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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여독비-306화 (306/442)

306화 갑작스러운 공격

* * *

궁을 떠난 유왕은 곧장 위국후부로 찾아갔다.

위국후부 대청에선 위국후 제여년과 두 아들 호부 상서 제봉, 병부 시랑 제민이 일찍이 나와 유왕을 기다리고 있었다.

유왕이 들어서자 그들이 인사를 올렸다.

그에 유왕은 얼른 다가가 위국후를 말렸다.

“외할아버지, 부디 예를 거두십시오.”

위국후는 몸을 세우더니 흐뭇한 눈빛으로 유왕을 훑어보았다.

“전하, 이번 강남행을 통해 많이 성장하신 것 같습니다.”

유왕은 평소 강인하긴 했으나 뭔가 부족함이 있었다. 마치 손에 검을 쥐고 있지만 휘두를 줄 모르는 검객 같달까. 한데 강남에 다녀오고 나서야 비로소 그 부족함이 채워진 듯한 느낌이었다.

그 말에 유왕의 눈빛에는 슬픈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

“차라리 겪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지도 모르지요.”

“전하, 이미 비극은 벌어졌으니 백성들을 구하는 데에 전력을 다하셔야 합니다. 분부하신 약재는 이미 구했으니 바로 강남으로 보내시면 됩니다. 그리고 곧 강남이 우기에 접어들 것입니다. 그러니 하루빨리 임강 강둑을 복원해야 합니다. 폐하께선 저희에게 치수 공사를 맡길 생각이신 것 같더군요. 전하 생각은 어떠하신가요?”

“외할아버지께선 황자들의 싸움에 끼어들고 싶어 하지 않으셨는데, 결국 제가 끌어들였네요.”

“백성을 위한 일이라면 제씨 가문은 무조건 협조할 겁니다. 그러나 전하께서 초심을 잃으신다면, 저 제여년은 기꺼이 제 귀비와의 부녀 인연을 끊고, 외손주도 없는 셈 칠 것입니다.”

위국후는 젊었을 때 자주 출정을 나간 탓에 지금은 고질병이 떠나지 않았다. 날씨가 급격히 바뀔 때에는 온몸이 쑤셔 일어나 걷지도 못할 지경이었지만, 눈빛은 여전히 굳센 기개가 넘쳐흘렀다.

유왕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마십시오. 절대로 실망시켜 드리지 않을 겁니다.”

“하하. 그럼 노신, 전하만 믿겠습니다. 제씨 가문이 그동안 전국 각지에 수많은 약재 가게를 세웠지요. 오늘부로 가게들을 전하께 맡기겠습니다.”

“그건 제씨 가문의 전부일 텐데, 이런 귀중한 건 받을 수 없습니다…….”

“이 가업은 노신이 두 주먹으로 일구어 낸 것입니다. 후손들이 능력이 없다면 가업을 물려주더라도 망할 게 뻔하지요. 그럴 바에야 전하께 드려 백성들을 살리는 데에 유용하게 쓰는 게 훨씬 낫습니다. 다시 강남으로 돌아가셔야 할 텐데, 더 늦어지기 전에 얼른 떠나십시오.”

유왕이 위국후의 노쇠한 얼굴을 보며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그러고는 공손하게 인사 올렸다.

“외할아버지, 제가 돌아올 때까지 무사히 계십시오. 좋은 소식으로 다시 찾아와 인사 올리겠습니다.”

“전하, 살펴 가십시오.”

위국후와 두 아들이 허리 숙여 유왕을 배웅했다.

* * *

목운요는 관성에 역병 환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무거운 얼굴로 들었다. 관성이 워낙 기수성과 붙어 있어 역병이 번질 거라 예상은 하고 있었다.

태의들은 아직까지 침착하게 잘 대응하고 있었고, 목운요가 제공한 처방전도 효과가 꽤 있는 듯했다. 물론 몸이 지나치게 허약해 숨을 거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완치되고 있는 중이었다.

월왕은 곰곰이 생각에 잠기더니 목운요를 향해 말했다.

“운요. 기수성 일은 얼추 마무리되어 가니 우항한테 맡겨 두고, 우린 태의들을 데리고 관성으로 가자꾸나.”

목운요는 월왕에게 기수성을 지키라 말하고 싶었으나, 그의 단호한 눈빛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알겠어요.”

우항의 건강도 거의 회복되었고, 기수성 이재민들도 대부분 안정을 되찾았으니, 태의 절반만 남겨 두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리라.

* * *

다음 날 아침. 월왕은 수척해진 목운요의 얼굴을 보며 걱정스레 물었다.

“관성까지 말을 타고 갈 수 있겠느냐? 태의들이랑 마차를 타고 가는 건 어떠하느냐.”

목운요는 걱정 가득한 월왕을 향해 작게 웃어 보이더니, 잽싸게 말에 올라탔다. 그러고는 앞장서서 달리기 시작했다.

월왕은 잠깐 멈칫하다가 이내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뒤따라갔다.

그런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마차에 탄 태의들은 서릉에 돌아가면 말타기를 배워야겠다고 다짐했다. 병을 고쳐 주는 직업을 가지긴 했지만, 훗날 분명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수성에서 지내는 동안, 태의들은 월왕과 목운요를 다시 보게 되었다.

월왕은 황후의 적자이긴 하나 황상의 눈 밖에 나 있었고, 성격이 잔인하다는 소문이 자자해 사람들은 최대한 그와 엮이지 않으려고 했다.

한데 며칠간 함께 지내다 보니 월왕은 결코 소문처럼 포악한 성격이 아니었다. 다만 평소 무표정으로 일관하다 보니 쉽게 다가가기 힘들 뿐이었다.

