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8화 꼬리 밟힌 여우
* * *
그 후로 며칠 동안 목운요는 하운방에서 밤낮을 보냈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옷들은 하나둘씩 각각의 저택으로 보내졌다. 그 덕분에 서릉에선 강남 소금세에 대한 소문 대신, 하운방의 옷이 사람들의 최대 관심사가 되었다.
서릉의 여인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하운방의 옷을 입고 나들이를 즐겼다. 화려한 옷 덕분에 어딜 가나 눈길을 사로잡았다. 게다가 단 한 벌도 겹치는 양식이 없다 보니, 여인들이 입은 옷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옷을 다 돌리고 숨 돌릴 새도 없이, 하운방 앞이 다시 예약하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지난번에 예약 못 한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예약하려 들었고, 예약에 성공한 사람들은 옷을 더 장만하려고 다시 찾아온 것이었다.
채의는 장부에 적힌 매출을 보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소저, 이것 좀 보세요. 하운방 매출이 십만 냥 가까이 되었어요!”
직접 보지 않았더라면 절대 믿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빠른 시일 내에 이 정도 매출에 도달한 적은 여태껏 없었다.
“수고한 수낭들한테 은자 오십 냥씩 주고, 솜씨 좋은 이들한테는 오십 냥을 더 얹어 줘요. 푸대접하지 않을 거라고 약조했으니 지켜야죠.”
“네, 소저! 그보다 다음 예약은 어찌할까요?”
“당분간은 받지 않고 하복 준비를 하기로 해요. 일부 양식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 똑같은 옷은 없어야 해요. 그래야 하운방이 손님들을 정성껏 모신다는 인식이 설 테니.”
“네, 명심하겠습니다.”
한동안 바삐 지내고 나니, 벌써 십 일이나 지났다. 하지만 목운요에겐 그 시간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월왕은 강남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집으로 돌아온 목운요는 잠깐 잠이 들었다. 꿈에서 월왕이 피범벅이 된 채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깜짝 놀란 그녀는 벌떡 일어났다,
“전하…….”
소리를 들은 금란과 금교가 급히 달려왔다.
“소저, 악몽이라도 꾸셨나요? 식은땀을 잔뜩 흘리셨어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목운요가 손을 꼭 움켜쥐었다. 금란이 가져온 물 한 잔을 마셨지만 여전히 마음속은 뒤숭숭했다.
“불선루에선 아직 아무 소식 없나요?”
“아직은 잠잠합니다.”
목운요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인 뒤, 옷을 갈아입고 바깥 정자에 산책하러 나왔다.
그때, 육냥이 빠른 걸음으로 달려왔다.
“소저, 제명이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릉왕이 강남 소금세 사건을 크게 벌일 작정인데, 자세한 설명은 없었으나 임강성과 회안성의 습보헌 점포를 잠시 닫고 은자와 인력을 반으로 줄이라고 명했다 합니다.”
“임강성과 회안성을?”
목운요는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설마 릉왕이 임강에 손을 쓸 생각일까…….”
“그리고 임강성 염운사가 갑자기 비명횡사해 월왕 전하께서 한동안은 임강성에 머물 것 같습니다.”
목운요의 안색이 급격히 변했다. 월왕에게 임강을 최대한 피하라고 전하고 싶었으나, 월왕이 과연 소식을 듣고 그 많은 백성을 두고 보기만 할지 의문이 들었다.
“릉왕이 임강 강둑을 부술 수도 있으니, 두 지역에 병력을 주둔시켜 강둑을 지키라고 월왕 전하께 전하거라. 어서!”
“네, 주인님.”
* * *
그 뒤로는 아무런 소식도 들려오지 않았다. 목운요는 두 번이나 장공주를 찾아가 소식을 물었지만 전혀 소득이 없었다.
성 공공도 몰래 사람을 시켜 월왕을 찾아 나섰으나, 강남까지 거리가 먼 탓에 아무리 빨라도 소식을 전하는 데 한참은 걸려 속만 까맣게 타들어 갔다.
