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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여독비-294화 (294/442)

294화 인간 지옥

식사를 마친 뒤, 사금 일행에게 쉬라고 명한 목운요는 침대에 누웠다. 분명 몸이 녹초가 되었지만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다.

한참을 뒤척이는데, 창가에서 인기척이 났다. 목운요는 베개 밑에서 월왕이 선물해 준 비수를 꺼내고 신경을 곤두세웠다.

“주인님. 접니다, 육냥.”

익숙한 그림자가 창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왔다.

그제야 안심이 된 목운요의 눈에 놀라운 빛이 스쳐 지나갔다.

“육냥, 여기까지 어떻게 온 것이냐.”

육냥이 탁자 위의 촛불을 켜더니 목운요를 향해 인사를 올렸다.

“제가 경릉성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임강 강둑이 터졌습니다. 급히 월왕 전하를 찾아 나섰지만, 성 전체를 다 뒤졌는데도 못 찾았습니다. 그러다 한 땅굴 안에서 이걸 찾아냈습니다…….”

육냥이 소매 안에서 향낭 하나를 건넸다.

목운요는 손에 쥐고 있던 비수를 바닥에 떨어트리고 말았다.

“이걸, 땅굴에서 발견했다 했느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창백해진 목운요의 얼굴에 육냥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말을 이어 갔다.

“일전에 갑작스럽게 죽은 임강성의 현령이 자신의 집 앞마당에 땅굴을 파서 여인을 가뒀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땅굴에 찾아가 봤더니 이미 반쯤 물에 잠겨 있었고 이 향낭만 발견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누군가가 고의로 땅굴 안에 물을 부은 것 같았습니다. 땅굴 주변 지세가 높아, 일반적으로는 절대 잠길 수 없는 위치였거든요.”

목운요는 떨리는 마음을 애써 누르며 향낭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향낭은 아무 손상이 없었으나, 매달려 있던 끈이 끊어져 있었다.

“또 다른 단서는 없느냐?”

“시간이 촉박한 탓에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소저께서 임강성에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여기로 왔습니다.”

목운요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다. 그동안 고생했구나. 방은 구했느냐?”

“네.”

“그럼 어서 가서 쉬어라. 내일도 일찍 출발해야 한다.”

“알겠습니다.”

* * *

이튿날, 아침 일찍이 일어나자 온몸이 부서질 듯이 아팠다. 다리와 손바닥은 퉁퉁 부어 통증이 심했다.

“소저, 여기서 하루만 더 쉬다 가시죠…….”

“괜찮아요.”

곧장 출발을 명한 목운요는 처음엔 혼자 말을 타고 가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다른 사람들의 뒤에 번갈아 타고 갔다.

그리고 삼 일 뒤, 드디어 임강성에 도착했다.

곳곳에 홍수가 휩쓸고 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심지어 길옆에는 퉁퉁 부은 시체까지 보였다.

눈앞의 광경에 목운요는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한때 번화했던 도시가 눈 깜짝할 사이에 인간 지옥으로 변해 버렸다. 소름 돋을 만큼 섬뜩한 광경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육냥이 가까이 접근하려는 이재민들을 막았다.

“소저, 여긴 너무 위험합니다.”

그러나 목운요는 아랑곳하지 않고 주먹을 꽉 쥐며 말했다.

“육냥, 지금 바로 경릉성에 가서 진 총관님께 곡식과 약재를 조달해 달라고 전해라. 그리고 사금, 외할머니께서 주신 금패를 가지고 가서 임강성 관원들한테 알려. 반 시진 내에 이곳으로 모이지 않은 사람은 죄를 물을 것이라고!”

쑥대밭이 된 이곳에서 월왕을 찾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유일한 방법은 소문을 크게 내어 자신이 이곳에 와 있다는 소식을 월왕에게 전하는 것이었다.

사금이 공손히 금패를 받고 나서, 곧장 각 관청을 돌아다녔다.

임강 동지와 염운지사 등은 목운요가 왔다는 소식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온한 군주? 의덕 장공주의 외손녀 말인가? 가만히 혜택이나 누릴 것이지, 왜 임강성에 와서 사람을 귀찮게 하는 거지?

그러면서도 그들은 부랴부랴 관복을 입고 목운요가 있는 쪽으로 모였다.

목운요 일행이 있는 곳에는 이미 꽤 많은 이재민이 모여들어 있었다. 그들 중 대부분은 노약자와 부녀자, 그리고 아이들이었다. 목운요 일행을 향해 길게 팔을 뻗고 있는 그들의 피부는 새까맸고 팔은 마르다 못해 뼈만 남아 있었다.

얼마 후, 임강 동지와 염운지사가 가장 먼저 도착했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목운요를 보자 긴가민가했다. 얼핏 봐도 연약해 보이는 온한 군주가 어떻게 서릉에서 임강성까지 한걸음에 왔단 말인가?

“온한 군주를 뵙습니다.”

깔끔한 차림새의 그들을 보자, 목운요의 눈빛이 순간 차가워졌다.

“일어나시지요. 사서, 반 시진까지 얼마 남았지?”

“소저, 아직 일각 남았습니다.”

“두 분께서는 저쪽에서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네.”

목운요의 서늘한 표정을 보고 놀란 두 사람이 고분고분하게 한쪽으로 물러섰다. 언짢았던 생각도 그녀의 기에 눌려 어느 정도 수그러들었다.

곧이어 임강 현아 주부(县衙主簿)와 전사(典史)가 도착했다. 이마에 땀을 뻘뻘 흘리며 도착한 두 사람의 옷에는 흙탕물이 잔뜩 튀어 있었고, 몰골이 영 말이 아니었다.

