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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여독비-289화 (289/442)

289화 움직이기 시작하다

* * *

소식을 들은 목운요는 그제야 한시름 놓았다.

진왕부 집사가 수면에 드러난 이상, 나머지 일은 큰 문제가 없어 보였다.

집사가 아무리 간이 크더라도 형부 일에 끼어들어 조정 관원 둘을 살해할 만큼의 배짱은 없을 테니, 주인의 지시를 받았음이 틀림없었다.

그가 충성심을 지키기 위해 진왕이 배후임을 밝히지 않더라도, 이미 진왕은 오물을 뒤집어쓴 거나 마찬가지인 셈이었다.

릉왕이 과연 어떤 방법으로 진왕의 죄목을 확실하게 밝힐 것인가, 기대가 되었다.

* * *

한편, 허연한은 긴 고민 끝에 사람을 시켜 소근의 음식에 약을 탔다. 치명적이진 않으나 피를 토하게 함으로써 몰골이 처참해 보이는 약이었다.

그다음 사람을 시켜, 소씨 가문이 양렴의 일에 연루될까 봐 속사정을 알고 있는 소근을 자살로 위장해 죽이려 한다는 걸 토로하게 했다.

피투성이가 된 소근은 곧장 소부를 도망쳐 나왔고, 마침 순천부 관리와 맞닥뜨렸다.

사실 그녀는 이번 강남 소금세 사건에 대해서 꽤 많은 내막을 알고 있었고, 심지어 가장 핵심적인 증거가 숨겨진 곳도 알고 있었다.

목숨을 건지기 위해 소근은 심병괴에게 강남 소금세 사건이 서릉 내 거물들과 연관이 있으며, 자신의 손에 중요한 물증이 있다고 자백했다.

안건이 심상치 않음을 직감한 심병괴가 더 자세히 물으려고 하자, 그녀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그녀의 목적은 진실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한 말이 널리 퍼지면 진왕이 어떻게든 자신의 목숨을 살려 줄 것이라고 그녀는 믿고 있었다. 혹여 목숨이 위태롭게 되더라도 물증을 밝히면 진왕도 같이 망하게 되는 것이다.

심병괴는 하는 수 없이 사실대로 황제께 상주했다.

연이어 일어나는 사건에 황제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사건은 순천부에서 처리하도록 하거라. 심병괴, 자네는 짐이 가장 신임하는 신하 중 한 명이니, 절대 실망시키지 말게.”

심병괴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공손하게 무릎 꿇어 인사를 올렸다.

“폐하, 염려 마십시오. 폐하의 명을 받들어 빠른 시일 내에 진실을 밝히겠습니다.”

* * *

소식을 들은 목운요는 도저히 믿기지 않아 금교에게 재차 확인했다.

“소씨 가문이 소근을 죽이려 했다고요?”

“네. 소근한테 몰래 약을 먹였는데, 공교롭게도 양을 적게 쓰는 바람에 죽지 않고 소부에서 도망쳐 나왔답니다.”

“소근을 독살하다니?”

목운요는 큰 의문이 들었다.

“소씨 가문 사람들도 분명 이 상황에서는 쥐 죽은 듯 조용히 지내는 게 상책이라는 것을 알 텐데, 소근을 독살하려 하다니. 다들 정신이 나간 건가?”

그에 금교가 조심스럽게 의견을 꺼냈다.

“혹시 누군가가 소씨 가문을 모함하려는 걸까요?”

“그런 거라면 너무 반가운 모함이죠. 안 그래도 증거가 부족해 고민 중이었는데, 마침 소근이 나서게 도와줬잖아요. 사서, 성 공공께 소근의 신변을 잘 보호하시라고 전해. 소근이 손에 쥔 증거를 밝히기 전까진 절대 아무 일도 있어서는 안 돼.”

“네, 소저.”

* * *

한편, 허연한은 장공주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머니, 제가 잘못된 결정을 내린 걸까요?”

“아니, 아주 잘했다. 이 어미가 젊었을 때보다 훨씬 낫구나.”

허연한은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동안 많은 소식을 접했는데, 가장 핵심 인물이 양렴이더라고요. 확실치는 않았으나, 양렴의 부인으로서 소근이 왠지 내막을 알고 있을 것 같았어요. 그리고 예전에 소씨 가문이 사실을 숨기려고 저와 요아를 죽이려 했던 일이 생각나, 그들이라면 혐의를 면하기 위해 충분히 소근을 없애려 할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독을 먹이고 속임수를 써 소근 스스로 소부를 떠나게 했지요.”

“역시 내 딸이구나. 아주 적절한 방법이었다. 다음은 어떻게 할지 생각해 보았느냐?”

허연한이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실은 생각해 둔 게 있긴 한데…….”

장공주가 웃으며 말했다.

“뭐든 말하거라.”

“실은 육공주를 이용할까 하는데, 아무래도…….”

육공주는 황실 혈통인 데다 혈연이어서 이 방법은 너무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먹었으면 해야지. 회양 성격에 이대로 뒀다가는 나중에 더 험한 꼴을 당할 수도 있을 거다. 게다가 애당초 소부에 시집가려 할 때 내가 말렸는데도 고집을 부렸지. 자신의 결정에 따른 책임을 질 줄도 알아야 한다.”

허연한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어머니, 잘 알겠습니다.”

대화를 마친 뒤, 허연한은 느린 걸음으로 목운요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방 안에 켜진 따뜻한 촛불을 보자 기분도 훨씬 나아지는 듯했다.

