료의 시작

백성들이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자, 목운요는 풍향을 관찰하더니 흰색 분말 한 봉지를 꺼내 백성들을 향해 뿌렸다.

이를 본 태의들은 황급히 코와 입을 막으며, 흥미진진한 눈빛으로 상황을 지켜봤다.

전에 기수성에서도 몇몇 사람들이 소동을 벌인 적이 있었다. 그때도 온한 군주가 약을 뿌려 사람들을 쓰러뜨렸었다.

태의들은 속으로 숫자를 세었다. 다섯을 세기도 전에 길을 막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바닥에 쓰러졌다.

목운요는 옆에 있던 시위한테 지시를 내렸다.

“손발을 묶어라. 내일 심문할 것이다.”

“네.”

한편 월왕은 관성에 있는 수하에게 연락을 취해 잠시 머물 곳을 찾았다. 다음 날 관아가 정리되면 바로 옮길 생각이었다.

덕분에 목운요는 맘 편히 쉴 수 있었다.

* * *

이튿날 아침, 날이 밝기도 전에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잠에서 깬 목운요는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사금, 무슨 일이야?”

“밖에 백성들이 잔뜩 몰려와, 월왕 전하께서 사람을 죽였다며 소란을 피우고 있습니다. 누가 헛소문을 냈는지 어젯밤 그자들을 모두 죽인 줄로 알고 있습니다.”

“전하는?”

“월왕 전하께서 크게 노하시며 일부 사람들을 마당 나무에다가 꽁꽁 묶어 뒀습니다. 밖에선 월왕 전하께 사람들을 풀어 주라며 아우성입니다.”

목운요는 피식 웃었다.

“소란 피울 힘이 남아도는 걸 보니 아직 최악의 상황은 아닌가 보군. 약재도 곧 도착하겠네?”

“네. 어제 수로로 운송 중이라고 했으니 곧 도착할 겁니다.”

“그래.”

단장을 마친 목운요가 사금, 사기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아침 식사 중이던 태의들이 목운요를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올렸다.

“온한 군주를 뵙습니다.”

“약재가 곧 도착할 테니 여러분께서 수고해 주셔야겠군요.”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그보다 혹시 군주 수중에 아직 약이 남아 있는지요? 그걸 가지고 있어야 마음이 놓이지 말입니다.”

기수성 수습에 나선 병사와 백성들에게 목운요는 약을 한 알씩 나눠 줬었다. 처음엔 다들 고작 한 알뿐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역병에 감염되었을 때 약을 먹자 이튿날 아무 일 없다는 듯 쌩쌩해졌다.

태의들이 자발적으로 관성에 온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목운요가 있는 한 역병 따위는 감기만큼이나 치료하기 쉬우니, 거저 쌓이는 공로를 놓칠 리가 없었다.

태의들의 간절한 눈빛에 목운요는 웃어 버리고 말았다.

“미리 준비해 둔 약이 있습니다. 이따 여러분께 두 알씩 나눠 드리지요. 구하기 어려운 약재가 있어 많이 못 드리니 양해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온한 군주.”

인사를 받고 마당으로 나온 목운요는 나무에 묶여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그녀의 등장에 월왕의 눈빛이 한없이 부드럽게 바뀌었다.

“일찍 일어났구나.”

“바깥이 너무 시끄러워 일찍 깼어요. 빨리 여기 일을 마무리하고 서릉으로 돌아가야죠. 너무 오래 떠나 와 있어 외할머니와 어머니가 무척 그립습니다.”

“그래.”

월왕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시위들이 막고 서 있는 문밖의 백성들을 향해 말했다.

“여기 많이 모여 있으니 내 말을 똑똑히 듣거라. 난 황제의 넷째 아들 월왕이고, 조정의 명을 받아 관성을 구하러 왔다. 금일 관청 앞에서 탕약을 받아 가거라. 역병에 감염되든 안 되든 모두 탕약을 마셔야 한다. 병이 있으면 치료되고, 병이 없다면 건강해질 것이다.”

월왕의 말을 듣고 사람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때, 인파 속에서 누군가가 큰 소리로 질문했다.

“왜 모든 사람이 탕약을 마셔야 하지? 혹시 병을 낫게 하는 약이 아니라 독약 아니야? 조정에서 우리를 도와주라고 보낸 게 아니라 죽이라고 보냈겠지!”

이에 월왕이 발끈하며 대꾸하려 했지만, 목운요가 고개를 저으며 한 걸음 앞에 나섰다.

“믿을지 말지는 당신들 몫이지. 사흘 동안만 무상으로 치료해 줄 것이고, 사흘 뒤 우린 다른 곳으로 떠날 것이다.”

용건을 전달한 목운요는 월왕과 함께 식사를 하러 갔다.

백성들의 경각심이 한껏 올라와 있어, 설득할수록 의심을 살 수 있었다. 외려 지나친 관심을 주지 않는 것이 유리할 수도 있으리라.

얼마 지나지 않아, 약재를 실은 마차가 성안으로 들어왔다.

문 앞에는 여전히 백성들이 모여 있었으나, 길을 막진 않았다. 혹시라도 목운요가 다시 약 가루를 뿌릴까 봐 멀리서 지켜보고만 있었다.

마차에서 내려지는 약재를 보고, 한 사람이 작은 소리로 물었다.

“자네 예전에 약방에서 일한 적 있다 그랬지? 저게 다 무슨 약재인지 알아볼 수 있겠나?”

“보아하니 해열, 거습, 해독을 하는 약재 같군. 해로운 건 아닌 것 같아.”