“온한 군주를 뵙습니다.”

사서가 다시 아뢰었다.

“소저, 반 시진이 지났습니다.”

목운요가 고개를 끄덕이며 앞에 서 있는 네 명을 바라보았다.

“대인들께 묻습니다. 임강성 수해가 발생한 지 근 보름이 되어 가는데, 왜 길거리에 여전히 이재민들이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거죠?”

이 중 관직이 가장 높은 임강 동지가 나서서 대답했다.

“군주께 아룁니다. 곡식 창고가 강물에 쓸려 내려가고, 현아에 속한 인력들도 대부분 죽거나 다쳤습니다. 게다가 현령 나리마저 돌아가셔서 이재민을 돌보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나, 도저히 여력이 안 됩니다.”

목운요는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지금 여력이 없다는 핑계로 책임을 회피하는 건가요?”

임강 동지의 낯빛이 순간 새하얗게 질렸다. 그가 당황한 기색으로 목운요를 쳐다보았다. 이 온한 군주가 생각보다 쉬운 상대가 아닌 듯했다.

“군주 전하, 현재는 실로 여건이 허락하지 않는 상황입니다. 여기 오기 전까지도 한창 이재민 구제 방법에 대해 상의 중이었지요. 그러다 군주의 부름을 받고 급히 달려온 겁니다…….”

그때, 임강 현승과 통판이 도착했다. 가마를 타고 도착한 두 사람은 신발에 먼지 하나 묻지 않은 깔끔한 모습이었다.

마침 돌아온 사금과 사기는 임강 현승과 통판을 보고 눈에 불을 켰다. 이 시국에 가희의 춤사위나 감상하고 있다니,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었다.

사금이 목운요한테 다가가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그러자 목운요가 매서운 눈빛으로 그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제가 정한 시간은 반 시진이었습니다. 두 대인께서 늦으셨네요.”

“군주를 뵙습니다. 저희가 사는 곳이 멀리 떨어진 데다 오는 길이 흙길이라…….”

“핑계는 듣고 싶지 않아요. 아직 구제되지 않은 이재민들이 너무 많습니다. 두 분의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듣고 있을 시간에, 저들을 돕는 게 우선이지요. 여봐라, 이 둘을 끌어가거라.”

“주, 죽을죄를 졌습니다, 군주 전하. 용서해 주십시오……!”

그러나 시위는 단숨에 두 사람을 제압해 바닥에 무릎 꿇게 한 다음, 칼을 빼내어 목에 갖다 댔다. 목운요의 한마디면 오늘이 그들의 마지막 날이 될지도 몰랐다.

임강 현승과 통판은 넋이 나간 채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사, 살려 주십시오, 군주 전하……!”

강남에 다녀간 군주들이 적지 않지만, 다들 금지옥엽으로 자란 규수들이다 보니 잘 대접만 해 주면 기분 좋게 떠나곤 했다. 그러나 이 온한 군주는 그들과 전혀 달랐다.

목운요가 옷에 흙물이 튄 임강 현아 주부와 전사를 쳐다보며 물었다.

“두 대인의 행색을 보아하니, 여기 오기 전에 물길을 뚫던 중이었나 보죠?”

갑작스러운 물음에 임강 현아 주부와 전사는 황급히 대답했다.

“군주께 아룁니다. 강둑이 무너지고 임강의 물길이 바뀌었습니다. 제때 물길을 뚫지 않았더라면 아마 임강성의 반이 아직 홍수에 잠겨 있었을 겁니다.”

“작업은 잘되어 가나요?”

임강 현아 주부가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피해가 워낙 심각하다 보니 사상자가 임강 백성의 삼 분의 일에 달했습니다. 그나마 살아남은 청년들은 살길을 찾아 떠났고, 남아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물길 작업에 투입되었습니다. 다만 제대로 된 도구가 부족한 데다 식량도 변변치 않아……. 혹 군주께서는 조정의 명을 받고 저희를 구제하러 오신 건가요? 따로 가져오신 식량과 약재가 있으신지요?”

옆에 있던 임강성 전사도 간절한 눈빛으로 목운요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젓자 그들의 눈빛이 다시 참담하게 변했다.

임강 현승과 통판은 목운요가 조정의 명을 받고 온 것이 아니라는 얘기를 듣고, 두려움이 살짝 덜해졌다.

“군주 전하, 저희를 풀어 주시지요.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이재민들을 구제하는 일입니다. 빨리 대책을 세워 저 백성들을 구하셔야 합니다. 지금 저희를 잡아 두어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책임을 지셔야 할 겁니다.”

목운요가 차가운 눈빛으로 그들을 노려보았다.

둘을 포박하고 있던 시위가 손에 들고 있던 장검을 그들의 얼굴을 스치며 바닥으로 내리꽂았다.

“군주께 무례한 자의 결말은 죽음뿐이다!”

동행한 시위들은 장공주가 보낸 사람들과 성 공공이 보내온 사람들이었다. 그들 모두 온한 군주와 월왕의 관계를 알고 있는 터라, 목숨 걸고 목운요를 지키고 있었다.

제대로 놀란 두 사람은 연신 애원했다.

“살려 주십시오…….”

바닥에 꽂힌 검이 살짝만 빗나갔더라도 그들은 아마 저세상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제가 폐하의 명령을 받고 온 건 아니지만, 식량과 약재를 구할 방법을 알고 있지요. 미리 사람을 시켜 경릉성 하운방과 불선루에 소식을 보냈으니, 곧 구호 물품을 보내올 겁니다.”

“하운방, 불선루라면…… 혹시 목 소저와 아는 사이신가요?”

“제가 목운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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