차를 버리러 나온 금란은 허연한을 보자마자 급히 인사를 올렸다.

“부인을 뵙습니다. 어서 들어오십시오.”

“그래.”

허연한이 방에 들어갔을 때 목운요는 한창 향낭 만들기에 몰두하고 있었다.

“요아야, 이건…….”

청색 향낭에 우아한 난이 수놓아진 걸 보아하니 사내를 위한 것이 분명했다.

어머니가 올 줄 몰랐던 목운요는 황급히 향낭을 내려놓았다.

“어머니, 어떻게 오셨어요? 어서 앉으세요.”

허연한은 웃음을 띤 채 목운요를 바라보았다.

“월왕 전하께 드리려고 하는 거니?”

목운요가 얼굴이 빨개지며 대답했다.

“전하께서 가지고 다니시는 향낭이 하도 낡았길래 시간이 나서 새로 만들어 드리려는 것뿐이에요. 오해 마세요.”

“요아야, 네 마음이 이렇게나 티가 나는데 자꾸 네 자신을 속이려 하지 말거라. 나는 네가 후회할 결정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어머니…….”

월왕 얘기가 이어지자 목운요는 저도 모르게 대화를 회피했다.

“그보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무슨 일로 오셨어요?”

“소부 일은 들었지?”

목운요가 고개를 끄덕였다.

“금교한테서 전해 들었어요. 소씨 가문 사람들이 어리석은 건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손을 쓴 건지는 몰라도, 이제 소씨 가문은 완전히 무너진 거나 다름없어요.”

허연한이 잠깐 침묵하더니 입을 열었다.

“내가 그랬다.”

목운요는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소근을 독살하라고 시킨 사람이…… 나다.”

그녀는 깜짝 놀란 나머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게…… 정말이에요?”

“요아야, 혹시 이런 내가 잔인하다고 생각하니?”

딸아이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해낼 자신이 있으나, 목운요가 그런 자신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건 바라지 않았다.

걱정스러운 그 안색에, 목운요가 천천히 미소를 지으며 허연한의 곁에 딱 붙어 앉았다.

“어머니, 아주 잘하셨어요. 소씨 가문은 우리의 적이에요. 적을 대할 땐 절대 마음이 약해져서는 안 돼요. 이번엔 어머니가 저에게 큰 도움을 주신 거예요.”

그 말을 듣자 허연한도 한시름이 놓였다.

“요아야, 네 외할머니 말이 맞구나. 내가 너를 보호하고 네 짐을 덜어 주면 넌 지금보다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어머니가 제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저는 충분히 행복한걸요.”

“으이구, 이 바보.”

마음의 짐을 덜어 낸 허연한은 소부에 심어 둔 사람에게 계획대로 진행하라고 지시했다.

* * *

이틀 뒤.

육공주가 직접 황제를 찾아가 소씨 가문을 위해 사정했으나, 황제는 그런 육공주를 궁에서 쫓아낸 뒤 앞으로 황궁에 한 발짝도 못 들이게 했다.

소식을 들은 목운요는 놀라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금교가 고개를 내저었다.

“육공주가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통 이해할 수가 없네요. 사정을 한다는 건 죄를 인정한다는 거나 마찬가지인 걸 머리 나쁜 저도 아는데, 육공주가 그걸 모르고 그랬을까요?”

헛웃음을 지은 목운요는 곧장 허연한을 찾아갔다. 안에 들어서자 곡 마마도 함께 있었다.

“어머니와 곡 마마를 뵙습니다.”

“소저를 뵙습니다.”

“요아야, 무슨 일이니?”

곡 마마가 사정을 다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한 목운요는 스스럼없이 말했다.

“어머니, 오늘 아침 육공주가 궁에 가서 소씨 가문을 위해 사정했다가 쫓겨났다고 하네요. 알고 계셨나요?”

허연한이 곡 마마를 쳐다보더니 작게 미소 지었다.

“나도 방금 곡 마마한테서 들었단다.”

“혹시 이것도 어머니께서 하신 일인가요?”

“곡 마마의 도움이 컸다. 육공주 주변의 시녀와 마마들을 전부 매수해서, 하루 종일 육공주 귓가에 대고 소근을 독살하려 한 일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거라고 속삭였지. 아주 쉽게 넘어왔더구나.”

허연한을 바라보는 목운요의 눈에서 빛이 반짝였다. 이제 더 이상 예전의 어머니가 아님을 새삼 느꼈다.

“온실의 화초처럼 자란 육공주가 바깥 상황을 전혀 모르긴 하지요. 아마 지금도 폐하께서 자신을 무한으로 포용할 거라 생각할 거예요.”

고개를 끄덕이는 허연한의 눈에 낯선 차가움이 스쳐 지나갔다.

“소씨 가문도 이제 대가를 치를 때가 온 것이지.”

어머니의 변화된 모습에 목운요는 무척 기뻤다. 이전과 같은 마냥 선한 성품이었다면 아마 여러 사람의 공격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금란의 말대로 수동적으로 바뀌는 것보다야 스스로가 바뀌려고 노력하는 것이 더 나은 듯했다.

* * *

낙담한 모습으로 진왕부에서 나온 소청오는 소부에 돌아가자마자 소문원의 부름을 받고 서재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발밑에 찻잔 하나가 날아와 깨졌다.

쨍그랑-!

“네 그 잘난 부인이 우리 집안을 망쳤다! 어째서 육공주를 잘 단속하지 못한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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