그 말에 사람들이 예민해진 눈으로 노려보았다.

“맞으면 맞고, 아니면 아닌 거지. 아닌 것 같다는 뭐야? 사람 목숨이 달린 일인데 똑바로 다시 봐 봐.”

“나도 오래 일하지 않아 약재에 대해 잘 알진 못해. 그러나 저기에 독이 없다고 장담할 순 있네!”

약재를 모두 내린 뒤, 관청 앞에 진찰소가 세워졌다. 그러나 태의들이 한 시진 넘게 기다려도 근처엔 사람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았다.

점심쯤 되니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었다.

월왕은 목운요가 혹여나 더위를 먹을까 봐 그늘진 곳에 의자를 두게 한 뒤 그녀를 앉혔다. 그리고 틈만 나면 덥진 않은지, 목마르진 않은지 세심하게 챙겨 줬다.

태의들은 겉으론 근엄한 표정으로 있었으나, 정신은 온통 두 사람한테 쏠려 있었다. 보면 볼수록 부러워 심술이 날 정도였다.

냉정하기로 소문난 월왕에게 이런 눈꼴신 모습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아무리 기다려도 환자가 찾아오지 않자, 목운요는 일찍이 태의들을 돌려보냈다.

그러고는 약 가루를 조제하여 야밤에 몰래 모든 우물에 넣게 했다. 난데없는 의심을 받아 기분이 굉장히 불쾌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백성들이 고통받는 걸 두고 볼 수는 없었다.

적어도 이렇게 하면 이재민들이 맘 편히 우물의 물을 마실 수 있을 것이다.

* * *

이튿날, 진찰소 앞이 구경 온 사람들로 득실댔다. 하지만 여전히 진찰을 받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한데 점심 무렵, 어떤 부녀자가 아이를 품에 안고 달려왔다. 뒤에서 사람들이 말리자 팔을 마구 물기까지 했다.

“저리 가! 어차피 아이가 곧 죽을 마당에 나도 두려운 게 없어. 한 번만 더 길을 막으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참, 고집불통이군! 저들한테 보여 봤자 당신 아들만 더 빨리 죽을 뿐이야!”

“걱정해 주는 척하지 마! 간이 콩알만 한 겁쟁이들!”

그러곤 부녀자가 한 태의 앞에 가더니 아이를 내려놓고 애원했다.

“의원님, 제발 제 아이를 살려 주십시오!”

태의는 곧장 아이를 살펴보았다. 아이의 입 주변에는 토사물이 묻어 있었고 코 주변까지 흐른 상태였다. 계속 뒀다간 코로 흡입할 수도 있어, 급히 아이를 옆으로 누인 뒤 손수건으로 깨끗이 닦아 주었다.

그때, 아이가 갑자기 경련하기 시작했다. 태의는 아이의 몸을 누르는 한편, 혹시라도 혀를 깨물지 않도록 손으로 아이의 입을 벌렸다.

한데 생각보다 힘이 센 아이가 태의의 손을 힘껏 물었고, 이를 본 사람들이 급히 다가와 도왔다.

소식을 듣고 온 목운요는 은침으로 아이를 진정시킨 다음, 나무 막대를 아이 입에 물려 주며 걱정스레 물었다.

“진 태의, 괜찮으세요?”

“괜찮습니다. 염려 마십시오.”

손에 토사물이 묻은 진 태의는 옆 사람의 손을 빌려 목운요가 준 약을 바로 복용했다.

“군주님, 상처가 아무래도 꽤 오래갈 듯합니다. 혹시 여분의 약이 있는지…….”

목운요는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진 태의께서 해독약에 대해 조예가 깊으신 듯하니, 서릉으로 돌아가자마자 약 처방을 써 드리겠습니다. 함께 보완할 점을 상의해 보시지요. 어떻습니까?”

진 태의는 생각지도 못한 제안에 눈을 크게 뜨며 기뻐했다.

“얼마든지요. 장공주부로 찾아가 군주께 한 수 배우겠습니다.”

싱긋 웃은 목운요는 아이를 진맥하며 중얼거렸다.

“역병 증상이 심각하네요. 온몸이 뜨거우며 구토까지 하니, 기존 처방에 후박나무를 추가해 진하게 달여 먹이세요. 부인. 아이는 당분간 저희가 지은 임시 천막에서 지내며 제때 치료받는 게 좋을 듯한데, 어떠신가요?”

부녀자는 바닥에 꿇어앉더니 목운요와 진 태의를 향해 연신 절을 했다.

“군주, 태의 나리, 정말 감사합니다! 다만 저도 함께 남겠습니다!”

“그래요. 아이 곁을 지키려면 건강하셔야 해요. 제가 맥을 짚어 드릴게요.”

“네, 네!”

모자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백성들은 여전히 반신반의하고 있었다. 아이가 탕약을 먹고 안색이 좋아지자 그제야 몇몇이 용기 내어 진찰을 받기 시작했다.

“의원님, 요즘 몸이 영 좋지 않은데 한번 봐주십시오.”

태의들은 최선을 다해 진찰했고, 확실치 않은 병은 서로 의논하며 해결해 나갔다. 태의원에 오랫동안 있었지만, 의술이 그때보다 요 며칠 사이에 더 많이 발전한 듯했다.

게다가 서릉에서의 권세 욕심을 내려놓고 마음을 비웠더니 처음 이 길을 선택했을 때의 초심을 되찾은 것만 같았다.

한번 물꼬를 트자, 다른 백성들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목운요가 말한 사흘의 기한이 얼마 남지 않아, 곧 진찰소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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