놀라운 건 온한 군주였다. 겉보기에 약해 보이는 그녀는 그 누구보다 몸을 아끼지 않았다. 모든 약재를 본인이 직접 검사하고 고를 뿐만 아니라, 약을 달일 때마다 신중을 기울였다.

군주 신분이지만 이재민들을 대할 땐 한결같이 다정했다. 목운요의 그런 노력이 없었더라면, 역병에 걸린 환자들은 진작에 절망을 느껴 들고 일어났을 것이다.

아침 일찍 출발한 일행은 날이 어두워져서야 관성에 도착했다.

성문을 지키고 있던 병사들은 누군가가 다가오자 그들을 향해 화살을 겨누었다.

“누구냐!”

이에 월왕이 금패를 내보였다.

“어명을 받고 관성 백성들을 치료해 주러 왔다.”

“어명? 증거가 있느냐?”

“황제께서 하사한 금패가 안 보이느냐? 어서 열거라!”

월왕의 차가운 말투에서 위압감이 느껴졌다.

잠시 침묵이 이어지던 그때, 갑자기 사방에서 화살이 날아왔다.

시위들은 다급히 태의들을 태운 마차를 보호했고, 월왕은 검을 휘둘러 화살을 막아 낸 다음, 목운요를 마차 뒤로 데려갔다.

“사야!”

자신을 숨긴 뒤 바로 돌아서는 월왕을 향해 목운요는 걱정 가득한 얼굴을 지었다.

“금방 올 테니 기다리거라.”

이내 월왕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태의들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잔뜩 겁을 먹었다. 이재민을 구하러 온 사람들한테 감사해하기는커녕 죽이려고 하다니,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목운요는 주먹을 꽉 쥔 채 바깥 상황에 귀를 기울였다. 한바탕 무기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한참 뒤 성문 여는 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월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해결됐으니 어서 들어가자.”

목운요는 재빨리 그에게 다가가 다친 곳은 없는지 확인했다. 상처 하나 없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야, 어떻게 된 일이에요?”

“관성 현령이 내린 명이더군. 진왕의 사람인 듯해 내 손으로 죽였다.”

“아무것도 모른 채 막무가내로 돌진하다니, 너무 위험한 행동이에요. 혹시라도 상대가 만반의 준비를 했다면 어쩌려고 그러셨어요?”

목운요는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무작정 앞장서려는 월왕이 너무나도 야속했다.

월왕은 충분히 이길 자신 있었다고 말하고 싶었으나, 그녀의 속상해하는 눈빛을 보고 얼른 다가가 손깍지를 꼈다. 그러곤 낮고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

“요아, 내가 잘못했다. 앞으로 다신 안 그러마.”

그는 필사적인 싸움이 습관처럼 몸에 배어 있었다. 월서에선 용맹한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조금이라도 망설였다면 아마 그는 지금까지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그의 뒤에는 늘 그를 걱정해 주는 목운요가 있었다.

마치 그의 몸에 끈을 묶어 놓은 것만 같았다. 다른 사람은 그걸 구속이고 부담이라 느낄지 모르지만, 월왕은 오히려 그것이 자신을 더욱 아껴야 하는 이유라고 느꼈다.

목운요는 괘씸한 마음에 맞잡은 손에 힘을 세게 주었다. 그러나 아무리 힘을 써도 월왕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의 손만 아팠다.

월왕은 피식 웃으면서 손가락으로 목운요의 이마를 살짝 밀었다.

“바보.”

목운요가 그를 노려보았다.

* * *

일행은 천천히 성안으로 들어갔다.

한참을 걷다가 목운요가 심상치 않은 표정으로 월왕을 돌아보았다.

“사야, 주변에 사람이 있는 것 같아요.”

월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느꼈다. 꽤 많은 것 같구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사방에서 사람들이 뛰쳐나왔다. 그들의 손에는 호미, 낫 등이 들려 있었고, 횃불에 비친 얼굴은 노기등등했다.

“너희들은 누구냐! 역병이 옮은 백성들을 죽이러 왔느냐?”

월왕이 맨 앞에 선 자를 향해 물었다.

“우리가 누구이길 바라느냐?”

“쓸데없는 소린 집어치우고 어서 말해! 백성들을 죽이러 온 게냐?”

태의 한 명이 참다못해 나섰다.

“우린 관성 백성들을 구하러 왔습니다.”

“그럴 리가 없어! 조정에서 기수성 백성들을 전부 죽이라 명했다고 들었다. 관성에도 역병이 퍼졌으니 우리도 모조리 죽이려고 하겠지!”

앞장선 남자가 격앙된 목소리를 냈다. 뒤따르는 백성들도 비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쫓아내기 전에 당장 나가거라!”

그에 월왕이 말하려는 순간, 목운요가 먼저 입을 열었다.

“우리가 역병 환자들을 죽이길 바라느냐, 아니면 살리길 바라느냐?”

“살린다고? 어떻게 살릴 건데?”

사람들은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중 몇은 눈물까지 훔쳤다.

역병 환자가 처음 생겼을 때, 관성 전체가 혼란에 빠졌다.

백성들은 현령에게 환자들을 죽여 역병을 막을 것을 요청했다. 이에 화가 난 역병 환자들이 몰래 도망 나와 우물에 자신들의 피를 떨어트렸다.

그 뒤로 역병 환자가 점차 늘어났고, 관성은 절망과 공포에 빠졌다. 우성에 역병이 돌았을 때, 조정에서 성문을 폐쇄하고 우성 백성을 모조리 가둬 죽였기 때문이다.

현령은 관성 백성들에게 우성과 같은 처지가 되지 않으려면 그 누구도 관성에 못 들어오게 막아야 한다고 설득했다. 관성 백성들은 이에 동의해 목운요 일행의 앞을 가로막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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