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여독비-252화 (252/442)

252화 심문

* * *

월왕은 퇴궐하기 전, 황제의 급한 부름을 받았다.

대전 안에는 순천부 부윤 심병괴, 이부 상서 소문원, 대황자 릉왕, 그리고 삼황자 진왕이 꿇어앉아 있었다.

월왕은 대전 안으로 들어가 공손하게 예를 올렸다.

“소자, 부황을 뵙습니다.”

황제는 나머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월왕에게도 일어나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소씨 가문에 살인 사건이 있었다. 사건에 너도 연루되어 있기에 너를 심문하러 부른 것이다. 심 대인, 시작하시오.”

“네, 사건의 경과는 이렇습니다. 그날, 하인 하나가 순천부 문 앞에 웬 여인이 기절해 있다고 고했습니다. 그래서 소신이 직접 살펴보고 의원을 불러 여인을 깨웠습니다. 그 여인이 이르길 자신의 이름은 소우이며, 통정사(通政司) 참의(參議) 소지원의 여식이라고 했습니다. 목운요와 함께 계례를 올리는 날이라서 곁채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창에서 자신과 비슷하게 입은 여인이 뛰어들어 자신을 죽이려고 했다고 말했습니다. 소신이 이를 듣고 놀라 더 위험한 일이 있을까 얼른 소우와 함께 소씨 가문으로 향했습니다. 소씨 가문에 도착해 보니 손님들이 앞마당 연못을 에워싸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신책이란 자가 목운요의 지시를 받아 소우를 살해했다고들 했습니다. 신책은 자신이 목운요와 사통했으며, 두 사람의 관계가 소우에게 들통난 후 사실이 발각될까 봐 죽였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소상히 따져 묻자 다른 하인들의 말과 신책의 말이 서로 앞뒤가 맞지 않아 진상을 밝힐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단독으로 소우를 심문해 보니 소우는 목운요와 신책이 접촉하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 후 밤새도록 소씨 가문 하인들을 심문해서 진상을 밝혔고, 이를 적은 진술서를 드리오니 부디 황상께서 살펴 주십시오.”

황제는 서립의 손에서 진술서를 받아 자세히 읽은 후, 창백한 얼굴의 소문원을 바라보았다.

“소 대인, 심문에 따르면 그대의 부인 맹 씨가 하인에게 목운요를 모함하라고 시켰다는데, 더 할 말이 있소?”

“황상, 제 부인 맹 씨가 도량이 좁은지라 예전에 목운요와 갈등을 겪은 후로 계속 미워하고 있었습니다. 소신이 주의를 주었으나 맹 씨가 고집이 세서 제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제 분수는 지키는 줄 알았건만 이런 대담한 일을 저지르다니, 정말 고개를 들 수가 없습니다. 마땅히 황상의 처벌에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계례 날 벌어진 사건이 다 맹 씨가 목운요를 모함하려고 저지른 짓이란 말이오?”

“예…….”

소문원이 이를 악물었다.

“소신도 일이 벌어진 후에 맹 씨에게 물어서 알게 된 사실입니다. 사건을 미리 막지 못한 것은 소신이 집안을 엄히 다스리지 못한 탓이니 황상의 벌을 달게 받겠습니다.”

“좋소. 이 사건은 나중에 자세히 심문한 후에 처리하도록 하겠소. 그런데 그뿐만이 아니오. 소씨 가문에 어찌 사병이 있는 거요? 게다가 사병이 군용 장궁을 가지고 있다니? 조정의 관리로서 그게 무슨 뜻인지는 잘 알지 않소?”

황제의 말에 담긴 한기에 소문원은 몸서리를 쳤다. 그는 무릎을 꿇은 채 두 보 나아가 머리를 조아렸다.

“황상, 소신은 황상에 대한 충심이 지극한데 어찌 감히 그런 대역무도한 일을 저지르겠습니까?”

진왕도 입을 열었다.

“부황, 소 대인은 이부 상서로서 줄곧 맡은 바 소임에 충실했습니다. 그 충심은 하늘의 해와 달이 다 알 것입니다. 부디 진실을 밝혀 주십시오.”

“아직 네게 묻지 않았다. 짐이 들은 바로는 소문원의 집에 궁수 열 명이 있었고 모두 진왕부에서 차출한 자라고 하던데?”

“맞습니다. 이 일에 분명 소자의 책임도 있습니다. 그동안 소씨 가문에 변고가 많아서 소 대인이 저를 찾아와 가문의 안전을 위해 시위를 빌릴 수 있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계례 날에 무슨 사고라도 생기면 안 된다고요. 소신은 소 대인의 마음에 감화하여 시위 열 명을 빌려주었습니다.”

소문원이 고개를 들었다.

“황상, 당시 저희 모친께서는 소청과 운요로 인해 마음에 응어리가 많아 병이 위중하셨습니다. 소신이 그저 모친의 기분을 좋게 해 드리고 싶어 조금 극단적인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궁수를 움직일 생각은 전혀 없었고 다만 조금 겁을 주려던 것이었는데, 월왕 전하께서 곧장 부하를 시켜 궁수들을 몰살하셨습니다.”

진왕이 고개를 돌려 월왕을 보았다.

“넷째, 네가 너무 충동적이었다. 목운요가 아무리 좋아도 그리 거침없이 행동해서야 되겠느냐?”

월왕은 차가운 눈으로 진왕을 마주했다.

“그럼 형님과 소 대인께선 궁수들이 소 부인과 목 소저를 쏜 후에 제가 움직여야 했다는 겁니까?”

“월왕 전하, 저는 궁수들에게 그런 일을 시킨 적이 없습니다. 오해이십니다…….”