그렇게 어느덧 삼월에 들어섰다. 조정에서는 소금세 사건 조사를 떠난 월왕의 소식을 목 빠지게 기다렸으나, 감감무소식이었다.
진왕부 내. 집사가 진왕에게 서신을 건넸다.
“왕야, 강남 쪽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그래. 릉왕이 일을 크게 벌여 나를 음해할 작정이라고 하니 어디 한번 해 보지. 월왕이 임강성에 갇혀 있다는 소식은 확실한 건가?”
“네, 틀림없습니다.”
“그럼 시작하라고 전하거라. 그리고 양렴, 그자는 없애거라.”
“명 받들겠습니다.”
서릉에서 애타게 소식을 기다리고 있던 그때, 형부에서 사달이 났다. 수감 중이던 양렴과 추민이 하룻밤 사이에 살해당한 것이다.
소식을 전해 들은 황제는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내동댕이치며, 형부 상서에게 철저히 조사하라고 명했다.
* * *
사서를 통해 소식을 전해 들은 목운요는 심란해졌다.
“분명 주의 깊게 지켜보라고 전했거늘, 어떻게 기회를 엿보인 거지?”
사서가 공손히 대답했다.
“성 공공께서 전하시길, 릉왕이 일부러 그런 거라고 합니다.”
“일부러?”
“네. 진왕이 사람을 보내 양렴을 없애려고 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릉왕이 일부러 막지 않았을뿐더러 추민도 같이 죽였다고 합니다.”
목운요의 눈빛이 점점 어두워졌다.
“양렴이 비록 불리한 상황에 처해 있긴 했으나, 진왕과 관련된 자백은 일절 하지 않았지. 진왕이 무사해야 자신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그런데 진왕은 왜 위험을 무릅쓰고 그자를 죽이려 했을까?”
깊은 사색에 빠진 목운요에게 방해가 될까 봐, 사서는 한쪽에서 숨죽이고 서 있었다.
팔찌를 돌리던 목운요의 손이 갑자기 멈췄다.
“진왕이 강남 소금세 사건에서 빠져나갈 방법을 찾았는데, 유일하게 내막을 알고 있는 양렴이 걸림돌이 되어 급히 죽인 걸까? 이게 맞다면 과연 진왕이 무슨 수로 소금세 사건에서 빠져나가려는 거지?”
그때, 사서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모든 증거를 다 없앨 방법을 찾은 걸까요?”
“증거…… 증거라…….”
목운요의 안색이 갑자기 창백해지더니 급히 금란을 불렀다.
“금란, 어서 육냥을 불러 줘요.”
얼마 지나지 않아 육냥이 도착했다.
“주인님을 뵙습니다.”
“육냥. 당장 내 친필 서신과 은표를 가지고 경릉성에 있는 진 총관님을 찾아가, 창화표호(票號, 옛날 개인 금융 기관)에 가서 은자 이백만 냥으로 바꾼 후 육로를 통해 서릉으로 보내라 전하거라. 혹시 월왕 전하와 연락이 닿거든 꼭 임강의 범람을 조심하라 전하고. 서신은 반드시 진 총관님께 직접 줘야 해, 알겠지?”
“네, 걱정 마십시오.”
목운요는 곧장 탁자로 가서 서신을 쓰기 시작했다. 단숨에 서신 세 통을 쓴 뒤 은표와 함께 육냥에게 건네주었다.
“육냥, 지금 바로 경릉성으로 떠나거라. 한시가 급하니 최대한 빨리 가야 해.”
“소인, 지금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육냥이 떠난 뒤, 금란이 조심스레 물었다.
“소저, 심각한 상황인가요?”
“진왕 그 사람은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아요. 다른 사람에게는 더 말할 것도 없죠.”
목운요가 생각에 잠기며 말을 이었다.
“두고 봐야죠. 내 생각이 맞으면 미연에 방지한 셈이고, 틀리더라도 인력과 물력이 든 것밖에 없으니.”