“그럼 내가 왜 소 부인과 목 소저가 대문을 한 발자국만 나서도 죽이라는 말을 들은 거요?”

“월왕 전하, 저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대체 어디서 들으신 겁니까?”

소문원은 억울한 표정에 화가 난 말투였다.

월왕이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려고 하는데 문 앞에서 고하는 소리가 들렸다.

“황상, 의덕 장공주 전하께서 오셨습니다.”

“누님께서? 얼른 안으로 모셔라.”

장공주가 천천히 대전 안으로 걸어와 무릎을 꿇은 소문원을 보았다. 장공주의 눈빛에는 깊은 살기가 담겨 있었다.

“황상을 뵙습니다.”

“누님, 예의는 거두시고 어서 상좌에 앉으시지요.”

서립이 용상 옆에 의자를 하나 더 놓고 장공주에게 앉기를 청했다.

“원래 제가 여기 와선 안 되지만 목운요와 연루된 일이라 관심이 가서 부득불 오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가장 마음에 드는 아이거든요. 나이는 어리지만 언행의 분수를 잘 알고 자꾸 호감이 가는지라 목운요를 제 딸로 입적하고 외손녀처럼 키우고 싶습니다.”

황제는 놀란 눈을 했다.

“벌써 결정하셨습니까?”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인연입니다. 운요는 제 마음에 꼭 드는 데다 제 목숨을 구한 은인이기도 하지요. 하여 오늘 황상과 상의하고 흠첨감(钦天监, 천문을 관측하고 길흉을 점치는 관청)에서 대길일을 잡아 그날 운요의 이름을 족보에 올리고 싶습니다.”

소문원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이마에 식은땀이 났다.

장공주가 목운요를 외손녀로 삼다니! 소씨 가문의 입장에선 다시는 가문을 재기하지 못하게 누르는 큰 산과 같은 일이었다!

황제는 장공주의 얼굴에 걸린 미소를 저버릴 수 없었다.

“그럼 지금 처리해야 할 일만 끝낸 후에 흠첨감의 책임자에게 직접 길일을 점쳐 보라고 하겠습니다.”

장공주의 웃음이 짙어졌다.

“알겠습니다. 이번 사건은 큰 사건이라 조정 안팎으로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러니 반드시 신중하게 처리해야 합니다.”

“마침 오셨으니 옆에서 듣다 가시죠. 이 일을 해결하고 난 후에는 옥화궁에서 함께 식사하고 싶은데, 괜찮으십니까?”

“좋죠.”

“방금 어디까지 말했지? 계속 말해 보아라.”

월왕은 입을 열어 황제에게 아뢰었다.

“셋째 형님은 제가 경솔하다고 하셨습니다. 궁수들이 소 부인과 목 소저를 공격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고 하신 것에 소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진왕의 안색이 한순간에 변했다.

방금 장공주는 목운요를 자신의 외손녀로 삼겠다고 했다. 월왕이 저런 식으로 말해 버리는 것은, 진왕 자신을 장공주에게 밉보이게 만들려는 심산이 아닌가?

‘입이 무겁고 말이 적은 우리 넷째가 언제부터 이간질하는 법을 배웠지?’

“황상, 제 말은 절대로 그런 뜻이 아니었습니다.”

황제는 다소 귀찮은 듯 보였다.

“됐다. 네가 궁수들을 소씨 가문에 빌려준 것부터가 법도를 크게 어긴 것이다. 위협한다는 명분으로 세워 두었다지만, 사실 그자들이 사람을 죽이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겠느냐? 군월이 그자들을 죽인 것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으니 그것 때문에 계속 소란 피우지 마라.”

“……네.”

진왕은 고개를 떨궜다. 알 수 없는 위기감이 들었다. 예전에 부황께선 월왕을 심히 미워하고 냉랭하게 대하셨다. 하지만 이번에는 월왕의 편에 서서 말씀하시다니……. 설마 장공주가 은밀히 손을 쓴 것은 아닐까?

황제는 잠시 생각하더니 심병괴에게 말했다.

“방금 그대가 올린 문건을 보니, 사건의 경위를 아주 소상히 조사했더군. 법에 따라 처리하시오. 맹 씨에게는 마땅히 내려야 할 벌을 내리시오. 그리고 소 대인은…….”

한데 황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문어귀가 돌연 시끄러워졌다.

“무슨 일이냐?”

서립이 빠른 걸음으로 문어귀에 다가가 확인한 후, 다시 돌아와 황제에게 아뢰었다.

“회양 육공주께서 알현을 청하십니다.”

“지금이 어느 땐데 찾아온 것이냐! 돌려보내라!”

하지만 육공주 회양이 막무가내로 들어와 바닥에 털썩 꿇어앉더니 이마를 땅에 조아렸다.

“부황, 소 대인은 조정의 관원으로서 오랫동안 자신의 맡은 일을 해 왔습니다. 비록 이번엔 올바르지 못하게 행동한 점도 있지만, 그렇게 행동한 연유를 따지자면 결국 소씨 가문의 노부인을 걱정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소청과 목운요는 위중한 노부인을 돌보지 않고 곧바로 가문에서 떠나려 했습니다. 이건 아랫사람의 도리가 아니지요. 부디 소 대인의 효심을 헤아리시어 처벌을 가볍게 내려 주십시오.”

“회양, 네가 입을 열 자리가 아니다. 어서 물러가지 못하겠느냐!”

“저는 소청오를 좋아합니다. 이번 생에 그 사람이 아니면 다른 사내와 혼인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러니 저는 훗날 소씨 가문에 들어갈 것이지요. 지금처럼 소 대인을 엄하게 다스리시면 제가 나중에 어찌 소씨 가문에서 살아가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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