금란은 여전히 이해가 안 갔지만, 목운요의 심각한 표정을 보고 더 이상 묻지 않았다.
* * *
옥중 살인 사건 조사를 명 받은 형부 상서는 의심스러운 두 옥졸을 찾아냈다. 하지만 심문을 하기도 전에 두 사람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결국 형부 상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황제에게 이 상황을 보고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황제는 노발대발했다. 율법을 지켜야 하는 형부에서 조정 관원 두 명이 암살당한 것도 모자라, 옥졸들까지 연루되어 있다니. 이건 명백히 조정의 위엄을 도발하는 행위였다.
궁에서 나온 형부 상서는 무척이나 초췌해 보였다. 그는 의상을 갈아입은 뒤 릉왕부로 찾아갔다.
릉왕은 차를 권하며 상대를 진정시켰다.
“소 대인, 내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그 두 옥졸은 자살이 아니라 타살이고, 암살자를 보낸 자는 진왕부 집사더군요.”
차 한 모금을 들이켜던 형부 상서는 그 말을 듣자마자 겁에 질렸다.
“전…… 전하, 저더러 진왕 전하를 고발하라는 겁니까?”
두 황자가 서로 견제하는 사이긴 하나, 황제가 보는 앞에서는 늘 사이좋은 형제 흉내를 냈다. 드디어 본모습을 드러냈다 쳐도, 고작 형부 상서인 자신이 나설 자리는 아니었다. 그건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는 일이었다.
“걱정 마십시오. 진왕을 지목하라는 게 아니고, 조사 결과를 있는 그대로 부황께 전하기만 하면 되니. 그럼 부황께서 알아서 결단을 내릴 것입니다.”
릉왕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눈빛에는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전하…… 그게 상책일까요?”
“이번 사건이 워낙 흉흉하다 보니 판결 기한 내에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할 경우, 부황께서 형부 상서의 관직을 파면할 수도 있습니다. 이게 대인께서 바라는 결말인가요?”
“그럼 전하 말씀대로 따른다면, 황상께서 저를 가만두실까요?”
“내 말대로 따른다면, 대인이 무사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소 대인은 제 오른팔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대인의 지지 덕분에 내가 조정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을 수 있게 됐지요. 그 공로는 평생 잊지 않을 겁니다.”
형부 상서가 한참을 고민하더니,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왕야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그러시죠.”
* * *
이틀 뒤, 형부 상서가 상주서를 올렸다. 황제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크게 노했다. 상주서 내용이 전부 진왕부 집사를 배후로 지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왕은 곧장 궁으로 소환되었다. 추민도 독살됐다는 소식에 그는 이번 일이 릉왕의 수인 것을 알아챘다. 최대한 모든 증거를 없앴지만, 시간이 촉박한 탓에 결국 허점을 보인 것이다.
“부황,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요즘 계속 공부에서 쟁기 개조 일을 하느라 집 밖에도 거의 나가지 않았습니다. 한데 그런 제가 살인 사건의 배후라니, 말도 안 됩니다. 게다가 형부 상서는 큰형님과 가까운 사이라 알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형부 상서는 급히 반론했다.
“진왕 전하. 제가 지목한 배후는 진왕부 집사입니다. 찬찬히 심문하고 나서 결론을 내려도 무방하지요. 한데 이렇게 급히 반박하는 걸 보니 오히려 수상합니다. 혹시 진왕부 집사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파악하고 계신지요?”
그에 황제는 다시 무거운 표정으로 상주서를 훑어보았다. 상주서에 적혀 있는 모든 단서와 증거는 명백히 진왕부 집사를 가리키고 있었다.
인내심이 바닥난 황제가 변명 중이던 진왕의 말을 잘랐다.
“진왕부 집사라는 실마리를 알아냈으니 형부 상서는 계속해서 조사하라. 무슨 일이 있든 진상을 반드시 밝혀내야 한다!”
형부 상서는 내심 기뻐 큰 소리로 대답했다.
“네, 폐하!”
반면 진왕의 안색은 급격히 어두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